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정신질환 '워치독' 언론 모니터링 활동 종료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정신질환 '워치독' 언론 모니터링 활동 종료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12.24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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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포스트·서울시 언론 모니터링 활동 10회로 종결
조현병 환자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혐오 생산
사건에서 조현병 당사자의 말은 법효력 없는 무가치한 것
정신질환 기사 삽화에 굳이 ‘칼’을 품은 장면 내보내야 했나
조울증 아버지와 가족 관계 다룬 영화...“가슴 따뜻해져”

<마인드포스트>와 서울시가 주관하는 모니터링단 활동이 지난 10월부터 진행돼 총 10회로 종결됐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10인과 비당사자 5명 등 15명이 참여한 이번 활동에는 3명 당 한 팀을 이뤄 언론, 방송, 영화, 라디오, 유튜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되는 정신장애인 차별 보도에 대해 분석하고 대응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 분석에 대해 모니터링단 자문위원들이 최종 평가를 했다.

마지막 회인 10회에서는 언론과 영화, 유튜브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나왔다.

구예랑 씨(당사자)는 이달 14일 동두천 계곡 텐트에서 20대 남녀가 사망한 방송에 대해 “자살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은 추정적 기사일지라도 하단에 자살 예방 핫라인 정도는 기재해 주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자살률 상위권에 드는 한국 기자님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라고 토로했다.

김교비 씨(당사자)는 이달 15일 2호선에서 슬리퍼 폭행한 남성이 조울증으로 인한 사건으로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을 담은 일간지 기사를 지목해 “제목에 정신질환명과 심신미약된 사실을 엮음으로써 비장애인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범죄가 용인되는 사회라고 비판하게 만들었다”며 “제목을 수정하고 조울증을 언급하고 싶다면 언급하고 모든 조울증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과 관련된 내용을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준현(당사자) 씨는 2017년 4월 한 방송사의 기사 ‘조현병 방치...범죄 참극 잇따라’ 보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인천에서 발생한 초등생 피살 사건 피의자인 10대 소녀가 조현병 환자인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뚜렷한 동기도 없이 잔혹하게 희생시키는 정신질환 범죄, 전체 범죄의 0.3%에 불과하지만 계속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며 “전체 범죄보다 적은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신질환 범죄가 전체 범죄의 0.3%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이 기사 자체를 쓸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19일 발생한 가평 주택 화재...막내 아들 불기로 송치 (c)방송 화면 갈무리.
지난 19일 발생한 가평 주택 화재...막내 아들 불기로 송치. 사진=가평소방서 제공

안현 씨(비당사자)는 이달 19일에 보도된 한 방송사의 기사 ‘가평 주택 화재 방화 혐의 막내아들 불기소 송치’를 분석했다.

이 사건은 올해 6월 일가족 3명이 숨진 경기도 가평군 주택 화재로 방화 혐의를 받던 막내아들 A씨(46세)에 대해 경찰이 불기소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내용이다.

경찰은 A씨가 사건 현장에 흉기를 들고 있었던 점을 미뤄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조현병 증세를 보여 진술 자체에 신빙성을 갖기 어렵고 화재 원인을 정확하게 찾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안현 씨는 “A씨의 증언은 하나의 말로서 인정받지 못했고 그의 말은 힘을, 법적 효력, 신뢰를 상실한 무가치한 것으로 되돌려졌다”며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그에 책임질 능력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조현병 환자이기 때문에’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나머지 조현병 환자에 대한 하나의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며 “A씨의 증언을 신뢰하기가 왜 힘든지를 독자가 납득할 수 있게 정리해서 이야기해 주는 게 조현병 환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 의식”이라고 비판했다.

허형섭 씨(비당사자)는 이달 18일 일간지의 ‘베란다 탈출 창녕 10살 딸 학대한 계부·친모 징역형’ 제목의 기사에 대해 “친모가 조현병 증상이 심화돼 범죄 행위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증상의 심화가 곧 학대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답한 것”이라며 “이는 행위 발생 경위를 증상으로만 귀결하는 오류를 범했으며 당사자들을 잠재적 범죄 행위의 위험자로 여기는 편견을 내포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15일 일간지가 보도한 “‘의사가 낸 눈 찔러 망가졌다’...병원서 흉기 난동 벌인 조현병 환자”에 대한 기사는 모니터링 활동가 두 명의 시선이 상호교차했다. 40대 여성이 안과 치료 도중 의사에게 항의하며 폭행을 한 기사로 이 신문 삽화는 칼을 품고 있는 그림을 담고 있다.

지난 15일 보도된 '의사가 내 눈 찔렀다..병원서 흉기 난동 벌인 조현병 환자' (c)일간지 기사 갈무리.
지난 15일 보도된 '의사가 내 눈 찔렀다..병원서 흉기 난동 벌인 조현병 환자' 삽화 사진=해당 일간지 기사 갈무리.

