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할 줄 알았다면 나는 싸우지 않았을 것”…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30주년 기념식 개최
“승리할 줄 알았다면 나는 싸우지 않았을 것”…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30주년 기념식 개최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12.2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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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정신장애 관련 공부모임에 참여한 사회복지사들에서 출발
리커버리 개념 없던 시절...미국의 한물간 이론 학습했던 오류들
회복 개념의 지역사회 패러다임 전환과 학습을 통한 이론 습득
이용표 교수, 제10대 대표이사로 취임…“정신장애 주체를 위해 도울 것”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30주년 기념행사가 21일 W페스타에서 진행됐다. (c)마인드포스트.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30주년 기념행사가 21일 W페스타에서 진행됐다. 이용표 대표(왼쪽)가 김영환 EM실천 대표에게 공로상을 수여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사회복지법인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30주년 기념행사가 22일 영등포구 W페스타에서 진행됐다.

이 재단은 지난 1992년 몇몇 사회복지사들이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재활에 관한 연구와 실천을 위한 공부 모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미국의 커뮤니티 멘탈 헬스라는 재활 개념이 한국에 소개돼 있었지만 지역사회 리커버리(회복) 패러다임은 아직 소개되기 전이었다.

장혜경 당시 사회복지사(현 한울사회복지연구소장)와 백은령(현 총신대 교수) 등이 공부 조직을 꾸린 후 서울시 중구 이화여고 후문의 허름한 건물 일 층에 ‘한국정신건강복지연구소’ 간판을 내건다. 이후 일부 교수들도 여기에 합류한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이라는 구호조차 낯설던 시절, 아직 정신보건법조차 제정되지 않았던 그 차별의 시절을 그들은 온몸으로 관통해 온 셈이다.

당시 모임을 주도했던 장혜경 한울사회복지연구소장은 최근 <마인드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재활을 위한) 낮 프로그램에 올 수 있는 정신장애인은 상대적으로 나은 분들이었다”며 “도움받을 곳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병원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장 소장은 “그때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제도도 없었다”며 “정신요양시설과 정신병원 이외에는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장혜경 한울사회복지연구소장. (c)마인드포스트.
장혜경 한울사회복지연구소장. (c)마인드포스트

지금은 리커버리 개념이 일상화돼 있고 여기에 철학적 기반을 둔 정신장애인 운동이 선진국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지만 1990대 초반 한국의 정신보건 시스템은 정신장애인이 비정상이라는 규정에 기반해 정상성으로의 복귀를 강요하던 때였다.

다시 장 소장의 말이다.

“정신장애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면서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게 재활의 개념이었어요. 그건 아니죠. 그들은 나을 수도, 안 나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게 리커버리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1995년 한국사회 정신보건 시스템은 한 차례 변화를 겪는다.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은 정신의료 권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초점은 강제입원 등 입원 유형에만 맞춰져 있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 담론은 여전히 부재했다. 강제입원 자체는 사회적 이슈로도 부상하지 못했다. 그건 그 시절, 너무나 흔하고 일상적이었기에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장 소장의 말이다.

“그때는 그게(강제입원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체가 없었어요. 정신보건법이 시행됐지만 강제입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죠. 정신없는 사람을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1997년 연구소를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이 설립된다. 재단은 기존 정신의료법인에서 사회복지법인으로 전환된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건물을 구입했고 이후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인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를 개설한다. 재단은 1999년 서울시 중랑구에도 중랑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를 설립한다.

그리고 2000년 2월, 재단은 정신장애인들의 회복 지향적 작업장인 인쇄소 ‘EM실천’을 창업했다. 당시 정신장애인의 직업 유형은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이들에게 맞춤형 일자리와 직업적 상담을 함께 작동시킨 하나의 쾌거였다.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30주년 기념행사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30주년 기념행사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이후 재단의 발전 방향은 직업재활을 넘어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주거공간의 모색이었다. 2001년 재단은 관악구에 그룹홈 ‘새로돋는집’을, 2005년에는 같은 구에 ‘꿈꾸는집’을 각각 개소했다.

미국에서는 1992년 최초로 리커버리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구성된다. 정신장애인들의 회복은 지역사회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진일보한 회복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정신보건 패러다임은 미국에서도 한물간 재활에 기반한 커뮤니티 멘털헬스 개념이었다.

