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겼다”…영화 ‘F20’ KBS2 방영 전면 보류
“우리가 이겼다”…영화 ‘F20’ KBS2 방영 전면 보류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1.10.2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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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측 26일 “정신장애단체 상영 중단 요구 받아들여”
‘F20’은 정신장애인 왜곡한 차별적 영화…“인권위 진정”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왼쪽)과 정제형 변호사가 국가인권위위원회에 정신장애인 차별 진정을 제기하고 있다. (c)장추련 제공.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왼쪽)과 정제형 변호사가 국가인권위위원회에 정신장애인 차별 진정을 제기하고 있다. (c)장추련 제공

영화 ‘F20’의 KBS2 방영이 전면 보류됐다.

26일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KBS시청자서비스부 담당자에게서 이 같은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김 사무국장이 공유한 내용에 따르면 KBS 측은 결정 내용에서 “해당 드라마 방영은 보류한다. 추후 방영 일시는 정하지 않았다”며 “지난 25일 제작 책임자와의 만남에서 관련 단체에서 지적한 문제들에 진지하고 심도 있게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이어 “공영방송 KBS에는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맺고 있다.

이 영화는 29일 KBS2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었다.

앞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12계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은 영화 ‘F20’이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재생산하고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에 참여한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과 정제형 변호사는 “(이 영화는) 정신장애인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격권을 침해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차별 행위”라며 “(KBS가) 차별 행위를 중단하고 인권 침해를 시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영화 ‘F20’은 상영 시작 전부터 정신장애 단체들의 비난을 받았다. 극장가 첫 상영일인 10월 6일 훨씬 이전인 9월 29일에는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에도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F20’은 표현의 자유 아닌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제작진은 이 영화가 정신장애인의 삶을 중립적으로 표현한 창작물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서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장치돼 있어 본질적으로 정신장애인의 인격과 존엄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영화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애란은 외아들 도훈이 조현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걸 극도로 꺼린다. 이때 조현병 아들 유찬을 둔 경화가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그 와중에 길고양이를 누군가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고 주민들은 유찬을 의심한다.

영화 'F20' 포스터.
영화 'F20' 포스터

애란은 경화가 도훈의 병을 소문낼까 봐 자신의 집 수조에서 경화를 살해한다. 이후 애란은 죽은 경화가 ‘내 아들이 널 찾아갈 것’이라는 환청을 듣고 마침 집을 찾은 유찬을 찌른다. 하지만 이는 아들 도훈이었다. 애란은 감옥에 간다.

진정은 “영화의 초점, 관객의 초점이 ‘사람들의 편견’이 아닌 ‘조현병’에 맞춰진다”며 “조현병에 대한 낙인을 지우기는커녕 F20이라는 질병 코드에까지 낙인을 찍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은 이 영화를 보며 ‘미친 놈’이라는 비하적·경멸적 표현을 반복 접하게 된다”며 “이는 모멸감과 위축감만을 안고 나오게 된다”고 비판했다.

또 “현실의 조현병 환자들은 (자·타해 위험 같은) 적극적 행동을 하기 보다 위축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자·타해 위험을 부각시키면서 조현병을 단편적으로 묘사하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고 반박했다.

영화 속 교수가 “이 병은 70% 정도는 약물치료로 증상 호전이 가능하고 3분의 1 정도는 사회생활이 가능한 병”이라는 대사에 대해 진정인은 “30%는 약물치료로도 호전될 수 없다, 나머지 3분의 2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영화는 29일 KBS2를 통해 안방에 상영될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 단체는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일 정신장애인연합회와 장추련 등 단체들은 KBS 신관 앞에서 단체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신석철 정신장애인연합회 준비위원장 등 대표단은 KBS 관계자들을 만나 영화의 지상파 상영 중단과 책임자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KBS 측이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어진 25일 대표단은 다시 KBS 측 이훈희 제작2본부장과 등 관계자들과 만나 즉각적 방영 취소를 요구했다. 이 본부장은 “정신장애인 단체들 입장을 듣고 내부 프로세스를 통해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 준비위원장은 “그러니까 방영 중단 안 하겠다는 거냐”며 대표단에 “나가자”고 말해 한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어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이 영화는 편집한다고 방영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며 “TV에 방영되기 이전인 27일 오전까지 확답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영화 'F20' 방영 중단을 촉구하는 당사자 단체 운동가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영화 'F20' 방영 중단을 촉구하는 당사자 단체 운동가들.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이에 대해 이 본부장은 “사기업이면 바로 방영 안 하겠다 할 수도 있지만 여기는 편성을 결정할 권한이 내게는 없다”며 “절차에 따르고 나중에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27일 오전까지 답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에서 장기 농성에 들어갈 것”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오는 27일 KBS 측 답변을 압박하기 위해 이날 다시 KBS 신관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KBS 측의 방영 보류가 나옴에 따라 환영 집회로 바꾸고 향후 투쟁을 재설계할 예정이다.

정신장애 관계자는 “KBS가 큰 틀에서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을 환영한다”며 “당사자의 목소리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축하하기 위해 27일 오전에 KBS 신관 앞에 모여 축하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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