이관형 씨(당사자) 씨는 “제목에 조현병 환자 대신 안과 환자라고 쓰는 게 맞지 않을까”라며 “범죄자는 정신과 진료가 아닌 안과 진료를 받다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삽화에서 범죄자가 칼을 품고 있는데 굳이 이런 삽화를 써야 했나 싶다”며 “아무리 실화라 할지라도 기사는 드라마나 영화 대본처럼 묘사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강성훈 씨(당사자) 역시 “기자는 제목에서부터 의사가 내 눈을 찔러 망가졌다는 사실과 관계 없어 보이는 자극적 표현과 조현병을 사용했다”며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추측을 유도하고 조현병에 대한 타당한 근거 없는 편견을 가질 수 있는 기사”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조현병을 불필요하게 부각시켜서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조현병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며 “기사에 사용한 삽화가 너무나 확대 과장돼 있다”고 전했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정신장애인의 이미지도 분석 대상에 올랐다.

홍승현 씨(비당사자)는 지난 2014년 개봉된 ‘인피니틀리 폴라 베어’ 영화에 대해 분석했다. 조울증 아버지를 둔 당사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아버지가 감정을 제어 못하고 그로 인한 행동 때문에 직장을 잃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인피니틀리 폴카 베어' 포스터.
영화 '인피니틀리 폴카 베어' 포스터

승현 씨는 “느낀 생각은 다른 영화들처럼 당사자가 특이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닌 그저 감정 표현을 강하게 하는 한 사람의 가정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며 “이 영화가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당사자 가족들의 감정과 생활을 잘 표현해 좋았다”고 비평했다.

이어 “어머니가 돈을 벌러 타 지역에 가 있는 사이 두 딸과 아버지가 생활하면서 싫어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는 생활을 잘 보여줬다”며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김동환 씨(당사자)는 2010년 개봉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를 분석했다. 1950년대 정신병력이 있는 범죄자들이 구속돼 있는 감옥 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한 여성 수감자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연방수사관 두 명이 사건 조사를 위해 이 섬에 들어오면서 감옥 섬 관계자들이 이 행방불명 사건을 조작한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이 섬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들을 ‘정신병자’로 몰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전두엽 절제술을 강제 시술해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공간임이 밝혀지게 된다.

동환 씨는 “조현병이라는 관련한 질환을 보고 이 영화를 시청했다면 중간중간 자극이 될 만한 장면이나 연출에서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주지 않았을까”라며 “2019년 개봉된 영화 ‘조커’도 영화 자체는 만족했지만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친구와 보러 갔는데 충격을 먹어서 그때 이후로 그 친구도 이러한 비슷한 영화를 안 본다”고 적었다.

모니터링단의 미디어 분석에 대한 자문도 이어졌다. 정다혜 장애인법연구회 변호사는 지난 2018년 10월 중앙 방송사가 보도한 ‘조현병 환자, 길 걷던 행인 2명에 흉기 습격...1명 중태’의 모니터링단 분석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정신질환 정보는 개인의 민감 정보에 해당하므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언론에 유출되는 행위는 인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정 변호사는 “예외적으로 수사 사건을 공개할 수 있는 경우인지 따져볼 때 범죄 유형과 수법을 알려 범죄 재발을 방지할 필요,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로 인해 사건 관계자의 권익 침해가 관련된 경우, 신속한 범인 검거를 위해 협조가 필요한 경우, 공공의 안전에 급박한 위협이나 대응 조치와 관련된 경우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5월 한 무속인이 운영하는 유튜브에서 ‘병원에서 치료 못하는 조현병, 귀신병일 수도 있다’라는 방송을 분석한 부분에 대해 정 변호사는 “유튜브 영상만을 근거로 고소를 진행하는 것은 특정한 피해자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해당 유튜브는 무속인이 나와 조현병이 귀신병이라고 주장해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튜브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조현병...귀신병일 수도 있다' (c)해당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조현병...귀신병일 수도 있다'. 사진=해당 유튜브 화면 갈무리.

정 변호사는 “유튜브와 관련한 새로운 사회 현상을 다루는 법령이 미비한 문제가 있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관점에서 허위라는 이유로 처벌하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명백한 피해의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에 처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신 피해자에게 불행을 고지하거나 길흉화복에 관한 어떤 결과를 약속하고 기도비 등의 명목으로 대가를 교부받은 경우 전통적인 종교 행위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2017년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었다.

이번 모니터링 활동은 10회차를 끝으로 종결된다. 활동에 참여했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언론과 미디어, 영화, 라디오 등에서 소비되는 정신질환과 정신장애인 이미지에 대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는 의견을 주로 냈다.

특히 그간 언론이 정신장애에 대해 미신적인 위험성을 강조해 이를 보는 언론 소비자들이 정신장애를 차별하고 사회적으로 더 배제하게 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알게 됐다는 의견도 냈다.

<마인드포스트> 관계자는 “우리를 빼고 우리를 말하지 말라가 우리 신문의 주장”이라며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눈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부당하게 차별받는 정신장애인의 사회정치적 해방을 위해서는 더 많은 언론 모니터링과 당사자의 활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서울시의 "2020년 정신질환자 권익보호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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