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경계에서 말을 걸다] “사회가 지웠던 우리 자신의 얼굴을 되찾는 일을 이 글을 읽는 누구나가 하셨으면 좋겠어요”
[정신의 경계에서 말을 걸다] “사회가 지웠던 우리 자신의 얼굴을 되찾는 일을 이 글을 읽는 누구나가 하셨으면 좋겠어요”
  • 마인드포스트 편집부
  • 승인 2023.04.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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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박여리 씨와 박목우 씨의 정신의 서재②

여기, 정신장애라는 10만 볼트의 터널을 뚫고 나온 두 명의 여성 정신장애인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고통 속에서 가꾸어온 성찰의 언어들, 그리고 고통에 단련되면서 깨달은 삶의 비밀들이 있습니다. <마인드포스트>는 이 두 분이 서로를 향해 보내는 편지를 2주마다 한 번씩, 올해 말까지 연재합니다. 타자화가 아닌 주체라는 정신장애인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밀고 온 그들의 경계에 선 언어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이미지=픽사베이.

목우님께

저의 부족한 편지에 대한 답장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이 또한 같은 고통을 경험한 사람의 언어로 쓰인 위로의 큰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겪은 사소한 사건이 이렇게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에 놀라웠고 반가웠어요. 제가 갖지 못한 언어를 빌려 제 마음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순간을 목격한 것만 같았죠. 무엇보다 섬세하고 따뜻한 목우님의 시선 또한 감동이었고요. 앞으로 우리가 나누게 될 이야기들 또한 서로의 언어를 빌려 다양한 모습으로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편지에는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의 은경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두 번째 편지에 은경언니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은경언니 같은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대다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분들도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은경언니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은경언니를 처음 만난 건 공동생활 가정인 ‘담쟁이’에서예요. 어느 날, 함께하는정신건강의학과의 병동에서 퇴원한 분들이 담쟁이의 식구로 합류하게 되었고 은경언니는 그중 한 사람이었어요. 은경언니는 한눈에 보기에도 증상이 심했기 때문에 같이 살고 있음에도 6개월 동안 단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시청하던 중 저는 우연히 언니의 손을 보게 되었어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언니에게 말을 걸었죠.

“언니, 언니 손이 너무 오동통하고 귀엽다”

“고마워”

처음이었죠. 같이 살면서 대화를 나눈 일이요. 그 이후 혼자 방을 쓰고 있던 은경언니의 방에 놀러 가기 시작했고 우리의 우정은 시작되었어요. 은경언니는 당시 이불이 하나밖에 없어 세탁 후 마르지 않은 이불을 덮고 자는 저에게 감기가 걸린다며 다른 이불을 덮어주었고, 현모양처가 꿈인 천상여자답게 과일도 손수 깎아주었죠. 증상에 매몰된 줄만 알았던 언니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발견한 순간들이었어요. 저는 그 순간이 참으로 반짝여 보였답니다.

언니는 망상이 심하고 혼자서 많이 중얼거리곤 해요. 그 내용은 환청과의 대화이거나, 환청이 시키는 말이거나 망상일 때가 많아요. 예를 들면, 언니의 남편은 가수 ‘비’랍니다. 아무리 김태희와 결혼했다고 말을 해도 언니의 남편은 ‘비’에요. 언니는 제가 기분 나쁠 수도 있고 환청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라면서 또다시 그 이야기를 반복하곤 해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아요. 저는 그것을 믿어주지 않고 은경언니도 곧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요.

증상이 심한 은경언니와 같이 사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어요. 언니가 환청과 망상으로 하는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로 느꼈던 저는 언니 때문에 밤에 울면서 뛰쳐나가기도 하고 언니에게 화를 낸 적도 많답니다. 처음에는 언니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니가 한 말들을 그대로 시설장님께 호소하며 열을 올리곤 했었는데요. 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있는 그대로의 언니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일단 언니는 귀엽고 순수해요. 천상여자라는 단어는 은경언니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아요. 여성스럽고 또 그런 것들을 좋아해요. 예를 들면 화장을 하는 일 같은 거요. 언니는 아침에 일어나 곱게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고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요. 귀찮지도 않은지 매일 곱게 단장을 해요. 무엇을 먹거나 마실 때에도 얌전하기 그지없어요. 젓가락질을 할 때면 그 오동통한 손이 너무 귀여워서 빤히 쳐다보곤 한답니다.

그런 언니와 친하게 지내던 어느 날 시설장님은 낮병동 회원분들에게 은경언니와의 에피소드를 발표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죠. 저는 은경언니와 친해지게 된 계기와 같이 살면서 재미있었던 일들에 대해 발표했어요. 그때 사람들은 놀랐죠. 은경언니는 매일 혼자서 중얼거리는 줄만 알았는데 그런 의외의 모습이 있는지 몰랐다고요.

정신질환의 증상과 평범한 일상이 공존하는 은경언니의 일상을 지켜보는 일은 저에게 큰 기쁨이에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니가 조금 더 지역사회의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랄까요. 얼마 전 은경언니의 머리를 자르러 동네 미용실에 갔었는데 언니가 의외로 증상으로 인한 행동과 말을 하지 않고 얌전히 머리를 잘라주어 안도했던 기억이 있어요.

혹여나 언니의 증상이 노출되어도 미용사분께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으시다면 이해해주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요. 제가 은경언니의 친구가 되어 경험한 언니라는 세상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욕심일까요?

저는 은경언니와 대화를 하며 느껴요. 언니의 세계는 분열이 아닌 망상과 일상의 공존이라고요. 그 무엇도 언니에게 진짜이거나 가짜가 아니에요. 그 세계는 너무 견고해서 우리가 망상이라고 치부해버리기 곤란할 정도의 하나의 세상인 거예요. 물론 옳다 그르다로 판단하고 싶지 않아요. 언니에게는 그 세계가 무엇보다 소중할 테니까요.

