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순 “제일 겁나는 게 부모 떠나면 자식이 얼마나 괄시받을까예요...국가가 나서주세요”
이정순 “제일 겁나는 게 부모 떠나면 자식이 얼마나 괄시받을까예요...국가가 나서주세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6.2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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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쿰 정신질환자 신앙 공동체 참여하는 이정순 선생 인터뷰
가족의 고통은 세상의 편견, 없는 일자리, 사람대접 안 해주는 거
나는 온순하고 부끄러움 많았던 사람...딸 아픈 후 저돌적으로 돌아다녀
쥐꼬리만한 재산 있다고 기초수급권자도,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해
정신질환은 누구나 걸리는 질병일 뿐...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동의 못해
자기결정권을 지키면서 입원시키는 방법 없을까...뭔가 방법을 찾아야
부모가 자식 원망 무서워 입원 못 시키고 치료 시기 놓치면 안 돼
부모가 자식 아프다고 결혼하지 말라니...무슨 권리로 그런 말 할 수 있나
대학로 ‘달리다쿰’ 와서 당사자들과 대화하고 지내는 게 작은 위로
초등학교 때부터 정신질환 교육을 교과목에 넣고 가르쳐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그는 인터뷰 도중 자신의 실명과 사진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사진을 찍을 걸로 예상하고 온 기자는 좀 난처해졌다. 대신 그는 마스크를 쓴 채 사진을 찍자고 했다. 결국,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강원도에서 직장 생활을 했고 결혼까지 했다. 무남독녀 딸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 정신과적 증상을 보였다. 집안에 소리나는 건 무작정 잡아뜯었다. 똑딱거리는 시계를 뜯고, 환풍기를 뜯었다. 냉장고와 침대를 버리고 소파, 옷장까지 버리라고 했다.

막막했다. 입원한 의사에게서 ‘정신분열’(조현병) 진단명을 들었을 때 그는 하늘이 노랗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론을 낸다. “울어서 될 일이 아니니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를 생각하자”고.

딸은 약을 먹고 안 먹기를 반복했다. 퇴원 초반에는 약을 꾸준히 복용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다시 약 복용을 거부했다. 알약은 하나씩 버려졌다. 결론은 재입원이었다. 그는 딸이 낙인찍히지 않고 자립을 할 수 있게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충청도의 한 도시로 내려가 슈퍼를 열었다. 나중에 편의점으로 만들어서 딸에게 물려줄 심산이었다. 오류였다. 딸은 다시 재발했고 그는 서울로 딸을 데리고 와 입원시켰다.

지방에서의 자립과 성공의 한계를 느낀 후 그는 서울로 모든 짐을 싣고 돌아왔다. 10대 후반에 발병한 딸은 이제 41살의 중년 여성이 됐다. 그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기자는 컨퍼런스나 세미나, 토론회 등에 참여해 토론자들에게 질문하는 그를 자주 보았다. 어쩌면 그는 논리적이고 이성적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국가가 알아달라는, 피를 토하는 듯한 응어리가 맺힌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거라고 기자는 자주 생각했다.

자식이 정신질환에 걸리면 부모는 죄인이 돼 버린다. 아이의 질환에 나는 관여한 적이 없으며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많이 주고 싶었다. 아이가 울면 위로했고 아이가 아프면 함께 아파 드러누웠다. 그 애정의 행위 후에 아이가 병이 들었다면, 부모는 자신을 책망한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부모는 죄의식을 느낀다. 그것은 형이상학적 죄의식이면서 아이 대신 앓아눕더라도 내 아이는 훨훨 세상을 누비며 살아가길 바라는 깊은 소망이다. 때로는 그 소망이 무거워서 엎드려 울 때도 있겠지만 말이다.

지난해 12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서비스 이용을 막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일 년의 유예 기간을 전제로 폐지됐다. 정신장애 운동 진영은 새로운 법안 개정 초안을 만들고 토론회를 가졌다. 여기에 부모와 가족의 삶과 권리는 어떻게 접속되는가. 그는 그 토론회에 참석해 청중의 한 사람으로 질문을 했다. 아니, 응어리를 이야기했다. “선생님, 우리는요. 아파서 죽겠습니다.”

