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마음공부’… 인격장애 겪는 이들에게 자아 찾는 해결의 통로될 수 있어
[당사자 칼럼] 노희정 "‘마음공부’… 인격장애 겪는 이들에게 자아 찾는 해결의 통로될 수 있어
  • 노희정
  • 승인 2022.01.09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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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장애·인격장애?…인간의 기질은 한 가지로 단언할 수 없어
과도한 나르시스로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줄 때 심리상담 필요
개별성 가진 인간을 인격장애 스펙트럼으로 묶는 건 위험천만한 일
싸이, 강남 스타일 (c) The San Diego Union-Tribune
싸이, 강남 스타일 (c) The San Diego Union-Tribune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오빤 강남스타일.”

아침이면 우아함을 갖춘 참한 성실한 학생이나 직장인이었다가, 밤이 되면 유흥가 클럽을 전전하는 여자.

‘반전?’

‘변신?’

‘이중생활?’

‘이중성격?’

얼핏 보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자아다. 그렇다고 당장 그녀를 ‘해리성 인격 장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보화 시대. 의학적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는 근래에 들어서 부각되고 있는 병명이 바로 성격장애. 곧 인격장애다.

그런데 불분명하고 전문적이지 않은 얕은 지식으로 타인이나 자신을 인격장애라고 결론짓고 명칭하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있다.

직장에서 괴롭히는 상사는 ‘자기애성 인격장애’, 연애 상대를 계속 바꿔가며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은 ‘연극성 인격장애’, 약속 시간에 늦으면 화를 내고 욱하는 성질을 보이는 연인에겐 ‘경계성 인격장애’, 꼼꼼하고 매사를 철저히 챙겨야 하는 사람은 ‘강박성 인격장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은 ‘회피성 인격장애’, 한바탕 싸운 친구가 피해망상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라고 여겨지면 ‘편집성 인격장애’, 생각과 행동이 불안해서 변덕을 부리는 사람은 ‘분열형 인격장애’.

한순간 모두가 인격장애 환자가 되어 버린다. 우울한 감정이 우울증이 아니듯 성격을 성격장애, 인격장애라고 명칭해 타인을 장애라고 규정짓고 자신을 장애라는 굴레에 속박시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면을 갖고 있으며 성향이나 기질을 한 가지로 단언할 수 없다. 인간의 성격은 단편적이지 않다. 여러 가지 면을 갖고 있으나 더 강한 요소가 드러날 뿐이다. 그렇기에 무한한 가능성과 성장이 열려있는 인간에게 인격장애라는 굴레를 함부로 씌우지는 말자.

인격장애는 수년간 상담 치료를 받고 약물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심리상담가나 의사와의 심층적인 신뢰감도 필요하다. 성격을 개선하고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스스로를 인격장애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내면의 바닥부터 파헤쳐 과거와 기억을 분석하는 작업은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이러한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섣부르고 가볍게 성격의 문제를 인격장애로 부르며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인간의 나르시스트적(자기애성) 성향은 원시 시대에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Erich Fromm (c) Müller-May / Rainer Funk / CC BY-SA 3.0 (DE)
Erich Fromm (c) Müller-May / Rainer Funk / CC BY-SA 3.0 (DE)

인간에겐 모두 어느 정도의 나르시스트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신분 사회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자신의 노력과 성취로 이뤄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계층과 부의 격차를 떠나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위기 상황에 대처하고 자신이 사는 방식이나 신념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 믿고 자신이 하는 일을 가장 중요시하며 자신의 결정이 제일 옳다고 믿기에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헤쳐나갈 수조차 없다. 이 부분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탱해내기 위해서는 나르시스즘은 필수적이다.

다만 이런 성격의 면모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타인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거나, 건강하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어질 때 ‘자기애성 인격장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가 전문적인 심리상담을 받으며 치료를 시작할 시기이다.

인격장애는 인격장애로만 국한되기도 하지만 정신질환과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인격장애를 갖고 있던 사람이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가 있고, 반대로 정신질환으로 인해 인격장애가 생겨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혼재하는 경우 환자의 치료와 고통은 더욱 힘들고 다난하다.

하지만 인격장애뿐 아니라 정신장애가 동반된다 해도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을 자제력과 판단력을 갖추면 된다. 자기 자신을 힘들게 만들고 더 나아가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하며 스스로를 파괴시키지 않게 회복되면 된다.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거나 좋지 않은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은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정신질환은 시대적 변화나 사회문화적 사조에 따라 새로운 병명이 생겨나기도 하고 이전엔 질병이라 인식하지 못했던 증상들이 진단명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DSM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기준해서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했던 동성애가 대표적인 예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정신병원에서는 여장을 하고 진료실에 들어온 사람은 무조건 정신과 환자로 분류됐고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였다 .

인격장애 중에서도 DSM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기준해서 인격장애군 이었던 병명이 DSM 페이지에서 사라진 진단명이 있다.

유년기부터 우울한 감정과 부정적 사고가 지속되고 고착화된 사례에 대해 ‘우울증 인격장애’라고 명칭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DSM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 사라진 인격장애이다.

정신질환의 진단은 단 한 명의 전문의가 내담자의 증상과 행동 징후를 관찰해 판단하고 이에 더해 심층적인 심리 검사의 결과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내려진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임상적인 실험 결과로 얻은 기초적 이론과 종합적인 심리 검사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연구로 인해 밝혀진 사례에 따라 기존의 이론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각 부위가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부위 별로 연구한다 해도 전체적인 작용과 기능을 살펴야 한다. 그만큼 우리의 뇌는 너무도 섬세하고 미묘한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한 뇌를 가진 인간을 분석하고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작업인가? 그리고 다양성과 개별성을 가진 인간을 인격장애라는 스펙트럼에 묶는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작업인가?

인격장애와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조현병이나 조울증을 가진 환자가 강박성 인격장애까지 동반될 경우 치료가 힘들어진다는 연구는 당사자에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만약 자신을 모든 이성에게 어필해야 하는 연극성 인격장애자로 결론을 내리고 찾아온 내담자에게 심리상담가는 무슨 이야기를 해 줘야 하고 심리 검사의 결과를 얼마나 신뢰해야 할까?

어느 심리학 전공자는 자신의 성격을 공부한대로 분석해보니 자신이 한 가지 인격 장애가 아니라 마치 모든 인격장애가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처럼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완벽해질 필요도 없다.

인격장애라는 병명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딜레마는 그 분야의 연구가 아직 확실히 굳혀지지 못했으며 많은 변동 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인격장애는 타인을 괴롭히고 힘들게도 만들지만 그보다 앞서 인격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 자신이 고통스런 과정을 오랜 시간 겪어오며 자기 자신이 자신의 인격장애로 인해 힘들다.

최근 ‘명상’이 떠오르는 데에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내면의 부족한 면을 메우며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인지 모른다.

현대인은 살아가면서 자신과 혹은 타인과 충돌하며 갈등하고 싸워내야 할 것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마음공부.’

인격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해결할 통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음공부를 위한 수련이 도움을 줄지 모른다.

의학적 치료와 함께 마음을 침잠하듯 안정시키고 평온을 만들어 내고 마음을 돌리는 연습을 하는 마음공부가 어우러질 때 진정 건강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마주한 자신은 자유로움으로 새롭게 리셋된 자아. 어떠한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소중한 자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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