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지원 이념 상실한 서비스는 껍데기에 불과...당사자주의의 우선순위는 당사자”
“동료지원 이념 상실한 서비스는 껍데기에 불과...당사자주의의 우선순위는 당사자”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5.21 2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사자 중심 조직에서 우선 순위는 반드시 당사자 돼야
당사자주의는 억압에서의 해방과 자기결정권 운동
당사자중심주의 철학 없으면 이익 우선시하는 조합주의로 빠져
파도손에서 일하면 당사자·비당사자 구분 없는 모두 노동자
지속가능한 당사자 단체 모형은 재원 확보와 투명한 조직 문화
당사자 자기결정권 보장되고 이해단체가 의사결정해서는 안돼
효율성과 능력주의만 앞세우면 당사자 단체 목적 잃게 돼

한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의 정체성인 당사자성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그리고 생물학적·의료적으로 정신장애 진단명을 갖고 있는 이가 생의료 모델을 적극 지지하고 강제적 약물치료와 강제입원에 동의한다면 그는 과연 당사자성을 갖춘 주체로 볼 수 있을까?

이처럼 당사자 중심주의를 포함한 당사자성의 정치적 의미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21일 유튜브로 진행됐다.

이날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과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정하 정신장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서구사회가 탈원화를 시작할 때 한국은 수용이 시작됐다”며 “이는 역사적 맥락이 다른다”고 진단했다.

서구사회 탈원화 시기에 한국은 수용화 시작

이 대표는 1970년대 미국의 당사자 운동가이자 사상가인 쥬디 챔벌린의 책 ‘우리 스스로(On our own)’를 대상으로 파도손 회원들과 토론 과정을 거쳤다. 그는 “챔벌린의 인생과 메시지를 공부하는 건 활동가들의 의무”라며 “이는 한국 정신보건 시스템이 미국의 1970년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정신장애인이라고 칭하는 사람은 그것이 정체성이 된다”며 “자신을 무엇으로 정의내리느냐가 우리 삶의 운명을 결정하는 첫 단추가 된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장애인 당사자주의는 장애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장애인의 권리, 통합과 독립, 자기결정을 지향하는 장애인 당사자 주도의 장애인 운동이다.

세계적으로는 당사자를 이르는 명칭은 소비자 개념과 서바이벌(생존자) 개념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그는 “이건 또 하나의 정체성”이라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정체성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생존자 운동은 차별을 주는 사회를 바꾸라는 목소리가 높고 이 주장에 시민사회가 참여해 함께 변해간다. 일본은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들에게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어떨까. 현재 정신보건과 관련된 다양한 단체와 직군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서비스 제공자들은 자신의 권익을 지켜줄 기관과 단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또 신체장애인들은 장애 영역별로 당사자 단체를 구성하고 있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통한 그들의 권익옹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 피해자를 구제하고 있고 그 결과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공급자의 지위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의 시작은 정체성에서 출발

하지만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역사가 10년에 불과하다. 당사자 단체 또한 극소수다. 정신장애인 운동은 복잡하고 억압의 구조가 굉장히 다층적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중요한 주제는 당사자운동의 영역이 이제 공급자의 위치로 오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당사자 단체를 표방하는 단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보조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의 보조금이 없었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며 “보조금이 집행되면서 당사자 단체의 혼란이 오게 된다”고 전했다.

현재 서울시 보조금의 지원 센터 기준에 따르면 센터장 외 직원은 정신장애 당사자가 한 명이 포함되는 걸 기준으로 한다. 한 명만 뽑으면 되는 것이. 당사자 고용이 우선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예산의 분배는 좋은 의도이지만 제대로 사용되지 않을 경우 잘못된 단체에 의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게 그의 우려다.

이 대표는 “파도손은 역량이 될 때 보조금 받고 책임질 수 있을 때 일을 시작했다”며 “국민 세금을 갖고 충분히 일해서 우리가 도움되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그런 사회적 책임이 지켜지지 않고 당사자 센터가 늘어나고 있다”며 “건강한 당사자 단체가 성장 못 하고 갈등하게 되고 결국 정신장애 운동을 갈라놓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파도손의 원칙은 재원이 생기면 당사자에게 먼저, 돈이 생기면 당사자 먼저다”라며 “당사자 중심 조직에서 우선순위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당사자 단체의 정체성으로 당사자 중심주의, 자기결정권과 협의를 통한 결정, 운동성, 철학, 역동성, 유연성, 독립성, 소속감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당사자 중심주의 철학과 해방 철학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조합주의에 빠지게 된다”며 “조합주의는 자기 집단에는 이익이 되지만 공동체 전체에는 이익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사자 단체의 설립과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당사자의 의식화를 지목했다.

당사자 단체 정체성은 당사자중심주의

“의식화를 통해 깨달아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어려움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 동료지원가들이 철저하게 배우는 건 당사자에 대한 책임이다.”

이 대표는 지속가능한 당사자 단체의 모형은 역량 강화 모델과 재원의 확보, 투명하고 정직한 조직 문화,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 회의를 통한 결정과 역할 분담, 연대를 위한 신뢰감과 진실성이다. 특히 당사자 직원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필수적이라고 그는 밝혔다.

양은창 파도손 절차보조사업단 팀장은 “절차보조사업에서 나의 역할은 동료지원가가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지 전문가는 내가 아니다”며 “동료지원 전문가는 당사자”라고 강조했다.

양 팀장은 “저는 제 역할을 행정 및 회계에만 한정하고 동료지원이나 현장 일에는 간섭하지 않았다”며 “동료지원가의 역할에 대해 모든 것을 믿고 맡겼다”고 전했다.