이정순(가명·78) 선생을 만난 건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정신장애인 신앙공동체 달리다쿰에서다. 달리다쿰은 1998년 노명근 목사가 첫 모임을 만들었다. 달리다쿰은 신약 성서 마가복음에 나오는 예수가 죽을 딸을 살리며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할 때 그 의미의 언어다. 정신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았다.

지금까지 2000여 명의 당사자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최근 달리다쿰은 ‘티쿰’(Tkoum)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는 이곳에 자주 나온다. 그저, 나와서, 자신과 타자를 위로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정순 선생. (c)마인드포스트.
이정순 선생. (c)마인드포스트.

-첫 질환 발병 후에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디에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 몰라 막막했겠습니다.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학교 양호 선생이 애 데리고 병원에 가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더라고요. 그때는 몰랐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있다가 입원했어요. 처음에는 강박우울이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뒤늦게 정신분열이라고 하는데 진짜 하늘이 노랗고 가슴이 철렁 무너져요. 정신없이 밖으로 나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나중에는 어차피 나에게 온 일이라면 내가 안 받아들이고 발광할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갈까를 생각하자고 다짐했죠.”

-그간 병원비로 들어간 돈만 해도 상당하지 않을까요.

“(한 번에) 500~600만 원은 뭐. 애가 병원비를 보더니 놀라서 짠순이가 됐어요. 돈 쓰기를 두려워해요.”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일은 안 하고 봉사활동 다녀요. 가는 데가 많아요. 심지회 가죠, 가족협회도 볼일 있으면 가죠. 패밀리 링크하죠. 성수동에 베어스라는 정신장애인 애들 일자리 대표이사하죠. 심지회에서 오뚜기 일터를 만들었는데 거기 우리 애가 다녀요. 일터를 만드는데 기를 썼어요.”

-아픈 자식을 돌보다 보면 경제적 활동을 못 해 가난해져 버립니다.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저는 짠순이처럼 알뜰하게 살았어요. 그래서 밥은 먹어요. 이제 나는 돈 벌러갈 힘도 없고 봉사활동 다니기도 벅차요. 우리 세 식구가 씀씀이가 크지 않고요.”

-가족 중에 정신장애인이 있으면 심할 경우 가족이 해체돼 버리기도 합니다.

“그렇죠. 우리 아저씨는 총으로 쏴죽인다면서 화내고 욕하고 막 이래요.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죠.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대외적으로 알던 사람만 모르면 돼요. 서울 올라와서 이런 단체를 못 찾으면 보건복지부에다가 아침저녁으로 물귀신처럼 전화 걸려고 했어요.”

-아시는 분 중에 가족이 해체된 경우가 있습니까.

“더러 있어요. 그래도 유지하고 사는 집이 많죠. 우리 아저씨하고 애 중간에 끼여서 말도 못 하고 참는 게 내 일이에요. 안 참으면 살 수가 없어. 참다 참다 이십 년이 지나갔어요. 화병(火病)도 생기고.”

-다시 돌아간다면 따님의 회복을 위해 이렇게 할 걸 하는 후회는 없습니까.

“왜 후회가 없어요. 병원도 그렇고 서울에 빨리 올 걸. 내가 뭣 때문에 장사 가르친다고 지방에 갔을까 말이야. 서울에서 입원을 할 걸 공기가 나쁘고 교통도 복잡하다고 해서 안 왔어요. 병났을 때 바로 왔어야 해. 지나간 건 돌릴 수가 없죠. 서울 와서 다행히 단체들을 만나서 같이 일을 하는 거죠.”

-따님은 등록장애인인가요.

“등록장애인. 10년이 조금 안 돼.”

-등록을 한 이유가?

“왜 등록을 했겠어요. 일을 하려고요. 그게 있어야 일하는데 범위가 넓으니까.”

-등록을 하면서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부분이 많습니까.

