자녀 몸의 자해 흔적은 ‘고통스럽다’는 감정 표현...비난 대신 인정하고 대화해야
자녀 몸의 자해 흔적은 ‘고통스럽다’는 감정 표현...비난 대신 인정하고 대화해야
  •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
  • 승인 2022.07.11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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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와 정신건강 리포트-제3회
자해 자녀에 신체검사하고 같은 감정 토해내면 오히려 역효과
자녀 감정의 인정이 의사소통 도구이자 수용의 표현
자해 행동 아닌 힘든 상황에 초점 맞추고 전문가 찾아야

<마인드포스트>는 정신건강 소비자 운동 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와 함께 청소년과 정신건강을 주제로 총 10차례에 걸쳐 특집 ‘미래 세대와 정신건강 리포트’를 게재합니다.

자해하는 딸을 잘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자해를 하는 자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엄마는 본인 스스로 그리고 자녀에게 실망하고 짜증이 나며, 자책감과 무력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아이를 돕겠다는 명목하에 섣불리 아이를 밀어붙이다가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엄마도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지켜보는 엄마도 지치기 마련이고,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게 된다.

아이들에게 자해는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와 같다. 자해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자해만큼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마음이 다시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담배를 피울 수도, 진탕 술을 먹고 고통을 잠시 잊을 수도 없다. 십대들에게 자해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극도의 정신적 고통이나 혼란스러운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는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여기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이 시간들을 잘 통과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어주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취약한 자녀를 잘 돕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양육 기술은 잊고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필요하며 부모 스스로를 돌보는 일도 참으로 중요하다.

자녀의 자해를 멈추게 하고, 회복을 돕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부모들이 많이 사용하지만 자해를 멈추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대표적인 부모의 행동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c)멘탈헬스코리아.
(c)멘탈헬스코리아.

첫 번째, 자해 도구를 없애는 것이다.

처음 아이의 자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자해 행동’을 못하게 하는 것에 혈안이 돼 집 안에 아이가 자해에 쓸 수 있는 모든 날카로운 물건들을 숨기거나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계속해서 자녀의 공간과 자녀를 감시하게 만들며 이는 잠재적으로 자녀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될 확률이 아주 높다.

자녀는 자해를 시도하기 위해 언제든 새롭게 도구를 구할 수 있으며 더욱 치밀한 방식으로 자해 도구를 숨기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녀를 위해 인위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보다는 위험한 물건들이 존재하는 이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녀가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부러 날카로운 물건을 아이의 눈에 띄도록 그대로 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해 도구를 발견하고 없애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은 아이가 자해 도구를 손에 쥐지 않아도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자해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두 번째, 자해를 했는지 주기적으로 신체검사를 하는 것이다.

옷을 걷어보라고 하고, 자해 흔적이 있는지 살피는 것은 자녀에게 창피함과 모욕감을 주는 행동일 뿐이다. 이는 치료 전략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거의 처벌에 가깝다. 이처럼 모욕적인 전략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자녀가 자해를 더욱더 숨기는 데 노력하게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엄마의 감정을 자녀에게 토해내는 것이다.

“자해를 할 거면 차라리 그냥 죽지 왜 그어!”

“한 번만 더 하면 엄마도 너랑 똑같이 할 줄 알아!”

“너 정말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럼 같이 죽자 죽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과 감정을 토해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엄마는 너무나 화가 나고 속상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라고 하지만, 아이는 온몸에 묻혀진 그 감정의 토사물을 방으로 돌아와 혼자 닦아내야 한다.

그렇다면 자해하는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부모의 말, 태도, 행동은 무엇일까? 자해하는 자녀와 대화 시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기술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는 자녀의 감정을 인정(Validation)해주는 것이다.

“너가 도대체 뭐가 힘들다고 그래! 너가 왜 우울한데 왜! 정말 이해가 안 가!”

이처럼 자녀의 감정을 거부, 인정하지 않는 말은 정서적 학대의 가장 해로운 형태의 하나이며, 이는 자녀로 하여금 더욱 미쳐버릴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이 자해 인식개선 및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c)멘탈헬스코리아.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이 자해 인식개선 및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c)멘탈헬스코리아.

어느 부모가 우리 아이의 자해 사실을, 또 자해를 할 만큼 우리 아이가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애지중지 키운 딸의 손목에 난 칼자국을 보고 어느 부모가 흥분하지 않고 아이에게 좋게 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은 자녀와의 대화를 열어주는 아주 중요한 의사소통 도구이자 사랑과 수용의 표현이라는 것을 말이다.

감정의 인정은 자녀가 건강한 심리적 발달을 해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아이의 경험이나 생각, 아이가 느꼈던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한다고 해서 아이의 선택에 동의하거나 허락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감정의 인정은 아이가 그동안 언어와 몸으로 ‘나 너무 힘들어요. 고통스러워요’라고 했던 표현을 당신이 알아차리고,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그 힘든 것을 판단하지 않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관점이 아니라 공감과 이해, 인정이다. 당신이 더 들어주고, ‘교정하려고’ 하지 않을수록 아이의 회복엔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자녀가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하고 싶고, 걱정이 된다는 것을 진실되고 솔직하게 나누어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아이와 똑같이 감정을 토해내거나 비난하거나 으름장을 놓는 등 위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화는 자녀의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지지적인 그리고 진정된 톤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신의 기분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매우 화가 난 상황이라면 먼저 당신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당신이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대화를 시작해야 하며, 당신과 자녀가 모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자녀를 안심시켜주는 것이며 포기가 아닌 희망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먼저 자해를 하는 것에 대해 혼이 나거나 벌을 받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가 자해를 했을 때 엄청 혼이 나고 집이 난리가 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자해를 계속하면서도 숨길 것이고, 이는 도움보다는 더 위험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자해 행동’ 자체가 아닌 자녀의 감정과 힘든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자녀가 부모에 대해 안전함을 느낄 때 자녀는 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이는 이후 자녀에게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찾고, 자녀가 도움을 받기로 결심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몇 달간 자해를 하지 않아서 이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자해를 하는 아이를 보며 “이젠 나도 모르겠다. 니가 자해를 하든 말든 이젠 난 상관 안 할 거다. 앞으론 너 알아서 살아라” 라고 포기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신다.

자녀가 자해를 시작했다면 이것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녀가 자해를 줄여나가고 정신건강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엄마·아빠가 우리 (자녀 이름)이 이렇게 아플 때까지 못 알아줘서 미안해"

"자해보다는 너의 아픈 마음이 덜 아파졌으면 좋겠어. 마음이 우선이고 자해는 그 다음이야"

"같이 치료 받으러 갈까? 지금 안 가고 싶으면 원할 때까지 기다려 줄게. 지금 당장 가지 않아도 괜찮아“

자해하는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는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주는 부모, 언젠간 자해는 줄일 수 있는 것이라고, 좋아질 것이라고 나를 믿어주고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는 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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