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인권운동이 2010년 이후 대두된 이유는..“사회적 편견 때문이라는 논리만으로 설명 안 돼”
정신장애 인권운동이 2010년 이후 대두된 이유는..“사회적 편견 때문이라는 논리만으로 설명 안 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9.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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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사회학과 연구팀 논문 발표...민주화와 정신장애운동의 등장
87체제 이후 다양한 의제 사회운동들 분화...정신장애운동은 미태동기
민주주의 심화와 인권담론 확산은 정신장애 운동에 간접적 영향
정신병원과 시설에 격리되면서 네트워크 형성이 지속적 불가능
인터넷 온라임 모임에서 오프라인 당사자 조직으로 발전
정신장애인지역사회생존권연대 등 연대체들 지속적으로 구성돼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심화 과정에서 정신장애 인권운동 태동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8월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기자회견에는 공익법센터 변호사들, 정신장애 당사자, 인권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정신장애 운동의 연대적 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적장애인 인신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이 8월 1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됐다. 기자회견에는 공익법센터 변호사들, 정신장애 당사자, 인권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정신장애 운동의 연대적 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기인 1987년 이후 다양한 소수자들의 인권담론이 형성돼 왔지만 유독 정신장애 영역에서의 운동이 더디게 진행돼 온 이유로 시설 격리와 제도교육에서의 배제로 사회운동 활동가들과의 유대가 제한돼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온라인 모임과 친목을 위한 자조모임의 형성, 오프라인 자조모임 등이 결성되면서 2010년 들어 정신장애 운동단체들이 조직화되기 시작했다는 연구도 제시됐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연구팀(제1저자 이상, 공동저자 김효경·신광영, 교신저자 서찬석 교수)은 민주화 이후 타 장애 영역과 달리 2010년에 이르러 정신장애 인권운동이 조직화된 상황을 분석한 논문 ‘민주화와 시민사회, 그리고 정신장애 인권운동의 등장’을 7일 발표했다. 정신장애 운동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내에서도 극히 드물다.

저자들은 정신장애 인권운동이 민주화 과정에서 주변적 이슈로 기능했고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사회정치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부분들을 분석했다.

논문은 1987년 이후 ‘반독재, 민주화’라는 단일 의제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사회운동 조직 및 참여자들이 민주화 이후 자율화된 시민사회 공간에서 다양한 의제의 사회운동들로 분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민주주의의 심화 과정과 인권 담론의 확산은 정신장애 운동의 대두에 장기적이고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다.

또 인터넷 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과거 운동조직에 의존해 과거의 집단 행동을 탈피해 온라인에서 느슨하게 맺어진 ‘연결된 행동’도 정신장애 운동의 탄생을 추동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장애운동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장애인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이 요구됐고 이 과정에서 심신장애자복지법, 장애인고용촉진법, 이동권, 교육권, 장애여성 등의 의제로 분화돼왔다.

하지만 정신장애 관련 운동은 민주화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특히 논문은 정신장애인 인권 문제가 사회운동 단체들에서 제기되지 못했던 점을 단순히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이라는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편견과 낙인 속에서도 집합적 목소리를 냈던 성소수자 운동의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신 논문은 “정신장애 인권 운동이 등장하지 못했던 것은 문화적 편견과 함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병원과 시설에 격리돼 네트워크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설과 병원에 수용된 정신장애인들이 스스로의 정신적 어려움과 싸워야 했고 신체적으로도 구속돼 다른 동료 시민들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조건도 원인의 한 부분이었다. 시설과 병원에서의 장기적 감금이 이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활동을 막았다는 지적이다.

◆…병원과 시설 격리로 당사자 네트워크 차단되면서 고립

정신장애의 특성으로 인한 제도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했던 점도 인권 운동 등장을 늦추는 요인이었다는 분석이다. 정신장애인들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과 접촉한 기회가 제한됐고 민주화 이후의 다양한 시민운동에서 정신장애인을 위한 비당사자 사회운동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논문을 전했다.

