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도의원들에게…당신의 가족이 아프면 이런 누더기 조례안을 만들겠는가?
경기도와 도의원들에게…당신의 가족이 아프면 이런 누더기 조례안을 만들겠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3.31 2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도의회, 새경정 설치·운영 일부개정조례안 입법예고...인권단체 반발
인권단체 “도립병원의 기능과 역할 축소해 인권 치료 막아”
개정조례안 인권 기반 치료 인식 없고 당사자·가족 참여 배제
정신건강복지법, 정신질환자는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 규정
인권 치료는 공공병원이 주도해야 질적 치료 담보할 수 있어

경기도의회가 추진 중인 경기도립정신병원(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최근 입법예고되면서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개정조례안이 정신건강복지법과 경기도 정신건강위기대응체계 구축에 관한 조례의 취지에 반하고 도립정신병원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축소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종현 의원이 추진하는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병원 명칭을 경기도립정신병원에서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새경정)으로 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개정조례안의 내용을 보면 제3조는 병원 기능을 24시간 정신응급진료체계 구축으로만 제한하고 있어 인권 치료 구축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수원마음사랑, 한국정신장애인협회,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개정 조례안 제3조가 새경정이 정신질환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체계로 기능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응급입원이 필요한 환자만 치료하는 기관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개정조례안 정신응급진료체계만 강조...인권 치료와 배치

또 개정조례안 제3조 4항에서 ‘경기도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관장하는 정신건강증진 사업 등과의 협력 체계 구축’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역시 경기도 내 당사자 단체와 가족 단체가 배제됐다는 지적이다.

파도손 등 인권단체들은 “생경정은 정신질환 당사자, 가족을 위해 존재해야 할 기관으로써 민간병원에 귀감이 되어야 한다”며 “정신병원 운영에 대한 조사와 감사에 있어 병원 이용 정신질환자와 가족, 당사자 단체와 가족 단체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탁자(새경정)의 의무는 환자 진료와 인권 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병원장에 대한 감독과 감시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새경정이 지난해 6월 개원한 이후 경기도의회가 인권적 치료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 병원이 제시한 새로운 인권 치료 이념이 사실상 좌초되도록 했다는 지적과 맞물린 것이다.

한 경기도의회 의원은 이 병원 김성주 원장에 대해 “새경정이 원장 놀이터냐”라는 질책을 해 원장 스스로가 인권 치료를 추진하기도 전에 도의회의 강압적 태도로 운신의 폭을 좁히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도의원은 노골적으로 “새경정만 인권 치료를 하고 다른 병원은 비인권 치료냐”는 질의를 해 인권 치료에 무지한 발언을 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개정조례안이 ‘병원장의 책임’만을 강조하는데 반해 인권단체들의 대안은 ‘정신건강 서비스 역할’을 병원에 맡겨 김 원장의 인권 치료 이념에 힘을 싣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인권단체들은 또 수탁자인 새경정과 관련해 “인권 기반의 치료, 비강박 치료, 세계보건기구(WHO) 인권 중심의 치료 철학인 QR(Quality Rights)에 입각해 치료를 실천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 사람으로 병원장을 초빙해야 한다”며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의 의무가 돼야 하며 이를 저해하는 조례의 규정은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병원장의 치료 철학 존중해야...도의회의 감시만이 능사 아냐

아울러 “이번 일부개정조례안은 인권 기반 치료에 대한 인식이 없고 당사자 단체와 가족 단체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았다”며 “민간병원에서 만연한 강박 치료,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인권 침해적 치료를 새경정까지 확산시킬 우려가 높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단체들은 개정조례안의 제4조 운영에서 ‘도지사는 위탁사업의 목적 등이 준수되지 않는 경우 수탁자 및 병원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해 ‘도지사는 경기도 정신건강위기대응센터의 역할을 새경정에 위탁할 수 있고 이를 위한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제9조 감독 사항에서 개정조례안이 ‘도지사는 수탁사무 처리를 감독하고 운영에 관한 사항을 관계 공무원에게 조사와 감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해 ‘관계 공무원은 조사 및 감사에 새경정 이용 환자와 가족, 당사자단체, 가족 단체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로 수정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특히 협력 시스템을 경기도 산하의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단독으로 관장할 경우 정신보건 영역에서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거버너스(협치) 개념과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단체들은 무엇보다 조례안이 비강압 치료, 오픈 다이얼로그(정신응급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치료 원칙), 동료지원 등 당사자가 원하는 내용을 하나도 담아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또 과거 사설구급대가 해 오던 역할을 공공이 국가 예산을 받아 대신 담당하면서 효율적인 단기입원 이후 장기입원 병원으로의 호송이라는 형식적 연계만 강조해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인권과 회복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30일 이들 인권단체들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단체들은 “환자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경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강제입원 시켜 약물치료를 강요하는 관행은 변하지 않았다”며 “당사자가 생명을 잃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국가는 방치했고 전문가 집단은 침묵했으며 사회는 외면했다”고 토로했다.

