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조현·조울병은 불치 아닌 난치병…치유 희망의 확신 갖고 현재에 충실해야"
[당사자 칼럼] 노희정 "조현·조울병은 불치 아닌 난치병…치유 희망의 확신 갖고 현재에 충실해야"
  • 노희정
  • 승인 2021.12.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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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질병 아닌 통증
최희귀성 난치질환으로 병명 코드까지 부여되지 못한 질환들 존재
희귀성난치질환 환자에게 부여된 ‘산정특례’ 제도 적극 이용해야

희귀: 드물어 귀한 것.

난치: 고치기 어려움.

사전적 정의대로라면 희귀성 난치질환이란 고치기 어려운 보기 드문 병을 일컫지만 여기서 드물기에 귀하다는 의미는 여과된다. ‘많은 이들이 앓지 않는 고치기 어려운 병.’ 이러한 질병들이 희귀성 난치질환으로 분류되고 이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들이 ‘희귀성 난치 질환자’이다.

희귀질환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2만 명 이하인 병으로 규정된다. 최근 10년간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국내 희귀질환자 수는 대략 50만 명이 넘는다.

정신질환 중에서는 조현병·조울증·뇌전증 등이 희귀성 난치질환에 해당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질병이 아니라 통증."
아리스토텔레스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질병이 아니라 통증."

대부분의 희귀성 난치질환은 질병의 유발 원인도 정확히 알 수 없고 진단도 빠르게 내리기 어려우며 확실한 치료법도 치료약도 명확하지 않기에 환자들을 지치게 하고 낙담으로 이어지게도 한다. 병명을 명확히 할 수 없어서 ‘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하고 다른 질환에 쓰던 약을 대체제로 치료에 사용하기도 한다.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는 만성 신부전증, 결핵, 재생 불량성 빈혈, 출혈이 멈추지 않는 혈우병, 만성적으로 관절과 척추의 염증을 일으키는 강직성 척추염, 뇌와 신경계의 자가 면역 질환을 일으키는 다발성 경화증 등 심각한 증상과 통증을 동반하는 이름조차 생소한 질환이 대부분이다.

희귀성.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뇌전증 같은 정신질환 역시 평생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환자들은 치료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병명 자체에 위기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를 기울일만한 주장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질병이 아니라 통증이라고 말했다. 희귀성 난치질환으로 진단받은 병명에 따르는 각종 위험과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고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없는 문제 외에도 통증은 자신이 희귀성 난치 질환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척도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암도 암에 따르는 전이 가능성이나 검사와 치료 과정에서의 후유증보다 현실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통증이며 증상이 가져오는 통증으로 인한 심리적인 불안감과 고통으로 환자의 삶은 피폐해진다.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일명 CRPS라는 병명은 최근에 들어서야 밝혀진 병이다.

몸이 스치기만 해도 아플 정도로 전신의 모든 통증 감각이 극심해져서 집안에서조차 거동하기 힘들며 하루 종일 누워서 생활할 수밖에 없으나 가만히 누워있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잠조차 이루지 못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심한 통증이라고 할 수 있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은 의사들조차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증상들이어서 환자들은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무병(巫病)이라며 굿을 하기까지 했던 병이다.

섬유근육통 또한 심한 통증이 전신의 거의 10곳 가까이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통증을 자각하고 반응하는 신경의 신호가 오작동 되듯 작용하는 병으로 허리나 목 디스크 관절염으로 의심되기도 하고 불면증과 과민성대장증후군까지 동반해서 우울증으로 보이기도 한다.

뚜렷한 원인도 확실한 치료법도 증상을 사라지게 하는 약물도 밝혀지지 않아 진단명이 ‘증후군’으로 지칭되는 병명은 무수히 많다.

