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큐리티 통치’와 정신장애인 기본법…정책을 넘어 정치의 문제로
[기고] ‘시큐리티 통치’와 정신장애인 기본법…정책을 넘어 정치의 문제로
  • 전근배
  • 승인 2021.07.02 1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근배 대구대학교 장애학 박사과정생·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기고
펜데믹은 동료시민 범주에 속하지 못한 존재의 취약성 드러내
정신장애인 인권 논의는 시큐리티 통치 전략에서 후퇴 반복
정신장애인 핍박하는 정책이 인권의 이름으로 공포돼
당사자운동은 복지 요구를 넘어 국가 전략에 대한 저항

팬데믹은 ‘동등한 인간’ 혹은 ‘동료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존재의 사회적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어느 지방의 폐쇄병동에서 20년 간 격리 수용되어 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정신장애인 아무개의 삶은 ‘공동체’ 경계 바깥의 존재가 얼마나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는지 보여주었다.

공동체는 특정 감염병과 종교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으려 애썼지만 그를 ‘치료’와 ‘보호’의 명목으로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고 가두어 두었던 것은 바로 그 공동의 권력이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이 점진적으로 증진되고 있다고 하지만, 장기입원 및 재입원 등 격리 수용과 분리조치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적 관행은 여전히 큰 변화가 없는 상태이며 정신장애인을 향한 차별과 편견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국가인권위원회, 2021).

치료 명목으로 정신장애인은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나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이 오래된 재난은 비단 수용시설이나 폐쇄병동이라는 물질적 공간에 의한 혹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들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신장애인은 ‘정신질환자’라는 하나의 사회적 역할을 기대 받고 있다(김문근, 2016).

‘질환’이라는 규정은 개인‧의료적 접근을 팽배하게 만들고 그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권한과 그 권위를 강화하며, 특수한 존재들이 겪는 ‘이상한’ 개인의 속성으로 삶의 문제를 치부한다.

이런 문화가 고도로 구조화된 공간이 병원이며 그것이 정신장애인에 관한 유일한 인식이기에 당사자는 병원 문밖을 나선다 해도 온 지역사회가 병동이나 다름없음을 느낀다.

또한, 이 문화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가령, 비이성적, 비합리적, 무능력한, 위험한, 회복 불가능한 등)을 통해 그것을 지녔다고 진단된 이들의 인권을 개인의 문제를 넘어 공공의 문제로 논의하기 어렵게 만들며, 비록 공론화된다 하더라도 그 방향이 당사자를 오히려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사실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논의의 중심에는 늘 ‘시큐리티 통치’가 있어 왔다. 정정훈(2014)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가 단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가 잉태한 배제된 대중들을(즉, ‘쓸모없는 인간들’) 사회의 ‘위험 요소’, ‘위험한 계급’으로 통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배제된 대중을 위험 요소로 통치

배제된 자들은 더 이상 동의를 구해야 하거나 동의를 조직해야 할 대상 혹은 통치할 대상에 속하지 않으며, 언제나 헤게모니 바깥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런 시큐리티 통치는 발전할수록 강력한 국가권력이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행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보다, 강렬한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이 자신의 안녕을 위하여 보다 강력한 통치를 지지하고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통치의 전략 안에서 정신장애인은 ‘정신질환자’라는 환자 역할과 대중의 공포나 연민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된 정신질환자’ 역할을 감내하며 당사자 스스로 자신의 몸의 경험에서 소외되고, 적극적으로 공동체에서 배제됨으로써만 국가의 영역 안에 포섭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관한 논의는 그 추상적 수준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으며 구체화하면 할수록 정신장애인의 인권이 마치 공공의 치안 문제와 충돌하는 것으로 전제하는 시큐리티 통치가 만들어 낸 효과들과 대결에 놓이게 된다.

정신장애인을 핍박하는 정책이 공공연히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공표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그것이 군부독재 정부이든 민주정부이든지 간에 정신장애인에게는 변함없이 하나의 통치만이 있어 왔으며,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관한 논의는 시큐리티 통치 전략 안에서 그때 그때 나타나는 현상과 감응에 따라 진전, 유보, 후퇴를 반복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2017년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전면 개정되었음에도 현실의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령의 아버지가 조현병을 가진 딸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 파도손 등 당사자 단체들이 국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6월 28일.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포항에서 고령의 아버지가 조현병을 가진 딸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 파도손 등 당사자 단체들이 국가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6월 28일. (c)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조현병을 지닌 사람이 평균 입원하는 기간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2016년 기준 평균 50일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평균 303일에 달한다. 법 개정 이후 입원제도 변화로 평균 기간이 215일로 감소하였지만, 입원환자 수는 2016년 6만9162명에서 2018년 6만6523명으로 사실상 변화가 없다.

선진국들이 입원 병상을 줄이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병상 수가 늘어나고 있다.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 포함)에 지출되는 국가 재정은 정신의료기관 진료비가 연간 4조 2천억 원에 달하는 반면, 지역사회 서비스를 위한 지출은 1,890억 원에 불과하다(권오용 외, 2018).

정신장애인이 다른 모든 유형의 장애인에 비해 2배에서 11배의 높은 수준의 배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박지혜, 이선혜, 2016).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은 정신장애인의 정신과적 특성을 이유로 관련 복지 정책의 대상에서 애초부터 이들을 배제한다.

‘중증정신장애 국가책임제’, 장애인복지법 제15조 전면 폐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신장애인의 인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제안이 이뤄지고 있다.

나는 최근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을 비롯한 10개 정신장애인 및 관련 단체가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가족단체 연맹’을 결성해 요구하기 시작한 정신장애인 기본법 제정 움직임이 특히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 기본법 제정 움직임에 주목해야

기자회견에서 이정하 파도손 대표는 정신병원 수용만이 유일한 대책이 되어 있는 정신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폭로하였으며, 박목우 활동가는 자신들의 요구가 ‘관용을 베풀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등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신장애인은 더 이상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돼 시설에 갇힌 채 일생을 보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권을 유린당해도 좋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권리를 가진 존재다”, “우리는 침묵 당하는 정신장애인이 존재하지 않을 날까지 싸울 것”이라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한낱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말하고 있다.

그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장애인의 복지 공백을 메워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엄밀히 말해 그러한 바깥 지대를 포장만 바꾼 채 유지시키고 창출해 왔던 국가의 전략에 대한 저항이며, 그러한 정치가 기반하고 있는 ‘영역 안’에 속한 이들이 말하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모순에 대한 공격이다.

그래서 이름도 ‘기본’법인 것은 아닐까. 비록 법률 용어와 정책의 이름으로 주장이 표현될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뿌리로 하고 있는 매우 근본적인 그래서 가장 급진적인 그 문제 제기에 존경과 연대를 보내고 싶다.

<참고자료>

국가인권위원회 (2021). 정신장애인 인권 보고서. 국가인권위원회.

김문근 (2016). 상징적 상호작용론과 정신장애의 이해. 이엠(EM)커뮤니티.

정정훈 (2014). 인권과 인권들-정치의 원점과 인권의 영속혁명. 그린비.

권오용, 오현성, 김민, 최희승, 박인환, 김혜성, 박동진, 이성아, 신수민, 천지향, 김혜영, 신승희 (2018).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치료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박지혜, 이선혜 (2016).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배제에 대한 위험 추정: 타 장애집단과의 비교. 사회복지연구, 47(4), 361-388.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