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득 “요양보호사는 국가자격증이잖아요. 그런데 정신병원 보호사들만 유일하게 자격시험이 없어요”
김순득 “요양보호사는 국가자격증이잖아요. 그런데 정신병원 보호사들만 유일하게 자격시험이 없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3.22 19: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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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인터뷰
방통대 공부 끝난 이후 인권강사로 활동 시작해
정신건강복지센터 등록회원 대부분이 취약계층…근로능력 없이 빈곤층 전락
정신장애 등록 때 하늘 무너지는 줄 알아…스스로도 질환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코로나로 센터 폐쇄되고 당사자들은 거리 배회…재사회화 교육 부족 문제
불법적 격리강박 반드시 손봐야…정신병원 보호사들만 자격시험 없어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됐지만 정신장애기본법 없으면 예산 편성 안 돼
장애등록도 어려울뿐더러 노동시장 진입 불리할까봐 신청도 안 해
정신질환은 누구다 겪을 수 있는 질환...언제 정신장애인 될지 아무도 몰라
사회가 불이익을 주는 원인에 눈길 돌려야…초등 교육에 정신질환 과목 넣어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그를 알게 된 지는 15년이 훨씬 넘은 것 같다. 정신장애 관련 잡지를 만들 때 그는 나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방송통신대학 준비를 하고 있었고 기자는 틈틈이 찾아오는 망상에 몸을 떨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그를 알게 됐고 인터뷰를 요청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때 그 인터뷰에서 그의 언어는 우아했고 사유는 폭넓게 아우러져 있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기자는 그에게 “언어 구사 실력이 정말 뛰어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인터뷰 후 그와 나는 만나지 않았다. 만날 수 있는 루트도 없었고 그도 나도 삶을 만들어가는 데 눈길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타자의 일상을 확인하는 일은 그때는 ‘사치’였다.

이후 기자는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 공동생활가정, 지역사회 독립생활 등을 거치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녀 역시 방통대를 졸업하고 수원에서 정신장애인과 가족 모임인 수원마음사랑 대표직을 갖고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2~3년 전이었다. 어떤 발표회에 참가했다가 그가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아, 잊고 있는다는 건 이렇게 뜨겁게 만나기 위한 것일까. 기자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스했다.

김순득(56) 수원마음사랑 대표에 인터뷰를 요청한 건, 그저 “아, 당신 살아 있었구나”라는 의미였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세파를 이기며 여기까지 왔는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살아가라고 한다면 기자는 두 손을 내저으며 물러설 것이다. 다시, 걸어온, 그 삶의 자리로 되돌아가서 다시 이기고 오라는 건 삶에 대한 모욕적 명령일 수 있다. 사실, 기자는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누군가 기자에게 말했다. 자신은 “다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맞는 말이다. 그때 기자는 생의 화인(火印)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저렇게 목 안에 넣어두고 오래 단련된 언어를 내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것, 그건 삶에 대한 긍정이자 확인, 삶에의 의미 있는 승리의 언어라고 기자는 생각했다. 패배했지만 성숙하게 이겼다는 것. 그 교차적 언어가 날것으로 흩날리는 공간에 저 언어의 의미가 담겨져 있으리라.

김 대표를 만난 건 지난 18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c)마인드포스트.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c)마인드포스트.

-2006년 조현병으로 정신장애 등록을 했습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그때가 마흔 살이었어요. 고시원 생활을 했는데 낮과 밤이 바뀌었죠. 주거가 불안정하니까 환청·망상이 왔고 고시원 총무랑 많이 다퉜어요. 남의 방에 왜 들어오냐, 왜 내 방문을 열려고 하느냐 하면서요. 고시원에 들어와 있는 인간군상이 대부분 열악하고 취약한 사람들이니까 관계 맺기가 어려웠어요. 그 당시 장애등록하고 2급 판정받았는데 2년 뒤에 3급이 됐어요.”

-계기가 뭐였습니까.

“그때 정신건강센터 등록하고 거기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교육을 받으니까 정보들이 나오잖아요. 제 망상이 잘못된 신념이란 걸 알게 된 거죠.”

-등록 이전에는 정신장애 등록을 망설였을 거 같습니다.

“병 자체가 있는 줄 몰랐죠. 등록 자체를 몰랐어요.”

-수원마음사랑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습니까.

“2009년 무렵에 (다니던) 정신건강센터 인근에 공동생활가정 빌라가 한 동이 있었어요. 거기 있는 정신장애인 두세 명과 주말마다 모여서 닭백숙을 해 먹었어요. 고기 중에서 단백질 섭취를 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게 닭고기였거든요.