“지하철. 전기, 가스, 수도(요금 할인)도 되더라고요. 나는 남편이 아무리 차(車)를 할인받고 살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건 못하게 해요. 왜? 우리 올케가 보험 계통에 있어요. 올케가 (딸 병에 대해) 짐작은 하고 있다 하더라도 장애인 카드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차를 좀 비싸게 사는 게 낫지.”

-토론회에서 가족이 겪는 고통을 호소하던 기억이 납니다. 가족이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뭘까요.

“편견. 일자리가 시원찮다는 거. 또 사람 대접을 안 해 주는 거. (정신장애인 인권이) 세계적으로 하위권이잖아요. 너무 대접을 못 받고 있어요.”

이정순 선생의 손. (c)마인드포스트.
이정순 선생의 손. (c)마인드포스트.

-토론회와 기자회견, 집회 등에 부지런히 참여하는 이유는 뭘까요.

“보세요. 내가 애 대신 앓을 수도 없고 약을 먹어줄 수도 없잖아요. 애는 어차피 병이 났어요. 그러니 내가 너는 내 옆에서 숨만 쉬어라(라고 해요). 거기까지 내려갔어요. 나는 애 잘 키워놓고 여행 다니고 싶었는데 애가 병이 나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살아있을 때 애를 조금이라도 세워놓고 죽어야지. 나, 옛날에 무지하게 온순하고 부끄러워하고 그랬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날뛰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남이 욕하든 말든 신경 안 써요.”

-국가는 가족에게 어떤 지원을 해야 할까요.

“애초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뭘 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죽기살기로 살았는데 한 푼도 안 주잖아요.”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하나도 안 줘요. 그러니까 머리만 복잡하고 속도 상하고. 내가 그 지원을 받아서 사는 것보다 그냥 사는 게 좋긴 좋지만 그래도 혜택을 좀 받고 사는 게 좋잖아요.”

-예를 들면 어떤 혜택을?

“수당 같은 것도 주고요, 남들은 이만큼 주면 우리는 요만큼이라도 받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걸 하나도 못 받아요. 난 알뜰히 산 죄밖에 없는데.”

-수급비가 나오지 않습니까.

“안 나온다니까요.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안 줘요.”

-자식의 정신질환은 형제자매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조언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해봤자 소용이 없어요. 알면 아는 거지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어요. 아는 순간 눈빛부터 달라질 것 같아요. 무시하고 들어가는 게 아니냐 지레 겁먹는 거지. 내 형제자매에게도 말하지 말아야죠.

형제들이 포용력이 있어서 인간적으로 대해준다면 말을 해서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형제도 싫어해요. (자식) 결혼에 지장도 있고 이러저러해서 싫어한다는 말이 있어요. 다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데 친척은 특히나 말 안 하고 싶어요. 말을 미리 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알면 아는 거고.”

-따님의 고통을 보면서 종교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종교요?(웃음) 친정은 전부 불교였는데 지금은 기독교로 거의 옮겼어요. 그런데 시댁은 절대로 아니야. 시어머니가 106세에 작년에 돌아갔어요. 불교였거든. 절에 다니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면을 내가 겪었기 때문에 싫은 거야. 남편이 (내 종교를) 이해 못 해서 가만히 (달리다쿰에) 옵니다.”

-심지회 어머니 모임 대표입니다. 가족 모임에서 강조하는 점이 뭘까요.

“편견과 일자리. 국가가 부모한테만 맡기지 말고 좀 나서라. 죽겠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잘하든 못하든 빤히 보면서 애를 도울 수가 있죠. 제일 겁나는 게 우리가 떠났을 때 얼마나 괄시받을까예요. 불쌍하죠. 누가 아프고 싶어요? 국가가 나서주세요. 나는 그것만 말해요.”

-가족지원활동가를 양성하면 이들은 어디에서 일해야 합니까.

“일할 곳이 하나도 없지는 않아요. 교육을 받고 아픈 사람을 돕는 게 지원가잖아요.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일자리를 한데 몰리지 말고 다양하게 해서 가고 싶은 데로 가게 해 주라는 거야.”

-가고 싶은 데가 있습니까.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서 자기가 해보고 싶은 데를 찾아가서 일하게 해야 된다는 거지. 지금 지원가 쪽으로 몰렸는데 그걸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뭘 해야 돼요? 일자리가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안 맞고 버티기가 어렵잖아요.”

