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상처받은 아이로 남은 성인이 유년 시절 읽었던 동화책을 다시 읽는 이유“”
[당사자 칼럼] 노희정 "상처받은 아이로 남은 성인이 유년 시절 읽었던 동화책을 다시 읽는 이유“”
  • 노희정
  • 승인 2021.09.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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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자와 안정적 애착관계 형성한 아기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어른돼
불안정한 애착 관계는 성인 돼도 상처입은 아이에 머물러
문호의 책보다 어린 시절의 동화 다시 읽기가 삶의 지혜에 더 도움돼

정신질환이나 심리적인 인격 장애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피곤하고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독감에 걸리고 나아지지 않아 폐렴으로까지 이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모든 정서적인 문제는 유아기 때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 형성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정신분석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애착 이론’은 영국의 아동 정신분석학자 ‘J.M. 볼비’가 정의한 용어로써 태어나자마자 처음 맺는 부모나 양육자 간의 정서적 경험 관계가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맺힌다는 발달 심리학과 응용 심리학 이론이다.

이러한 애착 유형은 안정 애착, 불안 애착, 회피 애착, 혼란 애착 모두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 안정형 애착이 형성된 사람은 타인과 쉽게 친해지고 혼자 있거나 타인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둘째, 불안정형 애착을 보이는 사람은 감정에 따라 타인과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상대방에게 언제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한다.

셋째, 회피형 애착 관계를 맺은 사람은 타인에게 상처받기 위해 아예 애착 욕구 자체를 스스로 차단하고 유대감을 맺는 것을 피한다.

넷째, 혼란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어떤 형태이든 학대를 받은 경우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타인에게 위로받으려고 집중한다.

유아 시기에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한 아기는 정서적으로 충분히 충족돼 성장한 후 건강한 성인이 되지만, 정서적으로 만족되지 않은 아기는 양육자와의 불안정한 애착 관계로 유아기 때부터 안정되지 않고 포만감 형성이 이뤄지지 않아 유난히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성인이 되어서도 과거의 상처와 아픈 기억으로 많은 문제를 겪는다.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I killed my mother)' 포스터. 감독 자비에 돌란.
영화 '아이 킬드 마이 마더(I killed my mother)' 포스터. 감독 자비에 돌란.

불안정한 애착 관계가 해결되지 않은 아이는 신체적, 사회적 연령은 성인이 되었지만 황폐한 영혼은 결국 치유되지 않은 상처 입은 아이와 다름없는 것이다.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가기도 하고 심한 인격장애를 형성하게도 한다.

경계성 인격 장애, 회피성 인격 장애, 강박적 인격 장애, 조현형 인격 장애, 반사회성 인격 장애 등은 가족 간의 관계, 사회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 간의 인간관계와 가족, 친구, 연인 간의 관계를 병들게 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 고통스럽게 만든다.

캐나다의 천재 감독 자비에 돌란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I killed my mother)’ 속에서 엄마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반항하며 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기숙학교에서도 도망 나오는 주인공 아들은 이혼한 엄마가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정한 애착이 원인이었고 엄마를 증오하다가 결국 자신의 세계 대신 도로 엄마에게로 회귀하는 것도 건강하지 못한 애착이 빚어낸 애증이었다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일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嫌われ松子の一生)’에서 여주인공 마츠코가 작가 다사이 오사무의 환생이라며 소설을 쓰던 동거남의 폭행과 자살 이후 계속되는 남자들의 배신 속에서 심지어 자신의 인생을 살인자와 매춘부로까지 살게 만든 남자에 대한 마조키즘적 사랑을 반복하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애정을 받지 못한 결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신치료학 임상 교수이며 융 학파 정신분석학자인 ‘진 시노다 볼린’은 특히 엄마와 딸, 그 관계 속에서 자리잡게 된 여성의 심리를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책 속에서 해석한다.

지하 세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나는 곡식의 수호신인 데미테르의 딸로서 대표적인 엄마와 딸 간의 잘못된 애착 관계를 보여준다.

데미테르 유형의 어머니 역할은 아기 때부터 딸의 의존심을 강화시키고 과도하게 통제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딸이 자신의 분신이기를 바라고 순응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게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함에 위험함과 걱정을 암시시키고 친구나 데이트 상대를 만나는 것까지 영향을 미친다.

독자적인 자아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는 페르세포네 유형의 여성은 유일하게 엄마에게 저항할 수 있는 방편으로 나쁜 남자나 다른 계층의 남성을 만나고 남자가 원하는 대로 결혼 승낙을 하기도 한다.

