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연 “발병했을 때는 화가 났죠...지금은 원망할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이건 어쩔 수 없구나 깨달아가요.”
손성연 “발병했을 때는 화가 났죠...지금은 원망할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이건 어쩔 수 없구나 깨달아가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5.0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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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 프로덕션 ‘미친존재감’ 독립기획자 손성연 씨 인터뷰
고교 시절 친구 통해 연극영화에 관심 가져...대학도 예대로 들어가
20대에 주의력결핍장애 진단...화장실에서 빵 먹으며 사회공포증과 싸워
안티카 창작단에 들어갔다가 처음 접한 조현병 당사자들...당사자성 깨달아
사전 대본 없이 당사자들과 대화하며 나온 이야기가 희곡 대본으로 완성
연극활동도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문화예술 활동도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돼야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건 불성실한 게으름 아니라 내적 어려움 때문
공연은 예술적 완성도 위해 만들지 않아...허구 대신 실제 삶을 보여주는 것
당사자들이 공연에서 자기 삶을 끄집어내 교환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노동은 관계를 파괴시키고 일상을 무너지게 해...나를 지키는 것도 노동으로 인정돼야
정신적 고난이라기보다는 미쳤다라는 단어가 더 좋아...매드(Mad)가 정체성 돼야
정신의 약점을 공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의존은 나쁜 게 아냐...다양하게 상호적으로 의존하는 게 필요해
올해는 미친 존재들에게 노동의 의미 질문하고 정의하는 프로젝트 준비 중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중고등학생 시절 그는 수업을 들어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학업에 취약했다. 교실이라는 장소는 ‘멍하게’ 있다가 일어나는 타자의 공간이었다. 집단따돌림을 당했고 정서적으로 더 취약해졌다. 고교 3학년 때 친구가 생겼다. 친구는 그에게 연극과 영화를 이야기해줬다. 막연하게 극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다.

예대나 연극학과 등에 지원했지만 계속 떨어졌다. 22살 때, 일 년간 집밖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상처 입은 짐승처럼 웅크려 있었다. 24살 때, 그는 한 예술대학의 극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군에 입대해 제대했다. 그때 그의 동생이 정신적 어려움으로 정신과를 다녔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모친은 정신과 의사로부터 “형제 중 한 명이 정신장애가 있으면 다른 형제도 정신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모친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한 그는 ADD(주의력결핍장애) 병명을 진단받게 된다.

약물을 먹으며 그는 처음으로 “내가 이상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의 고통을 알아가면서 그는 사회공포증을 내면화했다.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 것도 두려웠다. 정 배가 고프면 빵을 사 들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도, 은행에 가서 통장과 카드를 개설하는 것도 공포스러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나는 정신병자야’라고 되뇌었다.

희극 공모전에는 계속 떨어졌다. 29살 무렵, 정신장애인 창작 단체인 ‘안티카’에서 단원을 뽑는다는 공고문을 보고 지원했다. 놀랐다. 자신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조현병 당사자들’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일 년간 그들과 연극 대본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려던 참에 코로나가 터졌다. 계획은 물거품이 됐고 그는 또 절망으로 침잠했다. 다시 우연히 기회가 왔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예술위원회에서 지원사업을 한다고 누군가 알려줬다. 지원했고 그는 자신의 단체 명칭을 ‘미친존재감’으로 지었다. 창작 기금 지원으로 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을 배우로 참여시킨다.

그리고 2021년 11월, ‘우리는 미쳤다!’라는 첫 번째 정신장애인 당사자 공연을 완성한다. 사흘 간의 연극 공연에서 자리는 모두 매진이었다. 그리고 2022년에 극 ‘미친 집으로 초대합니다’를 상재했다. 이후 그는 극작가에서 독립기획자로 자신의 지위를 바꾼다. ‘미친존재감 프로젝트’라는 그룹을 만들었고 이 안에서 정신장애인이 직접 연극에 참여하고 그들의 삶을 재연하는 프로젝트를 창작해나가고 있다. 그는 그 연극적 행위를 ‘노동’으로 규정해야 하고 공연예술을 통해 정신장애 담론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현재 공연 예술계 내부에서 ‘정신장애’라는 장애 정체성에 맞는 극단은 없다. 앞으로도 어쩌면 없을 것이다. 그 빈 공간에서 그는 정신장애가 극으로 외화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손성연(34) 씨의 이야기다.

