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 “코로나 극복에 국민 의지 불태우지만…2~3년 후 한계 부딪히면 극단적 선택 늘어날까 우려돼”
황태연 “코로나 극복에 국민 의지 불태우지만…2~3년 후 한계 부딪히면 극단적 선택 늘어날까 우려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9.07 1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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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인터뷰
자살자 수 OECD 1위인데 국가 예산은 0.05%…국가 의지에 ‘회의적’
자살 원인은 정신질환이 가장 많아…경제적·신체적 문제도 영향 미쳐
20~30대 청년들의 자살 원인은 “사회 모순 아닌 자신의 문제로 돌려”
자살의 책임은 개인의 문제 아닌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져야
현행 교육 시스템은 적자생존만 가르쳐…실존 문제 외면해
자살 시도는 여성이 많지만 실제 자살 결행은 남성이 높아
재난 때만 국민 단결이 아니라 자살 해결 위한 운동 절실해
정신장애 의료급여 수급자들 자살률 높아…사회적 약자 돌봐야
재단 생명지킴이 교육, 많은 이들이 듣고 활동하면 자살률 떨어질 것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문학을 꿈꿨지만 그는 결국 의사가 됐다. 정신과를 선택한 건 인문학적 요소가 가장 많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의대 레지던트 시절인 1992년 그는 용인정신병원에 파견을 나갔다. 그때, 그는 대학병원의 급성기 환자들만 보다가 만성화된 중증정신질환자를 처음 대면하게 됐다. 그는 “그들의 삶이 처참했다”고 말했다.

정신보건법이 제정되기도 전인 그 시절, 그는 그 정신장애인들의 모습에 슬픔을 느낀 후 교수가 되는 과정 대신 지역사회 재활 운동에 자신을 던진다.

1994년부터 용인정신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재활센터를 만들어서 만성 환자들 중 재활이 가능한 이들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시켜 한 명씩 지역사회로 돌려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어떤 보호의무자는 “자식이 재발되면 책임질 거냐. 퇴원시키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무한한 슬픔을 맛보았을까.

이듬해 1995년 정신보건법에 제정됐다. 그리고 1996년, 그는 수원시에 수원시정신보건센터를 개소했다. 당시 정신보건센터는 서울 강남에 딱 한 군데 있었고 수원을 빼면 어느 지역에도 없던 불모의 풍경이었다. 지금은 물론 260여 개의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지만 말이다. 그만큼 그 시절은 척박했다.

이후 그는 박사 과정을 끝내고 1997년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연수를 가서 공공정신의학 펠로우 과정을 마치고 다시 용인정신병원으로 복귀했다. 공중 보건에 대한, 특히 정신장애인의 공공정신의학에 대한 그의 학문적 열정은 강했다.

2003년 그는 호주 멜버른대학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거기서 그는 국제 정신보건학 과정으로 석사 학위를 다시 따게 된다.

그를 추동해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수면 아래에 있던 10년 전, 그는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정치적 태도를 보였다. 가족에 대한 교육 커리큘럼 역시 그가 만들었다. 이 뿌리에서 이후 가족강사 패밀리링크가 구성된다.

그는 말했다. “자기결정권은 자기 운명에 대해 자신이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

지난 4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출범했다. 이 재단은 자살예방법 제13조에 따라 설립된 중앙 자살예방정책지원기관으로 기존의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통합돼 설립됐다. 현재 이 재단은 정원 88명에, 한 해 예산 250억 원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그는 이 재단 초대 이사장에 임명됐다. 황태연(59) 이사장을 만난 건 지난 2일 오후였다. 시청역 인근에 있는 재단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를 맞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내년도 자살 예방 사업 예산이 올해보다 22% 오른 450억 원입니다. 전체 보건 예산의 0.05%에 불과합니다.

“복지부가 내년에 기초 단위에 자살예방센터 200여 곳을 열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그게 기재부(기획재정부)에서 삭감됐어요. 국가적으로 코로나 방역에 예산이 더 필요해서 그렇게 편성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자살예방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 과제 중 하나입니다.

