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장기입원은 국가와 정신과 의사들, 정신병원 운영자들의 카르텔이 만든 인권 침해”
권오용 “장기입원은 국가와 정신과 의사들, 정신병원 운영자들의 카르텔이 만든 인권 침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1.0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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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사무총장 인터뷰
검사 생활 중 찾아온 불면과 불안…정신질환으로 희망 잃어
검사로 출세하는 꿈꿨지만 질환에 넘어져, 희망 없이 떠돌아
우연히 찾아온 ‘예수님’ 기도…그날 이후 숙면 취하기 시작해
2010년 5월, 인사동 태화관에서 카미(Kami) 발족…첫 커밍아웃
정신장애 운동 불모지에서 그가 외친 건 ‘당사자의 소비자주의’
당사자들 계급적 정체성 인식하고 단체간 연대 강화해야
정신건강복지법은 서비스 없이 정신장애인 규제하는 법, “폐지해야”
인간 존엄의 기본은 자기결정권…신체와 자유에 대한 인격 존중해야
사법입원제 하면 판사들이 의사 진단서에 의존해 판결내려 버릴 것
병원에 들어가는 국가 돈, 정신장애인 자립과 취업에 써야
정신건강복지법의 입원과 강박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다 배치돼
아시아 인권협약과 인권법원 만들어지면 공통 기준 마련하게 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그는 1978년 서울의 한 의대를 들어갔다. 학교가 장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하는 형들과 어울렸다. 의대 공부는 낙제에 가까웠고 그는 의대를 떠나 1980년 법대로 편입학했다.

그해 5월이었다.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듯 사람들이 권력의 총 앞에서 쓰러질 때 그는 고작 여린 정신의 스무 살. 정치와 현실, 진리와 모순, 정의와 폭력 앞에 서서 청춘은 방황했다. 그때 아내를 만났고 아내를 통해 위로와 평화를 얻었다. 이후 1986년 사법고시 합격 후 마산지검에서 첫 검사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그때의 자신을 향해 ‘융통성이 부족했고 쉽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고 말했다. 이후 부산으로 발령나 검사 생활을 이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성실히 직장생활하면 출세하고 잘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업무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강박이 찾아오고 잠을 자지 못했다.

정신보건법도 없던 1993년 무렵, 그는 정신과 폐쇄병동에 며칠 입원한 후 퇴원했다. 그 무렵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이 내려와 있으니 너도 내려올 수 있으면 내려왔다 가라는 당부였다. 그는 ‘힘들어서 못 내려간다’고 말한 후 그날 저녁 친구들과 마작 놀이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후회는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정신적으로 그는 바닥에 가라앉게 된다. 6개월 휴직 후 복직했지만 다시 잠은 오지 않았고 결국 사표를 쓰고 말았다. 권력의 자장 안에 있던 그는 어느 순간 자장 밖으로 밀려났다.

그는 인천으로 와 변호사 개업을 했다. 아내가 사무실을 구해줬지만 그는 사람을 만나는 게 싫어 변호사 사무실 문을 잠그고 소파에 누워 잠만 잤다. 회복은 자주 예상하지 않은 데서 몰려온다.

휴직 당시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교회 집사인 처남댁이 기도라도 해 보자며 교회 사람들을 데려왔다. 그는 거부감이 들었다. 실어증 걸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빨리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그는, 어느 순간, 거기 모인 교인들이 부르짖는 ‘예수님’이라는 호명에 갑작스레 머리를 둔기로 맞은 느낌을 받게 됐다. 사라졌던 희망이 고이는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단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 상황을 ‘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에 걸렸다고 모두가 교회를 찾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강요될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떤 계기로 회복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에게 그 결정적 경험은 ‘예수’였다.

물론 좋은 정신과 의사를 만난 것도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진 그는 2003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졌지만 강제입원만 있고 자율에 의한 입원, 인권적 치료 환경은 꿈꿀 수 없었던 그때. 그는 변호사 생활과 정신장애인 인권 운동을 펼쳐나갔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어떤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도 없던 그 시절, 그는 한국에는 역시 생소한 ‘소비자 이론’을 강의하고 다녔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그는 조직을 갈망했다. 그는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2010년 5월, 한국정신장애연대(Kami·카미)를 발족했다. 정신장애인 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한국사회 최초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조직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간은 권력을 욕망한다. 그도 그랬다. 일 열심히 하고 선배 검사들 잘 따르고 하면 출세하고 잘 살게 될 줄 알았다. 그건 그만의 욕망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일정 정도 그런 욕구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의미가 된다. 예수는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다. 그건 거듭남이다.