그와 인터뷰를 하며 기자는 어떤 부분에서 공통의 고통을 느꼈다. 그가 화장실에서 빵을 삼켰듯이 알코올중독에 가까웠던 기자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소주와 맥주를 마셨다. 집안에 스스로 유폐돼 책만 읽었던 시절들이 그렇다. 정신적 위기의 상황에 책을 들여다보았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일 수 있다. 기자는 강요하지는 않겠다. 다만 정신 위기에서는 책보다는 풍경을 보고 걷는 것을 추천할 뿐이다.

손성연과 인터뷰를 하며 기자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잠언을 하나 떠올렸다. 오래전, 이십대 때 읽었던 문장이었다. ‘연극은 꿈이다. 하지만 관객은 꿈꾸지 말라. 삶은 현실이기 때문이다’라는 그 문구. 연극 장치에서 무대의 뼈대를 그대로 드러내 이것이 ‘연극이다’라는 것을 연극 마지막 장면까지 관객이 깨닫게 하려는 그 사유.

사실 기자는 연극을 모른다. 배우를 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브레히트의 저 문구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생쌀처럼 정신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손성연이 말한 “공연예술은 본래 불완전하며 그것이 내가 공연을 하는 이유”라는 자기 설명에 기꺼이 동의하게 된다. 그는 그 불완전성을 ‘실패할 수 있는 따뜻한 용기’로 규정했다.

손성연은 이제 30대다. 앞날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푸르른 존재다. 연극에 무지한 기자이지만 기자는 그가 정치적 담론처럼 제시하는 몇 개의 공리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예컨대 ‘우리는 미쳤다!는 정신의학의 역사를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역사로 재해석하기’, ‘정신장애인이 정신장애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 ‘공연예술을 통해 정신장애 담론을 확산시키기’, ‘광기라는 개념을 정신의학이 감히 뇌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예술적으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 지론까지 기자는 생의 비밀이 담긴 듯한 그의 통찰에 기쁘게 동의하게 된다.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손성연 독립기획자. (c)마인드포스트.
손성연 독립기획자. (c)마인드포스트.

-정신질환이 찾아온 걸 어머니께서 먼저 아셨다고요. 그때는 어떤 증상이었습니까.

“증상이 막 급성기처럼 나타난 건 아니었고요. 엄마가 병원에 갔는데 엄마가 ADHD, 동생이 ADHD이니까 형(손성연)도 ADHD일 수 있다고 의사가 진단을 권유한 거 같아요. 엄마한테 데려와 보라고. 결론적으로는 엄마도 저도 동생도 ADHD 진단이 나오긴 했어요.”

-ADD하고 ADHD는 어떻게 다릅니까.

“진단명이 애매하잖아요. 처음에는 ADD라고 했어요. 주의력 결핍 장애는 대부분 사춘기가 지나고 나면 하이퍼가 줄어들어요, 어른들은 대부분 ADD라는 용어를 쓰거든요.”

-하이퍼가 뭐죠?

“과잉된 행동을 하거나 조증 비슷하게 하는 행동을 말해요. 행동이 과하고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그래요. 처음 진단받을 때는 그런 과잉 행동이 없었어요. 그런데 10년쯤 뒤에 진단을 받으면서 의사가 어떨 때는 ADHD, 어떤 때는 ADD라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이걸 굳이 나누는 게 의미가 없겠다 생각했어요.”

-‘우리는 미쳤다’, ‘미친 집으로 초대합니다’ 희곡을 선생님이 다 쓰신 겁니까.

“저는 아예 희곡을 안 써요. 그러니까 대본이 없어요. 대신 인터뷰를 해요. (배우들과)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요. 그리고 녹음한 걸 녹취로 풀어서 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이 이야기한 걸로 대본을 만들어요. 모두가 실제 겪었던 일들을 보여드리는 거죠.”

-대사도 그렇게?

“네 맞아요. 실제 그분이 하는 말들이요.”

-연극에 왜 관심이 그렇게 많으셨어요.

“중고등학교 때 학습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학습적으로 못 따라갔어요. 학교라는 공간이 저한테는 뻥 뚫린 공간 같은 느낌? 공허한데 앉아서 공상만 하고요. 그냥 파도에 모든 걸 맡기고 부유하는 느낌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꿈도 없었고 졸업해서 뭘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도 없었어요. 왕따도 너무 심하게 당했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생겼는데 친구가 연극·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관심을 가졌죠. 그 당시 한 달에 20~30만 원 주면 희곡 쓰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있었어요. 야간반에 회사원들과 일반인들을 모아놓고 가르쳐주는 거죠. 대학생은 거기를 안 가요. 전 대학생이 아니니까 그냥 갔는데 칭찬을 받았어요. ‘대사에 글발이 있네’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관심을 가졌죠. 어떤 연극을 보고 나서 좋았던 건 없었어요.”

