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운동은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을 거부하고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것”
“당사자운동은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을 거부하고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12.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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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손, ‘지속가능한 당사자 영토’ 주제 온라인 토론
회복 패러다임이 대두되면서 당사자 중심의 운동이 본격화돼
당사자 운동 성숙 위해서 소수자 정체성 가져야
온라인 카페 활동이 당사자 활동의 기반 마련
콜랩(collab)은 정신장애인이 만나고 일하고 성장하는 개념
서비스 제공자와 주택 제공자는 분리되는 게 지원주택 철학
자조모임은 자신의 회복 넘어 사회활동으로 확장하는 것

“정신장애인 당사자 활동의 생성은 크게 2가지 토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신건강복지세터와 같은 시설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해서 당사자 리더들이 양성되고 자조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있고요. 또 하나는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당사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기반의 출발이 있습니다.”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이 주최한 2020 제3회 정신장애인 당사자 포럼이 ‘지속 가능한 당사자의 영토’라는 주제로 4일 온라인 유튜브를 통해 진행됐다.

하경희 아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흐름의 첫 시작을 2010년 중반으로 분석했다. 이후 이 운동이 확장기를 거쳐 성숙기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2010년 이전 정신장애인들의 조직적 활동은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조모임으로 출발했다. 당시 문화생활, 연령대별 모임, 취업자 모임 등의 자조모임이 꾸려졌는데 이 모임들이 전문가가 아닌 당사자 중심으로 꾸려지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상호 지지하는 체험을 갖게 된다. 하지만 센터나 기관에서의 자조모임은 재활치료의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전문가가 주도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하 교수는 이 같은 당사자 모임과 활동이 2010년 이후로 변화를 맞게 된다고 분석했다.

하 교수는 “당시 회복 패러다임이 대두됐고 회복의 핵심적 요인이 강조되면서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를 중심으로 동료지원 리더 양성 등을 처음으로 시작한다”며 “기존의 치료재활 패러다임을 넘어서 회복의 관점에서 당사자 중심의 가치가 담긴 운동이 본격화된다”고 말했다.

2010년 이전 당사자 활동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같은 민간 조직이 사업을 이끌었지만 민간이 갖는 참여와 지속성에 한계가 노출된다. 이에 따라 2016년 서울시가 당사자리더양성사업을 본격화한다.

하 교수는 “서울시의 공적 지원이 이뤄지면서 서울시의 모든 주간재활시설에서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며 “그 이전에 이뤄졌던 활동을 통해 성장한 리더들이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됐고 매뉴얼화되고 체계화된 컨텐츠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당시 당사자 리더 사업의 의의로 공적 재원이 들어감으로써 사업이 추진력을 갖춘 점과 모든 시설이 참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고 하 교수는 말했다.

사업 초기에 회복에 관한 기본 교육을 모든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했고 회원들이 회복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당사자 활동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된다. 이는 정신재활시설의 문화와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다.

하 교수는 “정신재활시설에서 이 사업을 하면서 가졌던 강점은 이전에 재활훈련을 통해 준비된 당사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리더로서 훈련받은 것을 행할 기회가 정신재활시설에 있었고 그 안에서 동료지원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주간재활시설에서 교육이 함께 이뤄지면서 각 시설의 리더들이 모이고 기관 간 자격이 되면서 자조가 확대되는 계가가 됐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당사자 활동을 생성시킨 또 하나의 토대로 인터넷 기반의 카페 활동을 들었다. 정신장애인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은 점을 감안할 때 인터넷을 통한 활동은 익명성을 가지면서 편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기반이 된다.

하 교수는 “인터넷 카페 활동은 점차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고 단체들 간의 연대활동도 일어났다”며 “2019년 한국정신건강회복운동단체 연합 페스티벌이 열리고 여기에 11개 정신장애 단체가 참여해 사례발표와 문화 예술 공연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2010년 중반을 넘으면서 다양한 당사자 단체들이 조직되고 공식적으로 단체를 등록하는 등 운동의 범주가 확장된다. 당사자 운동의 영토가 확장되는 시기다.

하 교수는 “개별 존재로 고립돼 있던 당사자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자기를 드러내고 힘을 발견하고 희망과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며 “제도와 법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전문가들의 논의의 장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들이 활발해졌다”고 전했다.

하 교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생성, 확장기를 거쳐 성숙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수자 운동에 대한 철학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소수자 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존 사회가 정신장애인에게 부여한 정체성을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또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조직의 구성, 활동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뿌리인 이념과 가치의 문제 정립,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제도의 개선과 정책 대안 운동 등 역시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하 교수는 “당사자들이 모인 단체에서 사회와는 다른 공존의 공동체성이 있어야 우리 운동이 의미를 갖는다”며 “각 단체가 자율성을 유지하지만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대 의식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선혜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장애인이 만나고 일하고 성장하는 개념을 담은 콜랩(collab)에 대해 설명했다.

