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만5000여 명 탈원화 계획, 정신병원들 병상수 유지하려 하기에 ‘불가능’할 것”
“정부 1만5000여 명 탈원화 계획, 정신병원들 병상수 유지하려 하기에 ‘불가능’할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2.0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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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권리보장과 복지체계 구축 위한 토론회 개최
당사자 관점에서 주거, 직업, 고용, 소득 지원 필요
당사자의 자기 의사에 따른 주체적 권익 옹호와 권리 보장
의료 모델과 인권 모델이 지역사회 통합 목적을 공유하는 것이 CRPD의 이념
정신병원 대체하는 주거·재활 등 대안적 시설이 필요
탈수용화 과정에서 ‘회전문’ 현상 없애려면 예측하고 준비해야
전국 민간 정신병원들의 공고한 카르텔…국가가 이를 방치했기 때문
정신재활시설 재정을 지자체에 넘기면서 시설 설립 가로막혀

정신장애인의 의료 서비스 전달 과정에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중심의 의료보장 서비스와 사회보장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향후 정신건강 정책은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회복’ 지향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하며 이 가치를 중심으로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의 탈원화 계획도 정신병원들이 병상수를 고수하려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7일 오프라인과 온라인 유튜브로 진행된 ‘정신장애인 권리보장과 복지체계 구축을 위한 현황과 쟁점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강상경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가가 지역사회에서 당사자들이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운송하고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게 환경과 사회보장 제도의 연결망”이라며 “이 패러다임에서 주체는 당사자의 자기 의사에 따른 권익 옹호와 권리 보장”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지역 50%에는 정신재활시설이 없다. 또 정신재활시설 관련한 조례를 갖고 있는 지자체도 전체 225개 기초지자체 중 5곳밖에 없는 실정이다.

강 교수는 “정신재활시설이 없는 지역은 정신장애인들에게 그것이 필요 없기 때문인가”라며 “이는 세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의 관점에서 이용자가 낮은 지역에는 시설이 없어도 된다는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신장애인이 취득할 수 없는 자격증은 30여 개에 이른다. 기초지자체의 조례에는 200곳 이상에서 지자체 서비스를 이용에 차별을 두고 있다. 또 30개 이상의 지자체서 행정규칙 상 정신장애인들을 차별하고 있다.

강 교수는 “정신장애인들의 상황이나 교육 수준에 비해 왜 사회적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라는 의심을 할 수 있다”라며 “국가가 전략적으로 당사자의 관점에서 주거, 직업, 고용, 소득 지원 영역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표가 나온다”로 전했다. 정신보건 패러다임 전환이 요청되는 부분이라는 분석이다.

강 교수는 “유엔 CRPD(장애인권리협약) 관점에서 보면 당사자 입장에서 서비스 제공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서비스 망을 제공해야 하며 그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CRPD를 얘기한다는 건 의료 모델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권 모델 관점에서 지역사회에 통합돼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위해 양 모델이 목적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CRPD의 이념을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2012년 퀄리티 라이츠 툴킷(Quality Rights Tool Kit)을 만들고 2019년 퀄리티 머터리어(Quality Material)가 나온다. 이어 2021년에 지역사회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퀄리티 라이츠 툴킷과 퀄리티 머터리어는 세계보건기구가 세계 정신장애인의 인권 존중과 보건 발전을 위해 개발된 지침들이다. 이는 발전된 형태로 2021년 지역사회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다.

강 교수는 “궁극적 목적은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독립생활을 유지하면서 사회통합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한 원칙들도 당사자들이 통합적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지 공급자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식과 법, 이념과 문화와 가치관에 기반해서 당사자 중심의 접근성이 가능한 의료보장 시스템, 복지서비스 시스템, 사회보장 시스템, 권익 옹호와 권리보장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게 궁극적 목적”이라고 밝혔다.

안병은 행복농장 이사장(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은 “정신과적 증상이 모두 없어져야 퇴원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며 “문제는 퇴원을 해도 살 곳이 없고 돌봄 사람이 없고, 시간을 보낼 활동이나 할 일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를 내보내는 것만으로 수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정신병원을 대체할 수 있는 정신건강센터와 주거·재활을 위한 대안적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이사장은 또 “퇴원한 환자를 가족이 돌볼 수 있는 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가족이 없다면 지역에 거주 시설이 있어야 하고 종국에는 독립된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훈련 과정이 준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퇴원했지만 돌봄을 받지 못해 다시 입원하는 ‘회전문 현상’이 있거나 교도소에 가거나 노숙 생활을 하는 현상을 두고 탈수용화를 비판하는 소재가 된다”며 “우리도 탈수용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예측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이사장은 “병원의 역할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며 “병원이 수용 목적이 아닌 진정한 치료를 제공하고 휴식이 필요할 때 입원할 수 있어야 한다. 병동이 수용과 감금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전준희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현 단계 퇴원한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 돌봄 체계의 부재를 지적했다,