병으로 인식되지 않아서 의사들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증상들. 병이 아니라고 진단하여 병원에서 그냥 돌아가야 했던 희귀성 질환 환자들. 현대 의학의 범주에서 해볼 수 있는 모든 검사들을 비롯해서 CT를 찍고 MRI를 찍어도 뚜렷한 이상 소견은 나타나지 않고 현재까지 완치의 가능성은 희박한 증후군이라 불리는 병명들.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뇌전증 같은 정신질환은 인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주지만 통증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리스가 인류 최대의 적은 통증이라고 정의한 대로 풀어보자면 정신질환은 결코 인류를 위협하는 질환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장기간 관리해야 하는 병이지만 신체적인 위험에 노출되면 비상등이 켜지는 병이라서 늘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피부나 신체가 변형돼 외관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희귀성 난치이지만 치료할 약도 있고 질환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다른 병명들보다 약간은 이기적인 낙관성이 부여될 수 있는 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앞서 말한 희귀성 난치질환의 범주를 넘어서서 초희귀성 난치질환으로 명칭 되는 병명들이 있다. 아직까지 병명 코드조차 부여되지 않은 질병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폐가 서서히 굳어가는 폐섬유증.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인 ‘특발성’이 붙어져 특발성 폐섬유증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호흡 곤란까지 이르며 병이 진행되기에 약물로 폐가 굳어가는 것을 늦추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c)www.uol.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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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로이드 신경병은 변이 유전자로 인해 손발 감각이 떨어지고 근육이 위축되는 극희귀질환이며 자가면역 질환인 류마티스 중에서도 류마티스 극희귀질환으로 구분돼 상병코드가 없는 극희귀질환이 있다.

초희귀성 난치 질환자를 포함한 희귀성 난치 질환자. 완치가 힘들다는 암담함 속에서 이들에게 한줄기 위로의 빛을 줄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희귀성, 초희귀성 난치질환을 가진 모든 환자들에게 부여된 ‘산정 특례’라는 제도이다.

산정 특례란 의료비 약제비의 10퍼센트를 경감받을 수 있는 의료혜택이다.

의사에게서 받는 진료에 따른 병원비와 처방전에 따라 약국에서 약제비 경감도 가능하며 입원 시에도 적용받을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비급여 항목인 정신분석이나 장시간의 면담 비용은 산정 특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긴 하지만 의사로부터 희귀성 난치 질환자임을 진단받고 건강 보험 산정 특례 등록 신청서를 발급받으면 병원이나 공단에 산정특례자로 등록 신청을 할 수 있다.

암 환자도 암 진단 후 따르는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감과 불면증이 동반될 때 종합 병원뿐 아니라 개인 병원의 정신과에서도 산정 특례대상자로 인정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산정 특례대상자. 희귀성 난치 질환자들. 이들에게 주어진 희박한 ‘가능성’과 필수적인 의무인 끈질긴 ‘인내’.

하지만 이들이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난치’는 ‘완치’는 아니지만 결코 ‘불치’는 아니라는 진리다.

수술로도 해결되지 않고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고가의 약을 써도 쉽게 치료되지 않는 지병에 비관하며 ‘불치’의 병이냐고 묻는 희귀성 난치 질환자에게 의사는 불치가 아닌 난치라고 정정해줄 것이며 환자는 그 한마디에 힘을 얻어 힘든 검사를 받고 의사가 지시한 치료법대로 노력하며 꾸준히 치료에 힘쓸 수 있을 것이다.

정신질환이 희귀성 난치질환으로 명칭되었듯 정신질환 역시 결코 불치병이 아닌 난치병이다.

지금도 각 분야의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은 유전자 연구를 통해 태생적으로 조직된 유전자가 뇌의 어떤 영향을 주는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암 치료에서 정상 세포를 공격하고 변이를 일으키는 표적 세포만을 추적해 항암 치료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병명을 가진 양극성 정동장애 환자 중에서도 리튬이 효과적인지 라모트리진이 효과적인지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지닌 유전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확실한지를 연구하는 단계로까지 유전자 연구는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기다림은 확신이 없는 한 막연하다.

여기에서 확신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 내부에서 만들어내고 키워가는 것이다. 확신 속에서 현실을 살고 현재에 충실하며 기다림을 확신과 역동성으로 바꾸어내는 것.

‘희귀성 난치’라는 명칭에서부터 가져다주는 암울한 어둠 대신 희미하지만 스며드는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며 지치지 않고 걸어갈 때, 그리고 병마와 싸우면서 찾아오는 힘듦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될 때 우리는 세상 속의 한 인간으로서 그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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