결국 페르세포네 여성은 억압으로 인한 분노가 내면으로 향해서 자아비판과 죄의식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고 오히려 정신적인 환자가 됨으로써 진정한 자신의 감정과 내면 세계를 알게 된다.

마치 햄릿의 오필리아처럼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병 속에 안주하며 회피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데미테르 엄마의 애착 형성과 잘못된 사랑 방식이 이토록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요즘 소아정신과는 점점 늘어나고 외래에는 놀이터에서 뛰어놀아야 할 아동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들은 겉보기에도 평범한 아기, 아동, 어린이다운 모습이 결여돼 있다. 시선은 사람을 바라보지 않으며 쉴 새 없이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거나 힘없이 멍하고 지쳐 보이는 얼굴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동화 '톰 소여의 모험'.
동화 '톰 소여의 모험'.

소아정신과 오은영 박사의 조언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부모들은 귀를 기울여 건강한 양육법을 배운다.

그럼에도 아픈 아이들은 늘어가고 약을 먹는다. 이 아이들이 아직 말도 못 하는 나이부터 인지적, 심리적, 행동치료를 받으면 성인이 돼서 정신질환을 앓게 될 가능성은 사라질까?

부모들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방법을 공부하는데도 아픈 아이들이 늘어가는 것은 왜일까?

불안정한 애착은 불안, 공포, 반항, 적개심을 만들어내고 성장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서 사랑과 기쁨 감사 대신 미움과 분노,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들뿐만 아니라 종교인들은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이 자존감을 쌓을 수 있고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권한다.

자신의 감정을 읽고 관찰하고 이를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차근차근 적는 과정은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고 요즘 대두하고 있는 ‘NLP 심리 치료’ 이론대로 밝음을 전제로 하여 긍정을 이끌어내고 삶을 기쁨과 감사의 바탕으로 살아가게 할 수 있는 방어기제다.

하지만 모든 것엔 아웃풋(out-put)이 있으려면 우선 인풋(in-put)이 전제돼 갖춰져야 한다.

상처가 미움을 낫고 분노가 지배하고 이 분노가 타인에게, 다시 자신에게 향하여 황폐하고 지친 이들의 정서적 토양엔 그 감사라는 것이 자라나기 힘들다.

이러한 치유되지 않은 아이로 남아있는 이들의 정서적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법으로 상처 입은 아이 시절에 읽었던 동화책을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어 보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치료가 되어준다고 한다.

뛰어난 심리학자라고 일컫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책 보다는 시련을 헤쳐나가는 ‘올리버 트위스트’나 ‘15소년 표류기’ ‘톰소여의 모험’ 같은 동화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대처법에 다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단지 동화책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보는 TV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위안을 얻고 정서적 지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빨간머리 앤’ 애니메이션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빨간 머리 앤 신드롬을 만들어냈고 ‘곰돌이 푸’를 기억하는 이들이 곰돌이 푸의 수많은 명언들에 위안을 받는 요즈음 독자들이 얻는 것은 단순히 추억뿐만은 아니리라.

영국의 동화 작가 존 버닝햄은 아동 도서의 명예인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유명한 동화 작가다.

옥스퍼드출판사에서 출간한 존 버닝햄 동화들은 단지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아이들만의 동화가 아니다.

영국의 동화 작가 존 버닝햄.(1936~2019). 그는 한국을 수차례 방문할 정도로 한국을 내면적으로 사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의 동화 작가 존 버닝햄.(1936~2019). 그는 한국을 수차례 방문할 정도로 한국을 내면적으로 사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로운 아이 곁에서 늘 함께하며 공감해주는 상상 속의 친구 ‘알도’, 아이들만의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 그리고 순수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등장하는 ‘지각 대장 존’ 같은 책은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어른들에게도 위안을 주는 훌륭한 힐링 도서였다.

기회가 되어 존 버닝햄의 책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지친 영혼에 따스한 빛이 스며들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오디오 북을 검색하다가 계몽사 출판사의 채널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소공녀’, ‘비밀의 정원’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밤이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음에, 그리고 ‘빨간 머리 앤’의 말처럼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기다려지는 내일에 감사하며 잠이 든다.

사람은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인 건강이 유기적으로 연관돼 갖춰질 때 진정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의 갈등 요인은 정신적인 연령과 정서적인 연령의 부조화 속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리가 어린 시절 위안을 주고 세상의 따스함과 희망을 안겨주었던 통로를 통해 정서적인 공백을 메울 수만 있다면 치유되지 않은 상처 받은 아이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돼 감사 일기를 적을 수 있게 될 것이며 충족되지 못했던 정서적 안정과 함께 생의 한가운데에서 평화와 행복을 다시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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