전 센터장은 “지역에 나와도 돌봄 체계도 없고 집 근처에 정신과 외래도 없다”며 “병원도 진료 공간을 줄여서라도 병상 수를 줄이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정신장애인 탈원화 계획에 따르면 2023년까지 정신병동 병실을 현재의 10인실에서 6인실로 줄이면 1만5000여 명이 탈원화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센터장은 “이탈리아 모형에서 정신병원이 없어지면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약물 공급 등 의료 체계가 있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며 “우리나라는 개업의들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약을 주는 걸 반대하기 때문에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신건강 공급자들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들의 자율성을 반대하고 있고 진료 공간을 줄여서라도 병상수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예상한 1만5000여 명의 탈원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다.

민간 정신병원들 간의 전국적인 협력 체계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전 센터장은 전했다.

그는 “어떤 민간병원이 처벌을 받아서 병원 문을 잠시 닫아도 다른 병원으로 순식간에 흡수된다”며 “이걸 탓할 수 없는 것도 그동안 그런 체계로 운영돼 왔고 국가가 이를 놔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장기입원의 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신장애인이 퇴원한 후 30일 이내에 외래를 방문하는 비율은 65%다. 이는 35%가 치료를 중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환자들이 의뢰가 되지만 등록률은 5%에 불과하다. 등록률이 저조한 만큼 치료 중단의 위험성도 크다는 분석이다.

병원 역시 퇴원 계획에 무심해서 퇴원하는 당사자에게 지역사회 정신재활시설과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퇴원한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다시 입원하게 되는 ‘횡수용화’로 연결되는 고리라는 지적이다.

전 센터장은 “조현병 당사자가 전체 국민의 1%인 50만 명이라면 현재 9만여 명이 지역사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 18%에 불과하다”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록자 7만5천여 명, 정신재활시설 7천여 명, 낮병원 2천여 명이다. 적어도 전체 당사자의 30%는 이용할 수 있는 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하는데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2015년부터 정신재활시설 설립과 운영을 위한 재정 부담을 지자체에 떠넘기면서 가난한 지자체는 정신재활시설의 설립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서울에서 생각하는 정신재활 전달체계와 수도권 이외의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생각하는 전달체계는 정말 다를 것”이라며 “이게 소통도 안 되고 지자체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정신재활시설이 그 예”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정신건강 수요는 높아지지만 정책에 반영하지 않으려는 지자체들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며 “정치인은 정신장애인이 투표도 하지 않고 민원만 일으키는 존재라고 인식해 소외된 이들을 도와야 하는 정치 철학은 부재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대안으로 그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허브 기능을 수행하고 정신재활시설은 인구 10만 명당 1곳 이상 설치될 수 있게 기초지자체가 강제해야 한다”며 “건강보험이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치료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정치인과 공무원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필요한 논의는 정신건강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의 희생자이고 피해자라는 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정신건강 문제의 왜곡된 인식을 재생산해 정신장애인을 끊임없이 3등 시민의 지위에 묶어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신건강 소비자의 침해된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한데 여기에 인권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인권 모델은 “정신장애인이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에 사회정책의 목표를 두는 함의를 가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제 교수는 “앞으로 정신건강 정책은 회복 지향의 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이 정책은 당사자가 회복의 여정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원하는 정책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초 작업으로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개정 철학에는 지역사회 기반 정신건강 치료, 재활, 회복을 위한 기반 마련이 핵심적 의미를 가진다.

제 교수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의 핵심 내용은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이 결정권의 행사와 치료 정책이 양립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위기 쉼터 등 응급 상황에서도 대안적인 치료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비자의입원한 모든 질환자에게 즉시 퇴원 계획을 수립해 지역사회 기반 치료와 돌봄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단기간 병원 입원 후 곧바로 가정으로 복귀하거나 다른 장애인시설 이용으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한 제도 개혁의 어려움도 문제로 제기됐다. 그는 “국민과 전문가 집단의 인식 변화 없이 제도 개혁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현재 당사자들의 활동 역시 거쳐 가야 할 역사적 과정 중의 한 국면임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정신질환’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는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비로소 사람이 보이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신장애인 복지정책으로 ▲회복에 초점을 맞출 것 ▲중증 정신장애 상태의 완화를 주요 정책 목표로 설정 ▲자립과 탈수급을 위한 지원에 초점 맞추기 ▲장기적으로 정신장애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 지원 ▲회복 과정의 선(先) 경험자가 주도하는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주도하기 ▲전문가 역할은 정신장애인 회복 지원의 전문 지원에 국한 등을 제시했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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