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신장애인이 집에 불 질러 옆집까지 탔다면…보호의무자인 아버지가 배상해야
[단독] 정신장애인이 집에 불 질러 옆집까지 탔다면…보호의무자인 아버지가 배상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8.11 21:4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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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타인을 위해할 가능성 인지하고도 대비 안 했다면 배상 타당”
정신건강복지법, 정신장애인 보호 의무 가족에만 전가…국가 책임 방기

정신장애인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옆집에 불이 옮겨붙어 손해를 끼쳤다면 보호의무자인 아버지가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재판장 대법관 노정희)은 지난달 27일 선고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불을 지를 수 있다는 구체적 위험을 인지했는데도 보호의무자가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은 배상의 이유가 된다고 판결했다. 피고의 상고는 기각됐다.

인천에 거주하는 A씨는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정신장애3급)를 가진 아들 B(33)씨와 지난 2016년 7월 자신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수리 문제로 말다툼을 벌였다. 화가 난 B씨는 아파트로 돌아와 오후 4시경 자신의 방 침대 위에 수건과 헝겊을, 부탄가스를 쌓아두고 불을 질렀다.

A씨는 사무실에 설치된 퍠쇄회로TV(CCTV)를 통해 불이 난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 불을 끄고 B씨를 안정시킨 후 다시 사무실로 나갔다.

오후 8시경 귀가한 A씨는 B씨에게 “6개월 정도 같이 살다가 원룸을 따로 얻어주겠다”며 진정시켰지만 B씨는 둔기를 꺼내 A씨를 위협한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다시 불을 질렀다. A씨가 불을 끄려고 했지만 B씨가 둔기를 들고 위협해 불을 끄지 못하고 소방서에 신고했다.

화재 후 밤 10시경 불이 옆집인 C씨의 아파트에 옮겨붙으면서 집안 가재도구가 일부 탔다. C씨를 비롯한 가족 2명은 연기를 흡입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원심은 A씨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인천지방법원은 2018년 4월 당시 판결에서 B씨가 정신적 불안 증세를 보인 만큼 보호의무자인 A씨가 아들의 우발적 행동을 미연에 방지해야 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A씨가 대비를 게을리해 감독상의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A씨가 C씨에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했다.

판결 이유는 사건이 발생한 2016년 당시 구 정신보건법에 근거했다.

구 정신보건법 제21조 제1항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민법상 부양의무자나 후견인이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가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22조 제2항은 보호의무자는 정신질환자가 자·타해를 하지 못하게 감독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민법 제755조 제1항도 정신질환자가 심신상실 중에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보호의무자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게 명시했다.

대법원은 “감독의무는 정신질환자의 행동을 전적으로 통제하고 그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방지해야 하는 일반적 의무가 아니다”라며 “정신보건법의 취지, 신의성실의 원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의 의무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보호자인 정신질환자가 타인을 위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구체적인 위험을 인지하였는데도 대비를 하지 않은 경우와 같이 타당한 객관적 상황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원심에 비춰봤을 때 A씨는 B씨가 타인을 위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구체적인 위험을 인지했는데도 대비를 하지 않아 (그에 대한) 타당한 객관적 상황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정당하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A씨는 C씨가 입은 손해액 3천300여만 원 중 C씨가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보험금 1200여만 원을 뺀 나머지 원고가 청구한 1500여만 원을 배상하게 된다.

지난 2018년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는 보호의무자에게 보호하는 정신질환자가 자·타의 위험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 규정은 정신질환 당사자의 보호 의무를 전적으로 가족에게 전가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판결에 대해 독자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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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21-08-12 20:10:16
해당 조항은 위헌으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저 사건의 당사자인 정신질환자의 아버님이 위헌 소송을 제기 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허지선 2021-08-12 10:25:43
화가 나네요. 케어가 필요한 환자인 경우엔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느라 일생을 어렵게 사시는데... 국가가 이를 못 본 채하는 것도 화가 나지만 이런 판결에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