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 중이라고 밝히니 실손보험 가입 거절...인권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우울증 치료 중이라고 밝히니 실손보험 가입 거절...인권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4.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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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두 대형 보험사, 상담 전화 도중 우울증 치료 알리자 가입 거부
인권위 권고에 두 보험사 “증상 중증도 파악 후 결정...인수 심사기준 개정”
국가인권위원회. [사진=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사진=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다는 이유로 획일적으로 의료실손보험 가입을 거부했던 두 대형 보험사가 보험인수기준을 보완하라는 권고를 일부 수용했다고 3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진정인은 지난 2020년 10월 두 보험사에 전화해 실손의료보험과 암보험 가입 상담 과정에서 경증의 우울장애로 정신과 약물을 복용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상담원은 약물 복용 중이면 가입이 어려우며 약물을 끊은 후에도 1년이 경과돼야 심사라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실손의료보험은 상해 및 질병으로 병원에 입·통원 치료나 처방을 받을 경우 보험사가 보험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보장하는 보험이다.

지난 2016년 이전 실손의료보험의 경우 정신질환은 보상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2016년 이후 가입자에 한해서 입원과 통원치료비 중 건강보험 요양급여에 해당하는 비용을 보상하고 있다.

이들 보험사는 보험 가입 거부 사유로 정신 및 행동장애의 평균 입원 일수가 암의 10배, 순환계질환 대비 5배 높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우울장애는 높은 자살률, 요양급여비용 증가 추세, 심혈관질환 및 뇌졸중의 높은 발생률, 자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10조 원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정신질환의 위험도를 높게 평가했다.

인권위는 그러나 국내 정신건강 관련 통계가 질환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련 통계는 2000년대 초반의 것으로 최근 의학의 발전과 치료 환경 변화가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는 보험 가입 거절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인권위는 “보험사 인수기준에 의하면 가벼운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건강관리를 하는 대상자는 가입이 제한되는 반면 치료를 중단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는 대상자는 보험 가입이 가능한 것은 모순”이라고 밝혔다.

특히 “다른 과에서도 수면제, 항우울제 등 약물을 처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종의 위험에 대해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미국의 장애인법은 합리적인 보험통계 자료로 증명되지 않는 경우 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영국이나 호주도 보험에서 장애인 차별이 금지되고 있으며 서비스 제공자가 장애인에 대한 불리한 대우가 정당하다고 증명되지 못하는 경우 차별로 간주한다.

특히 호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5조에 정신질환으로 보험가입을 거절하는 것을 직접적인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인권위는 사보험이 사적 자치의 영역에 속해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돼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보험사 측 주장에 대해 “주요 국가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보험 가입이 허용되고 있다”며 “사적 자치의 원칙과 계약의 자유도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주장될 수 있어 보험사 주장이 합리화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우울증으로 인한 보험 가입의 일률적 제한은 합리적 이유 없이 재화·용역의 공급·이용에서 불리하게 대우하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고 봤다.

이에 대해 A 보험사는 우울증을 치료하고 있어도 가입을 연기하지 않고 서류를 통한 중증도를 파악한 후 인수 여부를 결정하기로 기준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증인 경우에도 인수가 가능하다고 회신했다. 진정인이 희망할 경우 재심사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B 보험사는 질환의 발생 원인과 치료 경과에 따라 세분화해 완치가 가능할 경우 인수를 검토하겠다고 회신했다. 또 의학적 타당성 검토 등 추가 심사절차를 진행하도록 인수기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다만 진정의 인수는 재심사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양 보험사는 공통으로 모집인 및 심사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으며 가입 대상자에 가입 절차를 보완하고 상세히 안내할 예정이라고 회신했다.

인권위는 양 보험사가 권고를 일부 수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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