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은 신체장애인데 정신병원서 4년간 강제입원…누나들 재산 싸움에 부당한 ‘장기입원’
뇌전증은 신체장애인데 정신병원서 4년간 강제입원…누나들 재산 싸움에 부당한 ‘장기입원’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8.1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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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신체장애인을 정신병원에 불법 감금”...인신구제청구 진행
영민 씨, 강제입원 트라우마로 자해하니 누나들이 응급입원..권리구제 없이 감금
성명서 “강제입원, 인권 침해 자행한 정신병원 즉각 폐쇄해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마인드포스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마인드포스트.

지적장애와 뇌전증장애의 중복장애를 가진 김영민(가명·50) 씨는 7남매의 막내로 18살 때부터 20년간 부산에서 성실하게 공장 생활을 했다. 이후 38세 때인 2009년, 경남 통영으로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가족은 형 1명, 누나 5명이 있다.

영민 씨 어머니는 생전에 영민 씨 앞으로 통영시의 집과 대지를 소유권을 이전해 등기를 마쳤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2014년 2월, 셋째 누나와 다섯째 누나는 해당 집과 대지에 각 2분의 1씩 지분등기를 했다. 지분등기는 하나의 토지와 부동산에 대해 여러 명의 소유자가 각각 지분을 나눠 갖는 걸 의미한다. 소유권이 다수자로 쪼개진 것이다.

누나들은 더 나아가 영민 씨의 인감도장을 가져다가 통영 집에 대한 소유권을 자기들 쪽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이후 이들은 영민 씨가 자해를 한다며 경남 거제의 한 A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다. 영민 씨는 노모(老母) 생존 시 한 번도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다.

셋째 누나는 영민 씨가 오래전 가입한 부부 관련 보험이 만기가 되자 그 돈을 빌려 자신의 자녀 대학 등록금으로 사용했고 지금까지 갚지 않았다.

이후 영민 씨는 재산 반환 소송 등으로 누나들과 법적 소송에 들어갔다.

문제는 또 있었다. 영민 씨는 노모가 살아 있을 때 베트남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하지만 어머니 사망 후 이들 누나들은 영민 씨 아내에게 이혼에 따른 위자료와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도록 소송에 개입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인감도장을 요구하는 등 상식 밖의 행위를 했다.

◆…누나들, 노모(老母) 사망 후 영민 씨 재산 노리고 강제입원시켜

영민 씨는 A 정신병원에 입원 후 한 달에 한 번씩 외출을 나갔는데 그때마다 지인에게 자신이 정신질환이 아닌 재산 문제로 인해 입원됐다며 퇴원을 도와달라고 했다.

이에 지인의 도움으로 영민 씨는 입원 2년 8개월 만에 퇴원했다. 하지만 퇴원 1년 6개월만인 2021년 2월, 다시 누나들에 의해 B 정신병원으로 응급입원됐다. 영민 씨가 자해를 했다는 이유였다. 해당 정신병원은 영민 씨 입원 유형을 행정입원으로 전환해 현재까지 퇴원을 막고 있다.

이 사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문제를 제기했다. 연구소는 공익 변호사들과 함께 영민 씨의 입원에 대한 부당성과 즉각적 퇴원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실제 연구소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건강권리옹호센터장이 B정신병원으로 직접 내원해 영민 씨와의 대면 면회를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안전 문제와 코로나19 감염 위험성 등을 이유로 면담 시간을 15분으로 제한하는 등 면담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영민 씨는 누나들에 의해 2곳의 정신병원에서 총 4년 2개월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비롯해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재단법인 동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인권 변호사 등 청구대리인 측은 조만간 해당 지방 법원에 인신구제청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영민 씨의 청구대리인 측은 해당 정신병원들이 행정입원 당시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의 필요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제3조는 정신질환자 개념을 ‘망상, 환각, 사고나 기분 장애로 독립적 일상생활 영위에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병원 측은 영민 씨가 입원할 당시 그의 상태를 ‘뇌전증’과 ‘기질성 인격장애’로 진단했다. 뇌전증은 정신적 장애가 아니라 신체적 장애에 해당한다는 게 청구대리인 설명이다.