닭백숙을 먹으면서 주말 모임이 시작됐죠. 그때 주제가 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히는가였어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도 정식 모임을 꾸려보자 해서 차 모임을 매주 수요일에 했어요.

친목 모임으로 가다가 인식 개선 모임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활동을 시작했죠. 2015년에 당사자 가족들이 들어오면서 정착이 됐어요. 지금 단톡방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20명 정도? 그렇게 운영하고 있어요.”

-방통대에서 공부를 했죠.

“그때가 42살이었어요. 인문과학, 교육학 쪽에 문화교양학과가 하나 생겼더라고요. 졸업한 지 꽤 됐어요.”

-방통대 공부가 끝나니까 길이 좀 열리던가요.

“2007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고 시설 당사자들과 실무자들이 일 년에 네 시간 인권교육을 의무적으로 듣도록 됐어요. 당사자가 직접 인권교육을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나와서 실무자들과 공부를 하고 그 과정이 끝나면서 강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4년제 대학을 나오니까 강사 비용이 10만 원 정도 나왔죠.”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c)마인드포스트.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은 기초생활수급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습니다.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 등록회원 대부분이 취약계층이에요.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이고 만성질환자들이니까 근로 능력이 없어요. 정신장애 3급 진단은 중증으로 분류되니 취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죠.

취업을 한다면 지지취업으로 가야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통해서 지지취업을 하는데 센터 실무자들이 케어해 주고 관리를 받는 상태로 하는 취업 형태로 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아니면 짧은 근로를 하거나. 그 외 근로를 꾸준히 하는 분들은 못 봤습니다.”

-정신질환에 걸린 게 스스로의 잘못이 아니지만 우리는 죄의식과 수치심을 갖게 됩니다. 선생님은 그 질환이 수치스러웠습니까.

“그때 낙인만 강조됐으니까 내가 정신질환 2급 판정을 받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졌죠. 저 자신부터 정신질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됐죠. 부정적으로 생각하니 정신적 질환을 드러내놓기가 어렵죠. 장애등록을 하면 더 그렇고요.”

-지역사회 인프라도 부족한데 집에 있는 정신장애인들을 나오라고만 하는 건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도농(都農) 간의 격차도 심하지 않습니까. 도시 지역에서는 공동생활가정이나 그룹홈, 정신재활시설이 있는데 거기 대기 상태에 있는 분들도 많아요. 인구의 1%가 조현병을 가지는데 해마다 이 퍼센티지로 발생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설·기관 수는 정해져 있고 인력도 부족하죠.

그런데 농촌 지역으로 가면 아예 커밍아웃을 못 할 정도예요. 거기 센터에 일주일에 두세 번도 나와도 좋을 건데 그렇지를 못해요. 센터를 안 가니 오지의 병원으로 가는 거죠.”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활동을 하다보니까요. 이 병이 숨겨서 될 일은 아니잖아요. 커밍아웃은 안 했지만 조현병 앓는 이들이 너무 착한 분들이 많아요. 범죄 피해를 입고 이용당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코로나19 시국에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폐쇄되니 사회적 관계나 지지 기반이 없는 이들이 오갈 곳이 없으니까 수원 지역을 헤매고 다녀요. 시설이나 기관이 부족하고 갈 곳이 없다는 게 안타깝죠. 센터나 기관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나면 나중에는 그 프로그램이 그 프로그램이거든요.

재사회화해서 지역사회로 보내야 하는데 복귀를 돕는 훈련기관이 드물어요. 재사회화 교육이 정신장애인에 맞게끔 설계될 만한 교육 프로그램이 없어요.”

-동료 정신장애인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까.

“만나면 ‘정말 이럴수록 더욱더 모여서 공부를 해야 된다’라고 말해요. 가족들처럼 당사자도 연구를 해야 하는데 인력이 너무 부족해요. 비장애인을 직원으로 두고 당사자는 정책연구를 하려 해도 간단한 사무업무도 잘 안 돼요. 왜냐하면 입·퇴원을 반복하니까. 급성기에 들었다가 다시 냉각기로 들어서고 굴곡이 많으니 꾸준히 해낼 분들이 없어요.”

-응급입원 외의 모든 유형의 입원은 폐지돼야 할까요.

“자의입원은 살아야 하고요. 법으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병상만 유지하고 그 외의 입원 유형은 없어져야 하는 게 맞습니다. 중증질환자들이 급성기 때 입원해서 이용하고 바로 사회복귀를 할 수 있도록 초기에 치료가 집중이 돼야 하는 건 맞아요.