하지만 논문은 2000년대 들어 정신장애 인권담론이 확산되고 정신장애인 자조 모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2001년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는 주목받지 못했던 정신장애인 인권 상황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강제입원 문제와 지역사회 거주를 위한 의제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설과 병원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편입된 정신장애인들이 카페나 블로그 등의 형태로 온라인 자조모임을 조직하게 된다.

2001년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장애인 인권침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 오고 있다. 이 기관의 활동은 정신장애 운동사에서 큰 의미를 내포한다. 연합뉴스.
2001년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장애인 인권침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 오고 있다. 이 기관의 활동은 정신장애 운동사에서 큰 의미를 내포한다. [사진=연합뉴스]

논문은 “이들은 강제입원과 정신병원의 열악한 치료환경을 비판하며 인권침해 경험을 공유하는 온라인 모임이 만들어졌다”며 “당사자들간 친목을 도모하는 온라인 자조모임도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들 친목 도모의 모임들은 향후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며 정신장애인들간의 자생적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이는 2010년대 인권운동 단체들의 결성에 토대가 된다.

지역의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를 기반으로 한 자조 모임도 결성되기 시작했다. 정신장애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이 시기에 센터 내 자조모임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는 2007년 ‘같이가는길’, 2013년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이어 2012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시작으로 6~7개의 동료지원센터가 설립됐고 이 단체들은 기존의 복지 수혜자가 아닌 인권침해 당사자로서의 정신장애인 목소리를 대변하고 조직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논문을 분석했다.

고립됐던 정신장애 단체들과 비당사자 인권운동 단체들의 연대도 이 무렵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부터 2010년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운동 단체들간의 연대는 한국 사회운동의 특징적인 모습의 영향에 기인한 것이다.

정신장애 인권운동 단체들은 2014년 정신장애인지역사회생존권연대를 결성했다. 연대에는 정신장애 단체 외에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 등이 함께했다. 생존권연대는 정신장애인권리보장법 입법운동과 국가인권위원회에 강제입원 피해자 집단 진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온라인 자조모임에서 오프라인으로 진출...2010년 인권운동 단체 결성에 토대

이 연대는 2021년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연대로 발전한다. 연대체에는 가족단체와 당사자단체, 장애운동단체, 인권변호 단체 등 매우 광범위한 연대를 보여주었다.

논문은 “시민사회 내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운동 단체들, 인권변호사 단체들과 보다 광범위한 협력을 이루기 시작한 것 역시 괄목한 만한 변화”라며 “국회의원들과의 소통을 늘려나가고 있는 점은 정신장애 인권운동과 제도 정치 사이의 보다 활발한 상호작용을 기대하는 지점”이라고 분석했다.

동북아 정신장애인의 인권 증진과 당사자운동 확산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및 교류회가 7월 5일(몽골 시간)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도심의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진행됐다. 한국, 몽골, 일본 3개국 정신장애 관련 단체들이 몽골에 모여 컨퍼런스를 진행한 건 처음이다.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동북아 정신장애인의 인권 증진과 당사자운동 확산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및 교류회가 7월 5일(몽골 시간)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도심의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진행됐다. 한국, 몽골, 일본 3개국 정신장애 관련 단체들이 몽골에 모여 컨퍼런스를 진행한 건 처음이다. [마인드포스트 자료사진]

논문은 또 정신장애 인권운동의 진화 과정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집단의 인권 문제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심화와 관련돼 있다고 봤다.

논문은 정신장애 인권운동이 나아갈 방향성도 제시했다.

우선 운동 단체의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하고 극소수의 활동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다수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적극적 참여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정신장애 운동단체들이 주류운동에서 소외된 것은 이 운동단체들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공통의 경험적 기반을 바탕으로 형성된 시민사회운동 네트워크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기인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정신장애 인권단체들이 장애인 인권 차원에서 정신장애 문제를 의제화해 타 장애운동 단체들과 넓은 공통분모를 확보하면서 성장하기보다 정신장애 의제에 한정된 운동을 전개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논문은 “향후 운동의 발전 과정에서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자원 확보 및 지속성을 고려하면서 시민사회 내 공통분모를 찾으며 연대해 나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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