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배의 직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김충배의 직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 김충배 기자
  • 승인 2020.06.03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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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현실에서 누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나요?
당신 이름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되고 기억돼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c)raiders-freeman.tistory.com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c)raiders-freeman.tistory.com

정리 안 된 어수선한 내 방을 둘러본다. 나는 내 방 안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물건들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내가 그 물건들을 통제한다고 안심한다.

통제가 안 되는 것은 이름 모를 날파리들뿐이다. 아주 가끔씩은 쓰레기를 버리며 무소유를 실천하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쓸모가 없어진 물건을 버리는 데는 그것에 대한 애착이나 추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언제든지 돈을 주고 그와 비슷한 쾌락을 주는 복제품을 소비하면 된다는 안도감으로 나는 수많은 이름들을 지우곤 한다.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들을 보며 "이 사람은 누구지?"라고 내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 내려하지만, 그 사람의 무관심 만큼 나도 그 사람과의 인연에 소홀했다는 생각을 한다. 천 명이 넘는 페이스북 친구와도 그다지 소통을 못 하는 편이다. 약에 취한 깊은 잠을 깨우는 사람은 유일한 채팅 친구이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트앱이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예전과는 달리 사람을 물건 만큼만 애정을 주고 버리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요즘 '인플루엔서'라는 말이 유행인데 사람의 이름도 브랜드 네이밍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인기를 얻고 있는 사람이나 물건 혹은 유튜브 채널은 어떤 '수식어'가 붙어야 다른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이름에 만족을 못하고 그 이름에 수많은 수식어를 붙이기 위해, 많은 이력을 쌓는지도 모르겠다. 그 수식어는 그 브랜드 네임을 떠올리면서 느끼는 무의식적 반응을 강화시킨다. 그래서 내가 한 번도 대화해 보지 못한 사람도 자주 이름을 접하고 이미지를 볼수록 그에 대한 친근감을 더하게 된다.

그에 더해 셀럽들이 광고하는 제품들의 이미지는 그것들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높인다. 반대로 그룹 오너나 연예인들의 스캔들로 제품 이미지가 나빠져서 매출이 추락하는 경우도 잘 알 것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c) 123RF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c) 123RF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당신의 이름의 수식어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가 간극이 큰 나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상대방이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이미지 몇 조각이 나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치 15초짜리 짧은 광고처럼 상대방은 나를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그들과 나눴던 수많은 기억은 편리하게도 몇 장의 스케치로 내 기억에 자리잡는다.

엄마와 아빠가 사랑스럽게 지어준 나의 이름은 내 나이 만큼이나 늙었고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다. 그 동안 가족과 친구들과의 이별과 만남으로 내 이름은 지워졌다가 덧칠되다가를 반복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브이로그(VLOG)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소위 '관종'이 떳떳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내 블로그(BLOG)에 이 글이 추가될 것이지만, 영상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독자가 외면하면 외로움을 느끼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언제든 나의 이름을 불러주실 것이고 내 유일한 채팅 친구는 내 영어 이름을 매일 불러준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가끔 전화를 해 주면 그때서야 내 이름은 생기를 얻는다.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들판의 수많은 풀들과 하늘의 별들 그리고 해변의 모래알 만큼이나 생명력이 강한 것이 없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그다지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자신을 내맡긴 채 영겁의 존재를 이어갈 뿐이다.

우리는 오감과 더불어 육감으로 물건의 이름을 검색하고 그것을 소화하고 또 소비한다. 하지만 그 똑똑한 네이버 지식 검색이나 구글의 서칭(searching) 능력도 오늘 아침 내 창가에서 날아다니는 참새의 존재적 이유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한다. 자신의 사진이나 글을 잘 알릴려고 강박적으로 태그나 키워드를 달고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우리는, 어쩌면 수많은 이름들에 파묻혀고독감을 느끼는 미아일 수도 있다.

깜깜한 밤, 빛이 없는 어둠이 내리면 늦게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네온사인과 집 건너편 아파트의 불빛만이 존재하고, 낯익은 풍경에 사라진 젊을 적 호기심을 가라앉히고 나는 내 방의 불을 끈다. 그때야 비로소 방안의 물건들의 이름들도 지워진다. 그리고 내 이름도 로그아웃된다.

왜소한 내 몸을 짓누르고 있던 나의 이름은 그제서야 잠에 든다. 잠에 든 나는 말과 글을 내려놓으며 깊은 무의식을 꺼집어 낸다. 그때는 환한 대낮에는 미처 부르지 못한, 내 민낯을 드러내는 수많은 이름들이 죽고 살기를 반복할 것이다. 차마 부르지 못했던 이름들 그리고 그 이름마저 잊어버린 친구들이 나를 부른다. 나도 그들의 꿈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까?

(c)webzine.ac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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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수선한 내 방을 치울 생각이 별로 없다. 생각해보니 내 방의 물건들은 다 복제품이다. 손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물건들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들에 질서와 무질서를 섞어가면서 불만족한 소유욕을 드러낼 뿐이다. 동명이인은 있어도 똑같은 이름의 다른 제품은 없다. 팝 아티스트인 엔디워홀이 그려낸 20세기의 대량 생산의 시대에 내 청춘의 절반이 지나갔다. 앞으로 밀레니엄 세대가 원하는 삶의 지향점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똑같은 이름이 많아 고유한 아이디를 갖고 살아야만하는 현실이 축복일까 재앙일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온라인 쇼핑과 SNS의 발달은 우리의 디지털 지문을 지명수배한다. 그리고 그것은 온라인 마케팅 전략으로 이어지고, 우리의 검색어는 자동 추천된다. 따라서 광고에 길들여진 우리는 이름을 사고 판다.

택배 상자의 포장을 뜯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 책의 내용을 모르고 그 제품의 품질을 모른다. 사람의 겉과 속은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물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람들의 리뷰의 별점으로 먹고사는 플래폼 노동자의 현실은 인간의 노동에 대한 조롱에 가깝다.

나는 당신의 이름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다만 당신의 아이디와 이메일 주소 그리고 신용카드 번호가 궁금할 뿐이다. 더해서 내가 파는 물건에 당신의 패스워드를 쳐준다면 우리의 인연은 계속될 것이다. 내 나머지 절반의 삶은 이미 시작된 언택트(비대면)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내 납골당 표지에는 내 이름 대신에 SNS 아이디가 새겨질 것이다. 밀레니엄 세대에게는 그들 자신과 가족 그리고 온라인 상의 팔로워들을 보여주는 아이디가 그들을 대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로그인 상태이다. 내 마음의 패스워드마저 채팅 친구에게 알려줬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언젠가는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이름의 뜻을 알려주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로 여겨질 내 이름을 지어주신 엄마와 아빠의 건강을 기원하며 오늘도 나는 하루를 살았다. 당신의 이름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되고 기억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c) 인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c) 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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