-‘우리는 미쳤다!’ 공연에 참여한 정신장애인 배우들은 급여를 받았습니까.

“네. 예산에 따라 달라요. 소액이지만 다 급여는 드렸어요.”

-연극 활동도 정신장애 운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 네.”

-예를 들면.

“저희가 하는 얘기가 친구랑 싸운 이야기, 그림 그렸던 이야기, 교회 다닌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 안에 정신장애인의 이야기가 있어요. 정신장애가 삶과 결합된 얘기가 나오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탈시설이라는 주제에 대해 정신장애인 당사자인 ‘왈왈’님이 한 답변이 인상적인데요.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가 선택한 교회를 못 나간다는 거예요. 나는 내가 선택한 교회에 가고 싶다. 그게 그에게는 탈원화라는 문제거든요. 그냥 교회 가는 얘기인데 그 사람에게는 정신장애가 다른 의미로 겹쳐진다고 해야 할까.

저는 삶을 드러내는 게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미쳤다는 것에는 혐오나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전 그게 다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고정관념에 있는 미친 사람의 모습들이 있는데 그 모습은 사실 미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 그 관념이 사라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주의력결핍장애 때문에 약속 시간을 잘 못 지킨다고 그랬잖아요. 약속 시간 못 지키는 것도 정신질환이라는 거 처음 알았거든요.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예전에는 엄청 심했어요. 약속 시간을 못 지키는 게 뭔가 게으르다는 저의 잘못이 돼버려요. 저 말고도 우울증이 있는 사람도 그렇고 약속 관련해서 겪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게 관계 문제로 연결이 되죠. 저는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개인의 문제가 사실은 사회적 문제라고 봐요. 그럼 어떤 거를 도와야 되지? 약속 시간에 늦을 때 도대체 어떻게 도와야 되지? 증상 때문에 시간 약속이 어렵거나 계획이 어렵다는 걸 어떻게 도우며 살아야 될지가 어려운 부분이죠. 이걸 조율해 나가는 게 저는 연극이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는 저 말고도 약속에 늦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럼 맨 처음에 했던 프로젝트는 2시간짜리 연습이면 3~4시간을 열어두는 거죠. 30분 늦는 사람도 있고 1시간 늦는 사람도 있죠. 그럼 그 사람이 늦을 때 우리는 다른 거 하고 있자. 이런 식으로 조율하는 거죠. 사람에 따라서 이런 식의 프로젝트 약속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죠.”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두려움 때문에 그렇습니까.

“ADD나 ADHD 증상과 관련해서 약속 시간은 지엽적이에요. 전 요즘은 약속 시간에 안 늦어요. 오히려 다른 게 더 많아요. 말을 하다가 멍할 때가 있거든요. 그럼 옆에서 ‘너 딴 생각했지’ 그러면 (정신이) 돌아오거든요. 그리고 한 주제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딴 얘기를 한다든가, 어떤 사람이 얘기를 했는데 전혀 관심이 없어서 다른 생각하고 있고요.”

독립기획자 손성연. (c)마인드포스트.
독립기획자 손성연. (c)마인드포스트.

-선생님은 공연은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만들지 않았다고 하셨죠. 하지만 관객은 봤을 때 연극이 허구일지라도 배우들의 실수를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기본 전제부터 바꿔야 돼요. 저는 허구를 보여주지 않고 실제 삶을 보여주는 거고요. 그걸 다큐멘터리 연극이라고 해요. 무대에서 배우가 얘를 죽일 거야 하면서 칼을 휘둘러도 사실 배우가 무대에서 죽지 않잖아요. 그게 재연의 한계거든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럼 차라리 그렇게 연습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실제 삶을 보여주자는 거죠. 연습 과정에서 실수라는 게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거죠. 이 공연 자체가 실제니까, 같이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니까 여기서는 실수라는 게 어떤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하시나요?”

-실수한 것도 실수가 아니다?

“네. 맞아요.“

-그렇다면 그것도 삶의 모습이다?

