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보도준칙 만들어 복지부 출입기자들에 강제하면 보도태도 바뀔 것”
“정신장애 보도준칙 만들어 복지부 출입기자들에 강제하면 보도태도 바뀔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6.21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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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언론보도 기준 마련 온라인 토론회
정신장애와 폭력성을 연결짓는 언론 보도 태도 문제 많아
정신장애 기사 작성 시 기자가 윤리적 점검해야
선진국처럼 기사에 정신질환 서비스 기관 노출시켜야
정신질환과 범죄 직접적 연결 없으면 질환 보도 자제해야
정신장애와 가족 연결시켜 이중 차별 받는 보도 막아야
정부가 편견보도한 기자가 창피하다는 느낌 들도록 만들어야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주최한 정신장애인 관련 언론보도 기준 마련을 위한 온라인 토론회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열렸다.

이번 온라인 토론회에는 정신장애인 관련 언론보도의 국내외적 상황을 짚어보고 언론 가이드라인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윤삼호 한국장애학회 이사는 해외 사례 중 영국과 호주의 가이드라인을 중점 분석했다.

영국의 전국언론인연맹이 만든 가이드라인은 정신건강, 정신병, 자살에 관한 책임 있는 보도와 언론의 역할, 정신건강과 자살과 관련된 보도 준칙을 구성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호주는 정신장애인 단체가 만든 마인드프레임이 언론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인드프레임의 준칙 앞 부분은 정신장애 통계와 데이터를 비롯해 정신장애 관련 언어의 문제, 도움 요청 정보 등이 담겨 있다. 또 경험을 말하는 당사자에 대한 지원, 자기 경험을 말하는 정신장애인을 인터뷰할 때의 방식 등도 포함된다.

윤 이사는 “양 가이드라인에서 공통점은 자살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이라며 “자살 문제를 정신장애의 쟁점으로 보며 자살에 대한 보도 가이드라인이 꼼꼼하게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호주의 경우 인구 5명 당 1명꼴로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 일생에 한 번은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비율도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이외 상당수가 불안장애, 조현병 등의 중증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 또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의 정신병과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다. 이 성적 취향 역시 정신장애의 하나로 봐야한다는 게 호주 언론보도 준칙이다.

윤 이사는 “폭력적인 사람 중 상당수는 정신장애 병력이 없고 정신질환자의 90%가 폭력 이력이 없다”며 “호주는 이 데이터를 집약적으로 언론 가이드라인 제일 앞쪽에 심어줌으로써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기본적 통계에 기반해 기사를 써야 하는 걸 강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신장애와 관련한 의학적·정치적 용어도 문제로 제기됐다. 윤 이사는 “두 가이드라인을 종합해 보면 희생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게 좋다”며 “고통받는 사람, 감염된 사람 대신 치료받고 있는 사람,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등 건조한 용어를 쓰자는 것”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정신분열증 대신 정신분열을 진단받은 사람으로 쓰자는 권고가 있다.

정신장애를 둘러싼 신화와 사실의 검증도 제기됐다. 정신장애와 관련해 대중이 느끼는 첫 번째 감정이 정신장애인의 폭력성이다. 언론은 정신장애와 폭력의 연관성을 연결시키려는 경향들이 많다.

윤 이사는 “통계가 말해주지만 정신장애인의 폭력성이 비정신장애인의 폭력보다 높다고 볼 수 없다”며 “언론이 정신장애인의 범죄나 일탈 행위를 크게 보도하면서 사람들은 그 인식을 각인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는 데는 언론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장애인의 회복 불가능성이라는 허구에 기반한 신화와 조현병을 경험한 이들이 모두 동일한 경험을 한다는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도 윤 이사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정신장애는 충분히 회복 가능한 질병이며 조현병을 진단받은 사람 모두가 동일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라는 분석이다.

