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후 정신질환 시작됐고 제대 후 조현병 진단…法 “국가 과실 아니다”
입대 후 정신질환 시작됐고 제대 후 조현병 진단…法 “국가 과실 아니다”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1.06.3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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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의가사 전역 안 시켜준 게 군부대 잘못으로 보기 어려워”
권익위 “질병 전역자에 국가 증명 책임 강화하고 직무관련성 폭넓게 인정해야”

군 제대 후 조현병 진단을 받고 생활하다 복막염으로 사망한 경우 국가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는 군 복무 중 정신질환이 발병하고 가혹 행위를 받아 악화된 경우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과 배치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8일 서울고등법원 민사34부(재판장 구자헌 부장판사)는 사망한 A씨의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06년 신체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고 육군에 입대했다. 입대 후 일주일 후부터 A씨는 지속적으로 흉통 및 어지러움, 환청, 피해망상 등의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군의관들은 A씨에 대해 ‘경도의 우울, 불안 등을 호소하고 있고 적응장애 등의 평가를 위해 외부병원 진료와 진료 휴가가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08년 만기 전역했다. 하지만 같은 해 조현병 진단을 받고 6년 뒤인 2014년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다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A씨는 유족은 “입대 후 심한 정신질환이 시작됐음에도 A씨를 의병 전역시켜주지 않아 정신질환이 악화된 상태에서 제대했다”며 “독한 정신과 약으로 인해 통증을 호소하지 못한 채 복막염으로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의병 전역 시켜주지 않았던 점이나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조현병을 진단하지 못한 것에 소속 군인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거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A씨는 자대에 배치된 이후 여러 차례 군 병원과 민간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거나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A씨의 진료기록을 감정한 감정의 역시 군부대 관계자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판단했다”며 “의병 전역 시켜주지 않았던 것에 잘못이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같은 판단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직무관련성과 정신질환의 상관성이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권고와는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익위는 지난 13일 군 복무 중 정신질환 증상이 발병했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오히려 구타 등 가혹행위를 받아 더 악화된 경우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권익위는 최근 3년간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 대상자 요건 심사 결과를 점검하고 이 같은 사례 등 인정이 필요한 13건에 대해 재심의할 것을 국가보훈처에 권고한 바 있다.

권익위에 따르면 B씨는 1979년 군 복무 중 정신적 장애가 발생했지만 군부대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고 부대 의무관은 “심한 육체적 작업을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소견을 냈다.

이후 B씨는 의무실에 입대해 두 달 간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퇴원 후 훈련 도중 선임병으로부터 총기 개머리판으로 구타를 당해 다시 정신질환이 악화됐고 결국 1980년 8월 의병 전역했다.

B씨는 조현병과 관련해 2005년 1월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공상군경 등록을 신청했다.

당시 국가보훈처는 이 질병에 대해 객관적 입증을 할 수 없다며 공무 관련 질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권익위는 “B씨가 조현병 진단 이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구타를 당하는 등 육체적·심리적 외상 경험이 정신질환 악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며 “국가보훈처가 이런 심리사회적 요인을 배제하고 요건을 심사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권익위는 이어 “군 복무 중 질병이 발병했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악화됐다면 질병 전역자의 입증 책임을 다소 완화하고 국가 증명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며 “질병 발병 및 악화와 관련한 직무관련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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