“사실 누군가가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이 대사를 빼고 싶다? 그럼 대사를 빼는 게 우선이죠. 대사를 건너뛰고 얘기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미학은 자기 삶을 안전하게 잘 드러내는 거예요. 저한테 중요한 건 프로젝트 내에서 창작자들인 당사자들이 안전하게 자기 삶을 끄집어내고 교환하고 관계의 기회를 만드는 거예요. 그 다음에 관객이랑 만다는 거죠.”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가 이렇게 얘기했더라고요. 연극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된다. 정신장애인의 연극도 여기에 포개지는 느낌이 좀 드는데 어떻습니까.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요.

“제가 생각하는 연극과 예술은 아무리 관객을 불편하게 하고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고 그래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예술이 영향력은 그렇게 강력하지가 않아요. 그러면 이걸 왜 하지라고 하는 문제가 생기죠. 도대체 연극을 왜 해야 되지. 재밌고 메시지 담긴 좋은 드라마들 많은데 왜 연극을 해야 되지. 다만 공동체 내에서 조금씩 서로한테 조율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관객한테 뭔가를 가르치는 걸 좋아하지 않고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관객으로서 갔을 때도 (그 연극이) 메시지를 꼭 던져야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대신 이런 삶이 있다라는 어떤 가능성 정도를 던져주는 것 같아요.”

-충분히 휴식을 할 수 있으면 정신적 어려움이 존중받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하셨어요. 그런 일자리가 있던가요.

“제가 아직은 안정적인 일자리로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라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치유의 길로 갈 수 있다라는 명제가 있잖아요. 일을 하고 돈을 벌면 그것이 치유일까요. 아니면 다른 부분도 치유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요즘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노동이 관계를 파괴시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삶을 지키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하면서 일상이 무너지는 거예요.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노동을 해서 월급을 주는 게 그 사람의 삶의 질을 더 낫게 해 주겠지만 저는 노동 자체의 의미를 바꾸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노동 자체의 의미를 어떻게 바꿔야 되는가요.

“그러니까 노동의 개념 자체를 바꿔야 되는 건데.”

-노동에 대한 기존 틀을 깨야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건 이미 내 삶에 존재하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 삶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도 노동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거든요. 삼시 세끼 먹고 친구들 만나고 우울한 친구 있으면 얘기 들어주고 뭔가 내가 읽고 싶을 때 책을 읽고요. 나를 지키는 일상을 어떻게 우리로 확장시킬 수 있을까가 고민이예요.”

-밤새워 아침까지 컴퓨터 게임하다가 오전 오후는 잠만 자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치유시킬 수 있을까요.

“전 그 게임을 하는 것도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어요.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느꼈고 (우리는 미쳤다!의) 극 중 등장인물이 하는 게임이라는 것은 생각하는 시간이라고 느껴졌거든요.”

-자기 삶에 대해서?

“(극 중 인물이) 마지막에 게임을 그만하고 컴퓨터를 다 깨요. 그리고 얹혀사는 여자에게 갑자기 결혼하자고 하거든요. 저는 그래서 각자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게 공동체적 개념으로 만들 때는 어떻게 하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정신적 질환으로 가장 고통스러웠건 뭐였습니까.

“관계 사고가 약간 힘든 것 같아요. 관계 사고라는 게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게 아닌데 잘못한 거라고 느낀다거나, 뭔가 어떤 낯선 공간에 갔을 때 약간 두렵거나 그런 거죠. 그리고 내가 어떤 계획을 짰을 때 실수를 하면 되게 애매해해요. 그러니까 증상으로 힘든 것보다 증상을 대하는 태도가 더 힘들어요.

예를 들면 이게 ADHD 때문에 그래요라고 말하면 대부분 변명으로 느껴지는 말이 돼버려요. 내 고통이 정확히 전달이 안 돼요. 내가 공연을 보러 갈 때 혼자 가는 게 약간 무서워요라고 말하는 게 내 증상이라는 걸 또 설득을 해야 되는 거죠. 그 과정이 더 어렵죠.”

-정신적인 고난이잖아요. 이게 창작의 창조성을 돕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아니에요. 저는 정신적 고난이라기보다는 미쳤다라는 단어가 더 좋은데, 미친 사람들의 미쳐 있음이 예술적으로 재능이 된다라고 할 때, 그럼 예술적 재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되지라고 하는 관점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반 고흐는 미쳤는데 그림을 잘 그린다 이런 식의 관점을 안 좋아해요.”