자살자 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국가적 현안이잖아요. 거기에 국가 예산이 이 정도밖에 투입이 안 된다는 건 정부 의지에 의문이 드는 거죠. 자살예방 사업 예산을 열 배로 올려도 시원찮을 판에요. 예산이 증액되지 않으니까 재단 이사장으로서 자살예방 운동을 해 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민간 기업들의 사회공익 활동 지원금을 확보하려고 생명사랑 파트너라고 해서 협력 관계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인식 개선이나 자살예방 홍보 활동에 대한 예산을 사기업에서 마련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들이 취지를 알기 때문에.”

-한국이 OECD 자살률 거의 13년째 1위입니다.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예산을 이렇게밖에 책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기재부 때문입니까.

“정권의 의지겠죠. 말로는 자살 예방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안 그렇잖아요. 사랑이 있으면 돈이 같이 가야죠. 남편이 부인에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월급은 안 갖다 주면 그걸 사랑이라고 얘기하지 않잖아요. 똑같아요.

국가의 한 부처에서 예산을 삭감하고 그게 통과가 된다면 국가 전체의 의지가 얼마나 있을까요. 민간협의체 등에서는 예산 증액하라고 시위를 하잖아요. 그게 민낯이죠.”

-정부가 자살예방 안전망 강화를 위해 현재 57명인 전문상담사를 내년에 80명으로 늘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상담 비율은 지난해 한 달 평균 1만417건입니다. 이게 커버가 될까요.

“구조가 어떻냐면 보건복지상담센터(129) 내에 자살예방을 전담하는 1393이 있어요. 그게 다 커버가 안 돼서 우리 재단 1393 콜센터를 또 따로 뒀어요. 내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요.

보건복지상담센터 쪽이 절반, 우리가 절반 나눠서 하고 있어요. 1393콜센터 자살예방 전화가 129 내에 속한 1393하고 우리 재단이 운영하는 1393으로 나눠져 있어요. 지금 담당 인력이 7명인데 이를 11명까지 늘리려고요.”

-그래도 부족하죠.

“많이 부족하죠. 국가적인 중차대한 현안인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콜 센터 인원이나 보건복지 예산이 증액돼야 합니다.”

-하루 36명이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한국 사회의 어떤 문제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걸까요.

“우리 재단이 경찰청 자살 변사사건 전수조사를 토대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5개년을 조사했어요. 또 내년까지 심리 부검을 통한 자살 원인을 조사 중이에요.

저변에 깔려 있는 자살 원인은 정신질환이 가장 많아요. 두 번째는 경제적 빈곤, 세 번째는 신체적 질환이에요. 신체질환으로 인한 우울증이 생기는 거죠.

성별로는 좀 달라요. 남자의 경우 젊은 층에서는 정신질환이 많고 중년층에서는 경제적 이유, 노년층에서는 신체질환이 많아요. 여성은 전 연령층이 다 정신적인 이유가 가장 많아요.”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발전주의, 자기계발 등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고 성공과 실패를 자신의 문제로만 치부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안에서 가난한 이들은 더 열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20~30대 자살 원인을 조사해 보니까 그 원인을 자꾸 자기 잘못으로 돌려요. 가슴이 아프죠. 생각의 전환이 필요해요. 자살은 당신이 잘못한 거라는 방관적 태도는 모순이죠.

자살은 개인이 하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타살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 빈곤 문제, 일자리 문제 등이 원인이 돼서 개인이 자살로 몰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에 그런 거지 자기계발을 못 해서 스스로의 원인으로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결국 이 자살의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는가. 저는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시스템 안에서 개별적 이유로 몰아갈 게 아니라 사회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기본소득 얘기도 나오는데 복지 체계가 약자와 극빈으로 몰린 사람들에게 얼마나 탄탄하게 지원해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기본소득에 찬성하시는 겁니까.

“찬성해요. 국가 지원금을 국민의 80%로 할 거냐 88%로 할 거냐를 두고 여야가 싸우는데 경제학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절단점을 얘기할 게 아니라 똑같이 나눠주자고 해요.

보편적으로 나눠주고 연말 세득 공제 식으로 부유층에서 거둬들이면 되는데 자꾸 배분하는 기준을 두고 싸우는 건 옳지 않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의견이에요. 저도 그게 합리적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동물은 존재하지만 인간은 실존합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이사장님도 자기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거 같습니다. 결론이 나왔나요.