새경정 운영 과정에 당사자와 가족 참여할 수 있어야

이어 “새경정이 출범하면서 국내 최초로 당사자를 초빙해 응급상황인 급성기 때 어떻게 치료를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전 직원이 교육을 받도록 했다”며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최초의 병원이었다”고 밝혔다.

또 “새경정은 비자의 입원한 환자에 대해서도 비강압 치료, 인권 존중 치료를 시도함으로써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기존 정신보건의 만연한 시스템에 새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희망으로 떠오른 귀중한 시도를 했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정신응급 상황의 위기 대응과 관련해 “후유증을 최소화한 인간적이며 환자를 존중하는 치료 환경과 인적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위기 대응이란 위기를 겪는 사람의 위기를 해소하고 건강을 되찾도록 도움이 되는 것을 뜻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 시스템은 이윤을 추구해야지만 운영되는 민간병원에서는 실현하기 어렵다”며 “그렇기에 국공립병원인 공공병원에서 위기 대응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질적 치료를 담보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새로운 정신건강서비스의 발전은 정신건강 전문가의 계몽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당사자는 무엇이 치료인지를 잘 알고 있다. 회복의 경험을 가진 당사자들이 동료지원가로서 활동하는 것이 발전의 핵심 동력”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국립정신건강센터, 국립공주병원 등 공공병원에서는 소비자자문위원회가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또 보건복지부의 자문기관에는 정신의료계뿐 아니라 사회복지계·심리학계·당사자와 가족 대표들이 활동해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체들은 “정신건강 정책이나 병원 운영에서도 정신장애인 단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새경정 역시 인권위원회를 운영하여 소비자 집단의 의사를 반영하며 운영했다”고 전했다.

현재 새경정은 경기도의회의 압박으로 QR본부와 인권위원회를 해체한 상태다. 예산 역시 줄었다.

또 경기도의회는 새경정의 운영방식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경기도 내 31개 정신건강복지센터 실무자들을 대상으로만 설문을 진행했다. 당사자와 가족은 배제됐다는 반발이 나오는 대목이다.

민간병원 아닌 국공립병원이 질적 치료 담보할 수 있어

단체들은 “새경정에서 환자나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평가해야 함이 마땅함에도 이들은 설문에서 제외됐다”며 “당사자 단체는 이미 새경정의 인권위원회에 소속돼 당사자들이 원하는 치료를 제안하는 활동을 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사자 단체 회원들과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응급입원과 위기 대응의 직접적인 대상자들로 누구보다도 밀접한 사람들”이라며 “(경기도의회) 위원회의 테이블에서 (함께)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권리”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는 정신건강복지법 제2조 9항의 ‘정신질환자는 자신과 관련된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는 법적 권리”라며 “국가와 지자체는 법률에 정해진 바를 이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15일 파도손 등 인권단체들은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 치료 자체가 작동하기 전에 도의회와 지역신문들의 집중 공격으로 힘을 잃은 생경정의 치료 이념을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후 파도손은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회를 상대로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 의견을 제출했다.

이정하 파도손 대표는 당시 의견서에 “징애인권리협약 제12조, 제14조, 제25조에 입각한 인권친화적 치료를 지향하고 세계보건기구(WHO)의 Quality Rights 지침을 준수하고자 노력하는 새경정의 활동과 관련한 최근의 경기도 동향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새경정의 치료 철학 다른 정신병원으로 확산시켜야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들 단체들은 “새경정이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고 많은 선진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QR을 지속하고 특히 인권 기반 치료, 비강박 치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이 모델을 다른 정신병원에도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새경정의 평가나 관련 정책 입안에 당사자 단체, 가족 단체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했다.

아울러 “경기도에 당사자 단체 중심의 동료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정신건강 정책 수립과 집행에 그 단체의 의견을 듣도록 요구한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이어 “정신보건 시스템으로 고통을 겪어온 당사자와 가족들은 치료 환경에 대해 깊은 상처와 열망으로 이번 새경정의 방향성이 잘못된 길로 갈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며 “경기도와 경기도의회는 대화와 협력의 자세로 공정하게 정신건강시스템의 인프라를 만들어주기를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