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의 인터뷰] "영화 'F20'이 대중에게 조현병 편견 깨는 기획이었는지 묻고 싶어"
[이관형의 인터뷰] "영화 'F20'이 대중에게 조현병 편견 깨는 기획이었는지 묻고 싶어"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11.01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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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30년째 조현병 갖고 살아...가슴 아파서 영화 상영 중단 청원 올려
환청에 공포스런 배경음악까지 넣어 부정적 이미지 강화시켜
뉴스로만 조현병 접하는 대중에게 F20은 편견 더 심화시키는 영화

지난 10월 26일, KBS는 조현병을 다룬 영화 <F20>의 KBS2 방영 보류를 결정했다. 방영 보류 결정이 나기까지, 많은 당사자와 가족단체, 여러 기관과 협회의 협력과 적극적 활동이 있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승리였다. 무엇보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먼저 앞장서서 스스로 이루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더 깊은 의미를 둘 수 있겠다.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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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아무런 도움도 없이,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해나갔던 이가 있었다. 

 

출처 : blog.naver.com/ki4561/222514235262
출처 : blog.naver.com/ki4561/222514235262


영화 <F20>과 관련된 기사나 관련 글을 찾다보면 댓글 창에는 늘 위의 글이 달려 있었다. 조현병 관련 카페나 블로그는 물론, 영화 사이트나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 댓글에서도 이 글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당사자 가족이라 밝힌 글쓴이는 어떤 마음과 심경으로 청원을 호소했던 걸까? 기자는 직접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메일로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허보람입니다. 저는 20대 후반부터 발병해 약 30년 동안 조현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의 딸로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31살 직장인으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Q. 당사자의 가족으로서 <F20>을 관람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관에 가기까지 어떤 각오나 다짐이 있으셨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 마음의 갈등이나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선뜻 영화 <F20>의 개봉 소식을 듣고 영화관까지 관람하러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러 가기 전에는 먼저 ‘조현병을 주제로 영화가 개봉된다’는 조현병 환우 가족 커뮤니티에서 소식을 듣고 영화 <F20>의 예고편을 검색해 먼저 봤습니다.

그런 후 영화 <F20>과 관련된 기사도 살펴보니 해당 영화가 ‘조현병에 대한 사회에서의 부정적인 편견’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영화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었던 탓인지, 영화 <F20>의 짧은 예고편에는 조현병에 대한 자극적인 대사를 포함해 병에 대한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묘사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관에서 개봉된 이후 다른 관람객들의 영화 <F20>에 대한 평점과 후기 글들을 보니 부정적인 반응과 긍정적인 반응이 엇갈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접 조현병과 환우 가족들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영화에 담아냈는지, 과연 예고편은 홍보의 목적으로만 정말 자극적으로 소재를 만들어 표현했는지 직접 보고나서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은 지난 주 일요일 아침 용산 CGV영화관에 가서 무거운 마음으로 관람하러 가게 됐습니다. 

출처 : 허보람
출처 : 허보람

 

Q.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나 대사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 그 장면이나 대사에 대해 당사자 가족으로서 어떤 기분과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A. <F20>이라는 영화를 조현병 환우의 가족으로 관람을 하게 되는 것이라,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된 상태로 봤습니다. 조현병 환자를 어떻게 표현했을까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전개가 전반적으로 조현병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들이 내심 마음에 계속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도훈’과 ‘유찬’에 대한 영화에서의 묘사는 정말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사람들을 경계하며 사회 부적응자로 지내는 모습, 피부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으로 고통받는 모습, 횡단보도를 걸으며 환청이 들리는 모습 등 조현병의 일부 증상들을 공포스러운 배경음악과 함께 표현되면서 조현병에 대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나타낸 거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또한 후반부터 조현병인 아들에 대한 소문이 아파트 주민들에게 퍼질까봐 극도로 불안에 떨며 공포심으로 가득차게 된 엄마 '애란'이 같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유찬'의 엄마를 본인의 집에서 충동적으로 살인하는 장면은 가장 충격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애란의 “살인”이라는 범죄까지 저지르게 할 만큼 조현병을 앓고 있는 서울대생인 아들이 질병에 대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아들이 겪게 될 사회적 편견이 그토록 무섭다고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질병들과 달리 유독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환자가 아닌 ’괴물‘이나 ’범죄자‘로 낙인시키는 사회 안에서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그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만 하는 ’조현병 환우‘들의 삶의 고통의 크기와 무게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족인 나도 가늠하기 어려운 그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그 고통이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 영화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나 파장, 혹은 일반 대중들의 시선과 편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영화 <F20>이 조현병을 주제로 제작한 영화지만,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F20>에서는 조현병에 대한 표현이 짧게 나왔으나 조현병에 대한 공포스런 분위기의 증상만 부각시켜서 병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조현병은 원래 이런 무서운 병이구나’라는 전제를 가지고 영화를 감상하게 돼 평소 우리 사회에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편견을 깰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끄는 주제가 조현병 아들을 둔 엄마의 모습으로 이끄는 만큼, 영화의 시작부터 조현병 진단을 받고 고통스럽게 슬퍼하는 애란은 영화 중반부에 결국 유찬의 엄마를 살인하고, 영화 후반부에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유찬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등 조현병 환우에 대하여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이끌어갔기 때문입니다.