“(웃음) 저는 자살하는 분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실존을 문제시한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실존적 문제를 본인이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의 교육을 안 시켜요.

현행 교육 시스템은 실존적 문제보다 적자생존의 방법만 세뇌시키는 훈련을 시키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거든요. 인간으로서 가치를 부여받아야 하는데 공통된 잣대를 만들어서 통과한 사람과 통고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를 하는 거죠.

실존의 문제는 뒤로 하고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에만 몰두해 있어서 뒤쳐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류 대학 가라고 압박할 게 아니라 나름의 의미 있게 살아가는 가치를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텐데요.

그런 방법조차 젊은 사람들이 모르는 게 우리 시대의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20~30대의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거죠.”

-극단적 선택자들의 90%가 충동적으로 자살 시도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충동적이어도 이전에 이미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왔지 않았을까요.

“충동에 대해 생각해 봐야죠. 뇌과학자들이 인간의 의사 결정에 대해 연구할 때 자살을 선택하는가, 선택하지 않는가의 면에서는 충동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소에 (자살을) 많이 고민했고 점차적으로 진행돼 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마포대교에서 충동적으로 투신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이 과연 충동적 동물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좌절된 삶의 과정을 겪어오면서 내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이쪽이 낫지 않을까라는 이미 선택된 상황이었을 거 같아요.

그건 마지막 순간에 결행을 했다는 뜻이지 평소에 자기 죽음에 대해 생각 안 했던 사람이 순간적으로 자살을 선택할 만큼 인간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아요.”

-특히 자살자 중 남성 비율이 70%를 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다른 나라의 자살자를 비교해 보면 자살 사고나 자살 시도는 오히려 여성이 더 많아요. 그런데 실제 자살을 결행해서 끝마친 경우는 남성이 더 높아요. 남성은 과격성, 극단성 이런 게 좀 강하잖아요.”

-여성은 우울을 수다로 푼다고 하더군요.

“여성들은 생명의 위협이 될 정도의 극단적 시도는 남성보다는 적어요. 마음이 약해서 그럴까 모르겠는데 대신 자살 시도 숫자는 남성보다 많죠. 시도는 여성이 더 많은데 자살자는 남성이 더 많은 게 통계인데 어떤 성(姓)의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50대의 자살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경제적 문제 때문일까요.

“50대는 가장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이 누구보다도 강하잖아요. 옛날에는 은퇴 나이가 65세였는데 지금은 대기업만 해도 50대 초반부터 시작되거든요. 더 일할 수 있는데 강제적으로 퇴직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중년 남성들을 좌절하게 하고 허망하게 만들어버리죠.

무망감(hopelessness)이라 할까요. 희망을 볼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 거죠. 저도 베이비부머(55~63년생)지만 가장 인구가 많은 게 58년 개띠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60대로 넘어가지만 50대 자살 이야기는 이미 몇 년 전에 나왔잖아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구 수가 많고 경쟁도 심하니까 회사에서도 고임금이 지급되는 사람들을 구조조정 명목으로 다 내쫓았거든요. 그런 환경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극도의 책임감과 경제적 이유, 사회적 요인들이 함께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자살 시도자 중 39%는 ‘도움을 얻으려고 했지 정말 죽으려고 한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내면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응급실 자살시도자 중에 20~30대 여성들도 많은데 정말 죽으려고 그랬을까 생각해 봐요. 사회에서 자꾸 몰아내니까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도움을 얻으려 했다는 마음은 살고 싶은 의지도 있었다는 거예요. 그 의지를 우리가 살려줘야 하는데 사회가 외면한 거죠.

한번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이 응급실에 오면 처음에는 이들이 헬프 미(help me)를 했는데 두 번, 세 번 하다 보면 헬프 미도 안 하고 2~3차 자살 시도를 하면서 결국 생을 마감하게 돼요.

가슴이 아프죠. 그들이 헬프 미를 외칠 때 도움을 주고 빨리 구출해 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죠.”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 시도자에게 상담과 치료, 복지서비스를 지원하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현재 응급실 기반 자살 관리에 참여하는 병원이 66개인가요.

