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신장애인의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
[기고] 정신장애인의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
  • 서영희
  • 승인 2022.12.21 1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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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희 씨는 14년째 매주 목요일이면 부산 정신재활시설인 송국클럽하우스를 찾아 511회, 1873시간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서영희 씨(왼쪽).
서영희 씨(왼쪽).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일을 김장이라 부른다. 또한 한국사회의 김장은 내년 식탁을 챙기는 과정이자, 이웃과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정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정신장애인들의 회복을 돕는 정신재활시설 송국클럽하우스에서 매년 이맘때는 내년 식탁에 올릴 김치를 100포기씩 담고, 매주 목요일이면 마흔 명이 넘는 회원(정신장애인)들의 점심을 준비한다.

자녀들을 독립시키자 젊었을 때부터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인근의 자원봉사센터를 찾아 도움이 필요한 복지시설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직원이 무엇을 잘하느냐고 되물었다. 반평생 자식 농사만 지어온 내가 무슨 재주가 있을까 고민하다 주방일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원봉사센터 직원이 송국클럽하우스라는 곳이 있다며 알려주었다.

자원봉사활동으로 매주 40명의 식사를 준비했다. 평소 네 식구 식사만 챙겨오다 열 곱절의 식사를 만들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사재활훈련의 일환으로 회원들이 함께 주방에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꽤 낯설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30년차 주부다. 그간 쌓아온 내공을 십분 발휘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능숙하게 회원들과 맛있는 식사를 차릴 수 있었다. 칼이나 가위 등 위험한 도구를 회원들과 함께 사용할 때면 먹고 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성심껏 곁에서 알려주었다. 손질이 서툴러 다칠 위험이 있거나 증상으로 재료 손질에 집중하지 못할 때는 잔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시설의 김치냉장고가 고장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서 쓰던 김치냉장고를 이참에 바꾸자 싶어 내어주었다. 당장 내가 담가둔 김치를 보관할 곳이 없었지만 당장 급한 곳에 쓰였으면 했다. 남편과 둘이 먹을 김치야 얼마든 더 담글 수 있다.

자원봉사를 가다 유제품 배달 차량을 보면 식사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만을 경험하는 회원들이 떠올랐다. 주머니에 넣어둔 돈을 꺼내 디저트로 낼 유제품을 구입해오거나 마트에 들러 장을 보다 발견한 제철 음식을 사 왔다. 넉넉지 않은 시설 살림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자랑이지만 나는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도 사람 좋다는 평이 있었다. 덕분에 주변의 추천으로 부녀회장 활동을 했다. 임기 중 문득 정신질환에 대한 지역사회의 편견이 높다는 송국클럽하우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만나보면 다르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장애인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부녀회 회원들을 모아놓고 함께 꽃놀이를 가자고 설득했다. 그해 아파트 부녀회와 송국클럽하우스의 회원들이 만나 지역의 봄꽃 축제에 함께 다녀올 수 있었다.

찬바람이 불면 나는 주방일 꽤나 한다는 동네 친구를 찾는다. 송국클럽하우스의 내년 식탁에 올릴 김장 때문이다. 이웃을 찾을 땐 나와 손발이 맞는 사람보다는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는다.

겨울에 이웃을 위해 김장하자며, 좋은 일 하자고 꾄다. 정신재활시설이라는 말에 우려 섞인 목소리로 괜찮은지 묻는 친구에게는 아무렇지 않으니 선입견 갖지 말라며 되레 잔소리했다. 2019년 EBS에서 송국클럽하우스를 기획 취재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적이 있다. 나를 인터뷰하겠다며 카메라를 들이밀자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주저리 이야기를 뭐라고 했나 싶어 방송을 봤더니 “송국클럽하우스 같은 시설이 많아져서 정신장애인들이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더 있어야 한다”, “지역에 다니다 보면 시설을 찾지 못해 힘들게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며 꽤 멋진 말을 했다.

2008년 5월부터 송국클럽하우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으니 벌써 14년째다. 요즘에는 어릴 때부터 류마티스를 겪을 때 수십 리를 걸어 병원을 데려가 준 아버지가 생각난다. 오십대가 되어 겨우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의사가 환갑이 넘어 수술하라는 권유에도 빨리 몸이 나아 사회에 뭐라도 보탬 되는 활동을 하려니 60세는 너무 늦겠다 싶어 앞당겼다.

덕분에 송국클럽하우스를 만났다. 지금도 팔팔해서 좋다. 처음 송국을 만났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손주가 벌써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었다. 벌써 이리 긴 세월이 지났나 싶게 친정아버지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때문인지 요즘엔 가끔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물이 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건강이 허락한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앞으로 30년은 더 송국에서 좋은 이웃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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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아 2022-12-22 10:00:43
송국클럽하우스에 따뜻함과 건강을 챙겨주시는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