언니에게 그 세계가 소중하다면 저에게도 소중해요. 언니가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듯이 저도 언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것은 친한 친구로서 서로에 대한 애정의 증명 같기도 해요. 너무 사랑하는 은경언니. 언니와의 우정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를 소망해요.

아, 마지막에 덧붙여 한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라요.

“여리야, 박보검이 여리랑 결혼한데!”

“정말?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은경언니를 너무 사랑하는 여리 드림

미국 독립작가 겸 여성운동가 리베카 솔닛. Photo=Adrian Mendoza
미국 독립작가 겸 여성운동가 리베카 솔닛. Photo=Adrian Mendoza

여리님께

한 책에서 사랑과 자유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구절을 읽었어요. 사랑을 하면 관계에 더 집중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유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 자유로워진다고 하지요. 저는 언뜻 모순되게 들리는 두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여리님의 편지에서 찾았습니다.

한 우연한 행동이 가져다준 소통이 있었습니다. “언니, 손이 너무 오동통하고 귀엽다.” 사심 없이 누군가가 좋아지는 순간이 아니었다면 이 말을 여리님이 하지 못하셨겠지요. 그리고 이후로 관계를 계속 이어가지도 않으셨겠지요. 은경 언니로 인해 가슴 아픈 순간도 화가 나는 순간도 있었지만 여리님은 늘 은경 언니 곁을 지키셨습니다.

오해와 이해가 교차하는 힘겨운 시간을 견디면서 한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은 여리님은 한 철학자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정은 부족과 결핍 때문에 요구되는 것일까, 우정은 혜택을 주고받음으로써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 받는 것인가, 라고 그는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이보다 더 중요하고, 이보다 더 아름답고, 이보다 더 본성에 충실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우정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이라고요.

은경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을 여리님은 다른 곳에 쓸 수도 있었어요. 더 잘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는 데 쓸 수도 있었습니다. 언니로 인해 방황하고 슬퍼하고 분노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여리님은 자유를 희생함으로써 언니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리고 그 댓가는 참 가슴 따뜻한 것이었습니다. 한 이름 없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여리님은 은경 언니의 삶에 웃음을 가져다주었어요. 늘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 병증이 깊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의 일상을 발견하였고, 그것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치유될 수 없으리라 기대하던 사람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신 거예요. 세상과의 소통의 지점을요. 그 사랑으로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을 넓히셨습니다. 그 속에서 삶은 더 숨 쉴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웃음은 당황스럽고 어색한 순간에 긴장을 풀어줍니다. 그것은 조롱과는 달라요.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선한 기운을 나눠 갖는 것입니다. 혼자 웃거나 남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웃는 것이지요. 그럼으로써 웃음으로 상황에 얽매이지 않게 하고 그것을 가볍게 이겨 낼 힘을 주는 거예요.

은경 언니가 나중에 이 글을 읽으시면 분명 환하게 웃으실 거에요. 공들여 자신을 가꿔가며 하루를 소중히 살아내는 자신을, 누구보다 예쁘게 사과를 깎을 줄 아는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밤에 추울까 봐 자신의 이불을 덮어주는 마음을 알아준 여리님의 시선이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에는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되지요. 은경 언니를 사랑하시면서 여리님은 많은 어려움들을 겪어 내야 하셨어요. 무수한 과제들 앞에서 포기하고 싶기도 하셨겠지요. 그러나 누군가를 이해하는 그 시간이 쓸모없지 않았던 것은 그것으로 여리님이 공통의 무엇을 만들어 내셨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여리님이 변화하시고 은경 언니가 변화하는 공통의 순간과 표현을 가지시면서 ‘사회’라고 하는 곳에 은경 언니를 다정한 모습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흔히 정신장애인은 낯선 존재로 그려집니다. 리베카 솔닛의 한 책에서 그녀는 말합니다. 늘 불길한 듯 이야기되지 않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는 외할머니였고 평생 정신병원에서 살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요. 그때의 그 알 수 없고 음산하던 분위기를 리베카 솔닛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정신장애인은 그렇습니다. 낯선 존재가 되어 사람들 사이의 다정한 유사성과는 한참 동떨어진 존재로 살아왔지요. 여리님은 그 공고한 인식을 은경 언니를 사랑하면서 스스로 깨뜨리는 작은 혁명을 하신 거라 생각해요.

우리에게는 사회가 부여한 얼굴이 있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얼굴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다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요. 사회가 부여한 그 얼굴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편향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뻔뻔한 얼굴에 저항하는 진실을 정신장애인은 알고 있어요.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을요.

그 이면에 있던 진짜 얼굴을 발견해 주신 여리님의 이야기가 너무 소중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찾아가야 할 그 얼굴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래요.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에요.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발언하고 더 아름답게 우리를 드러낼 거에요. 광인이었던 반 고흐가 온갖 추문에 시달리며 “나는 내 안에 얼마나 위대한 사랑이 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야 말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 사회가 지웠던 우리 자신의 얼굴을 되찾는 일을 이 글을 읽는 누구나가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러려고요. 세상의 가치와 다른 자신 안의 작은 균열도, 분노의 외침도, 슬픔의 감정도, 혼란스러움도, 기쁨과 우정도, 사랑과 선의도 모두 우리의 모습이에요. 그 자기 자신을 소중히 아껴주고 두려움 없이 드러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맞는 말이란 없어요. 당신이 진실입니다.

봄볕이 좋았던 봄날에

목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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