조현병이라는 게 그렇게 충격적인 병인가? 조현병인 아들을 둔 게 살인할 만큼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할 것 같은가? 조현병은 살인범으로 오해시켜도 될 만한 병인가? 의문이 들며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조현병을 겪지 못한 대중들에게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담아낸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Q. 여러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댓글에 당사자 가족으로서 청원을 호소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려 주신 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짧지만,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공개하는 거나, 악플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내서 글을 올리신 계기와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나의 어머니가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어떨까 생각했을 때, 가슴이 너무 아프고 속상해서 청원 관련 호소의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출처 : pixbay
출처 : pixbay

Q. 어떤 이들은 이 영화에 대한 상영 금지를 외치는 건, 미디어의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외국에서는 조현병보다 더 한 소재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서 말이죠. 그런 분들께 당사자의 가족으로서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영화 속이나 뉴스 기사로만 볼 법한 조현병 환우들이 우리 나라에 50만 명 이상입니다. 그 분들이 이 영화를 본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저희 어머니가 혹여라도 영화 <F20>의 포스터를 지나가시다가 우연히 볼까, TV를 켜셔서 우연히 보시게 되면 상처받으실까봐 걱정이 큽니다.

너무 동떨어진 사람들 같고, 왜 그렇게 유별나게 영화를 다큐로 보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있지만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응원해주시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즐거운 마음으로만 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Q. 결과적으로 청원의 동참 목표 수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아쉬웠을 것 같아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은 어떠하신지, 그리고 청원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다면 어떤 의미부여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A. 내가 겪지 않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도 같이 느꼈습니다. 비록 청원 동참 목표수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름의 노력으로 목소리를 내었다는 제 용기에 만족합니다.  

출처 : kbs 시청자 권익센터
출처 : kbs 시청자 권익센터

Q. 사실, 단체나 온라인 모임을 통해 조직적이지 않고 홀로 목소리를 낸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글을 올리는 활동을 하면서, 외롭거나 힘들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리고 청원에 참여했던 당사자와 가족들, 그리고 온라인 카페와 당사자 단체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조현병은 치료와 사회적인 도움이 매우 절실히 필요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이토록 따가운 편견 속에서 당사자와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Q. 영화 <F20>의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영화 기획에 대해 혹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제작진의 태도에 대해 아쉽거나 속상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영화 <F20>의 제작진은 사전에 조현병 당사자나 환우들을 인터뷰하거나 병에 대한 이해와 이 병을 앓고 계신 분들의 고충을 좀더 세밀하게 듣고 영화를 기획했으면 좋았을 거 같습니다.

기획의 의도와 달리, 조현병 당사자와 조현병 환우 가족들이 보기에 이리도 마음이 불편하게 만들고 상처를 주는데 조현병이 어떤 병인지 그저 뉴스로만 접한 일반 대중들에게 그 편견을 깰 수 있도록 기획했는지 다시 물어보고 싶습니다.

Q. 언젠가는 조현병을 소재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또 다시 제작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새로운 제작진과 배우들이 당사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그리고 조현병과 관련된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때 꼭 당부하고 싶거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조현병 환우들도 같이 영화나 드라마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현병으로 30년을 앓고 계신 저희 어머니는 25년이상 폐쇄병동에서 생활하며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지만 아직도 정말 마음이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곁을 함께하시며 지켜주시고, 제 동생은 중증장애인을 돕는 사회복지사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조현병이 무서운 병이 아니라 정말 어떤 병보다도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사랑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pixbay
출처 : pixbay

Q. 결과적으로 영화 <F20>은 방영 보류로 결정됐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남다른 소감이나 감회가 있으셨을 거 같아요.

A. KBS에서 방송 보류 검토에 관한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하였을 때, 약 한 달 정도 목소리를 내며 지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미 사회에 GGV와 웨이브를 통해서 개봉돼 세상에 나왔지만, 개봉 전 예상했던 사회적 파장이 아직까지는 많이 적었다고 개인적으로 느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 거 같습니다.

아직 방송 심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려봐야겠지만, 이로 인해 영화 <F20>에서 연출된 조현병에 대한 표현이 얼마나 아직도 그 사회의 조현병에 대한 협소한 시각만 다뤘는지 공감대를 형성하여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깨달았다. 우리는 결코 약하지 않다고. 한 개인의 목소리에서부터 단체의 집단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당사자와 가족들, 개인과 여러 단체가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외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약자와 소수자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이번 승리를 통해 우리는 자신감을 얻었으며, 우리는 결코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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