또 기질성 인격장애는 지능지수가 50에서 69까지인 경우를 의미한다. 영민 씨가 경증의 지적장애를 갖고 있지만 행위 능력이 이 질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청구대리인 지적이다.

청구대리인 측은 영민 씨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점, 입원 전에도 자신의 활동보조인 및 장애인 단체와 소통한 점, 뇌전증 증상으로 약 복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영민 씨가 법이 규정한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제약이 있는’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마인드포스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마인드포스트.

강제입원의 한 구성 요건인 ‘자·타해 위험성’ 여부도 논란이 됐다.

해당 병원의 입원기록에는 영민 씨가 과거 병력에 대해 ‘자살 시도력’이 없고, 자살위험성도 낮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영민 씨가 이 병원으로 응급입원될 당시 보인 자해 행위는 누나들과의 금전 문제와 과거 강제입원에 의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금전에 대한 자신의 절박함을 표시하고 강제입원을 막기 위한 자신만의 정당한 방어 행위였다고 청구대리인 측은 설명했다. 입원 당시 영민 씨는 누나와 금전 문제로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뇌전증은 정신장애 아닌 신체적 장애...정신병원 치료 의미 없는데 병원이 계속 감금

강제입원 요건 중 ‘자해 위험성’은 구 정신보건법 제25조를 유효하게 적용하고 있는데 주요 개념은 현실 판단 능력이 손상돼 예측 불가능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 정신병 증상으로 난폭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일컫는데 영민 씨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 문제에 대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욕구가 발현된 행동이므로 이러한 위험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다.

영민 씨가 강제입원 후 퇴원하고 싶다는 욕구를 보인 점과 자해·자살하겠다는 말은 말을 하는 방식으로 표출됐을 뿐, 실제 자살 계획을 세우거나 자해 의지가 있는 게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해당 병원의 간호 기록지인 너싱 시트(Nurshing Sheet)의 기록을 보면 영민 씨가 ‘다른 환우를 도와주고 원만하게 병원 생활을 하고’, ‘자해 행위를 시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퇴원 요청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 등이 적혀 있다.

청구대리인 측은 병원이 영민 씨의 입원 필요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입원 연장을 해 온 점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병원은 영민 씨의 강박 증상에 대해 약물투여를 증량했을 뿐, 지적장애를 위한 진단과 치료 행위는 한 적이 없었다.

청구대리인 측은 “(영민 씨의) 자해 행위에 영향을 미친 문제는 비자의입원 지속으로 해결될 수 없다”며 “가족들의 경제적 착취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비자의입원의 지속은 (영민 씨의)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비자의입원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상의 권리고지 의무 위반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신건강복지법 제6조는 정신병원의 장은 정신질환자 입원 시 ‘지체없이’ 정신질환 당사자와 보호의무자에게 법적 권리와 권리행사 방법을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신병원장의 권리고지 의무는 국가가 시민의 신체적 자유를 임의로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절차적 방어권의 성질을 가진 권리이다. 따라서 응급입원과 행정입원은 재판이 없는 인신구속인 만큼 당사자에게 권리고지와 같은 절차적 방어권이 더 두텁게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영민 씨가 2021년 2월 응급입원 후 같은 달 15일과 24일 행정입원으로 전환했지만 병원 측은 권리고지서를 2차례 작성했을 뿐, 마지막 기간인 24일에는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청구대리인 측은 “(영민 씨가) 병원장으로부터 한 번도 자신에게 퇴원 등 처우개선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는 권리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며 “의무기록지를 보더라도 (영민 씨가) 당시 강제입원에 격렬하게 반항하던 중이어서 구두 설명에 의한 권리고지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김도희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김도희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지자체장에 의한 강제입원 유형인 행정입원의 경우도 지자체장이 권리고지할 의무가 규정돼 있다. 영민 씨가 입원했던 해당 병원은 통영시 관할로 통영시장은 영민 씨를 행정입원 시킬 경우 정신건강복지법 제44조에 따라 입원 등의 서면통지서를 병원 측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조사 결과 서면통지서에는 지자체장의 직인이 아닌 병원장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병원 스스로 자신에게 행정입원 통지를 한 셈이다.

◆…정신병원, 영민 씨에 퇴원과 인권 보장 절차 한 번도 고지하지 않아

대면 심사 기회 또한 보장되지 않았다.