중요한 건 만성화된 분들이 재사회화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하고 당사자에게 특성화된 교육기관이 필요해요. 특히 강제 격리와 강박은 손댈 부분이죠. 유엔 퀄리티 라이츠(Quality Rights)도 최소한의 격리강박 시행을 요구하지 않습니까. 강박 이전에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gue·열린 대화) 형식이 작동하고요.

격리강박에 대한 손질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요. 불법적 격리강박 실태에 대한 연구가 명확히 있고 법적 구속력을 갖춰야 안전장치가 되겠죠. 보호사들 교육도 필요해요. 요양보호사는 국가자격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신병원 보호사들만 유일하게 자격시험이 없어요. 그러니 공공연하게 폭력 사건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c)마인드포스트.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c)마인드포스트.

-지금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입적심)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입적심에 의한 퇴원율이 1%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던가요. (입원적합성심사는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당한 이가 입원의 적합성을 외부기관에 묻는 절차다. 입원 후 3일 안으로 입원 당사자 자료를 입적심 위원회로 보내고 위원회는 한 달 이내에 입원 적정성 여부를 정신의료기관 장에게 통보해야 한다-편집주)

“보호의무자 입원으로 들어온 사람과 응급입원으로 들어온 사람의 형태를 보면 상황이 다르더라고요. 자·타해 위험성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텍스트상으로 보여지는 정보의 내용이 빈약할 때 입적심에서 제외되고 걸러져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걸 바라보는 (입적심) 위원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요. 보고서에 보면 자해의 위험 내용이 식사를 거른다든가, 영양 상태가 일정하지 못해 자기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면 이건 치료적 관점에서 전문가가 봤을 때는 입원시켜야죠. 그런데 저희들이 봤을 때는 이게 긴급한 위험 상황에 들어가겠는가라는 의문이 있죠.”

-장애인복지법 15조가 폐지됐습니다. 향후 어떤 의제를 정신장애계는 가져야 할까요.

“명목상으로는 폐지됐다고 하더라도 예산이 증액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지역사회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정신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법이 없다면 거기 구체적 예산이 안 들어가요. 예산 편성 자체가 안 돼요.

또 향후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정책을 연구한다거나 지역기관과 서비스 센터를 연결해주는 역할로 그칠 수 있겠죠. 또 동료지원활동가들이 사례관리 담당을 중점적으로 할 수 있는 센터가 된다든가 할 수밖에 없겠죠.”

-정신장애인의 기대수명은 짧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슬프게 느껴집니다.

“(웃음) 처음에 데이터를 접했을 때 많이 슬펐어요. 우리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게 사고든, 자살이든 황폐화되지 않습니까. 자료에 보니까 10% 정도는 자살이나 사고로 사망하더라고요. 이런 지표가 수명이 더 짧게 나오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해요. 많이 서글퍼요.”

-삶에 응당 주어진 고생도 하지 못하고 타자(他者)에 의해 이끌려 살다가 사라진다는 건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옛날에 A 정신병원 사태를 보면 사나흘 지난 찐밥이 나오고 환자복도 교체가 어렵고, 기워서 입어야 하고 세탁도 제대로 못 하고 겨울에는 더운물 샤워도 못 했잖아요. 이건 엄연한 차별이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지방 병원에서는 아직도 이뤄지고 있을 거 아닙니까. 이것이 배제받는 자들의 슬픔이 아니겠는가. 정신질환은 사회구성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환이에요. 언제 정신장애인이 될지 몰라요. 저는 비장애인이었을 때 정신과 질환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게 서글퍼요.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노동에 치이고 삶에 바빴으니까요.

그런데 장애등록을 하고 나서야,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고 나서야, 노동에서 해방되고 나서야, 시설에 있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한 분야의 활동을 하는 사람이 되고 나서야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됐어요. 누구든 정신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범 시민적 대오각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젊은 정신장애인들은 독립 취업을 통해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젊은 사람들의 가치관에는노동을 통해 단기간에 많은 목돈을 내가 쥐어야만 주거 문제가 해결되고 의료 문제가 해결되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젊은 정신장애인들은 노동하고 싶어도 못해요. 해도 적응을 못 하고 나온다든가 취업도 (정신질환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배제된다거나. 이미 취업해 있다가도 짤리잖아요. 안타까운 거죠.”

-장애를 수용하지 않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 때가 있습니다. 결국 실패하고 마는데 말이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3급 정신장애인들에게 기회일 수가 있어요. 노동시장에서 문턱이 낮은 일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요. 쉽게 고용당하고 쉽게 해고당하는 시스템인데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큰돈을 벌지는 못해요.

