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의 연대로 한일 관계를 재설계하다] “당사자연구는 정신의료의 민주화운동...빼았겼던 인간 존엄과 권리 찾기”
[약함의 연대로 한일 관계를 재설계하다] “당사자연구는 정신의료의 민주화운동...빼았겼던 인간 존엄과 권리 찾기”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8.28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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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③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 인터뷰
초창기 당사자연구 매뉴얼 없어...듣기보다 가르치려는 태도가 문제
당사자연구·오픈다이얼로그, 이야기 듣고 대화하는 공통 속성 가져
연령별·증상별 세분화된 당사자연구 가능...일본도 연구가 분화 중
한국서도 베델의집 모형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어...한국적 접목해야
올해 안에 그간 경험들 정리해 당사자연구 안내서 출판할 것
한일 정신장애인 약자들의 연대 표출되면 한일 정치도 화해할 것

한일 관계는 늘 복잡하다.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역사적 문제, 인류의 공동 과제들을 함께 공유해야 하는 형제적 가치,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 모두를 정치적으로만 풀어낼 수는 없다. 다만 시민사회의 요청들이 정치가 풀지 못하는 지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인드포스트>는 일본 베델의집 당사자연구 이념의 출발과 한국 정신장애 시민조직과의 교류·협력의 과정을 주제로 4차례에 걸쳐 기획기사를 게재한다.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 (c)마인드포스트.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 (c)마인드포스트.

-2006년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를 읽기 전에는 베델의집 자체를 몰랐겠다.

“전혀 몰랐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 있는 노인, 장애인시설을 견학했지만 정신장애인 시설은 베델의집이 처음이었다.”

-처음 당사자연구 관련 책을 읽고 이후 일본에 가서 이를 체험했을 때 어떤 감정이 들던가.

“나는 그때 정신보건 수련을 받은 후 4년째 정신장애 당사자들과 우왕좌왕하면서 나아갈 길이 어딘지 모르고 헤매고 있었다. 우리와는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정말 그럴까,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책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태도와 자세로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대하고, 활동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신기하기도 했고, 책에서 설명한 내용을 확인하면서 나 자신과 우리나라 정신보건 현장을 되돌아보게 됐다.”

-2014년 청주정신건강센터가 당사자연구를 처음 시작했는데 실패했다고 했다. 문제가 무엇이었나.

“2014년 이전부터 나름대로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당사자연구는 매뉴얼이 없어서 너무나 막연했다. 여전히 사회복지사들이 당사자들의 말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가르치거나 설명하려고 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초창기 한국의 당사자연구는 당사자가 병과 고생을 안심하고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했다. 연구에 참여한 동료들에 대한 불신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을까. 당사자 자신의 증상과 병을 온몸으로 온전히 이해하거나 받아주기보다는 ‘너, 이상하다’, ‘그것은 증상이고 병이다’라는 눈초리로 경계를 하고 있는데 안심하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현재 한국에서 당사자연구를 하는 기관·단체들은 어느 정도 되나.

“서울, 부산, 광주, 경기도, 충청도 등 11개 시설에서 100명 정도 당사자들이 ‘한국 당사자연구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서로 당사자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학습하면서 환청·망상대회를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청주정신건강센터는 당사자연구에서 당사자를 ‘선생님’ 아니면 ‘경험전문가 선생님’으로 호칭하나. 일상적으로 그렇게 사용되는 건가.

“당사자들이 외부에 당사자연구나 동료상담 등의 강의를 나갈 때 자기 소개로 경험전문가라고 소개를 한다. 센터에서 경험전문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몇몇 분들은 ‘형’이나 ‘씨’라고 하시는 분들도 여전히 있다.”

-당사자연구와 오프다이얼로그(Open Dialogue)의 대안적 치료체계의 공통적 속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당사자의 말,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가장 공통적인 속성인 것 같다. 우리는 보통 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과 맞지 않으면 잘 듣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일방적인 말하기와 일방적인 듣기의 독백을 대화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인간이 환청으로 인해 말이 와해되고 분절적이고 반구조적이고 일관성이 없이 헛소리가 될 때, 그것도 당사자연구의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나.

“저에게 그런 분의 당사자연구를 지원하라고 하면 정말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무슨 말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말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무카이야치 선생은 항상 병원과 시설 등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당사자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 분절되고 일관성 없는 헛소리의 조각 조각을 맞추는 능력은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사자연구가 발전되면 한데 묶지 않고 연령이나 증상으로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세분화돼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하나로 연대해서 좋은 점이 있고, 세분화해서 좋은 점이 있고 각각의 장점이 있을 것이니까. 일본도 정신장애 당사자연구, 발달장애 당사자연구, 노숙인 당사자연구, 중독 당사자연구, 운동선수 당사자연구, 기업 당사자연구 등으로 분화하고 있다. 그래도 당사자연구라는 하나의 의미로 묶여 있다.”

