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자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응급이송 중 사망한 정신장애인 사건 규명 촉구
잊혀진 자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응급이송 중 사망한 정신장애인 사건 규명 촉구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3.07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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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장애인연합, 경기도청 앞 기자회견 진행...도지사 참여 간담회 요구
용인시 정신장애인 응급이송에서 경찰의 과도한 제압으로 사망 규탄
"사설구급대에 죽음을 기다리는 다음 청년 생길 것...공공이송 체계 정착돼야"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7일 경기도청 북문에서 응급 이송 과정에서 사망한 정신장애인 사건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7일 경기도청 북문에서 응급 이송 과정에서 사망한 정신장애인 사건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저는 묻고 싶습니다. 경찰 본인이 당신의 가족에게 정신과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수갑을 채우고 엉덩이로 복부를 눌러 제압할 수 있는지, 또 본인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경찰에 의해 그런 제압을 당한다면 순순히 따를 수 있는지 정말로 궁금합니다.”(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위은솔 씨 발언)

7일 오전 11시.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북문에 정신장애인 30여 명이 모였다. 모인 이유는 단 하나. 정신응급 상황에서 구급대에 의해 이송되던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었다. 지난해 9월에도 비슷한 이송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정신장애계는 분노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달 14일 오후 9시 20분경.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 집에서 소란을 피우던 A씨(42)가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응급입원이 진행됐다. 정신건강복지법 제50조는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자·타해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받아 정신의료기관에 응급입원을 의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A씨를 정신병동으로 이송하기 위해 119구급대와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응급입원 현장지원팀 경찰관 지원을 요청했다.

A씨는 오후 11시경 앞 수갑을 차고 구급밴드에 묶여 구급차로 옮겨졌고 의정부의료원으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이송에는 구급대원 2명과 경찰관 2명이 동승했다.

하지만 이송 과정에서 A씨는 수갑에 묶인 채 격렬하게 반응했고 이후 발작 증세를 보였다. 경찰관은 제압하는 과정에서 A씨 배 부위를 엉덩이로 깔고 앉았다. 오후 11시 40분경, A씨는 심정지 증상을 보였고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지만 15일 0시 10분경 사망했다.

이후 경찰은 “긴급 이송 과정에 수갑을 채운 것은 피해자나 경찰관 보호를 위한 것으로 위법한 조치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A씨가 130㎏의 거구이다 보니 경찰관들이 발작을 일으킨 A씨를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정신장애계는 A씨 이송 과정에 다수의 경찰과 구급대원이 있어 위험성이 크지 않았는데 굳이 수갑을 채워야 했느냐고 강하게 지적했다.

7일 도청 기자회견에 참여한 위은솔 씨의 규탄 발언이다.

“당사자에게 난동을 부렸다고 표현했다.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당신들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에 놓일 때 난동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순순히 그 강압에 따를 자신이 있는가?”

정신장애인이 정신응급 상황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운송 수단이 사설 응급차다. 국가의 이송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과 보호자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강박과 폭력 등 인권침해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를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역시 기자회견에 참여한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권성혜 씨의 말이다.

“비자의 입원 시의 병원 이송 방식은 73.8%가 사설구급대에 의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다음 청년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음 청년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 입장에서 공공이송 체계가 정착돼야 한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위은솔 씨가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위은솔 씨가 발언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과 인재근 의원이 잇따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 안에는 공적 이송체계를 국가가 구축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이 담겨 있다.

사설구급대원들에 의해 몸이 묶인 채 병원으로 이송되는 상황은 당사자에게 트라우마적 경험이 되고 이는 치료환경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가족 역시 정신과적 위기 대응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사설 응급대를 부르는 일이 전부다. 정서적으로 소진된 가족 역시 피해자로 전환돼 버린다.

이항규 한국정신장애인협회장은 “이 모든 잘못은 한 기관, 혹은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며 우리가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다시는 치료권이라는 미명하에 강제입원으로 생명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욱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투쟁조직위원은 “정신장애인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며 “우리가 원하는 건 당사자의 선택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국가 정책”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경기도청에 ‘재발방지책 마련 요구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요구안에는 비자의입원 제도 개선 및 인권적 이송 방안의 마련이 담겨 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상의 행정입원은 의사의 진단과 기초단체장의 동의에 의해 진행되는 강제입원 유형이다. 하지만 이송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나 입원 비용 부담을 우려하는 경찰과 지자체 입장 때문에 치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정신응급 정신질환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박탈당해 왔다는 지적이다.

한정연은 정신장애인 정신응급 상황 시 경찰 개입 여부와 상관없이 정신과 전문의, 인권활동가, 동료지원가, 사회복지사의 개입을 통해 입원하는 시스템을 요구안에 담았다. 또 행정입원 후 일주일 이내 심사위원회 또는 사법부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할 것과 비자의입원을 대체할 위기쉼터 등 지역사회 서비스를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

특히 정신위기 상황에서 상담받을 수 있는 24시간 위기 핫라인을 개설하고 당사자가 자신이 응급상황에 처할 시 누구에 의해,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미리 정해 놓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제도화할 것도 요구했다.

지난해 9월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30대 남성이 사설구급대 2명에 의해 제압 과정에서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사설구급대원들은 남성의 양손을 묶고 가슴 부위를 강하게 누르면서 신체 제압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은 심정지 증상을 보였고 병원 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 지난달 8일 사설구급대원 2명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당사자 활동가 이승주 씨의 기자회견 발언이다.

“책임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 진상규명, 재발 방지책이 없다면 또다시 이런 사고는 반복될 것이다. 당사자가 위기, 응급상황일 때 도움을 구할 곳이 병원밖에 없다는 사실에 참담한 마음이 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죽음이 있다. 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있다. 정신장애인이 정신 위기 상황에서 개입되는 폭력적 이송과 존엄이 훼손되는 사설구급대에 의한 죽음이 그렇다. 그 죽음은 개체의 죽음과 더불어 잊혀져버린다.

어쩌면 지난해 9월 용인시 사건도 정신장애인 단체들이 관할서인 용인동부경찰서로 몰려가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자 처벌, 투명한 수사 과정을 요구하며 두 달간의 국회 앞 천막농성을 하지 않았다면 묻혔을 사건이다.

권용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왼쪽)이 경기도 정신건강과 이어진빛 과장에게 한국정신장애인연합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권용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왼쪽)이 경기도 정신건강과 이어진빛 과장에게 한국정신장애인연합 요구안을 전달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1995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폭력적 이송은 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정신장애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 죽음은 사회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채 묻혔고 국가 역시 이들의 죽음을 외면해버렸다. 그 죽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자회견에서 신석철 한정연 상임대표와 대표단은 경기도청 관계자들에 도시자와 용인시장의 사과, 시장·도지사 주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좌담회 등을 요구했다. 도 측은 오는 10일까지 확답을 약속했다.

다시 위은솔 씨의 발언이다.

“비단 강제 이송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제입원과 가혹 행위, 강박 행위로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돌아가셨다. 하지만 이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쉽지 않으며 설령 사회적 주목을 받더라도 가십거리 정도로 소비되고 이후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거나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부재했다. 늘 무책임했던 정부를 대응하기 위해 우리 당사자들은 투쟁과 항쟁을 멈출 수 없다.”

붉게, 봄이 왔다. 그리고 다시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잊혀진 자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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