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권 보호를 방치하는 국가...모든 책임을 가족에 부담시켜
가족 내 정신질환 자녀에게 폭행 당해도 신고 안 해...부모이기 때문
정부는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로 가족 부담 내려놓게 해야
‘가족’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따뜻함. 든든함. 사랑. 화목. 영원한 내편….]
밝은 단어가 연상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더라도) 정신과적 증상과 관련된 타해의 위험성을 보여서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중증정신질환자를 둔 가족도 그럴까?
[웬수(원수), 남만도 못한 사람, 두려움, 공포, 번아웃, 평생의 짐, 내가 죽으면 어떻게 살까….]
위와 같은 단어들은 내가 과거에 (혹은 지금도 일부는 가끔) 나의 형에게 든 생각이다.
나는 결혼하지 않고 80세 전후의 부모님과 형을 데리고 내가 장만한 주거지에서 같이 살아오고 있다. 형은 30여 년 전 조현병이 발병했으며, 정신과적 증상과 연관된 살인미수 사건(급성기에 일면식도 없던 2명을 흉기로 찔러서 중상을 입힘)을 일으킨 적이 있고 그 외에도 나를 포함한 다른 가족과 제3자에게 수많은 폭력적 언행을 해왔다.
과거보다 지금은 그러한 언행의 빈도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형은 여전히 나와 부모님 입장에서는 늘 '불안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부모님이 형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 단순히 혈연관계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낳고 기르고 발병 전 유년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형은 본인이 돈을 벌어 본 기간이 평생 다 합쳐도 몇 달이 안 된다. 증상 때문에 취업도 되지 않고 설령 취업해도 취업한 곳의 다른 사람들과의 불화나 업무 능력 부족으로 불과 하루 만에 해고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에 과거에는 부모님이,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내가 형의 부양과 돌봄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원칙적으로 ‘가구’ 단위로 보장한다. 형이 아무리 재산도 없고, 소득도 없고, 중증정신장애인이라 근로 무능력자 판정을 받아도 같이 사는 다른 가족이 어느 정도의 재산이나 소득만 있어도 ‘가구’ 단위로만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때문에 형은 기초생활수급자는커녕 차상위계층 선정기준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당연히 장애수당(월4만 원)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면 형을 따로 살게 하지 왜 '바보'처럼 같이 사느냐고?
한때 문제를 계속 일으키는 형을 따로 나가서 살게 권유해 봤으나 형이 완강히 거부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하긴 권유를 받아들여서 따로 살게 했다면 얼마 못 가서 형이 또 ‘큰 사고’를 칠 가능성이 컸다. 사고를 치더라도 ‘안인득 사건처럼 제3자가 피해를 당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거나 다치는 것이 낫지’라는 마음이다.
2017년 11월부터 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 제도가 완화됐다. 수급 신청자가 만 30세 이상의 중증장애인이고 부양의무자가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이면 그 노인은 부양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제도다. 그때부터 나의 형은 별도가구인정특례가 적용되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생계·의료·주거)가 됐다.
그러나 장애인연금은 기존 장애 1~2급 및 중복장애 3급 기준에 적용 안 되는 단독장애 3급이라서 해당 사항이 없이 장애수당 월4만 원만 지급된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장애를 갖게 됐을 때 국민연금이 지급하는 장애연금도 역시 형은 해당 사항이 안 된다. 형이 국민연금 가입자격 나이가 되기 전인 고등학생 때 발병해 장애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도 지원 안 된다. 형이 원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원한다고 하더라도 현행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제공 평가기준에서는 주로 신체장애인에 맞추어진 기준이라서 탈락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중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인원은 정말 극소수다. 그것도 대부분 중복장애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즉,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됐지만 여전히 빈약한 지원이라 부족한 부분은 내가 경제적인 면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지원·돌봄을 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2017년 말, 형이 가족과 산책을 하던 중 행인들끼리 하는 대화를 ‘자신을 욕하는’ 환청으로 들어서 주먹을 휘두르려던 적이 있었다. 나는 간신히 형을 제지하고 급히 귀가 후 평소 외래 치료를 받던 정신병원에 가보자고 설득했지만 형은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나는 112와 119에 차례로 전화했다.
하지만 모든 도움을 거절당했고 다시 112에 전화한 후에야 경찰이 출동했다. 나는 출동한 경찰과 미리 만나서 형의 정신질환력, 과거 정신과적 증상과 연관된 ‘살인미수’ 전력, 오늘 있었던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대해 설명한 후 집에 같이 들어왔다.
그러나 경찰은 자신의 눈앞에서 위험한 언행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냥 철수하겠다고 했고, 나는 “그냥 철수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사설이송단을 부를 테니 그들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철수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사설이송단이 도착하자 경찰은 바로 철수했고 형은 사설이송단에 의해 병원에 이송돼 정신과 전문의의 대면진찰과 보호의무자인 가족 2인의 서명으로 보호입원 됐다. 형은 3개월 후 퇴원했다.
가족 = ‘노예’의 삶?
중증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말하는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서의 폭력적 인권 침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과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일부 병원과 시설에서 인권 침해적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데 있다.
인권 중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인권이 무엇일까? 바로 ‘생명권’이다. 생명권이 있어야 행복추구권이나 주거권, 일할 수 있는 권리도 있는 것이다.
경찰청 전수조사 통계에 따르면 매년 50~70건씩 일어나는 전체 존속살해 사건 중 절반 정도가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해 발생한다. 그중 조현병이 다수를 차지한다.
