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되면…“정신건강복지법은 의료만 관장하고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해야”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되면…“정신건강복지법은 의료만 관장하고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5.29 00:5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와 대안 모색하는 세미나 진행
정신장애인 욕구는 발달장애인과 비슷하지만 서비스는 부족
장애인복지법 제15조, 정신장애인을 복지전달체계에서 소외시켜
정신건강 전달체계와 장애인복지전달체계 간 장벽이 차별 불러와
정신건강복지법 복지 강조하지만 입·퇴원 관리에 머무는 수준
장애인복지법이 정신장애인 특수 욕구 충족에 한계 있어
제15조 폐지돼도 미등록 정신장애인은 소외되는 문제 남아
정신장애 권익옹호 담당할 정신장애인복지고 신설해야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있다. 조항의 내용을 보면 장애인복지법 상의 장애인 중 정신건강복지법을 적용을 받는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시설 이용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 영역에서의 복지적 접근이 이 법으로 인해 가로막혀 왔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이 법 조항은 ‘악법(惡法)’으로 인식된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의 폐지는 오랜 시간 정신장애인 운동계에서 요구돼 왔다. 그렇다면 이 조항의 폐지 이후 정신장애인 복지전달체계는 어떻게 변화돼야 하고 그 대안은 무엇일까.

이 같은 문제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장애인복지학회 정신장애 분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가 공동 주관한 세미나가 28일 유튜브로 진행됐다.

세미나 주제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는 정신장애인 복지 차별의 원흉인가?’였다.

발제를 맡은 배진영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정신장애인의 복지 서비스 차별 실태를 비교하기 위해 발달장애인(지적장애·자폐성장애)을 비교집단으로 삼아 도출된 결과를 발표했다.

정신장애 욕구 발달장애와 유사하지만...정신 쪽 서비스는 열악

발달장애는 전체 15개 장애유형 중 정신장애와 함께 정신적 장애로 분류되면서 장애 특성과 서비스 욕구가 유사하다.

공공임대 주거 욕구의 경우 발달장애인은 13%, 정신장애인은 16%로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공공임대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우선 공급되는 점을 감안할 때 정신장애인의 수급률은 54.7%다. 지적장애 30.4%보다 높은 비율이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적장애인 35.7%, 자폐성장애 28.3%인데 반해 정신장애인은 19.2%에 그쳤다.

직업재활 서비스이용에서 정신장애인의 이용 실태는 발달장애인의 14% 수준이었고 국가가 제공하는 단기보호서비스 제공은 발달장애인의 18% 수준에 불과했다. 주간보호서비스와 바우처서비스 역시 발달장애인에 비해 낮은 비율을 보였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용을 비교하면 센터를 이용하는 정신장애인은 발달장애인의 10% 수준이었다. 공공후견 서비스와 권익옹호 서비스 역시 발달장애인의 6.6% 정도였다.

배 연구원은 “지역사회 서비스에 대한 욕구는 발달장애인과 비슷하지만 제공되는 서비스는 발달장애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서비스 양이 많이 확보돼야 한다”고 밝혔다.

배 연구원은 장애인복지법 제15조 문제에 대한 전문가 대상의 질적 분석을 발표했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구성된 본래 의도는 정신장애인이 장애인복지법과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서비스 중복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현실에 적용했을 때 이 이중 서비스는 작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신장애인을 사회복지 전달체계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배 연구원은 “제15조는 유독 정신장애만을 상징적으로 차별하는 조항”이라며 “이로 인해 정신장애인은 일반 장애인이 경험하는 장벽과 함께, 장애 유형 내에서도 또 다시 배제되는 이중적 장벽의 문제를 안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장애라는 소수성을 갖고 있는 동질적 집단 내에서도 정신장애인은 의료적 관점만 강조되면서 복지와 의료를 함께 지원받는 신체장애·정신적 장애에 비해 지나치게 차별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발달장애인과 비교했을 때 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 서비스에서 정신장애인 이중 배제되게 만들어

배 연구원은 “발달장애인의 투쟁의 역사를 볼 때 (정신장애인은) 정치적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차별이 심화되면서 장애인 복지와 정신장애인 복지 간 서비스 격차는 극대화됐다는 분석이다. 서울시 장애인 대상 직업재활센터가 130개소가 넘는 반면 정신장애인 대상 직업재활센터는 7개소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2만여 명이 직업재활을 통해 일하고 있는데 이중 정신장애인은 140여 명에 그친다.

배 연구원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이 차별의 요인이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며 “차별의 요인은 정신건강 전달체계와 장애인 복지전달체계 간의 장벽에 의한 방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현재 정신건강 전달체계와 보편적 장애 전달체계는 행정 부서에서 ‘교집합’ 없이 각각 분리돼 있다. 이는 두 체계 간 역할의 구분이 아니라 대상자에 따른 분리로 이어진다. 지난 20년간 이 행정적 관행은 두터워졌다.

배 연구원은 “장애인복지법 제15조는 사회복지 실천가나 행정 주체들이 이 조항의 본래 의미인 서비스 중복의 방지를 곡해해서 마치 정신장애인에게는 장애인 복지 서비스가 제한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장애인 지원사업에서 정신장애인은 배제돼 왔다. 민간뿐 아니라 공공 주도의 사업에서도 정신장애인은 제외하고 장애인 우선 사업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정신질환자 직업재활시설은 보편적 장애인이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연계고용부담금제도나 근로자전환지원사업 같은 정책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또 중증장애인 직업재활시설사업에서도 배제돼 왔다.

