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후보에게 묻는다…정치의 영역에서 호명되는 정신병 진단명이 어떻게 혐오가 되는지를 아는가
원희룡 후보에게 묻는다…정치의 영역에서 호명되는 정신병 진단명이 어떻게 혐오가 되는지를 아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0.2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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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적 진단명이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어떤 혐오를 생산하는지 나는 지금 보고 있다.

최근 이재명 후보를 향한 ‘소시오패스’ 발언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다투고 있다. 정확한 발언의 진원지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주자인 원희룡 후보의 아내 강윤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표현에서 비롯된다. 강씨는 지난 20일 한 유튜브 방송에서 진행자가 “이 후보는 야누스, 지킬 앤드 하이드가 공존하는 사람 같다”고 하자 “그보다는 오히려 소시오패스다. 정신과적으로 안티 소셜이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내담자가 아닌 대상에 대해 추측성 정신과적 진단명을 붙이면 이는 의료윤리 위반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여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강씨에게 구두경고했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야는 “구두경고는 허위 사실”이라로 맞받았다.

글쎄. 정치권에 종종 호명되는 정신질환 관련 코드는 ‘혐오’와 ‘차별’, ‘비인간적 특성’으로 요약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정치 영역에서 단 한 번이라도 객관적으로, 혹은 우호적으로 불려진 것이 있었는가.

지난 2019년 9월 박인숙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향해 “정신병자”로 호명했다가 정신 인권 단체들의 집단 비판을 받았다. 2018년에는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치권에서는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록 정신장애인들이 많다”고 발언해 역시 정신장애계의 반발을 불렀던 적이 있다.

또 올해 3월에는 국민의힘 초선의원 31명이 정부의 대북 원전 지원 의혹과 관련해 “집단 조현병”이라고 발언해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왜 정치 영역에서 정신장애라는 의학적 질병명은 끊임없이 비하적 의미로 회자되는 것일까.

가장 우선은 정치권 인사들이 정신장애를 모른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정신장애는 피해야 하고, 배제하고, 정신병원에 있어야 할 ‘혐오적 존재’들의 기호다. 그런 인식에서 그들이 정신장애를 우호적으로 발언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게다가 ‘혐오스러운’ 정신질환을 호명했을 때, 지금까지 어느 단체도 집단도 당신들에게 비판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경험적 요인에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정신장애계는 정치적 대표성을 띄는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치의 영역에서 적대적 타자를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무기는 타자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정신병자가 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혐오적 질병명이 타자에게 윤리적·정치적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기에 정치인의 이 같은 발언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인식에서 원희룡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향해 “대통령이 돼서도, 합당치 않은 이유로 국민들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면 국민 안전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가 공산주의 땅인가. 여긴 민주주의 국가다. 개인의 존엄이 이념에 의해 망가질 수 있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반체제 인사들을 무작정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구 소비에트(소련)와 같은 사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소비에트가 정신병원을 정치범 처리에 활용했던 것, 그리고 중국이 정치적 반대 인사들을 정신치료를 이유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부작용이 심한 정신과 약물을 강제로 먹인 것은 적어도 정신병원이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 권력에 대항하는 이들에 대한 자비 없는 폭력을 강제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원 후보에게 묻겠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 땅에서 대통령이 된 자가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을 정신병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독재 시절에 체제 비난을 했다는 이유로 ‘남산’으로 끌려들어가야 했던 것처럼 지금, 현재의 공화국 체제에서 한 시민이 이재명을 욕한다고 해서 권력이 그를 정신병원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독재 체제가 들어선다면 국민은 집단 반발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옹호하는 국가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 후보가 말한 것처럼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을 적극 정치적 탄압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그건 원 후보 당신이 비판하기 이전에 시민사회가 먼저 문제 제기하고 이 부당함에 대해 정치적 싸움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지금, 현재의 민주공화 체제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설사 발생하더라도 이제는 권력의 폭력성을 감시하는 시민사회 조직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정신병원은 치유를 모색하는 공간이지 당신이 말하듯 마음에 안 드는 국민을 수용시키는 정치범 수용소가 아니라는 점도 말하고 싶다. 당신의 그 정신병원에서의 감금은 어쩌면 당신이 정신병원을 수용소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장애인이 국가의 건강성이라는 파시즘 체제에서 무고하게 정신병원으로 들어간 시대적 사실들이 있다. 1940년대 독일 나치는 유대인 학살 이전에 ‘군인도 될 수 없고 노동자도 될 수 없고, 다만 밥만 축내는 정신질환자들을 사회가 왜 보살펴야 하냐’는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매료돼 당시 독일 내 정신병원의 입원환자 8만 명을 총과 가스실 분무로 집단 학살했다.

이 나치 이데올로기는 나치의 세기가 끝났다고 해서 함께 매장된 건 아니다. 끊임없이 공동체 안에서 호명되고 진행되는 망령 같은 것이다. 정신장애 운동은 이 망령의 부활을 막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다. 

이럴진대, 원 후보가 말한, 대통령이 심기가 안 좋으면 특정 시민을 골라내 정신병원으로 보낼 수 있다는 이 ‘망상’은 당신이 정신건강과 정신장애인, 정신건강 인권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신장애인은 아픈 존재들이다. 정신적 아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며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다. 가장 빈곤하게 살고 있고 정신적 어려움으로 노동을 선택할 수도 없고 기초생활수급권자는 가장 많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정신병원의 비인권적 대우를 제소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존재들이다.

그들을 위해 당신이 어떤 정책을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정신과 전문의인 아내와 나누는 주제는 정치의 문제였을 뿐일까. 아니면 당신은 아내의 직업에 대해, 그 직업의 대상인 정신장애인의 삶을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인식이 당신의 이 같은 차별적 발언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당신은 정신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을까. 발달장애 아이들이 있는 요양시설에 가서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의 옷을 벗기고 사진에 찍히기 위해 몸을 씻어주는 행위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배제당하며 살아가는지를 그곳 관계자들에게 듣고 좋은 대안을 마련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당신이 상대 당 후보를 향해 ‘당신 마음이 안 들면 다 정신병원으로 보낼 것’이라는 폭력적 발언을 내뱉는다는 것은 발달장애는 이해해도 정신장애는 이해하지 못하는 당신의 지극히 편협된 질병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약자의 언어에 공감하고 귀를 기울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정신병원을 희화화하고 권력에 엇나간 자들이 강제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로 호명한다면 도대체 그 안에 있는 정신장애인들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당신이 상대 정당의 대선 후보에게 ‘권력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발달장애인 요양소로 보낼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관절염이 있으니 외과로 보낼 것’이라고 역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정신병원은 가장 만만한, 상대방에게 정치적 타격을 안길 수 있는 지극히 적합한 장소였던 것이다. 그러니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발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라. 당신 주변에, 당신이 제주도지사를 할 때 제주도의 정신병원은 어떻게 작동하지 있는지. 그 안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당신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소시오패스’가 정신장애의 영역에서 배제된 게 몇 년 전이라는 것도. 소시오패스와 정신장애가 어떤 차이가 있는 질병인지를 당신은 알아야 했다.

그리도 다시는 정신장애라는 진단명을 정치의 영역에서 호명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던진 돌멩이에 어떤 개구리는 맞아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마치며. 원 후보의 당신의 그 발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캠프 한 대변인이 당신을 겨냥해 “분노조절장애가 확실해 보이지 않느냐”라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보라.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정신과적 용어가 어떻게 혐오화되고 있는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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