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회복에서 다학제간 협업은 인간에 대한 예의”
[당사자 칼럼] 노희정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회복에서 다학제간 협업은 인간에 대한 예의”
  • 노희정 기자
  • 승인 2021.07.25 2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 엘리자베스1세, 가톨릭·성공회 대립할 때 모두 포용해
정신건강 직업군은 이해타산 버리고 이타심으로 당사자 도와야

영국의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이 왕좌를 계승할 아들을 낳지 못하고 앤 볼린에게 매혹돼 앤 볼린을 왕비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카톨릭의 교회법에 따라 교황의 승인이 없이 결혼을 파탄하고 다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결국 헨리 8세는 결혼을 위해 구교 대신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세워 앤 볼린과 결혼한다. ‘천일의 앤’이라고 불리는 앤 볼린으로 인해 새로운 종교가 창시된 것이다. 하지만 천일만에 앤 볼린 또한 헨리 8세에게 버림받게 된다.

헨리 8세가 죽자 첫 번째 왕비였던 캐서린 왕비의 딸이 왕좌에 앉게 됐고 자신의 어머니를 내친 앤 볼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를 감금한다.

‘피의 메리’라고까지 불린 메리 여왕은 자신의 어머니를 몰아낸 성공회 신자들을 처형하고 다시 구교인 가톨릭을 영국의 국교로 삼는다. 이는 성공회를 인정하지 않았던 구교도들의 반발을 더욱 불러일으켰고 영국 국민들은 경제적 혼란으로 고통받았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시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게 됐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어머니를 처형시킨 성공회 신자들을 숙청하지도 탄압하지도 않았다. 그들을 인정하고 구교와 성공회로 갈라진 영국 국민들을 모두 수용했다. 각기 다른 쪽을 바라보는 가톨릭과 성공회 신자인 국민들을 인정하고 포용함으로써 영국은 대영제국이 될 수 있었으며 이는 엘리자베스1세의 현명한 대안이었고 해법이었다.

이 역사적 사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진정으로 영국의 국민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구교 신자들과 성공회 신자들 간의 반목이 아니라 통합이었다. 구교 신자들과 성공회 신자들이 협력하여 영국의 국권을 강화시켰고 영국의 경제적 안정과 부흥을 일구어낸 것이다.

이처럼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회복, 자립을 위해서는 의사, 간호사, 약사,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간의 역할이 공존하고 서로 협력돼야 한다.

오늘날 환자들이 중세 시대처럼 배에 실려 바다에 던져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정신의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했던 의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암과 불임도 치료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정확하게 발병의 원인도 찾을 수 없고, 명확하고 빠른 진단도 내리기 어려우며, 완치시킬 확실한 약물도 없는 조현병 조울증과 같은 ‘희귀성 난치 질환’에 대한 연구는 정신건강 의학 전문의인 의사들의 과제로 남아있다.

프로이트, 아들러, 융과 같은 심리학자들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론을 정립했으며 심리 상담가들은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정신분석과 약물로도 해결하지 못한 환자들의 문제를 상담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환자들이 입원했을 때 환자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건 병동을 관리하는 간호사들이다. 근무 시간 내내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고 의사의 처방대로 분주히 병동을 돌며 의사의 부재(不在) 상황에서 환자와 의사와의 커넥션 역할을 하는 치료 스텝이며 의사와의 동반자적 관계이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의학적 연구에 필요한 것은 병리학뿐이 아니다. 정신질환은 증상이 최고조로 괴로울 때 감기처럼 해열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쉬면 저절로 낫는 친절한 병이 아니다.

약리학의 중요성은 대두되고 있으며 약사들은 연구소에서 새로운 약물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복약 지도를 통해 환자들이 자신이 복용하는 약물에 대해 알려주고 약물의 주의사항을 전달해야 한다.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는 환자들의 재활과 회복을 돕기 위해 정신보건 전문 사회복지사 요건을 쌓아 공부하고 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 복지에 대한 사회적 중요성을 알리며 가장 실제적이고 친근하게 환자들에게 해법을 찾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모두 각기 자신의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며 궁극적인 목표는 정신질환 환자들의 치료와 회복이다.

여러 개의 수레바퀴가 함께 돌아가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직업윤리와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가능할 것이다.

이때에 세상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기질과 심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두 한 가지 성향만을 지니고 있다는 사고는 자칫 위험한 편견이 될 수도 있다.

환자를 위해서는 이들 직업군 모두의 역할이 필요하다. 누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누가 더 수혜를 받는지 끝없이 되묻고 반목하는 대신 서로 듣고 서로 말하며 협력해야 한다.

분명 당사자들의 병이며 당사자들의 문제임에도 정작 수많은 당사자들은 병에 묻혀버려 동굴 속에서 당사자를 둘러싼 이들의 이해와 방식, 해답, 결론에 의해 인생이 흘러가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기도 한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 스스로의 삶의 모델을 선택하는 당사자들은 그래도 행복한 이들이다.

정신장애인은 묶임이 아닌 해방을 꿈꾼다. (c)bizrepulic.com
정신장애인은 묶임이 아닌 해방을 꿈꾼다. (c)bizrepulic.com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같이 따른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물며 동굴 속에 묻혀 인간관계가 국한된 당사자들에겐 더욱 혼돈이 따른다.

보건복지부 예산을 두고 의사들과 사회복지사들이 대립하고, ‘정신건강법’으로 할지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명칭할지를 논하고, 정신장애인이 재산권을 갖지 못하고 후견인이 맡게 되는 ‘산정특례법’안을 두고 변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서로 후견인이 되겠다며 나서고, 이 법안에 대해 당사자 단체 간에 서로 부딪힌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들은 소외받는 소수의 입장이고 목소리인데 서로 뭉쳐서 이뤄내지 못하는 사이 환자들은 만성화되고 재발하고 늙어가며 정작 동굴에 묻혀버린 당사자들은 이런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대해도 낯설고 어렵다.

사회생활을 못하고 평생을 폐쇄정신병동에서 살아야 한다고 낙인을 찍기도 하고, 시설에 다니고 당사자 활동을 해야 병이 낫는다고도 하고, 집에서는 일상생활이 관리되지 않으므로 주거시설에서 생활해야 한다고도 하고, 정신장애인이기에 그에 준해 최저 시급도 보장되지 않는 임금으로 일을 시키며 재활에 성공했다고 하고, 외래 치료만 잘 받으면 유지되는 환자를 요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병으로 인해 갖는 개인적인 고통, 실패, 좌절감은 같은 병명을 가진 당사자도 당사자 단체도 모르듯 당사자를 둘러싼 모든 직업군도 100퍼센트 환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란 아주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종교인도 인간이기에 모든 이를 이해하기 힘들다.

부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삼권분립’이 제각각의 역할을 하며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출 수 있듯이 각각의 전문성과 역량 역할이 주어진 당사자를 둘러싼 모든 직업군이 각자의 이해타산을 버리고 이타심과 인간에 대한 예의로써 잠재적 범죄자이자 전염병 환자로 취급받고 있는 당사자들을 바라보고 도와주기를 진실로 바란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전문성과 역할이 대두되고 인정받고 존중받는 새날이 다가오기를 믿고 싶은 새 아침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