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언니의 책방] 그래서 이 책은 더 많이 읽혀야 합니다
[삐삐언니의 책방] 그래서 이 책은 더 많이 읽혀야 합니다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2.08.31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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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의 책방 ⑧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리베카 울리스 지음·강병철 옮김, 서울의학서적

#1. 

“제 아내 때문에 너무 괴로워요. 요즘 의욕이 마구 솟아서 사업을 벌리고 카드를 막 긁어요. 예전에도 그런 적 있어요. 조증이 계속되다가 팍 가라앉으면 집에서 꼼짝도 안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어요.”

내 자신이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이면서도, 아내의 조울증이 재발한 남편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서 어떤 도움의 말도 건네지 못한 적이 있다. 

#2. 

그런가하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중학생의 절박한 호소에 만족스럽지 못한 답을 주기도 했다. 

“제게는 작가님처럼 이해해주는 가족이 없어요. 엄마는 제가 마음을 다잡지 못해서 그렇다고만 해요.”

나는 말했다. “가족으로부터 기대를 할 수 없다면 마음을 솔직하게 터놓을 수 있는 상담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부족한 답이었다. 복약, 생활 관리 등을 위해선 곁에서 일상을 나누는 이들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3. 

다행스러운 때도 있었다. 십여년간 조울병을 앓고 있는 40대 여성의 얘기였다. “오빠는 그동안 저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조울병과 관련한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병인지 좀 이해가 간다고 했어요. 그 이후론 제 병원 진료 일정을 챙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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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는 올초에 만난 책이다. 주문한 책이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30여분 동안 민망할 정도로 눈물·콧물을 흘렸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이는 정신질환을 앓는 자녀가 있는 아버지였다. 직업이 의사였음에도 늘 양질의 정보에 목말랐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부모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막막하던 와중 만난 이 책은 풍부하고 구체적인 정보와 대처 요령 등을 담고 있었다. 

“망상과 환각이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하더라도 환자들에게는 ‘생생한 현실’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잘 해나간다면 굳이 증상을 없애라고 할 필요가 없다”, “환자의 분노가 폭발한 경우 가장 주의를 기울일 것은 보호자 자신의 정서 상태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등등. 의사와 관계 맺는 방법, 주거·직업·돈 문제의 해결 방법, 약물 중독 등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도 담겨 있었다. 

번역자는 환자를 둔 가족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이 책을 읽으면서 엄청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출판시장의 반응은 냉랭했고 책은 절판됐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인 2020년 복간할 수 있었던 것은 치료 타이밍을 놓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을 둔 어떤 부모의 후원 덕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앞서 말한 첫 번째, 두 번째 사례를 떠올렸다. 만약 환자의 가족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질환이 완쾌되는 병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환자들은 훨씬 안정된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긴 너무나 힘겨운 일이다.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앎’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앎’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에너지는 결국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라는 제목 자체가 아릿하다. 나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만 겹쳐진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쓴 삐삐언니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마인드포스트> 독자들을 만납니다. 조울병과 함께한 오랜 여정에서 유익한 정보와 따뜻한 위로로 힘을 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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