배 연구원은 “이는 서비스 제공자와 행정 체계가 정신장애인을 무능하게 바라보는 제도적 고정 관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 직제에 정신건강정책관이 신설됐다. 기존 과 단위에서 수행해 온 정신장애 정책들이 국 단위로 개편되면서 정신건강 증진과 복지에 대한 지원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왔다.

정신건강전달체계와 장애인복지전달체계의 장벽으로 차별 심화

하지만 아직 정신건강 전달체계에서 복지적 관점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 연구원에 따르면 정신건강정책관 승격에도 불구하고 의료적 관리는 더 강화됐고 의료적 패러다임 역시 팽배하다는 분석이다.

그는 “현재 정신건강 정책의 파트너는 정신의료기관이며 정신건강복지센터 중 95%는 의료법인에 의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의료적 패러다임이 주류라는 걸 알 수 있다”며 “현재의 전달체계는 정신건강복지법에 명시된 복지의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신건강복지법이 복지와 탈시설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법의 기능은 여전히 입·퇴원 관리에 머무는 수준”이라며 “그 이유는 복지를 담당할 주무 부처조차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재의 법제를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제정하지 않는 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서비스 차별 환경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법제 개선의 두 가지의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장애인복지법 제15조의 폐지와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 복지 전달체계의 개선이다. 이를 위해 정신장애인 복지 지원을 위한 전달체계를 장애인 복지 체계 내에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둘째,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와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의 제정,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이다. 현재의 장애인복지법으로는 정신장애인의 특수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을 제정할 경우 정신장애인의 치료 욕구나 상담 욕구를 복지 서비스로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이처럼 법제가 개선될 경우 정신장애인 복지전달체계는 자연스럽게 바뀔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배 연구원은 “무엇보다 장애인정책국 산하에 정신장애인복지과를 신설해 복지를 전담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컸다”며 “그 이외의 의료 부분은 기존 정신건강정책국이 맡을 수 있게 각각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장애인복지법 제15조를 폐지했을 때 기대되는 효과는 ‘상징적 제도’의 철폐와 아울러 복지 제공의 효율화, 정신장애인 복지 확충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며 “장애인 복지로 이관된다면 장애 등록을 하지 않은 정신질환자의 소외의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용표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법제 및 전달 체계의 개선 방안을 보면 장애인복지법 제15조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며 “정신건강복지법이 의료 부분만 관장하게 하고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을 제정해 장애인복지법의 특별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는 상징적 제도의 철폐 의미

그는 그러나 장애인복지법 제15조의 폐지에 대해 장애계가 반대할 수 있고 미등록 정신장애인에 대한 서비스가 배제된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존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에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문제는 대체 입법을 통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복지 문제가 보건의료 전달체계에 존치한다면 복지 서비스의 개발과 양적 확대는 의료적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필요로 하게 된다”며 “이는 낮병원을 확대해 수익을 올리려는 이들이 정신재활시설 확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구자들 생각은 향후 과제로 정신장애인의 복지 문제를 보건의료 전달체계에서 관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라며 “보건복지부가 보건과 복지로 이원화돼 있는 구조에서 복지 문제를 보건 부서에서 관장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김문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장애 복지가 장애인 복지 체계로 통합되지 못하는 이유로 현 복지체계 내에서 정신장애인 복지를 감당할 수 없는 정신장애인의 특수성이 언급된다”며 “장애인 복지 쪽에서 감당할 수 없는 정신장애인 복지의 특수성과 전문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장애인 복지가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요구되는 전문성이 뭔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면 연구의 논지가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폐지돼도 혜택 받는 주체는 등록 정신장애인으로 국한되고 정신질환자 중 상당수는 여러 이유로 정신장애 등록을 원치 않거나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등록하지 않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달장애 영역은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돼서 발달장애 고유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다”며 “정신장애인의 경우 발달장애인과 다르게 응급 상황에서 쉼터나 치료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정신장애인의 고유한 욕구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폐지돼도 충족이 어려울 것”이라며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신건강복지법을 전면 개정하고 복지 전달체계를 개선해서 정신건강 서비스와 정신병원 입·퇴원은 정신건강정책과에서 담당하게 해야 한다”며 “정신장애 권익옹호 서비스는 장애인정책국 내에 정신장애인복지과가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등록 정신질환자의 복지 서비스 문제 해법 찾아야

황백남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상임대표는 “장애인복지법과 정신건강복지법이 가진 성격의 문제를 볼 때 의료 보건 내에서 질환과 장애가 혼재돼 있다”며 “질환과 장애는 분명히 분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질환은 정신보건 영역에서 다루고 장애는 장애인복지법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 상임대표는 “제도권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당사자는 어떻게 역차별 요인을 해소할 것인가라 문제”라며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와 더불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도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은 “장애인복지법 제15조를 폐지한 이후에 당사자의 삶을 존중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라며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인 당사자 단체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취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정신장애인 취업지원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며 “동시에 현재의 정신장애인 취업을 제한하는 28개 법률에 대한 개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종찬 2021-05-30 11:46:10
당사자의 강점을 보아달라.
약점에 눈 돌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