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배 기자의 직설] 당사자가 언어의 헤게모니 장악할 때...'정신질환자' 용어 바꿔야
[김충배 기자의 직설] 당사자가 언어의 헤게모니 장악할 때...'정신질환자' 용어 바꿔야
  • 김충배 기자
  • 승인 2020.06.17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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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이 조현병으로 명칭 변화는 부모들의 투쟁 덕분
나는 정신장애인인가 정신질환자인가?
무엇이 정신질환인지 당사자는 합의한 바 없어
'정신질환자' 대신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으로 법적 용어 바꿔야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fountainhouse.co.kr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fountainhouse.co.kr

2018년 5월 시행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는 주체인 소위 '정신질환자'가 빠져 있다. 이유는 이 법을 만든 주체가 정치인이거나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굳이 서비스의 소비자인 '환자'를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의 정의 및 정신질환자의 정의의 생략으로 누구든 임의적으로 환자가 될 수 있다. 악의적으로는 가족 구성원을 정신질환자로 몰아세워 정신병원에 수십 년간 감금할 수 있다.

반면 같은 날 시행된 '장애인복지법'에는 제1장 2조 2항 2호에는 '정신적 장애란 발달 장애 또는 정신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여기에도 정신질환의 정의가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 정신질환을 규정하는 것은 정신과 전문의들의 영역으로 여겨져왔다. 동성애를 '성 정체성 장애'로 규정해 정신질환으로 보는 현실도 있지만 1973년, 미국은 동성애는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분류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1990년 이를 따랐다.

한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신뢰하는 미국의 DSM5(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는 진단 인플레이션과 의료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고 한다.

환자에게 약물을 처방한다고 해서 정신의학의 과학성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약은 환자에게 잠을 자게 할 수는 있어도 완치약도 아니며 질환의 예방약도 아니다.

폐쇄병동에서 환자들은 꼬박꼬박 약물이 강제 투여되는데도, 병동 안에서 소위 acting-out(나쁜 행동)을 하면 좁은 '안정실'에 격리돼 강제로 강박된 후 안정제를 맞고 잠이 든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감추고 있는 폐쇄병동의 현실이다. 나는 최근 2주 동안 화장실도 없는 안정실에서 플라스틱 페인통에 대변을 보고, 수시로 보호사 4~5명에게 강박을 당했다. 그리고 약물의 양은 계속 늘어갔다. 대한민국의 안정실은 감옥의 징벌방과 같다.

이런 현실에서 내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를 화두로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정치적 올바름'이란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 민족, 언어, 종교, 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장애자(者)에서 장애인(人)으로 용어가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정신질환'자'이다. 정신분열증의 나쁜 어감도 조현병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정신과 의사들이나 정치인의 몫이 아니다. 수년 전, 정신질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카페에서 병명 개정 운동이 일었고 많은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정치권을 설득한 결과물이다.

2016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선행연구가 발표됐다. 바로 the mentally ill(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과 people with mental illness(정신적으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의 사용에 따른 학생, 성인, 상담가들의 반응에 대한 설문 조사였다. 그 결과 두 단어의 쓰임에 따라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용도가 다르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설문은 네 가지 관용도 측정을 했다.

첫째, 권위주의: 그들은 어린 아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규제와 훈육을 받아야 한다.

둘째, 동정: 그들은 아주 너무 오랫동안 웃음거리가 되어 왔다.

셋째, 사회적 규제성: 그들은 공동체의 나머지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넷째, 공동체 정신 건강 이데올로기: 그들을 이웃의 거주 지역에 같이 살게 하는 것은 좋은 치료일지도 모르지만 그 거주는 너무나 위험이 크다.

연구자는 '정치적 올바름'을 넘어서 '사람 우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움직임은 1990년대부터 수십 년간 이어져왔지만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표시했다.

The mentally ill은 '사람'이란 단어는 생략된 채 사회집단이 정신질환자를 치료 대상으로 보는 결과물이다. 반면에 the people with mental illness는 사람을 우선함으로써(person-first) 그 사람의 인격체가 그 장애 혹은 진단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배려가 있다. 유엔 CRPD(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 with disabilities, 장애인권리협약)에도 사람을 우선시한다.

(c) 보건복지부
(c) 보건복지부

나는 이 글 내내 '정신질환자'라는 용어를 써 왔다. 하지만 이제 이 용어를 바꾸어야 할 때가 됐다. 정신 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 정신건강복지법이 되려면, 생략되어 버린 그 주체인 정신질환자를 '정신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

현대 정신의학이 개념 정리에서 수시로 넣었다 뺐다는 반복하는 '정신질환'의 실체와 그 언어의 틀에 갇혀, 폐쇄병동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정신질환자'의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움직임은 올바른 언어의 사용이고, 좀 어색하고 설명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을 우선시 해야 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행동을 이끌며 변화된 행동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제 당사자가 언어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때가 됐다. 이것이 가장 소극적으로 우리가 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무기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이 글이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과 폭력에 맞서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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