윤 이사는 기자들이 기사 작성 전에 윤리적 자문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이사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에서 자기검열을 하면 안 되지만 헌법적 권리를 떠나서 인간이 인간사를 다루는 문제, 특히 정신장애와 같은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의 기사를 다룰 때는 윤리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장애의 문제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뤄달라는 게 당사자들의 요구”라며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내 기사가 강화하는 게 아닌가라는 걸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이사는 또 “도움 요청 정보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 관련 기사에는 있지만 정신장애는 없다”며 “외국 가이드라인에도 있듯이 하루 24시간, 7일 동안 운영되는 서비스가 어떤 게 있는지 기사에 노출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은 센터가 만든 정신장애인 언론보도 지침을 소개했다. 신 센터장은 “언론이 사안의 설명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세부사항에 과도하게 몰입한다”며 “언론은 우리의 정신장애가 강력범죄의 동기인 것처럼 결합시켜 보도하면서 우리를 향한 세상의 눈을 편견과 경멸로 만들어 버린다”고 비판했다.

이어 “언론 보도의 자유는 응당히 보장받아야 하지만 인간 존엄성을 고려해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회적 책임과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도준칙으로 “정신과적 질환이 범죄 발생에 직접적이지 않은 경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등의 내용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며 “개인정보 보호와 개인의 병명을 노출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미진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2과 조사관은 정신장애인 관련 기사 데이터 결과를 분석해 발표했다.

권 조사관은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 정신질환과 관련된 기사가 급증하며 이에 따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게시글도 함께 증가하는 패턴이 확인된다”며 “가령 특정 시기 정신장애인 범죄와 관련 기사가 집중 보도되면 같은 시기 SNS에서 역시 부정적 키워드가 급증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정신장애인이 피의자로 확정되지 않는 사건·사고를 추정해 기사화하거나 사건의 본질을 뒤로한 채 정신장애가 사건의 원인인 것처럼 보도하는 잘못된 관행은 개인의 SNS 활동과도 이어져 사회가 정신장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속화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권 조사관은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문턱이 낮아야 하는데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심한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정신과 진료를 쉽게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족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 편히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정제되지 않는 신문기사, 깊게 고민하지 않고 작성하는 SNS 게시글은 부메랑이 돼 언제든 우리 사회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언론보도 준칙 제정과 관련해 ▲편견이 개입되지 않은 적절한 법적 용어의 사용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개인의 정신적 특성을 부각시키는 기사 제목 사용 지양 ▲정신장애와 가족을 연결시키려는 시도의 지양 등을 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양균 쿠키뉴스 기자는 언론이 극단적 선택 관련 기사와 관련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 연락처를 기사 말미에 넣고 있는 보도 태도는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있는 것처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정신장애 준칙을 130여 명인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들에게 지키도록 해야 한다”며 “기자들이 그 준칙을 지킬 경우 (보도) 문화가 순식간에 바뀐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을 낙인찍는 방식의 보도 태도는 기자들의 생활 패턴과도 연관이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바쁘게 일하는 기자들은 출입처 경찰서에서 내는 보도자료에 더 센 제목을 달고 이를 보면서 다른 매체도 더 세게 제목을 달게 된다. 왜 이렇게 돼 버린 걸까.

김 기자는 이를 “돈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언론보도를 소비하기 때문에 페이지뷰(page view)가 강력한 기준이 된다”며 “정제된 제목을 달면 아무도 보지 않는다. 제목을 (선정적으로) 달면 댓글이 수백 개가 달리면서 굉장히 페이지뷰가 뜨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언론매체의 온라인 광고와 직결되기 때문에 기자들도 본능적으로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봐야 보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하게 된다”며 “수위를 높여 자극적으로 쓰고 그것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강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이렇게 쓰면 정신장애인이 아프겠지라고 쓰는 게 아니라 이미 굳어져 있어 무의식적으로 쓰게 된다”며 “부처가 기자들이 이런 기사를 쓰면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은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라며 “지역 정신병원은 환자가 돈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감금되고 격리돼야 하는 것이다. 결국 돈의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강력하게 움직여 인프라를 만들고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며 “강력하게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을 중심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보도를 하지 않도록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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