”76개죠. 전국의 대학병원,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내원한 자살시도자 사례관리 사업을 하고 있어요.“

-참여한 병원들이 수가를 주기 때문에 하는 겁니까.

“수가도 못 줘요. 대신 응급실 평가에 배점을 더 주거나 아니면 두세 명의 사례관리자 월급을 보건복지부가 우리 재단을 통해 보조하는 정도이지 직접적 수가는 없어요.

인천이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정신과가 없는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이 필요할 때 연계를 하면 수가를 마련해 주는 사업이죠. 시범사업 후에는 응급실 연계 수가를 반영하려고 복지부도 노력 중입니다.”

-IMF 외환 위기, 전염병 발생 이후 2~3년 지난 후 자살이 급증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4월부터 7월까지 국가별 자살률을 조사해 봤더니 전년도에 비해 한국과 일본의 자살률이 조금 낮아졌어요. 이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해서 낮아질 수 있었을까.

심리적으로 그렇게 설명해요. 갑자기 국가적 재난이 닥치면 온 국민이 똘똘 뭉쳐요. 옛날 IMF 외환 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면서 대응했는데 그때는 자살률이 낮았어요. 지금은 K-방역을 통해서 재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불타는 시기예요. 이때도 자살률이 늘지 않아요.

지난해 정부가 국민 일인당 20만 원 재난 지원금을 제공했죠. 그런 경제적 지원도 자살률 감소에 기여를 했다고 하는데 그 재난지원금 지급이 계속됩니까. 어렵잖아요.”

-전염병이 발생하면 2~3년 동안은 어떻게든 견디는데 그 이후 희망이 없어지는 건가요.

“점점 희미해져 가는 거죠. 처음에는 소상공인 지원하고 예술가들도 지원한다고 하는데 만약 코로나가 지나갔다? 그러면 지원이 줄어들겠죠.

코로나로 타격을 받은 사람들에게 계속 복지 지원을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에 딱 끊기는 시기가 오죠. 그래서 국가가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을 안 하겠다고 하면 한계에 부딪힌 양극화된 약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2~3년 후를 대비해야 돼요.”

-선생님은 최근 신문 인터뷰에서 2~3년 뒤 자살이 증가할 거라며 “지금 내 마음이 폭풍전야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절박한 사유가 담겨 있는 걸까요.

“그러니까 IMF 외환 위기 이후에 자살률이 증가한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자살률이 늘어날 거 같아요.

그럼 우리가 재난 때만 단결할 게 아니라 자살을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생명존중 국민운동을 빨리 전파해서 참여할 수 있게 해야죠. 안 그러면 2~3년 후에 그런 비극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이 급해요.”

-절박한데 예산은 없고. 난감하시겠습니다.

“아까 신한은행 얘기를 했지만 생명 사랑 파트너를 맺어야죠. 국가가 안 되면 사기업 쪽의 사회공헌 기금을 갖고라도 예산 부족분을 메워가야겠죠. 재단이 기금을 모금하는 게 또 향후 폭풍을 대비하는 데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저라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의료급여를 적용받는 빈곤층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 발생률이 43.5명입니다. 일반인보다 1.5배 높더군요. 여기에 정신장애인들이 다수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죠. 신체장애인들도 들어가 있어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해 보니까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자살률이 훨씬 높아요.

그렇게 극빈층으로 떨어지는 이들에게 복지 혜택을 통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방지해야죠. 거기에는 조현병 환자 가족들도 포함될 수 있고 장애인 가족들도 포함될 수 있죠. 그들이 진짜 사회적 약자죠.”

-인간은 태어나서 고통받으며 살다가 떠납니다. 이 고통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하는데 꼭 그럴까 싶어요. 삶이 고통으로 점철된 건 아니잖아요. 저는 고통 속에 있다가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행복을 맞볼 수 있는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민의 행복권이라는 기본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 주는 그런 나라가 선진국이죠.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요.”

-10년 전 선생님은 ‘정신질환자들이 어떤 치료를 받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폭력적 강제입원에 대해 어떤 비판도 반발도 나오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그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이 뭘까요.