2014년도 기준으로 봤을 때 정신장애인 월평균 소득이 56만 원, 발달장애인이 54만 원이었어요. 지금은 발달장애인법이 통과돼서 입장이 역전이 됐을 거에요. 거의 꼴찌일 걸요. 월 평균 소득 56만 원이 뭐냐면 아무리 노력해도 기초생활수급권의 최저생계비 이상을 넘지 못한다는 거예요.”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c)마인드포스트.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의 작업 능률이 비장애인의 65%에 불과합니다. 최저임금법도 정신장애인은 제외되죠. 최저임금법은 개정돼야 할까요.

“장애인은 근로 능력이 없다고 보니까 장애연금이나 장애수당이 나오죠. 통상 1~2급장애, 3급 중복장애는 장애연금을 주는데 이 혜택을 받으면 좋겠지만 장애등록 받기가 쉽지가 않아요.

또 장애등록을 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장애등록을 하면 노동시장에서 경쟁 취업을 하는데 제한되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그래서 젊은 정신장애인들의 노동시장 진입에 있어 큰 문턱이죠.”

-정신재활시설에서 취업프로그램을 받으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30이라면 실제 직장에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90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경우 누가 버틸 수 있을까요.

“맞아요. 주어진 조건에서 하려면 기계적으로 될 수밖에 없어요. 루틴이 있잖아요. 비장애인들은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세팅이 돼서 하루 일과를 출발할 수 있지만 정신과 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은 지난 기억들을 그대로 가지고 생활하게 돼요. 왜냐하면 거기에 고착돼 있거든요. 새로운 학습이 불가능해요.

단순 근로 능력은 몰라도 미세하게 새로운 것들을 학습해서 활용하는 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작업 효율성이 비장애인의 63% 정도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정도로 가는 게 아니겠는가 싶어요.

스트레스 압박으로 새로운 것이 학습되지 않기도 하고 기존 매뉴얼대로만 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찾아서 일을 하는 형태가 아니거든요. 정해진 일만, 주어진 일만, 정신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우리 정신과 질환자들의 슬픔이 아니겠는가 싶죠.”

-인간은 선(善)한 존재이던가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선한다, 악하다는 사회가 생겼기 때문이죠. 개개인들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과 부단히 투쟁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체제 안에서는 악(惡)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경쟁을 하면서 내 것을 찾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서 내 것을 찾아야 하니까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타자의 고통을 즐기는 인간들이 있더군요.

“그건 안타깝죠. 그건 사이코패스겠죠. 정신질환이긴 해도 조현병은 아닐 거예요.”

-독일 나치는 노동하지 못하는 정신장애인들을 ‘밥버러지’로 불렀습니다. 살 가치가 없는 존재자들이라는 의미죠. 우리는 사회의 잉여인간들일까요.

“나치 사회도 효율성을 따졌죠.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률과 효율성을 따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능률과 효율성을 보게 되면 최고를 보게 되고 일등만 보게 되죠. 그런 사회에서 잉여에 대한 배려는 없습니다.

정신장애인들은 잉여죠. 그렇지만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배제하지 않고 존중하느냐에 따라 그 잉여가 풍요로움으로 바뀔 수 있어요. 국가나 지역사회 안에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고 정신장애인이 배려받을 수 있다면 그건 비교적 건강한 사회죠.”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아도 우리는 커밍아웃을 계속해야 할까요.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면 그 불이익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왜 사회가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는지에 대한 것으로 눈길을 돌려야죠. 사회구성원 모두가 왜 특정 집단에게 불이익을 주는 구조로 가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돼요.

이 문제 제기를 끊임없이 해줄 수 있는 매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기초교육 과정 안에서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해야 됩니다. 정신과 질환이나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담들을 사회 안에서 담론화돼야 하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정신질환 과목을 만들어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질병을 통해 깨달은 삶의 의미가 있을까요.

“기회의 균등이에요. 정신질환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해요. 자신을 커밍아웃 하지 않은 분들은 기회가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의 기회 균등은 비장애인과 같은 동등한 입장이 됐을 때 이뤄지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끊임없는 불이익이 되돌아올 겁니다. 정신질환을 갖고 낙인이 찍히게 되면요.”

마지막으로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건 무엇인가’라고 묻자 결이 다른 답을 했다. 그는 “저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희망이라. 정신의 연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가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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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합니다 2022-03-22 20:20:55
순득님 항상 응원하고 우리를 대변해주셔서 진심으로 힘이납니다 순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