-정신병원에 절차보조인과 동료지원가가 들어가서 당사자를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도움은 됩니다. 자기 겪은 걸 얘기하니까 귀에 들어가겠죠. 그런데 그걸 안 하고 싶은 사람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거죠. 하는 사람만 하지 그걸 다 하지는 않잖아요.”

-절차보조인, 동료지원가가 병원에 들어가서 당사자 환자를 만나잖아요. 이 일 외에 다른 일을 해야 된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해 손으로 뭘 하는 거. 예를 들면 비누 만든다거나 만들어진 물건을 갖고 어떻게 한다든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어려우면 복잡해서 안 해요.”

-그걸 환자들에게 가르쳐줘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일자리를 만들어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지.”

이정순 선생. (c)마인드포스트.
이정순 선생. (c)마인드포스트.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이 정신병원에서 나오지 못하게 감금해야 한다는 광기의 목소리가 여전히 나옵니다.

“안 돼요. 그건 일반 사람들이 자기네가 피해볼까 봐 하는 얘기죠. 일반 사람은 재수가 좋아서 일반 사람이 된 거고, (정신장애인은) 나쁘게 말하면 재수가 없고 운이 나빠서 병에 걸린 거니까 똑같은 사람이에요. 호르몬의 고장으로 고통을 받는 건데 보통사람들이 교육을 안 받으니 그걸 알게 뭡니까. 국가가 가르쳐줘야죠.

내가 건강한 건 행운이잖아요. 나는 절대로 안 그럴 거고 저 질병은 이상한 거라고 하죠. 아주 비신사적으로 바라봐요.

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내가 옆자리에 여자 둘이 앉아요. 좀 가다 보니까 여자 하나가 안인득 얘기를 해요. ‘그런 걸 애라고 낳아서 미역국을 먹어, 그런 인간은 총으로 쏴 죽여버려야 돼’ 이러더라고. 옆에서 들으니 비참하기 짝이 없어.

부모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돼요. (이런 질병이) 언제 어떻게 올지, 자기 자손에게 올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부모가 돼서 내 자식이 그런 게 없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을 해 주려고 태세를 취하는데 여자들이 내리는 거예요. 안 그랬으면 시끄러워졌겠죠. (안인득 사건-2019년 4월 경남 진주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한 사건. 안인득은 당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고 지역사회 돌봄 시스템에서도 철저히 소외돼 있었다-편집자 주)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어요. 스무 살 안팎인 애가 지하철 안으로 뛰어들어오더니 경로석에 딱 앉는 거야. 그러니 웬 할아버지가 애를 보고 야단을 쳐. ‘이 조그만 놈이 어른 자리에 앉아서 어쩌고저쩌고’.

내가 ‘할아버지, 연세가 그만한 분이 쟤가 아프니까 거기 앉지 멀쩡한 애가 거기 앉아요? 그 나이에 그것도 모릅니까?라고 쏘아붙였어. 그 할아버지가 다행히 대들지 않더라고요. 아이도 자기 때문에 싸우니까 내려버리더라고. 걔도 이 병인 거 같아. 속이 상하지. 하도 야단을 치니까.”

-정신질환 딸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웃으로부터 배제되고 편견어린 시선을 받았을 거 같습니다.

“편견·차별을 눈에 보이게는 안 당하죠. 가만있을 나도 아니고. 그래, 우리 애 좀 아프다. 그게 뭐 어때서? 우리 애가 어디 가서 나쁜 짓 했어. 자기 혼자 힘들고 불편할 뿐이야. 너희들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렇게 생각해요.”

-다행인가요.

“다행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은 애 아버지가 울었어요. 코로나 예방주사를 맞으러 딸하고 같이 가는데 딸이 아버지보고 마스크 벗어라, 아버지인지 확인하겠다, 이래. 사람들이 많이 있는 데서. 아버지가 속이 상해서 울었답니다.”