그는 욕망을 버리는 대신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 감사를 얻기 시작했다. 그에게 물었다. 행복하냐고. 그는 깊은 눈동자로 기자를 응시하며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권오용(62) 카미 사무총장을 만난 건 지난달 6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사무실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검사였습니다. 권력을 누리는 자리에서 정신질환으로 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비통했을 거 같습니다.

“완전히 절망이었어요. 검사하다가 밑바닥으로 갔다는 절망이 아니라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황들이죠. (찾아뵙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돌이킬 수 없게 되고 그 후회에 매이는 거예요. 그게 쌓이니까 헤어날 수 없는 존재론적 절망감이 밀려와요. 용기가 없으니 죽는다는 생각도 못 해 보고.”

-고통받고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요.

“검사니까 프라이드도 있고 노력하면 출세하고 돈도 번다는 생각으로 살잖아요. 그런데 자신감을 잃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검사 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래도 열심히 하면 출세할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에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희망이 없는 거예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것도 낙인이 될 거 같고. 유일하게 예수님을 받아들이면서 괜찮아지더라고요.”

-정신질환을 오래 겪게 되면 가까웠던 이들도 다 떠나고 사회적 관계망도 훼손돼 버립니다.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검사하던 친구가 병문안을 왔는데 내가 할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말 한마디 못 걸고 보냈어요. 옛날에는 친구들 모임에도 나가고 술도 자주 먹었는데 그게 다 끊어져 버려요. 친척들은 안됐다며 혀를 차죠. 유일하게 집사람이 그 상황을 이기기 위해 노력을 했죠. 그런 상황에서 사회적 관계는 뭐.”

-인생에서 끝까지 가 줄 친구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아니더라고요. (검사 시절에) 피곤해도 선배가 앉아 있으면 나도 새벽 3~4시까지 예의상 앉아 술을 마셨어요. 그런데 내 정신건강이 무너졌다가 회복되면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돼요. 그래야 내가 살겠으니까.

형제들도 도움을 별로 못 줬어요. 좋은 의사가 도움을 줬죠. 그 의사가 처남 친구였는데 얘기를 잘 들어주고 약을 잘 조절하고 바꿔줬어요. 저는 지금은 약을 안 먹어요. (발병 초기에) 부산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처남 내외가 찾아왔어요. 처남이 의과대학 교수인데 계속 입원해 있으면 안 될 거 같으니까 퇴원하자고 그래요.

그런데 병원 원장이 더 치료를 해야 한다며 퇴원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때는 정신보건법도 없었어요. 내가 의료보험 환자고 진료비도 다 냈는데 원장이 안 된다고 하니 갑갑하더라고요. 처남은 의대 교수고 나는 현직 검사인데도 정신병원이라는 데가 그래요.

그때는 강제입원 제도도 없을 때였거든요. 처남이 없었으면 퇴원 안 됐어요. 그 병원에서 약 부작용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정신과 병원 잘못 만나면 사람 망가지겠구나(웃음).”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카미(Kami)를 만들 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까.

“1995년에 인천에서 (변호사) 개업했어요. 그때 인천에 정신건강심판위원회가 있었어요. 인천시 정신병원 입원환자들을 6개월마다 심사하는 기관이었는데 선배 변호사가 그래요. 자기는 환자들 얼굴도 안 보고 사인만 해 주는 역할을 하니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저보고 한번 해보겠냐 해서 그러겠다고 했죠. 정신과 환자들 입·퇴원 심사로 6개월 입원 연장하는 건데 저도 똑같이 6개월마다 사인만 해주는 시스템이었어요. 제가 미국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는데 거기는 정신과 환자들 대상으로 집단 프로그램도 하고 상담 치료도 해요. 탈원화 얘기도 거기서 나왔거든요.

제가 환자들 연장 입원만 해 주다가 우리나라는 어떨까 궁금해진 거예요. 같은 위원으로 있던 김철웅 인하대 의대 정신과 교수에게 ‘대면 심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심사를 했어요. 한 번에 심사 인원이 비대면으로 100명이 넘어요.