국가의 그 어떤 지원도 없이 홀로 고립된 삶의 섬에서 정신질환자 자식을 돌보는 부모가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국가 지원을 포괄적으로 받는 선진국들에 비해 5배 높은 수치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또 조현병이 아닌 조울증이나 양극성장애, 알코올중독과 물질 남용 등 상당수 중증정신질환자 가정에서 크고 작은 폭행 사례는 드물지 않다.
그런데도 절대 다수의 중증정신질환자의 부모(가족)들은 “내가 큰 인권 침해 피해자!”라고 말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왜? 부모들이 바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부모’라서 그렇다. 부모는 설령 중증정신질환을 가진 자녀가 자신을 흉기로 위협하거나 죽이려 했어도 자녀가 ‘전과자’가 될까 봐 경찰에는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게 ‘부모’이다.
대다수의 이러한 부모들에게 오히려 결정타를 날리는 대법원 판결이 났다
해당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 보면
짐짓 합리적인 척(?)을 한다.
그러나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 부분과 판단은 다음과 같이 해버린다.
(2) 소외인은 2016. 7. 4. 피고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수리문제로 피고와 다투고 이 사건 아파트 (호수 2 생략)으로 돌아온 후, 16:00경 자신의 방 침대 위에 수건과 헝겊, 부탄가스를 쌓아놓고 불을 붙였다. 피고는 사무실에 설치된 CCTV를 통하여 이를 확인하고 아파트로 가서 불을 껐고 소외인을 안정시킨 다음 사무실로 돌아왔다.
(3) 피고는 2016. 7. 4. 20:00경 일을 마치고 귀가하여 소외인과 대화를 하였는데, 소외인은 피고를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하면서 톱과 망치를 꺼내 보였고, 피고는 6개월 정도 같이 살다가 원룸을 따로 얻어 줄 것이니 독립해서 살아보라고 하면서 소외인을 달랬다. 이후 자기의 방으로 들어간 소외인은 방 안에서 다시 불을 질렀다. 피고가 이를 발견하고 불을 끄려고 하였으나 소외인이 톱과 망치를 들고 이를 방해하여 스스로 불을 끄지 못하고 소방서에 신고하였다. 이 사건 아파트 호수 생략
(4) ( 2 )에서 발생한 불은 2016. 7. 4. 22:00경 이 사건 아파트 (호수 1 생략)으로 옮겨 붙여 이 사건 아파트 (호수 1 생략) 내 가재도구가 불에 타거나 그슬렸고, 원고 2, 원고 3은 연기를 흡입하여 ○○○대학교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이하 ‘이 사건 화재사고’라 한다).”
(1) 이 사건 화재사고 당시 양극성 정동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소외인은 당일 이미 한 차례 방화하였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톱과 망치로 위협하는 등 계속해서 정신적으로 불안 증세를 보였다.
(2)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는 소외인의 보호의무자로서 소외인의 동태를 잘 살펴 소외인이 방화 등 우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이러한 우발적인 행동이 있더라도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의무가 있다.
(3) 피고는 이러한 대비를 게을리 한 과실이 있고, 이러한 감독상 과실이 이 사건 화재사고 발생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 과실과 손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도 인정된다.
어떤가? 피고(중증정신질환자의 아버지)가 과연 법원이 지적한 노력을 게을리했는가? 저 상황에서 노력을 게을리한 과실 지적을 받지 않으려면 피고는 어떻게 해야 했는가?
피고인 아버지가 30대의 건장한 자식이 첫 방화를 했을 때 다음 중 한 가지를 해야 했다는 말인가?
② 불을 끈 후, (일단 자녀와 대화하면서 설득하고 달래지 않고, 자녀가 방화죄로 형사처벌 당하지 않게) 공권력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불에 탈 만한 물질이 전혀 없는 곳(?)으로 강제로라도 (필요하면 수갑이나 포승줄 등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한 강박 등 완력까지 사용해서) 데려가서 최소 며칠간 쭉 감금한다.
③ 불을 끈 후, 다시 불을 낼 가능성이 크고 장기간의 돌봄에 번아웃되어 ‘자녀를 살해’한다. 그 후 ‘정상참작’ 살인죄로 3년 형을 받고 수감된다. (실제 최근 그런 판결이 났다)
나는 판사들이 현재의 정신질환 관련 법과 제도뿐 아니라 실제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죽임당하거나·죽이거나·민사손해배상 당하거나·유기(버림)하고 형사처벌받거나
치료도 거부하고 치료하더라도 호전이 잘 안 되는 심각한 중증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운명. 이 고통은 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조항이다.
②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 또는 정신요양시설(이하 “정신의료기관등”이라 한다)에 입원등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며,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가 정신의료기관등에서 정신질환자의 퇴원등이 가능하다고 진단할 경우에는 퇴원등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③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아니하도록 유의하여야 하며, 정신질환자의 재산상의 이익 등 권리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를 유기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제 정말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해당 판결문을 본 모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필자에게 “나였다면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에 해당 제40조 3항에 대해 위헌소송을 냈을텐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 또한 내가 만일 헌법재판관이라면 당연히 해당 조항은 위헌이라고 판결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므로 나는 외친다.
"정신건강복지법의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하라!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하라!"
이 외침이 과연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인가? 국가의 답을 바란다.
<아래는 해당 사건 대법원 판결문 전문(全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