-당사자가 입원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철학에는 동의하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 그래요. 얘들이 아프잖아. 아픈데 본인이 아무렇지 않다 그러고 제 발로 병원 가는 걸 싫어하는데 그거 안 간다고 가만히 보고 세월 가야 돼요? 억지로라도 응급입원이든 강제입원이든 해야지. 그게 무슨 인권입니까. 난 혈압 올라요. 어떻게 해서든지 치료를 빨리 받을수록 더 나은데 왜 그걸 시간을 끌게 해 주냐 이거에요.”

-강제입원을 당하면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내면의 상처가 되지 않을까요.

“나는 트라우마에 지금도 시달려요. 딸이 부모님 때문에 입원하고 약을 먹게 돼서 신세가 요꼴이 됐다고 하면서 힘들게 합니다.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자기 발로 안 간다면 상처 주지 말고 뭔가 방법을 찾아야 되잖아요.”

-강제입원을 대체할 수 있는 입원 형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강제입원은 어쩔 수 없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예. 나는 트라우마가 있더라도 강제입원을 시켜서 치료를 받게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좋아지면 부모가 억지로라도 해서 나를 이만큼 (치료하게) 해 줬다고 느낄 거 아니에요.”

-강제입원 유형인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정신장애 운동 진영의 요구가 있습니다.

“왜 폐지해요. 부모가 보호를 해서 입원시켜야지 그걸 폐지하면 애들 치료는 어떻게 해요. 안 간다는데.”

-입원 결정을 보호의무자인 부모가 해야 하니까 입원당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부모가 나를 강제입원시켰다고 화가 나 있는 것도 있잖아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거죠. 얘들은 아프기 때문에 자기 발로 안 가요. 약도 안 먹으려고 그래요. 몸이 쑤셔서 아파 죽겠으면 내 발로 가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병원에 안 가고 약도 안 먹는데 그걸 설득하면서 환자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야 돼요? 그럼 치료가 되겠어요. 국가가 나서서 가족 말을 듣고 방법을 만들어야죠. 겪어본 사람들이 더 잘 아니 그 말을 들어줘야지.”

이정순 선생. (c)마인드포스트.
이정순 선생. (c)마인드포스트.

-보호의무자가 자식을 사람을 안 다치게 하고 스스로도 안 다치게 만들고 과도하게 보호하라고 국가가 명령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비판적입니까.

“그게 가능한 얘기에요? 그게 먹힐 수도 있고 안 먹힐 수도 있잖아요. 치료를 받아야 덜하잖아. 약을 잘 먹어도 재발하고 일을 칩니다. 보호의무자가 나이를 먹어서 당하다 당하다 애를 못 이겨서 손을 쓸 수가 없이 내버려두는 거. 그래서 약 안 먹다가 일을 쳤잖아요.

그럼 국가가 뭘 했냐 이거에요. 가족이 감당을 못 해 드러누울 때까지 국가는 뭘 했어. 애들을 잘 보호해서 고칠 수 있게 도와야지 가족에게만 맡겨놓고 사고를 치면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아.”

-최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임대주택 정신질환자들을 격리해야 한다”고 발언해 정신장애계로부터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해명하는 걸 보니 좋은 뜻으로 말하려는 게 단어를 엉뚱하게 써 갖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실수를 한 건 맞잖아요. 그런 말을 입에 올릴 때는 읽고 또 읽고 남한테 검사도 받고 해서 말했어야지. 그런 인간들이 국회의원 하고 있다는 자체가 창피한 거에요.”

-따님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같이 아파트에 살아요. 사는 걸 배우게 하려고 어디 내보내려고 해도 안 가요. 집안 작은엄마가 ’애를 어떡하려고 그러냐고, 분리시켜서 사는 걸 가르치라‘고 그러는데 애가 안 나가는 걸요. 오죽하면 내가 데리고 있겠습니까. 가슴이 아파요. 고생해도 같이 사는 게 좋죠. 나도 어렵게 얻은 아이이고 걔 없으면 못 살아요.”

-지금 하는 일이?

“그만 둔다 만다 하면서도 일은 다녀요. 심지회에서 하는 오뚜기 사업. 오카리나 소독해서 포장하는 거요. 그 회사를 만들려고 내가 거의 500명 되는 사람들을 친척까지 다 넣어가지고 이 사업이 만들어졌어요.”

