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의 연대로 한일 관계를 재설계하다] “인간은 연구하는 존재...당사자연구는 평화를 창출하는 운동”
[약함의 연대로 한일 관계를 재설계하다] “인간은 연구하는 존재...당사자연구는 평화를 창출하는 운동”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8.29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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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④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홋카이도의료복지대학 교수 인터뷰
후설은 함께 철학하기를 강조...당사자연구와도 공통되는 이념
당사자연구는 고통에 대한 병리적 해석 아닌 소중한 경험으로의 관점 추구
전문가에게 맡겨지는 치료모델은 본인 부재(不在)의 정신의료 성립시켜
정신질환은 그가 살아온 이야기 자체...이야기를 통해 회복 시작돼
당사자연구·오픈다이얼로그는 ‘대화’에 기초한 대안적 치유 모델
최소 약물주의가 문제 아니라 복지 서비스의 결여가 과제
범죄 저지르고 교도소 재입소하려는 누범 장애인 문제...대화의 고립 때문
차이에서 오는 풍요의 발견 속에서만 21세기의 대화 열릴 것

한일 관계는 늘 복잡하다.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역사적 문제, 인류의 공동 과제들을 함께 공유해야 하는 형제적 가치,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 모두를 정치적으로만 풀어낼 수는 없다. 다만 시민사회의 요청들이 정치가 풀지 못하는 지점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인드포스트>는 일본 베델의집 당사자연구 이념의 출발과 한국 정신장애 시민조직과의 교류·협력의 과정을 주제로 4차례에 걸쳐 기획기사를 게재한다. 마지막 편으로 인터뷰는 무카이야치 이쿠요시(向谷地生良·67) 홋카이도의료복지대학 임상복지학부 교수와 서면으로 진행됐다.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교수. (c)마인드포스트.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교수. 사진=무카이야치 이쿠요시 제공

-베델의집 이념 중 하나가 ‘안심하고 땡땡이칠 수 있는,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이다. 노동윤리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이념에 대한 저항이라고 봐야 할까.

“우리는 빠른 일, 큰 일, 강한 일, 학력도 높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것에 가치를 두고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한 발전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이뤄졌고 자연을 파괴하고 사람의 몸과 마음을 희생시켜 왔다. 거기서, 우리가 소중히 여겨 온 것은, 진짜 변혁은 ‘약한 곳, 작은 곳, 먼 곳’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일본 내에서도 가난한 도시인 홋카이도의 더욱 과소화가 진행되는 우라카와에서 '안심하고 땡땡이칠 수 있다,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을 소중히 한다'는 이념은 고도 성장주의에 대한 중요한 안티테제라고 생각한다.”

-베델의집 이념은 인간의 강점에 초점을 두면 단점을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강점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경험으로는 높은 학력이나 경제적인 풍요가 그 사람의 약점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은 사람의 경험이 강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약점도 그 사람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중요히 생각한다.”

-한 해 3000여 명이 베델의집을 국내외에서 방문한다. 이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나.

“베델의집 견학자는 연구자, 지원자, 당사자나 가족 등 다양한 분들이 온다. 관심을 갖는 것은 역시 당사자연구다. 즉석에서 당사자 연구 미팅에 참여해 주는 것, 그리고 당사자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교수님은 후설의 현상학을 자주 언급했다. 그의 어떤 철학적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

“현상학이란 현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학문의 전제로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철학하는 때야말로, 사상 그 자체를 볼 가능성을 가진다고 후설은 말한다. 이 발상은 당사자연구가 소중히 여기는 세계와 공통된다.

여기서 나온 당사자연구의 이념이 '나 자신으로, 함께'이다. 종래의 정신 의료나 거기에 관련된 관계자의 지원은, 정신과 의사를 정점으로 하는 전문가·기관이 모든 것을 평가하고 치료 방침이나 원조 방침을 결정해 왔다.

당사자연구는 스스로에 고통에 관심을 갖고 문제나 병리가 아닌 소중한 경험이라는 관점을 추구한다. 자신이 겪는 현상을 중심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가 보여지는 것이다.”

-당사자연구는 말을 통해 잃어버렸던 고생을 되찾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 고생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정신과 치료 모델 중 스트레스 취약성 모델이 있다. 정신과 치료의 표준 모델인데, 발병하기 쉬운 소질과 그 사람의 한계치를 넘는 스트레스가 결합될 경우 인간은 정신질환이 발병한다는 논리다. 이 관점에서 일본의 정신과 치료는 본인을 스트레스에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병명을 알리지 않고, 환각·망상을 건드리지 않는다.

또 말한다는 것이 컨디션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신중하게 하고, 복용하는 약을 포함해 정보로부터 차단하고, 전문가에게 맡김으로써 스트레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치료를 해 오고 있다.

그 결과 본인 부재(不在)의 정신 의료가 성립돼 있다. 2000년대 일본에서 시작된 장애인운동의 당사자 주권이 주장하는 ‘우리에게도, 리스크(risk)를’이라는 슬로건과도 공통된다. 다만 우리는 당연한 고생을 되찾는다, 자신의 말을 되찾는다는 슬로건으로 타인의 관리·지배로부터의 자유를 목표로 해 왔다.”

-교수님은 정신장애를 말과 관계의 병이라고 했다. 말이 왜 그토록 필요한가.