-정신적 고난을 갖고 있지만 예술적 창조성이 없는 사람들도 많죠.

“꼭 있어야 되는 게 아니고요. 그리고 창작이라는 게 어떤 능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천재 고흐가 되기보다는 저 같은 경우는 평범한 삶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어떠세요.

“두 개의 삶을 비교하는 게 좀 그런데, 저는 아닌 것 같아요. 그 질문도 약간 어렵네요.”

-스무 살 때 사회공포증 겪었잖아요. 어떤 고통입니까.

“예를 들면 발표하는 게 무서워서 피하고 도망가는 거죠. 시험을 잘 못 볼 것 같으면 도망가고.”

-답안지 안 내고요?

“답안지 안 내고 그냥 가고. 대부분 도망갔어요. 그래서 학점이 2점도 안 됐어요(웃음). 관계적인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것 같아요.”

-학교 친구나 선배들하고 모여서 술 한잔하고 그런 것도?

“선배랑 마시고 뭐 그런 게 없었어요. 혼자는 아니었지만 아웃사이더들이랑 약간 이렇게 만나고요.”

독립기획자 손성연. (c)마인드포스트.
독립기획자 손성연. (c)마인드포스트.

-사회공포증 환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요.

“자신의 약점을 공개하는 거잖아요. 내가 사회공포증입니다, ADHD입니다, 조현병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내 약점을 말하는 건데 이 약점을 말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데 낙인이 되잖아요. 이걸 공개할 수 있는 환경적 분위기가 조성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은행 통장도 누가 대신 만들어 주기를 바랐고 이게 게으름이 아니라 내적 질환의 문제라고 말했었죠.

“증상 자체가 예를 들면 우울증은 게으름이라는 이미지, 조현병 당사자는 범죄자라고 하는 이미지가 있죠. 그런데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내적 질환이죠. 은행 통장을 만들거나 독립하거나 전입 신고를 하는 사회적 활동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죠. 저는 이상한 게 고등학교 때 수업은 대학 가기 위한 공부는 잘 가르쳐주는데 사회적으로 독립해서 살기 위한 과정을 제대로 안 가르쳐준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저 같은 경우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누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제가 이걸 비주체적 의존증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선생님은 어때요.

“저는 의존이 어느 선까지 가면 되게 나쁘다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나쁘다 좋다로 따질 수 없다라고 생각해서 의존이라는 것 자체가 저는 좋은 것 같은데요.”

-의존 자체는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저는 의존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다양하게 상호적으로.”

-학과 수강 신청할 때도 두려워서 스스로 안 들으려 했던 과목도 어쩔 수 없이 듣게 됐다고요.

“아무도 안 듣는 과목이 있었어요. 뮤지컬 과목이라고 되게 밤늦게까지 수업을 해요. 근데 저는 수강 일정을 잘한 줄 알았는데 안 됐더라고요. 남은 수강 가능 과목이 그거밖에 안 남았다는 거예요. 그걸 들었죠. 이런 주먹구구식이랑 즉흥성, 약간 노답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혼자 밥 먹는 게 두려워서 화장실 변기에서 빵하고 삼각김밥을 먹었다고요.

“네. 예전 대학 때에.”

-저도 그랬거든요. 저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소주를 들이켰거든요. 알코올 중독이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화장실은 저도 그렇고 선생님도 달아나고 싶은 정신의 다락방 비슷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무엇을 그렇게 피하고 싶었습니까.

“내가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는지가 너무 의문이었어요. 번듯하게는 아니더라도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매 수업마다 사람들이 나를 별로라고 하면 어떡하지, 나는 정말로 제대로 된 사람으로서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게 항상 두려웠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가 너무 무서웠던 것 같아요.”

-식당에서 혼자 밥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먹죠. 이제는.”

-그때는 왜 그랬습니까.

“그때는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 두려웠고. 그리고 뭔가 계속 인정받고 싶었던 거 같아요. 내가 글 쓰는 거를 잘하고 싶은데 항상 잘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내가 미친 듯이 몰입해서 이걸 했는데 뭔가 평가가 되게 중요하니까 그때는 무서웠죠. 모든 면에서 그랬던 것 같아요.”

-혼자 밥 먹는 것이 왜 두려웠는지 저도 조금은 이해는 되는데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밥을 먹을 때 웃음소리가 나면 그 웃음소리가 마치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주위에서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게 아닐까, 내가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평가할까,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두세 명하고 같이 먹을 때는 괜찮았고요.