“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가 나온 게 몇 년 안 되죠. 제가 1994년 용인정신병원에 있을 때 환자 당사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장애를 극복한 거지 단지 정신과적 증상만 좋아지는 건 회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환자를 취직시키면 보호자가 와서 반대를 해요. ‘취직했다가 재발해서 재입원하면 보호자가 돈을 내야 하는데 우리는 돈을 못 댑니다, 그러니 퇴원시키지 마세요’라고 해요.

제가 ‘아니, 왜 비극적으로만 생각해. 그럼 재발 안 되게 관리해야지, 그걸 내가 도와준다니까. 퇴원하고 회사 취직해서 직장 의료보험 받아서 떳떳하게 사는 게 사람으로서의 삶 아니냐. 그걸 환자 본인이 결정해서 그 길을 가야지 내가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용기 있는 환자들이 과감하게 의료급여를 끊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요. 저는 당사자가 자기결정권에 기반해 원하는 삶을 개척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또 환자와 가족을 교육시키는 강사를 양성하고 회복된 환자가 환자를 돕는 품앗이 프로그램도 주장했습니다. 현재의 동료지원가, 패밀리강사인데요. 당시에는 진보적인 사유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하게 됐습니까.

“1996년에 수원시 정신보건센터를 열었을 때 가족교육을 제가 직접 했는데 그때는 전국적으로 가족교육 자체가 없던 때였죠. 제가 2004년 패밀리링크 가족교육을 시작한 목표는 가족강사를 양성해서 초발 환자의 가족을 도와주자는 거였어요.

패밀리링크 자격증을 딴 분들이 지금 가족상담활동가로 일하잖아요. 저는 직업재활을 잘 하는 당사자들을 불러서 입원환자 대상으로 강의를 시켰어요. 잘 회복돼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했거든요.”

-정신과 의사 그룹 내에서 시기하지는 않았을까요.

“(웃음) 의사 중에서도 ‘무슨 병식도 없는 사람한테 자기결정권을 줘’라는 얘기를 했어요. 제가 직업재활할 때 환청·망상이 있는 분들이 많았어요. 같은 병원의 의사들도 ‘저 사람이 환청, 망상 증상이 심한데 밖에 나가서 사고 치면 어떡하려고 자꾸 퇴원시켜’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무슨 소리야, 환청·망상이 있어도 이 사람이 남을 해코지할 사람은 아니다. 자기 증상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은 취직 못 하느냐고 물었어요. 평생 병원에 입원해야 되나?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동료 정신과 의사들을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도 아니었죠 (웃음).”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현재 의사와 보호의무자의 동의에 의해 입원되는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제도가 여전히 논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엔 CRPD(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해 인권변호사들이 계속 얘기하잖아요. 저는 모든 환자가 다 자의입원할 수는 없다고 봐요. 때로는 비자의입원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다만 비자의입원을 자의입원을 통해 줄여나가야죠. 또 동의입원의 문제는 환자가 퇴원 의사를 밝혀도 가족이나 주치의가 반대하면 입원에 동의한 사람 입장에서 퇴원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동의입원 환자가 퇴원을 원할 때 퇴원 가능성을 심의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요.

법을 좀 개정해서 정신보건심의위원회 등에서 환자들이 이의 제기를 하면 심사를 해 줄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지금은 가족이 반대하거나 의사가 볼 때 퇴원하기에 이르다 하면 그냥 비자의입원으로 전환할 수 있게끔 법이 돼 있잖아요. 부당하죠.”

-사법이 이를 떠안아야 하는 걸까요.

“동의 혹은 반대라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만들어진 제도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영국이나 미국은 사법입원제죠. 사법 입원제가 되려면 정신보건을 이해하는 판사들이 많아져야 돼요.

그런데 과연 사법 시스템에서 그런 판사들이 나올 수 있을까? 아직 사법부가 준비가 안 된 거 같아요. 비자의입원 제도도 공부하고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는 판사들이 정신과 의사들의 전문적인 의견을 합해서 판결하면 사법입원 제도가 인권을 존중하는 제도로 잘 진행이 되겠죠.