“문화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이 쓴 ‘병의 이야기’가 있다. 병의 증상은 기본적으로 생리적인 트러블로 보이지만, 실은 그 사람의 살아온 역사, 살고 있는 삶의 터전, 인간관계, 생각, 사회와의 연결, 생활 습관 등으로부터 이야기로 탄생한다는 고찰이다. 즉 병이 하나의 이야기라는 발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질환은 아픈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자체다. 그것이 이야기로 회자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관계 속에서 비로소 치유와 회복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연구와 핀란드 오픈다이얼로그는 말을 관계의 중심에 두는 대안적 회복 프로그램이다. 이 두 대안 치료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당사자연구와 오픈다이얼로그는 대화를 관계의 중심에 두는 대안적 회복 프로그램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작된 대화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 정신의료에서는 치료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 모색이 1950년대부터 본격화되면서 약물요법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요법도 개발돼 왔다.

1980년대에 대화를 기반으로 한 오픈다이얼로그가 구성되고 이후 당사자연구가 생겨났는데 공통점은 '대화'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당사자와 전문가가 서로의 전문성을 갖고 대등하게 마주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당사자연구는 대화를 촉진하는 장점이 있다. 당사자가 사는 세계에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당사자의 선행연구, 선행실천을 살린다는 발상의 독특함이 있는 것이다. 특히 연구라고 하는 발상은, 대학의 연구자와도 대등하게 협력, 제휴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베델의집과 같은 정신장애 공동체가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도 만들어지고 있나.

“베델의집은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 가능한 다양한 삶, 실패를 포함해 사는 것에 관한 경험을 발신해 왔다. 그것이 당사자연구라는 형태로 확대된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정신장애 공동체라는 형태를 수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병원이나 지역 생활 지원에 도입하려는 그룹은 확산세를 보이고 있고 전국적인 교류도 계속되고 있다.”

-혹시 한국의 조현병(통합실조증) 당사자들이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교수님은 동의하실까. 이들이 망상으로 창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매우 흥미가 있다. 한국의 조현병 당사자가 경험을 살린 창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본은 33만 정신과 병상이 있고 한국은 8만 정신과 병상이 있다. 교수님은 정신병원이 모두 폐쇄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미국의 경우 정신과 병동을 감축했더니 노숙자가 늘고 많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감옥에 갔다. 이 역사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일본에서도 수형자의 20%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치료를 받으면서 형을 살고 있다. 급성기에 대응한 정신과 병원이나 종합병원 안에 정신과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노동에의 지원, 생활 지원, 배움 지원, 육아 지원 등으로 정신과 병상 수는 더 줄일 수 있다.”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교수. (c)베델의집 누리집 갈무리.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교수. 사진=베델의집 누리집 갈무리

-베델의집 당사자연구는 최소 약물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소 약물주의를 따르다 재발해 입원하는 비율이 높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질환에 대한 약물요법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최소한으로 하고, 가능하면 그 이외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대화적 접근이나 환경 조정, 피어 서포트(동료지원) 활용 등의 비약물요법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이 없는 상태에서 약물요법만으로의 대응은 약물 다량으로 빠지거나 재발률을 높이게 된다. 최소 약물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서비스의 결여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포함한 정신장애인의 탈시설화가 국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혹 우리가 모르는 어떤 부작용은 없을까.

“탈시설화는 정책의 방향성으로서는 옳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벽’과 싸워야 한다. 법·제도라는 사회의 구조, 국민의 의식 개혁, 환경의 정비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도 정신과 병원에 재입원을 희망하는 사람, 퇴원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 교도소를 출소하더라도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교도소로 돌아가려는 '누범(전과자) 장애인' 문제 등이 있다.

거기에 공통되는 것이 고립의 문제다. 가혹한 입원이나 교도소보다 지역생활의 고립이나 고독 문제는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당사자연구를 통해 함께 세미나와 국제컨퍼런스를 진행해 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안심할 수 있는 삶이란 국가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공통의 바람이다. 특히 정신보건복지 과제가 공통된 양국은 '경험전문가', '경험연구자'가 교류를 해 서로 배움으로써 과제 해결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대립이 여전하다. 약함의 연대를 주창하는 정신장애 회복 운동이 정치적 대립을 완화할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일본의 극작가이며, 한국 유학의 경험이 있는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의 말을 소중히 하고 싶다. 그는 모든 대처의 원점에는 화해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정신건강 위기의 기점에는 항상 사람과 사람 간의 분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분쟁이 극대화된 것이 전쟁이라면 당사자연구라는 대화 실천은 가까운 곳에 평화를 창출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갈 길이 멀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

히라타 오리자의 저서 ‘대화의 레슨’에 따르면 21세기의 커뮤니케이션은, 전하지 않는다라는 데서 시작된다. 대화의 출발점은, 여기밖에 없다. 나와 당신은 다르다는 것. 나와 당신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것.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것. 내가 아끼는 것을 당신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조금씩 늘려가며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결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며 차이 속에서 기쁨을 찾는 방법도 분명 있다는 것.

흐트러짐, 흔들림, 깨짐으로 말이 변해가지만 변해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부정해도 안 된다는 것. 아름다운 말, 옳은 말이 미리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것들은 언어의 변화 속에서 조금씩 우리 자신의 안쪽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라는 것. 먼저 얘기하자.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점을 찾아보자. 차이에서 오는 풍요의 발견 속에서만 21세기의 대화가 열려 간다.”

-당사자연구가 영국, 미국, 아시아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교수님은 이 당사자연구가 향후 세계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기를 원하나.

“저는 당사자 연구는 일본에서 태어난 로컬 문화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나라에서, 각각의 문화, 현상에 입각한 연구가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연구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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