-한국에서도 베델의집 같은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베델의집 이념과 공동체 정신을 배워서 한국식으로 접목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청주정신건강센터가 한국의 베델의집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물론 많은 시간이 흐르고 노력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환청을 경험하는 정신장애인들이 창업(創業)을 하겠다고 하면 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나. 보통 사람들은 망상으로 치부해버리지 않을까.

“정신장애인들이 창업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경제적인 측면으로 돈을 얼마를 벌고, 생산성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그렇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노동과 일과 활동 세 가지로 구분해 설명한다. 아렌트는 노동의 영역을 사적 공간, 혹은 경제의 영역이라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가 아닌 카테고리화된 인간, 노동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활동의 영역을 공적 공간인 정치의 영역이라 부르고 언어를 활용해 한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세계의 실재성이 표현되는 표현의 공간이라고 했다. 아렌트가 말하는 활동의 영역에서의 창업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 (c)마인드포스트.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이 당사자연구를 통해 감정을 해소한다는 건 그가 회복됐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

“당사자연구를 통해 감정을 해소하고 공감을 받는 것만으로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회복에 대한 다양한 개념과 의미가 있을 거다. 베델의집에서 이야기하는 당사자연구를 통한 회복은 동료들과 연결되었느냐, 아니냐로 이해하는 것 같다.

당사자연구 과정에서 몇 명의 동료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당사자연구 결과 몇 명의 동료들과 어떤 유대, 연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로 회복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 같다. 환청과 망상은 사라졌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고립되어 혼자서만 지내는 당사자를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신의료체계가 당사자의 삶의 목표를 획일적으로 사회복귀와 자립으로 재단하는 건 폭력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기후 위기가 사회적·정치적 화두가 됐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의 주인 노릇을 하며 인간 중심적인 개발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그 영향으로 기후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많은 산림이 목재를 위한 벌목과 식량 생산을 위한 개간 등으로 숲의 식물과 동물들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그중에서 쓸모를 찾지 못한 많은 풀을 우리는 잡초라고 부르는데, 그 잡초들 덕분에 벌레와 동물, 숲이 건강해진다. 건강한 숲처럼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약함과 예민함으로 아직 자신의 쓸모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는 정상성, 건강함 등의 표현으로 강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신화를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고 있다.

약함의 유대보다는 강자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사회복귀와 자립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새로운 사회복지실천 당사자연구’를 출간했다. 향후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나.

“당사자연구에 관심을 갖는 많은 분들이 처음 시작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당사자연구를 하려고 하는 분들을 위한 당사자연구 매뉴얼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그동안의 경험을 정리해서 당사자연구 안내서를 준비하고 있다. 환청과 망상을 현상학적으로 해석하는 내용을 꼭 정리해서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

-당사자연구의 진원지인 일본에서는 정신과 병상이 33만 병상이다. 당사자연구와 병상 수 감소는 서로 윈윈(win-win)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사자연구로 많은 당사자들이 퇴원해 지역사회에서 생활한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당사자연구 활동과 시연회를 다니도록 하겠다. 당사자연구 시연활동을 통해서 많은 시민들이 당사자들의 고생과 고통을 알고 이해하게 된다면 지역사회에서 이웃 주민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병상 수 감소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한일 정부의 정치적 관계가 여전히 대립적이다. 여기서 한일 베델의집 당사자연구는 어떤 의미가 될까.

“제가 첫 방문 때 우라카와 시장을 면담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독도 문제로 정치적인 갈등이 있던 때였다. 우라카와 시장이 베델의집 방문을 환영하면서 정치적인 것은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민간인들은 민간교류를 통해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이어지도록 더 많이 교류하자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17년 동안 정치적인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기관과 기관의 교류로 이어졌다. 올해 몽골의 정신건강 실태조사와 동북아 국제 컨퍼런스 개최 등 오히려 공동의 목표, 협력 사업들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당사자연구는 약함의 유대이다. 그렇지만 정치는 강함의 대치가 아닐까. 당사자연구의 입장에서 한일 정치의 화해는 어떻게 시작될 수 있을까.

“약함의 유대를 통해 강해지고 화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약함(-) + 약함(-) = 강함(+)이기 때문에 한국의 약한 당사자와 일본의 약한 당사자가 지속적으로 연대하다 보면 그것이 강함으로 표출되고 그 영향을 받은 정치도 화해하리라 생각한다.”

-당사자연구가 한일 사회의 민주적 시민단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당사자연구는 정신의료의 민주화 운동이다. 그동안 정신질환자라고 해서 빼앗겼던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더 많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고생과 고통, 증상과 병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성장했으면 한다. 이는 성공을 쫓는 방향성 대신 ‘약함의 정보 공개’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의 내려가는 삶도 살만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동참하도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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