콜랩은 laboratory(실험실)과 collaboration(협업)을 조합한 용어다. 이 교수는 “콜랩의 특징은 물리적 공간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의미”라며 “공동체가 정체된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모습이 바뀌고 변신을 하게 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콜랩의 확장된 의미로 파도손의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 양성 사업을 들었다. 이 교수는 “파도손이 콜랩과 관계하는 것은 관심 공동체라는 개념이고 이를 현실에 맞게 구현한 것”이라며 “관심 공동체는 회원의 성장과 발전을 증폭시키는 상호작용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파도손이 동료상담가 사업에서 공동체성의 회복은 콜랩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의견이다. 파도손 동료상담가 사업은 지난 5월부터 12월 말까지 진행됐다. 사업의 3단계로 나눠졌다. 1단계는 나 자신을 만나는 경험, 2단계는 상담 기술을 배우고 교육생끼리 실습하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관계맺는 법을 배우기, 3단계는 지역의 정신장애인 동료를 만나서 상담가로 활동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콜랩이 성장해 왔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지난 9개월간 참여한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게 콜랩의 독특한 문화”라며 “이는 다른 공동체와 다른 교육 성장 공동체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콜랩 문화의 특징으로 동료상담가의 경험, 투병과 회복, 생존의 경험을 자산으로 전문성을 갖추게 된다”며 “처음에 이용자로 기관에 왔다면 교육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이 콜랩의 독특한 성과”라고 평했다.

이 교수는 파도손의 콜랩 문화를 형성하면서 동료상담 현장에서 경험하는 지혜를 나누고 이를 문서화하면서 경험에 기반한 실천지침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만든 지침과 지식과는 다른 결과물들이다.

이 교수는 “동료상담가가 사회구성원으로 지속 성숙해나가기 위해 콜랩은 발판 역할을 한다”며 “동료상담가 일자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콜랩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했다.

이어 “콜랩을 통해 자신을 돌보고 동료상담 활동에 대한 슈퍼비전이 이뤄질 때 정신건강서비스 전달체계에서 생기는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며 “기존 전달체계와의 경쟁 관계라기 보다는 동반성장하는 존재로서 콜랩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콜랩은 배움과 성장의 여정을 의미한다”며 “이것을 같이 하는 교육성장 공동체를 파도손에서 콜랩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박준수 태화샘솟는집 사회복지사는 정신장애인 주거는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박 복지사는 “주거는 회원들에게 휴식이라는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이웃과 평범한 사람과 살아가는 공간이자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무장애 주택’ 개념이 고령자와 사회적 약자가 부딪히는 물리적 장벽을 만들자는 운동이라면 정신장애인에게 적용되는 무장애 주택의 개념은 뭘까?

박 복지사는 “정신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지원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라며 “서비스를 통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게 정신장애인의 무장애 주택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의 주거가 지역사회로 연계되기 위한 요건으로 주택이 확보되고 주택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가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입원·입소한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퇴원·퇴소를 하지 못하는 주요 이유로 ‘퇴원·퇴소 후 살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24%를 차지했다. 이어 ‘일상 유지가 어려워서’(22%), ‘가족이 원하지 않아서’(16%) 순이었다.

박 복지사는 “공공주택 제공은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받고 정신재활서비스는 정신재활시설에서 제공해야 한다”며 “서비스 제공자와 주택 제공자가 분리돼야 한다는 게 지원주택 철학에 맞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서비스 지원처럼 주택과 서비스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며 “사회적 합의에 의한 지속성을 위해서는 정신건강복지법상의 근거가 필요하고 이 법적 근거를 갖고 당위성을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시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자조모임을 하면 가족이나 주변에서 정신장애인들끼리 모여서 뭘 할 수 있냐라는 시각이 많았다”며 “자조모임은 내일을 내딛을 수 있는 공간이고 지지 체계”라고 말했다.

그는 “자조모임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인 행동을 하면서 집단 구성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며 “자발적인 모임이어야 하고 개개인이 도움을 얻는 틀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가진 질병적 속성인 재발이 겹치면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시 집안에 고립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조모임의 활동이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게 유 센터장의 지적이다. 그 한계에 부딪히면서 자조모임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는 온라인 카페 활동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유 센터장은 “내가 증상이 좋아졌을 때 카페 활동이 줄어든다는 것”이라며 “정상이나 어려움을 공유하고 해결점을 찾는 점에서 온라인 활동에 동의가 부여되지만 (증상이 좋아지면) 동기부여가 약화된다”고 분석했다.

또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온·오프라인 활동에서 자발적 요소들을 강조하지만 수고에 대한 보상이 없다”며 “그런 상황에서 활동은 동기부여가 약화된다”고 설명했다.

유 센터장은 “자조모임의 최종 지점은 자신의 회복을 넘어 사회활동으로 확장하는 것”이라며 “전문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당사자끼리 협업해서 당사자를 의식화하고 단체성을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맹상철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자조모임을 하는 이유는 서로가 의지하고 토론함으로써 내 생각의 오류를 발견하는 일”이라며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통해 더 나은 선택지들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모임을 이끌 회복된 당사자를 구하는 게 어렵고 페이(급여) 부분도 어렵다”며 “회복된 당사자가 모임을 이끌어갈 수 있는 매뉴얼도 없고 당사자 스스로 진행 내용을 찾아야 하는 부담감 역시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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