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가 힘들어서 적절한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엄마, 제가 힘들어서 적절한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 장은하 멘탈헬스코리아 부대표
  • 승인 2022.09.05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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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와 정신건강 리포트-제8회
정신과 진료를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방법
부모 동의 없이는 선택할 수 없는 정신과 치료...선진국은 십대 진료권 우선
십대 아이의 문제행동을 사춘기로만 치부하면 조기치료 시기 놓쳐
정신과 치료가 왜 필요한지 부모에게 설득하고 도움받을 부분 설명해야
대화와 설득 후 부모가 생각을 정리하고 의사결정할 시간 충분히 줘야

<마인드포스트>는 정신건강 소비자 운동 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와 함께 청소년과 정신건강을 주제로 총 10차례에 걸쳐 특집 ‘미래 세대와 정신건강 리포트’를 게재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모든 정신과적 컨디션의 절반 이상이 약 14세부터 시작된다고 보고했다. 수십만 명의 십대와 청년들이 불안과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사례 중 많은 수가 발견되지 못하고 적극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 동의 없이는 정신과 진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도 조기 치료를 막는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다. 미국, 영국과 같은 정신건강 선진국에서는 미성년자 진료에 대한 법적 책임보다 청소년의 건강과 진료받을 권리를 더 우선시해서 부모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청소년은 자신이 필요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사진=멘탈헬스코리아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병원은 100% 부모 동의가 있어야 하며 개원의들이 운영하는 개인병원의 경우에도 99%가 청소년 혼자 내방 시 진료를 거부한다. 부모 동행 없이는 의사와 간단한 면담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 대다수다.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도 부모 동의는 필수다. 병원에서는 진료 거부만 할 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정신건강 서비스로 연계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면서, 청소년이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어느 병원에 가는 것보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정신과 진료를 반대한다. 
가정폭력, 친족성폭행 등 문제의 원인이 부모인 경우 혹은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편견과 이해 부족이 대표적이다. ‘사춘기라서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라는 부모의 관점이 바로 정신질환의 조기예방과 개입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청소년이 부모에게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부모와 함께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도움은 커녕 되려 갈등과 불안만 가중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며, 내 기분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기에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바로 부모에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부담스럽고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지만 이 대화를 보다 원활하고 편안하게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접근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의 정신적인 어려움에 관해 부모와 이야기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이 궁금할 것이다. 여기에 유용한 몇 가지 단계가 있다. 

◆…1단계.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먼저 내 생각을 정리하기

부모님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 나 스스로 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정리할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고 싶은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신과를 다니면 어떤 점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왜 지금 시점인가? 내가 바라는 나의 변화한 모습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변해보는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정리된 생각은 부모와 대화 시 진지함으로 전달되어 배려와 존중이 있는 대화를 만들어나갈 확률을 높인다. 

◆…2단계. 정확한 정보 수집하기

정신건강 및 정신과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한 부모는 반대할 확률이 훨씬 높다. 특히 진료 비용, 정신과 진료 기록, 보험 등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는 것만큼 허무한 것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반대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해 정확한 사전 정보 수집을 통해 정보에 입각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 혹은 나에게 필요한 진료 유형(진단, 약 처방, 정신과 상담 등)을 찾아보고 그 진료를 받기 위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사진=멘탈헬스코리아

◆…3단계. 대화 전략을 수립하기

성공적인 대화를 위한 사전 계획과 전략 수립은 훨씬 더 내게 많은 통제권을 가지게 한다. 부모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그리고 부모가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미리 적어본다. 
대화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엄마, 최근에 제가 OO이 힘들어서 OO을 하게/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저는 도움이 필요하고, 적절한 치료를 통해 효과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도와주세요”라고 말이다. 

정신과 방문을 반대하는 부모와 대화 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부모의 잘못이 대화의 주제나 중심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정신적인 어려움을 가지게 된 주된 이유가 부모 때문일 수 있겠지만, 이 대화에서 만큼은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공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가진 어려움과 도움이 필요한 부분, 그래서 변화되고 싶은 모습이 주된 내용이 되어야 한다. 

또 언제가 부모님과 대화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일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의 스트레스 수준이 가장 낮을 때가 언제일지 고려해보자. 

◆…4단계. 의사소통 방식을 선택하기

다음 단계는 이 대화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판단해보는 것이다. 부모님과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이 나을지, 장문의 카톡 메시지가 더 나은지, 아니면 손편지나 이메일을 써야 하는지 말이다. 

평소 부모가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존중하며, 의견이 같든 다르든 대화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별도로 마련해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좋다. 
이 시간을 통해 자녀는 부모에게 감정을 인정받고 수용받는 경험을, 부모는 자녀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반대로 평소 부모와의 대화가 늘 싸움으로 끝나거나 더 큰 상처와 갈등만 남는 패턴이라면, 서로가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비대면 대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5단계. 예상 질문과 답변 준비하기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미리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하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계속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과 대화에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지나치게 생각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를 돕기 위해 기꺼이 무엇이든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부모가 자주 묻는 몇 가지 질문이다. 특히 정신과 진료 기록으로 인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과 낙인, 치료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부모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조사를 통해 부모가 알고 있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사진=멘탈헬스코리아.
사진=멘탈헬스코리아

부모가 많이 하는 대표적인 질문들

○ 부모가 모르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 이런 지 얼마나 되었나? 
○ 부모가 뭘 잘못했나?
○ 정신과 의사 말고 나(부모)에게 말해라
○ 치료 비용이 비싸지 않나? 

◆…6단계. 부모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때때로 부모는 정신과 진료가 무엇인지, 상담과 약 처방이 정신건강 개선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를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대화 후, 부모가 충분히 정보를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위해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 자신이 정신과 진료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정신과를 다니는 지인에게 자문을 구함으로써 정신과 진료가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돕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당신이 정신과 진료를 시작했고, 상담이나 약을 통해 얻은 긍정적인 효과나 통찰력을 발견했다면 이에 대해 부모와 공유할 것을 추천한다. 치료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되고 있는 지, 부모를 이해하게 된 내용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 지, 부모와의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 필요성 등 느끼고 배운 점에 대해 부모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모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신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나 견해를 수정할 수 있고, 앞으로 자녀와의 관계 개선과 회복을 돕기 위해 적극적이고 협력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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