-돈을 벌고 있네요.

“예. 돈을 좀 벌죠. 한 백만 원 정도.”

-언제 따님이 ‘아, 이제 회복이 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나는 그런 말을 함부로 안 합니다. 좋아져도 그냥, 나빠져도 그냥. 속으로 기도하며 기다려야지 입초시를 하고 나면 꼭 무슨 일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겁이 나요. 겁이 나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자꾸만 속으로 생각만 하려고 그래요. 애가 멀쩡히 잘 있다가 자기를 무시했다는 생각을 하면 막 날카로워져서 성질을 내요. 그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어요. 말대꾸하다가는 일이 더 길어져요.”

-정신장애인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자존심 건드리지 말고 공감해주고 말을 많이 안 하고 본인에게 시간을 주는 것. 부모가 입을 나불거려서 말을 많이 하니까 아주 안 좋더라고요. 나도 옛날에 좀 했거든요. 관찰해보니까 그런 집 애들이 대개 병이 나 있더라고요. 애가 생각할 시간이 없이 부모가 옆에서 잔소리를 바가지로 하는 거. 그거 아주 안 좋더라고요.”

-재발할 위험이 더 커지는 거죠.

“병이 날 확률이 높아요. 혼자서 생각하고 반성하고 고치고 할 시간을 줘야 되더라고요.”

-그럼 초반에 따님 아플 때 따님을 많이 비난하셨습니까.

“저는 비난은 잘 안 했어요. 아버지는 지금도 비난을 해요. 안 고쳐져요. 내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딸에게 잘해줘야 딸이 회복이 빨리 된다고 어떤 엄마가 얘기를 하더라.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버지면서도 어떤 남성상으로 본다는 거야. 애가 병원을 안 바꾸는 것도 그 의사를 어떤 남성상으로 쳐다보니까 그렇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 엄마가 그렇게 짚더라고요.

그리고 엄마가 너무 이쁘게만 차리지 말아야 한다고. 한참 젊으니까 엄마를 엄마이면서도 여성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아버지가 애를 자꾸 욕하고 비난하냐고. 들었잖냐고. 제발 그러지 맙시다. 나도 조심할테니 (그래요).”

-여성상이라면 옷을 수수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는 말입니까.

“엄마가 너무 옷을 야하게 차려입으면 안 좋다고 그래요. 평범한 엄마 모습이어야지 희한하게 입고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

-따님이 41살인데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렸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일 겁니다.

“그것 때문에 또 괴로워요. 그냥 살면 그냥 살게 두겠어요. 그런데 얘가 뭐라고 하냐면,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여자는 자손을 두고 죽어야 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하나뿐이니까 대가 끊긴다는 걸 아나 봐요. 그래서 생리가 끊어지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

얘는 결혼이 뭔지도 몰라. 사람을 사귀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아이를 둘 정도 낳겠다고 의논을 해요. 내가 속으로 ‘네가 아픈데 어떻게 자식을 낳아가지고 이 고생을 하겠냐’라고 생각해요. 얘는 아픈 자식이라도 갖고 싶다는 거야.

내가 ‘좋아, 노력은 해야지. 노력을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거지’라고 생각해요. 답답하고 딱해요. 그런데 부모가 자식이 아프다고 너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 이건 아니라는 거에요. 부모가 무슨 권리로 애가 하고 싶다는 걸 강제로 말립니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투자하더라도 얘가 원하는 걸 하고 싶어요. 그래야 되잖아요.”

달리다쿰 내부 전경. (c)마인드포스트.
달리다쿰 내부 전경. (c)마인드포스트.

-정신과 약물은 반드시 필요한가요.

“반드시는 아니에요. 필요하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죠. 병원에 가면 가족이나 당사자가 불편해하는 말을 의사가 귀담아듣고 약을 예술적으로 조절하다가 안 되면 빼보기도 하고 추가도 해 보고, 그런 걸 원해요.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한번 쓴 약을 계속해서 들어주지도 않고 쓴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도장 찍히는 사람입니까. 잘 지냅니까, 잠 잘 잡니까. 그거 몇 초에요. 많아야 3분이고. 그렇게 하고 상담이 끝나. 그리고 약 주고. 내가 다니는 병원 의사는 몇 마디하고 나면 차트 들고 간호사한테 가요. 가라는 얘기 아닙니까. 남 말하고 있는 도중에요.