정신건강복지법상 입원한 정신장애인이 입원의 부당성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기관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이다. 대면조사를 원칙으로 하며 정신병원의 장은 이 위원회의 조사원 조사에 협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영민 씨는 이 위원회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청구대리인 측은 “병원 측이 (영민 씨의)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임의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대면조사를 배제한 것은 중대한 절차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영민 씨는 1991년부터 2008년까지 부산의 큰누나 집에서 함께 살면서 한 가죽공장에서 장기근속했다. 당시 어떤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 이후 38세(2009년) 때 통영에 내려왔다가 교통사고를 한 차례 당했다. 회복 후 어머니와 살면서 목공소, 일용직 근무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도 그때 이뤄졌다. 2019년 A병원에서 퇴원 후 2021년 2월 응급입원을 당하기까지 통영장애인복지관을 통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문제 없이 독립 생활을 영위해 왔다.

교통사고 당시 영민 씨는 머리를 다쳤고 뇌 손상으로 인한 간질 및 발작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뇌손상은 정신병원에서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폐쇄병동에서의 장기입원과 강제적 격리·강박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입원했던 병원에는 정신건강의학과, 가정의학과, 영상의학과만 있을 뿐 영민 씨에게 필요한 신경과, 재활의학과는 없었다.

청구대리인 측에 따르면 영민 씨는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정신과 진정제를 과도하게 투여받아 기억력 감퇴, 인지능력 저하, 잦은 설사, 불면증, 기절 등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또 재산 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거 강제입원의 경험으로 인해 입원에 대한 극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어 치료의 효과가 없는 입원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은 영민 씨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지역사회로 나갔을 때 지원받을 인프라가 없다는 병원 측 설명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청구대리인 측은 “(영민 씨는) 정신장애인이 아닌 지적장애인이므로 퇴원 후 정신과적 치료를 받지 않고도 일상생활의 지원만 있으면 충분히 혼자 생활할 수 있다”며 “등록장애인으로서 장애연금과 기초생활수급으로 경제적 지원과 함께 장애인복지관을 통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일상생활을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사건은 가족간 재산 분쟁을 주된 원인으로 하는 불법·부당한 입원”이라며 “자·타해 위험성도 없고 입원의 필요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병원 측) 입원의 계속적 결정은 비자의입원의 요건을 갖추지 않은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17일 청구대리인 측과 장애, 정신장애 관련 단체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영민 씨와 관련한 인신구제청구소송 제기와 입원제도 개선 요구를 위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청구대리인 측 “영민 씨 독립적 일상생활 가능...당장 퇴원시켜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사회복지공익법센터 김도희 변호사는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위임한 것은 공권력뿐”이라며 “정신장애인은 가족과 전문가에 의해 초법적으로 공권력 개입 없이 입원이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근대 정신의학자들이 치료가 인권이라고 했지만 현대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자유가 치료라고 외친다”며 “국제사회 역시 강제입원과 강제치료를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조인영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조인영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조인영 변호사는 “청구인(영민 씨)의 강제입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며 “우리 사회가 강제입원제도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을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넣으며 더 이상 보이지 않으니 무엇인가 해결됐다고 착각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김재완 활동가는 “정신장애인도 사람이다. 우리는 어디 시골 구속에 처박혀서 조용히 안 보이게 살아야하는 존재가 아니”라며 “정신장애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만 봐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최해진 활동가 역시 “가족이 강제입원을 시켰더라도 가족의 동의 없이 환자 혼자서 병원을 나갈 수 없다. 이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며 “장기간 병원에서 불가피하게 입원을 하는 사례는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문를 낭독한 노태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은 “강제입원을 최소화하고 입원 절차에서 본인의 자기결정권과 방어권을 보장하도록 권리옹호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강제입원 대신 위기지원체계와 쉼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소장은 이를 위해 ▲법원이 인신구제청구를 받아들여 영민 씨를 석방할 것 ▲불법 강제입원과 인권 침해 자행한 정신병원의 즉각적 폐쇄 ▲보건복지부가 입·퇴원과 치료 과정에서 당사자 권리 강화를 위한 입원 제도 개선할 것 ▲정신병원 외 대안이 없는 정신질환자들에 위기지원 체계와 권익옹호 체계를 구축할 것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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