비(非)정신장애인이면서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인 그는 “사회성이 뛰어난 당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대상자가 아니라 동료로 다가왔다”며 “일하다 보니 당사자와 비당사자 구분 없이 다 같은 노동자이자 월급쟁이였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 단체의 비전은 직업적 가치관이 파도손에서 당사자들이 추구하는 이념과 부합한다”며 “저는 파도손의 동료지원가 지원을 통해 부족했던 당사자 중심주의를 배워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현재 우리나라에 재활시설이 400개, 주간재활시설이 80개 있고 30인 이상의 시설에는 재활보조활동가를 쓰게 돼 있다”면서 “그러나 조사해 보니 당사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경우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는 전국 100여 개 시설에서 당사자를 직원으로 써서 기관의 눈높이를 맞추고 당사자와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주간재활시설 자체도 우리 당사자들을 불신임하는데 다른 데 가서 당사자를 취업시키려고 한다면 타 기관들이 받아주겠나”라고 말했다.

정신재활시설 등에서 당사자 고용해서 함께 가야

이 정책위원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그룹홈에서 당사자들과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복지법 상에 규정된 사회복지사가 저녁 당직을 서야 한다는 지침을 거부하는 운영 철학을 밝혔다. 보건소에서 당연히 경고가 들어왔다.

그는 “저녁에 자유롭게 놔두는 게 자유”라며 “처음부터 직원 없이 스스로 해 보게 하면 그룹홈이나 주거시설이 다 성곻라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고 밝혔다.

박정현 경남당사자모임 온새로미 회장은 “파도손이 하는 동료지원상담가, 절차보조사업 프로그램은 당사자 관점에서 조각난 삶의 연결 지점을 재조명하고 새롭게 구축할 수 있게 했다”며 “정부와 전문기관에 의해 편파적으로 규정된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고 이해단체에 의해서 당사자의 의사결정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며 “당사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적지지 역할을 할 뿐 단체는 최종적 선택권자가 당사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영일 대전당사자모임 대표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는 보호자 단체, 치료, 보호 및 재활단체와 다른 독특한 형태의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다”며 “당사자 단체는 당사자들에게 부담감이나 저항감 없이 접근하기 편한 동질의 그룹으로 인식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이 당사자 단체를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지역사회 주체들이 정신장애인들을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케어해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고 관리하거나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혐오와 배제의 시각을 바탕으로 단기 성과주의를 목표로 해 관리적인 대응만을 지속하는 것은 점점 관리 대상이 늘어나는 걸 의미할 뿐”이라며 “시각을 바꿔 당사자 단체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과주의 아닌 존중이 필요

그러면서 “치유의 경험이 있는 당사자는 사정을 달리하는 이익단체들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케어를 제공할 수 있다”며 “정신질환에서 벗어난 이들이 숨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타나 사회에 기여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미루 부산침묵의소리 회장은 “침묵의소리 비전은 정신장애인 동료들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 당사자주의로 협력·연대하는 것”이라며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동료다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 문화·예술 활동을 개발해 당사자 단체의 활성화를 이끌어야 한다”며 “반박 논조를 피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생산적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주상현 보건의료노조 서울시 정신보건지부장은 “당사자가 원하는 정신보건 관련 노동자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는 노동자”라며 “위기 지원은 당사자 입장에서 출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사자성을 갖고 중심 역할을 하는 단체가 중심이 잘 잡혀져 있으면 좋겠다”며 “당사자를 위한 공익을 추구하는 단체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라며 “당사자 단체의 정체성을 발전시켜서 누가 아팠든, 그가 치료되면 어디든 다 취업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료에서의 당사자 중심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구조라면 사회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며 “당사자 중심주의를 현실화시켜 활동가들이 당사자 위기 지원을 안전하게 존중하면서 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송승연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연구원은 영국의 당사자 활동 사례를 들어 문제를 제기했다.

영국은 한국보다 30년 정도 빠른 시점에서 정신장애 동료지원가를 채용해 왔다. 영국은 동료지원가를 공식적인 정신건강 서비스 체계로 많이 고용했다.

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정당한 급여...치유되면 어디든 취직할 수 있어야

송 연구원은 “그런데 앨리슨 포커너라는 한 당사자는 정신건강복지체계를 통한 고용 과정에서 동료지원가가 가지고 있던 핵심 요인인 경험적 지식과 동등하고 신뢰적인 관계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 동료지원가들은 병원의 의료적 치료 준수를 장려하게 되고 통제와 강박에도 동료지원가가 참여하는 결과를 낳는다. 송 연구원은 “이것이 동료지원가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단순히 진단명을 가진 이가 전달하는 모든 서비스가 동료지원이라가고 정리하는 게 맞는가”라며 “동료지원 이념을 상실한 서비스는 껍데기만 동료지원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물학적·의료적 당사자로 승인받았을 때 그 당사자가 생의료 모델을 굉장히 지지하고 강제적 약물치료와 강제입원에 동의한다면 그는 과연 당사자일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효율성에 맞춰지면 당사자주의 목적 잃게 돼

그는 “당사자주의는 집단화되지 않은 소수자에서 집단화된 소수자로 전환되는 과정”이라며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고 본인의 사회적 정체성에 입각해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당사자가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당사자 이념에 공감하는 모든 이들이 당사자운동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송 연구원은 “고민할 부분은 효율성의 논리와 능력주의를 벗어나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에 적합한 근무 환경과 정당한 편의 제공이 필요하다”며 “비당사자 중심의 업무 능력, 실적 위주의 효율성에만 맞춰지면 당사자 단체 본연의 목적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사자성이 중심되는 생선 문화를 위해 권력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과 논의가 필요하다”며 “실적과 효율성 위주로 사업이 되면 관료주의로 변질되고 만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유튜브로 다시보기할 수 있다(아래 영상 클릭).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