그래도 애가 간다니 어쩔 수 없죠. 또 애가 눈이 불편한데 그게 약 부작용이라고 하는데 의사는 ‘마음의 문제다’ 이렇게 말을 해 놓으니 얘는 그걸 확 받아들이고 꼼짝을 안 해요. 거기만 가요. 한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너무해요. 가족 말 안 들어요. 애가 가니까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참고 있는 겁니다.”

-달리다쿰에서 일한 지는 얼마 정도 됩니까.

”한 10년 돼 가요. 처음부터 여기 왔으니까. 계약할 때도 옆에 같이 있었어요. 여기 가입을 한 게 아니고 그냥 온 거에요. 가입 이런 건 여기 없어요. 전도사님이 하도 고생을 하길래 옆에서 말동무하려고 이러지 하는 여기서 하는 일이 없어요.“

-특별히 여기 와서 하시는 일이 없으시다고?

”없어요. 완전 놀다가 가요. 월요일 기도할 때 오고 수요일은 회원들을 위해 중보기도해요. 토요일은 직장 다니는 분들이 많이 오니까 올 수 있는 날은 오고. 내가 아프니까 청소도 설거지도 아무것도 못 하게 해요. 밥만 먹고 놀다 가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나는 국가가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교육에 성교육만 시킬 게 아니라 이 병의 심각성을 교육하라는 거예요. 일본은 그거 하다가 걷어치웠다가 또 교과서에 넣었거든요. 우리도 해야 돼요.

나도 안 아프고 더 젊었다면 애들 일자리를 만들어서 일을 시키고 싶어요. 우리 애가 일을 하려고 해도 해당되는 일자리가 없어요. 가도 받아주지도 않고. 내가 성수동 도보 택배를 해서 죽을 고생을 합니다. 우리 회원들이 거기서 서너 명 일을 해요. 그걸 왜 개인이 하게 하느냐 이거지. 국가가 해야지.

우리는 죽을 거 같아. 집안 살림해야지, 나 아파 죽겠지, 애 때문에 그러지. 그래도 가만있을 수는 없잖아. 곧 다리를 못 쓰게 되면 집구석에 들어앉아 있어야 되는데. 보건소에 가면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거긴 알코올하고 자살만 신경을 쓰는 것 같더라고.

우리 정신장애 쪽에는 피부에 와 닿는 복지 혜택이 별로 없어요. 지체장애는 자기들끼라 다 해치우고 발달장애는 부모가 나서서 난리 쳐서 어느 정도까지 (예산) 올려놓았고 정신장애는 뒤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각 자치구마다 큰 건물을 지어서 방구석에 들어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는 쟤네들을 불러냈으면 해요. 그래서 부모도 숨을 좀 쉬고.

그 건물에 가서 잠을 자든, 놀든, 일을 하든, 교육을 받든, 노래하고 춤을 추든, 여행을 가든 거기서 생활을 하게 해 주고 일단은 집에서 불러내라. 집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애들을 집에 안 있게 활동을 시켜달라 이거야.

그리고 알맞은 돈을 줘라. 기초수급비도 주는데 돈을 줘서 애들이 힘 좀 나게 해 줘라. 또 국가가 나서서 부모하고 분리되는 것도 배우고요. 우리가 언제까지 살 지 알 수 없잖아요.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하는데 아무 준비 없이 이별하면 애들이 갈팡질팡할 거 아닙니까. 그럼 우리도 눈 못 감고. 그런 걸 연습하고 시도해 달라는 거에요. 내 꿈이에요.”

기자는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며 달리다쿰 당사자 대표인 석병구 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의 전화번호를 기사에 넣어도 괜찮냐고 물었다. 그가 흔쾌히 허락했다. (달리다쿰 석병구 ☎010-2087-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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