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예술에 의한 슬픔은 예술에 의해 치유돼...예술가에 접근하는 정신치료
[이관형 기자의 변론] 예술에 의한 슬픔은 예술에 의해 치유돼...예술가에 접근하는 정신치료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2.26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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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예술을 통해서 표현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 감정을 표현하고, 사회와 현실, 시대 상황을 담아내기도 하죠. 글이나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요. 뿐만 아니라, 예술은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당사자라면 한 번쯤은 미술치료, 음악치료, 연극치료 같은 단어를 들어봤거나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술은 당사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정신 건강과 예술은 더욱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예술과 정신질환의 영향을 나타내는 한 논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정의경은 2016년, 음악논단(音樂論壇)이라는 학회지를 통해 “19세기 프랑스와 독일의 정신질환 치료가 예술가에게 미친 영향 : 로베르트 슈만과 테오도르 제리코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논문에는 제목처럼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과 미술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예술가라는 사실 외에도, 극심한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약 19세기 유럽인으로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점도 공통점으로 볼 수 있고요. 다만, 슈만이 입원했던 독일의 병원과 제리코가 치료받은 프랑스 병원의 의료 체계와 관점은 달랐습니다.

출처 : BBC
출처 : BBC

먼저, 음악가 슈만은 환청으로부터 시작해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음악이 환청으로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정도가 심해져서 잠도 못 잘 정도의 고통에 시달렸죠.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했던 슈만은 라인 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고, 자신이 가족을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만삭의 몸이라 걱정이 더했습니다. 결국 1854년 3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차로 8시간 거리에 위치한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프란츠 리처즈'라는 의사가 운영하는 개인 병원이었죠.

독일 의사 프란츠 리처즈는 슈만의 정신질환 원인이 음악의 외적 자극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불안 상태를 야기하는 모든 자극으로부터 환자를 분리시키는 것이 환자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라는 주장에 근거한 ‘격리 이론’을 적용시켰습니다.

의사는 음악가였던 슈만에게 작곡은 물론, 악보를 쓰고 고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것조차 흥분 상태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했죠. 뿐만 아니라, 외부인과의 접촉이 회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지인은 물론 아내와의 면회도 금지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슈만은 금식을 통해 불만을 나타냈고 병은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입원한 지 2년 반 만에 사망에 이르렀죠.

 

출처 : 위키백과
출처 : 위키백과

반면, 화가 제리코는 이른 나이부터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작품에 대한 집착적 성향도 갖고 있었죠. 이러한 집착적 성향은 그의 데뷔작이자 명작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메두사 호의 뗏목>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는 이 그림을 사실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 실제 뗏목을 제작하기도 했고, 그 위에 사람 모양의 밀랍 인형들을 싣기도 했습니다.

또한 뗏목 위에서 죽어나간 시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병원에서 실제 시체를 가져와 부패 과정을 지켜보며 색감을 조율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배경이 되는 메두사 호의 사건을 파헤치고 조사하다 보니, 그 충격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되죠. 

<메두사 호의 뗏목>이라는 그림은 1816년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세네갈의 한 항구를 점령하기 위해 전함을 개조한 메두사 호를 파견했습니다. 이 배는 항해 중 암초에 걸려 좌초됐고, 400여 명의 승객 중 선장과 귀족, 장교 등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먼저 구명정을 타고 배를 탈출했습니다. 배에 남은 노동자와 군인, 선원 등 152명은 좌초한 배의 돛대와 나무 조각들을 모아 큰 뗏목을 만들어 그 위에 몸을 실었습니다.

처음에 선장은 구명정과 뗏목을 밧줄로 연결해 육지까지 실어 나르기로 했습니다. 이내 파도가 거세지고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자, 선장은 줄을 끊어 달아났고, 결국 뗏목은 바다 한가운데에 표류하게 됩니다.

여러 날이 지나며, 뗏목 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공포, 병으로 인해 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하급 군인들의 반란도 일어나고, 약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기도 했죠. 심지어 극심한 배고픔으로 죽은 사람의 인육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주가 지난 후, 지나가던 선박에 의해 뗏목이 발견되었는데, 생존자는 15명에 불과했습니다.

제리코는 이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잔혹성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뇌하게 된 것이죠. 결국 고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던 제리코는 1819년 정신질환이 발병돼 '에티엔느 장 조르제'라는 프랑스 의사에게 치료를 받게 됩니다.

프랑스 의사 조르제는 앞서 소개한 슈만의 독일인 주치의와 치료 접근 방법이 달랐습니다. 오히려 미술을 치료의 수단으로 사용하였죠. 화가 제리코로 하여금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때, 제리코가 그렸던 10여개의 작품들은 <도박에 미친 여인>, <질투에 미친 여인>, <도벽 환자의 초상> 등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신질환자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였습니다. 이 작품들은 정신질환자 시리즈로 불리면서, 대중성이나 예술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리코가 정신질환을 갖게 된 원인이 <메두사 호의 뗏목>라는 미술 작품이었다면, 그를 치유하게 했던 과정도 미술 작품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제리코의 내면 속에 있던 인간의 잔혹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 어두운 광기를 담아 두지 않고, 미술작품을 통해 표출함으로서 해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표현했던 작품들이 어둡고 잔혹하고 광기로 뒤덮였지만, 어쩌면 그것은 내면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치료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자서전 <바울의 가시>를 썼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학창시절 폭력과 왕따, 입시 경쟁을 통해서 많은 상처와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십 년이 넘게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제 안에 쌓였던 우울과 어둠, 악한 감정들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죠. 그대로 놔두면, 영혼과 마음까지 집어삼켜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내면의 어둠과 상처를 꾸밈없이 글로 표현했습니다. 아프고 수치스럽지만 글로 써서 책까지 출판했죠. 그렇게 토하듯이 모든 걸 내뱉고 나니, 제 마음에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제 아픈 이야기는 책에 오래도록 기록되겠지만, 제 영혼과 마음에는 더 이상 상처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음악과 미술, 문학과 같은 예술활동은 우리 내면을 표현하고 표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물론, 늘 밝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작품만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어둡고, 슬프고, 우울한 작품을 만들 때도 있어야 하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좀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말과 언어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 볼 때, 사람 관계나 직장과 학업에 있어서도, 늘 아름답고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당히 화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조금은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도, 내면을 건강하게 하는 또 다른 예술의 표현이니까요. 내면을 감추며 착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면을 솔직히 표현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건강한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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