장 소장의 말이다.

“커뮤니티 멘탈헬스는 정신장애를 경험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이야기인 거고, 리커버리 패러다임은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이야기이고 삶의 과정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죠.”

초기 사회복지사들의 연구 모임에 참여한 30대의 젊은 교수가 있었다. 이용표 현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정신장애에 대한 그의 방향성은 회복과 인권이었다. 그의 열정적 움직임은 재단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 그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제 6대, 7대 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리고 이번 재단 30주년 행사에서 제10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정신장애로 집중시키면서 정신장애인의 인권 담론과 지역사회 생존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실천적으로 진행해온 제1세대 주창자다.

특히 일본의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생활과 회복 공간인 베델의집을 수차례 방문해 이들이 정신질환에 대응하는 자세와 방법 등을 연구해 한국사회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또 연구 활동을 통해 베델의집 당사자연구와 핀란드 오픈 다이얼로그, 대안적 비약물 치료 시스템 등을 한국에 소개했다.

베델의집 치료 철학인 당사자연구는 정신장애인이 겪는 고유한 정신적 어려움인 환청과 망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고생의 구조를 밝히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방향성을 함께 논의하는 치료 프로그램이다.

또 오픈다이얼로그는 핀란드 라플란드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정신위기 상황의 대응 체계다. 정신장애인이 정신적으로 어려움과 위기를 겪을 때 바로 정신병원으로 입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친구,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그와 연결돼 있는 이들과 함께 수평적이고 민주적 대화를 통해 최종 입원 결정을 당사자가 하도록 하는 대안적 치료 체계다.

이 교수는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정신치료 시스템의 한국적 이식을 적극 실천해왔다는 평을 듣는다.

이용표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제 10대 대표이사. (c)마인드포스트.
이용표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제 10대 대표이사. (c)마인드포스트

그는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전면 개정 당시 이론적 지원을 했으며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서비스를 가로막는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에도 정신장애 운동단체들과 함께했다.

특히 이 교수는 동북아 지역 당사자 운동의 확산을 위해 일본과 몽골 등과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상해 실천해오고 있다. 지난 7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개최된 한몽일 정신장애 컨퍼런스는 이 교수의 기획에 의해 진행된 바 있다.

이 교수는 이날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 시대적으로 한울이 뭐든 하면 최초였습니다. 우리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했겠지만 한울이 아니면 못 했을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한울에서 3개 당사자 단체를 탄생시킨 겁니다.”

현재 서울시 지원을 받는 정신장애인 단체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다.

이 교수는 “이들 단체들은 한국 정신건강 정책을 흔드는 세력으로 변했다”며 “한울재단이 공헌한 건 당사자 단체가 클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발달장애 운동과 비교되는 게 발달장애의 개혁 주체는 부모들”이라며 “정신장애인의 권익옹호기관을 전국에 만들자고 하지만 누가 운영할 것이냐는 주체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개혁 주체를 어떻게 형성하도록 한울재단이 도울 것인가는 향후 숙제”라고 밝혔다.

강제입원이 너무나 당연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던 시절,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권리, 사회적 삶을 옹호했던 이들이 있었다. 이어 정신병원에서 생존해 나온 정신장애인들이 단합된 단체를 구성하고 지역사회 삶과 생존을 위해 싸웠다. 누군가 그랬다. 승리할 줄 알았다면 나는 싸우지 않았을 거라고.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30주년 기념행사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시간이 흘렀다. 시인 김수영은 “10년이란 한 사람이 준 상처를 다스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세월이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재단은 3번의 10년을 건너왔다. 상처가 있었고 패배가 있었지만 이용표 교수는 “승리할 줄 알았다면 나는 싸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장 소장의 말이다.

“정신장애를 경험하는 이들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유하는 삶이에요. 어떤 곳에 뿌리내리지 못해요.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서도 그렇고, 본인의 장애 상태나 가족사가 다 얽혀서 떠도는 삶을 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떤 곳에든 자신이 안착해서 뿌리내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삶은 연민과 시혜가 아니라 저 ‘뿌리내림’을 위한 권리의 작동이어야 할 것이다. 이날 기념행사에는 100여 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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