“그때는 괜찮았어요.”(웃음)

-선생님은 지금 치유됐습니까.

“치유라는 개념이 없죠. 계속 약물 먹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정도는 미쳤다는 것을 제 삶으로 수용한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요.

“ADHD나 사회공포증이 드러날 때는 그냥 그때의 감정 상태가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죠. 약을 먹어도 원래 이렇잖아, 언제든 이래 왔잖아라는 느낌이 돼요. 예전에는 원망할 대상을 찾았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어요.

막 병이 났을 때는 억울하고 막 화가 났거든요. 예전에 왕따 당해서 그래, 예전에 엄마 아빠 때문에 그래, 나를 괴롭혀서 그래. 이제는 이런 원망할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이건 질병에 걸린 나의 시간이구나. 또 사회와 불화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거구나(라고 생각하죠). 이건 사회가 나의 시간에 맞춰야 되는데 맞추지 않고 있구나, 이런 것들을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

-계속 연구하고 쓰고 말하는 예술적 활동을 통해 저항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누구에 대해서 무엇을 위한 저항입니까.

“사회 시스템인 것 같아요. 의료적 모델에 저항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에요. 사실 의료적 모델보다 더 저항해야 되는 게 저는 사회 시스템 바꾸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지가 더 고민이 커요. 예를 들면 학업 중단과 관련된 얘기들, 정신장애인들 급성기 나타났을 때 이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는가 이런 문제들을 바꿔나가는 거죠.”

-약물의 문제에 대해서는, 의료 모델에 대해서는 저항하지 않겠다?

“그건 아니고요. 약물의 진료실이 의사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당사자와 의사의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대화의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또 약물 복용 경험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생각이 드는 게 의사가 환자의 고통과 말을 들어야 한다는 뜻인데 현재 상담 수가가 없잖아요. 내가 정신과 의사면 내담자 면담에 30분~1시간 하면 국가가 나한테 돈을 주는 그런 수가 시스템이 없거든요. 근데 거기에다 대고 한 시간이라도 말을 들어달라고 하는 거는 현재 시스템 안에서 좀 아니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그러네요. 함께하는 의사결정 비판정신의학에 보면 30분 진료 원칙이 있거든요. 그걸 보고 제가 적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정신적으로 아프면서 정신의 골방에서 그저 책을 읽었습니다. 꿈도 없었고 그냥 글을 쓰고. 저랑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이 독서 행위가 정신질환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오히려 누군가한테 인정받으려고 하는 태도가 안 좋은 것 같아요. 인정받기 위한 글쓰기가 되면 안 좋아요. 그냥 글쓰기는 글쓰기이고 이걸로 누군가한테 인정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즐거운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 안 좋은 시기에 그나마 내가 이걸 붙들고 있는 게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거다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글 쓰는 행위가 더 힘들고 확장되지 못하는 거 같아요.”

독립기획자 손성연. (c)마인드포스트.
독립기획자 손성연. (c)마인드포스트.

-함약회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함약회는 ‘함께하는 약선택을 통한 회복 실천운동’으로 전문의와 당사자가 대화를 통한 약물의 선택을 주창하는 그룹이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20일 단체로 출범했다-편집주)

“약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약물 복용 경험을 보면 자기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 것도 어렵거든요. 내 증상을 정확히 사회적으로 어떻게 영향받는지를 알기가 어려워요, 내가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어떤 부분이 어렵다. 혹은 이런 부분은 감정적으로 약간 과잉 증상이 올라오거나 내려가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조금 더 많이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준비 중인 희곡은 있습니까.

“희곡은 아니고요. 이번 연도 프로젝트는 ‘미친 회사 프로젝트’이에요. 말씀드렸다시피 노동을 정의하고 그 노동을 같이 실천하면서 미친 존재들에게 노동이 도대체 뭐지라고 질문하고 개념을 정의하는 과정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나이 한 50대, 60대 되면 뭐 하고 계실 거 같아요.

“계속 연극하지 않을까요(웃음).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평생교육원이 만들어져서 거기 야학에서 선생님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야학을 하고 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거기서 하는 수업이 내가 도대체 사회에 말하고 싶은 게 뭔지를 찾는 글쓰기인데 재밌어요.”

오후 네 시의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기자는 잠시 그의 등을 타고 들어오는 풍경의 실루엣이 ‘적막하다’라고 느꼈다. 그것은 깨달음 같은 어떤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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