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을 혐오하고, 더 나빠지기를 원해요”...청소년 ‘디지털 자해’의 슬픔
“나는 나 자신을 혐오하고, 더 나빠지기를 원해요”...청소년 ‘디지털 자해’의 슬픔
  •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
  • 승인 2022.08.30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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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와 정신건강 리포트-제7회
청소년의 디지털자해 등장..전통적 자해보다 위험성 더 높아
디지털자해 자살 위험성 최대 15배까지 높아
온라인 공간에 자기 괴롭힘 공개...은폐했던 전통적 자해와 달라
부정적 감정 표출하고 동정과 관심, 우정 확인 위한 동기 많아

<마인드포스트>는 정신건강 소비자 운동 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와 함께 청소년과 정신건강을 주제로 총 10차례에 걸쳐 특집 ‘미래 세대와 정신건강 리포트’를 게재합니다.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제공

2018년, 십대 정신건강 영역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바로 '자해'. 그리고 2022년, 새로운 컨셉의 자해가 십대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디지털 자해'다.

디지털 자해란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한 유해한 콘텐츠나 메시지, 댓글을 온라인에 익명으로 게시, 전송 또는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사이버 자해라고도 부르며, 이는 본질적으로 자기주도적 온라인 괴롭힘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자해의 일반적인 방식은 소셜 미디어에 익명의 계정을 만들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 소문이나 부정적 평가를 퍼뜨리고, 악의적인 댓글을 달거나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기도 하며, 자신을 비하하는 디지털 컨텐츠를 만들어 공개적으로 공유한다.

디지털 자해는 십대들의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사용이 시작되면서부터 존재했던 현상이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사이버 괴롭힘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디지털 자해 역시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자해는 ‘전통적인 자해’에 비해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미국, 영국, 호주 등 해외 국가에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디지털 자해에 대한 연구와 그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자해는 전체 청소년의 최소 10%가 경험하고, 최근 증가 추세를 볼 때 일부 소수 청소년의 이상 행동 정도로 과소평가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자해의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는 지난 2013년 8월, 영국의 14세 소녀 한나 스미스(Hannah Smith)가 "표백제를 마셔라", "죽어" 등의 잔인하고 괴롭히는 메시지를 받은 후 자살한 사건이다. 그녀의 부모는 한나의 죽음은 그녀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집단적인 사이버 괴롭힘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메시지의 98%가 한나의 컴퓨터와 동일한 IP 주소에서 온 것으로 드러났다.

혹자는 디지털 자해를 흔히 ‘손목 커팅’이라 하는 전통적 자해에 비해 다소 가벼운 것이라고 여길 지 모른다. 디지털 자해는 그저 온라인 상의 텍스트로 존재할 뿐 신체적 손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철저히 틀렸다. 디지털 자해를 하는 청소년의 자살 위험도는 평균적으로 9배에서 15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비자살성 자해(NSSI)와 다르게 디지털 자해는 자살 연관성이 매우 높다.

기존 우리에게 알려졌던 자해와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자해는 과연 어떤 차이점이 있나.

우선, 자해를 하는 방식이 기존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전통적 자해의 경우, 자해를 하는 방식은 손목 커팅이 50% 이상이다. 이 밖에도 피가 흘러넘칠 때까지 손톱을 물어뜯거나, 손가락 살점을 뜯어내 지문이 없어질 지경까지 만드는 등 의도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손상을 입힌다.

반면 디지털 자해는 익명의 계정을 만들어 본인을 향해 “넌 못 생겼어!”, “넌 살 가치가 없어 죽어야 돼”와 같은 악플을 달거나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는 식이다.

자해의 공개 여부 역시 차이점이다. 전통적 자해의 경우 비공개적으로 은밀히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해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상처 부위를 감추고 거짓말로 둘러대는 등 상당한 노력을 들이기도 한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일명 ‘자해 전시’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자해 사실 자체보다 나의 힘든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해 후 이뤄지는 것이기에 공개적이라 하기 어렵다.

반면 디지털 자해는 처음부터 공개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들은 가능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인 온라인 공간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자해의 청소년 성별 비율도 주목된다. 디지털 자해의 흥미로운 점은 여학생보다 남학생의 비율이 4대 6 정도로 더 높다는 사실이다. 전통적 자해의 경우, 80% 이상이 여자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디지털 자해엔 남자 청소년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디지털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성소수자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자해는 자살 연관성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전통적 자해는 일반적으로 비(非)자살성 자해로 이 경우 자살 연관성이 높지 않다. 자해하는 청소년들은 되려 ‘죽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 살려고 자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자해에 관한 잘못된 오해를 하지 말아달라 당부한다.

이미지=멘탈헬스코리아.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제공

반면 디지털 자해는 자살과 연관성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자해에 참여하는 십대는 자살 충동 가능성이 5~7배 증가하고 자살 시도 가능성은 9~15 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악플로 고통을 호소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수많은 연예인들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십대들이 디지털 자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자해는 괴롭힘을 당했거나, 섭식장애를 겪고 있거나, 전통적인 자해로 자신을 해치는 십대들 사이에서 더 흔히 나타난다. 이들은 자기혐오와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고 있다.

현재까지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자해의 동기는 낮은 자존감의 표현부터 나쁜 소문으로부터 누가 자신을 변호할 것인지 친구의 충성도를 확인하는 것까지 다양하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정적 감정의 방출

"나는 나 자신을 혐오하고, 내가 더 나빠지기를 원했기 때문이죠."

전통적 자해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자해는 취약한 정신건강의 징후로서 부정적 감정에 대한 대처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아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부정적인 목소리를 글로 남겨 시각화하고 전체 공개함으로써 스스로 감정을 더욱 손상시키고 당혹스럽게 만든다.

둘째, 다른 사람으로부터 동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

“난 너무 슬프고, 다른 사람의 관심이 필요해요.”

디지털 자해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동기부여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희생을 가장하는 것은 동료 청소년들로부터 동정과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셋째, 우정을 시험하기 위해

"누가 정말 내 친구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디지털 자해는 십대들 사이에서 우정을 시험하고 싶은 것과 같은 사고 과정을 포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 콘텐츠를 게시해 누가 자신을 변호해줄 것인지, 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강인함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괴롭힘이나 학대적인 메시지를 게시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디지털 자해와 정신건강의 취약성 간의 상관관계는 명확하나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것은 임상적 우울증, 학교에서의 괴롭힘, 심각한 가정의 위기, 성 정체성 문제, 외상, 약물 문제를 비롯해 여러 문제의 조합일 수도 있다.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디지털 자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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