하지만 그런 이해가 없으면 또다시 판결하는 기구로밖에 기능을 못 할 겁니다. 제일 우려되는 부분이죠. 보완이 돼고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 운동이 진행 중입니다. 이사장님은 어떤 방향으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제가 볼 때 정신건강복지법 제34조부터 38조까지 있는 복지서비스에 대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제대로 못 만들어졌어요. 법에는 있는데 시행령이 없어.

그냥 정신장애인의 직업재활을 해야 한다고 ‘선언적’으로만 나와요.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건지 안 나와 있어요.

저는 법 개정보다 지금의 법에서 복지 조항들에 대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빨리 만들어 법 테두리 안에서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국가 예산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있는 법도 제대로 실행을 못 하고 있는데 자꾸만 바꾸자는 건지.”

-정신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초·중·고 시절 서클 활동을 문예반에서 했던 문학도였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문학만 갖고 어떻게 먹고 사냐, 의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그 다음에 문학 활동을 해도 늦지 않을 거라 말씀해 주셨죠. 현실적인 거죠.

제가 소아마비 장애인이거든요. 지체장애인으로 사회에서 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에 부모님이 보시기에 아들이 사회 활동을 할 때 그나마 차별이 적은 의사가 되면 차별을 적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거 같아요.

어머니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제가 의사가 되길 바랐고 저도 전문적인 지식인 기술을 가지면 존중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의대를 들어갔죠.

그런데 시를 쓰겠다는 인문학적 열망은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보니까 수술하고 톱질하는 건 못하겠고 가장 인문학적인 소양을 계발할 수 있는 분야가 정신과 같아서 그걸 선택했어요.”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c)마인드포스트.

-잘 선택하신 건가요?

“고대 의대 레지던트 하면서 1992년에 용인정신병원에 파견을 나갔죠. (그는 이후 1994년 용인정신병원에 입사한다) 그때 처음으로 대학병원의 급성기 환자들이 아닌 만성환자들을 봤어요.

그들의 삶이 너무 처참했어요. 정신과 내에 약물학도 있고 소아청소년과 등 세부 전공이 있어요. 저는 만성환자들의 삶을 다룰 수 있는 재활을 선택하면 용인정신병원 환자들이 다시 삶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세부 전공을 대학 교수 쪽이 아니라 재활이나 지역사회에서 헌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정했죠.”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초대 이사장입니다. 어떤 포부를 갖고 계십니까.

“이사장 된 지는 4개월이 넘어가는데 주안점은 그래요. 자살도 보면 편견과 오해가 많아요. 저 사람은 자기가 자살하는 건데 국가가 왜 예방을 해야 돼, 국가가 왜 예산을 투입해, 그런다고 자살할 사람이 충동적으로 자살을 하는데 어떻게 막아? 이런 잘못된 생각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자살은 예방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홍보하고 싶어요. 그리고 국민 인식 개선이 돼서 우리 재단 홈페이지의 생명지킴이 교육 과정을 많은 이들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전 국민이 생명지킴이 활동을 하면 자살률이 확 떨어질 거 같아요. 포부라 해야 할까요. 그런 사회를 만다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자살예방 교육은 여태까지 별로 없었어요. 우리 재단이 2019년에 정신장애인 당사자, 가족, 정신장애인재활시설 종사자를 위한 교재를 이미 만들어놨는데 써먹지 못했어요.

정신장애인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높습니다. 고위험군이죠. 이들이 시설에 있으면 시설 종사자들도 고위험군과 같이 있는 거잖아요. 조만간 정신재활시설협회 관계자들을 만나서 우리가 만든 교재로 자살예방 교육을 해 보자고 제안해 보려고 해요.

정신장애인들도 자살예방 교육을 받아서 스스로를 돌보고 주변 정신장애인들의 정신건강을 돌봐줄 수 있는 생명지킴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내년에는 프로그램을 더 확산시키려고 해요.”

그가 <마인드포스트>에 '오퍼'를 넣었다.

“정신장애인들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자살예방, 생명지킴이 운동을 해 보고 싶어요. <마인드포스트>와 같이 캠페인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꼭 하고 싶은 제안입니다.”

창밖으로 햇살이 와와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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