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일기장] 아홉번째 페이지 : 바울의 가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옥탑방 일기장] 아홉번째 페이지 : 바울의 가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 이관형 기자
  • 승인 2018.11.16 2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옥탑방 일기
옥탑방 일기

 

기록 시점 : 출판 이후의 삶을 되돌아 보며

마음 날씨 : 다시 달리기 위한 힘을 얻을 때

바울의 가시 책을 내고 난 뒤 감사하게도 작가로서 초청해주는 곳이 많았다. 대학교에서 특강도 해보고 상담 센터에서 당사자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은 질문이 바울의 가시 책을 쓴 계기와 과정이다.

초등학교 때 일기장 숙제에 동시를 적어내곤 했다. 한번은 이 동시를 네가 쓴 게 맞냐며 선생님으로부터 표절의혹을 받았었다. 방학 숙제로 모험을 주제로 한 동화를 썼던 기억도 있다. 학창시절엔 학교 대표로 문학대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이후 힘든 학창시절을 거쳤다.

내가 취미로 썼던 시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내용도 표현도 모두 어두웠다. 상처와 불만을 학교 게시판에 풀어댔다. 학교 설립자가 친일파라고, 친구는 왕따를 피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심지어 학생들은 깃발을 들고 일어서야 한다는 내용의 비판적인 칼럼 아닌 칼럼을 썼다.

조현병이 시작 된 스무살이 되어서는 살려고 시를 썼다. 불안감은 낮에도 있었지만 밤이 되면 더 심해졌다.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새벽 한시, 두시.. 세, 네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의 불안한 감정과 복잡한 뇌의 생각들을 시로 써냈다.

가끔은 시를 쓰며 눈물을 흘렸다. 시를 통해 내 안의 것들을 배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를 쓰다보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러다 해가 뜨는 아침이 밝아 왔다. 그렇게 수 많은 날들의 새벽을 견뎌왔다.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 간 뒤 특별한 신앙 훈련 프로그램을 받았다. 평일에 성경공부를 했고 토요일에는 많은 동아리 사람들 앞에서 느낀 점을 발표했다. 원래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것에 익숙했다.

한 번은 좀 더 특별한 훈련을 받았다.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생각나는 나의 인생 이야기 모두를 글로 기록하는 것이다. ‘200페이지 라이프’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위해 한 달 간 글을 썼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함께 훈련을 받는 동기들도 힘들어 했다. 그러나 모두가 훈련을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동아리 선배들 앞에서 200페이지의 글을 발표했다.

읽는 사람은 물론, 듣는 사람들마저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시간이었지만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이후로도 토요일마다 성경을 공부하고 깨달은 바를 쓰고 발표하는 훈련은 계속됐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며 기자를 꿈꿨다. 하지만 졸업 후 바로 취업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곳의 기자 관련 아카데미와 교육을 수료했다. 이를 발판삼아 몇 군데의 기독교 언론사에 취업할 수 있었지만, 오래 근무하지는 못했다.

글을 쓰고 취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사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와 상사들에 대한 두려움에 금방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시기 동안 글을 쓰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인터넷에서 조현병 관련 공모전 관련 기사를 발견했다. 대한조현병학회 15주년 기념 공모전이었다. 수필과 사진, 그림의 세 부문으로 나눠 작품을 모집했다. 기사를 본 날에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난 컴퓨터 앞에 앉아 단숨에 글을 써내려 갔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아픈 과거와 병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버텨왔던 이야기를 썼다.

새벽에 시작해 해가 뜰 때쯤 3~4페이지 분량의 글을 완성했다. 그리고 바로 공모전에 출품했다. 나름대로 자신도 있었고 예감도 좋았다. 그리고 결국 수필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때 다짐했다. 언젠가 내 이야기를 책으로 내겠다고..

이후 우연히 국비지원 과정의 대학원 모집 정보를 보게 되었다. 전자책 전문 출판 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인데, 입학금과 장학금 전액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여러 교육기관과 언론사를 다녔던 것이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되어 합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전자책 출판에 대한 이론과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콘텐츠 에디터로 취업했다. 글을 쓰고 이미지를 합성해 카드뉴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퇴사했다. 직장 생활은 도저히 힘들 거 같았다. 이후 디자인 학원을 수료하고 1인 출판사를 창업했다. 그리고 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떤 내용의 책을 만들지 고민했다. 아는 작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게 글로 쓸 정도의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잠시 잊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다. 우선 정신의학 관련 신문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나의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반응이 좋았고, 신문사에서 공식 연재하자고 제안이 왔다. 나의 연재글은 신문사 SNS를 통해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출판에 대한 확신이 섰다. 마침 대학교 동아리 시절 썼던 글들이 싸이월드 미니 홈피에 남아 있었다. 대학교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는 계속 신문사에 연재 중이었다. 운 좋게 내가 쓴 시들도 컴퓨터 저장 장치와 싸이월드, 이메일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글들을 모아 다듬고 재구성하여 오늘의 '바울의 가시(나는 조현병 환자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 할 수 있었다.

먼저 전자책으로 출판한 바울의 가시를 조현병 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홍보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구매했다. 또한 기독교 전자책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전자책 이용을 낯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종이책으로도 출판하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실력은 부족했으나,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받은 교육으로 직접 종이책 디자인 작업도 마쳤다. 그러나 인쇄 비용도 없고, 서점에 유통하는 방법도 잘 몰랐다. 일단 선주문 후 인쇄방식의 POD 서비스를 이용해 판매하기로 했다. 누군가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면, 인쇄소에서 한권만 인쇄해서 구매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방식이다.

서점이 아닌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고, 주문 후 배송기간이 일주일이나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중간 유통사에서 가져가는 수수료가 커서 판매 수익률도 낮았다. 하지만 기독교 간증분야 5위에 오를 정도로 나름 판매량도 선전했다.

그리고 다음단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바울의 가시 이후의 이야기들을 포함한 개정판을 출판하는 것이다. 첫 출판 이후 언론사와 기관에서 활동한 경험들, 학교에서 특강을 하며 만난 학생들과의 이야기, 상담 센터를 방문하여 만난 전문가와 당사자들과의 이야기도 넣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많은 도움을 주고 응원과 격려해준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고자 한다. 물론 그때는 사진과 이미지도 많이 넣어서 좀 더 완성도 있게 디자인 할 것이다. 아마 1년 후 쯤에는 좀 더 나은 바울의 가시가 세상에 출판되어 힘들고 아픈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 '바울의 가시' 작가 겸 옥탑방 프로덕션 대표 이관형의 일기

otbpd@naver.com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