우리가 인천의 한 병원에 가서 환자 열 명 뽑아서 차트 놓고 한 명씩 면담을 해 보니까 10~20% 빼고 다 멀쩡해요. 자기 표현 잘 하고 퇴원 후 계획도 잘 이야기하는데 기각이 되더라고요. 퇴원을 안 시켜 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40대의 젊고 건장한데 자기 얘기도 잘 하고 망상도 없어서 퇴원시켜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의사들이 막아요. 의사들은 주로 차트를 통해 약 용량을 봐요. 그래서 (의사가) 이 사람은 말수가 적어서 위험할 거 같다면서 기각해 버려요. 도대체 입·퇴원의 기준이 뭔지 혼란이 온 거죠.

2007년에 전국적으로 정신건강지원단이 생겼는데 그래도 개선이 안 돼요. 퇴원 심사할 때 퇴원을 안 시키는 거죠. 왜 이럴까 하다가 그해 인천정신건강포럼을 만들었어요. 주로 정신건강복지센터 팀장들하고 센터 돌아다니면서 연구 발표하고 했는데 제가 발표한 게 소비자 이론이에요.

정신건강 이용자, 가족, 보호자 들이 소비자들인데 서비스와 정책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존중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다가 인천 클럽하우스 해피투게더 여기동 관장을 만나서 정신건강복지포럼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2010년 초에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회원 A씨가 당시 회장이 부패가 있다며 고발됐는데 그 사건을 내가 수임했어요. 그리고나서 협회 A씨하고 여기동 씨와 만나서 ‘우리 단체 하나 설립하자’고 했어요.

미국의 가족단체 나미(Nami)의 영향을 받아서 이름을 카미로 짓고 2010년 5월 29일 인사동 태화관에서 창립총회를 했어요. 그때 풍선하고 플래카드 들고 인사동에서 청계천 관수동까지 걸었어요. 최초로 커밍아웃한 거죠.”

-2010년 당시만 해도 정신장애인 운동이 생소할 때였습니다.

“없었어요.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가 있었는데 역량이 없었죠. 당시 보건복지부가 가족협회 의견을 듣는데 가족협회장이 의견이 없고 정신병원하고만 가까워요. 제가 초청받아 가면 협회장이 정신병원장하고는 인사를 해도 나는 아는 척도 안 해요.

가족협회가 당사자 대변을 안 하고 후원금만 받고 하니 내부에서 고소·고발 사건이 일어나요. 또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와 옹호 단체가 없으니까 정신과 의사들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지는 구조였어요.

2008년에 정신건강심의심판위원회가 있었는데 인천시의 경우 시의 과장이 위원이고 나머지 위원들은 다 정신과 의사들이예요. 거기에 간호사와 교수 한 명씩, 변호사 하나 집어넣고요. 그 사람들이 시 정책을 거기서 심의하고 예산, 연구, 병원 평가도 다 거기서 하더라고요.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건강 정책을 다 결정하는 거예요.

심리학과 교수,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은 거기에 끼지도 못해요. 너무 일방적이더라고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도 지금은 좀 변화가 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지원단 위원들이 다 의과대학 교수들이야. 그중에 간호학 교수 한 명, 사회복지학회장 한 명 집어넣어요.

그들이 정부의 과장하고 1년 내내 만나잖아요. 그럼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자기네들 필요한 거 다 전달받고, 법안 의견도 내고요. 가족들은 공식적 회의체도 없고 루트도 없어. 불러주지도 않아. 지금도 똑같아요. 카미도 등록이 돼 있는데 정부 공문을 안 받은 지가 몇 년 됐어요. 회의 한 번 불러주지 않고 정책 설명도, 예산 설명도 없고.”

-지금의 당사자 운동을 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겠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아직 정부 관료들과 정신의학회 위주로 다 결정해 버리잖아요. 아직도 부당한 차별은 존재해요. 장애인복지법 제15조 때문에 우리는 장애인 서비스에도 들어가지 못해요. 정신건강복지법(상의 서비스를) 이용하라는데 거긴 정신병원하고 재활시설밖에 없거든.

완전히 소외시켜 놓은 거예요. 옛날에는 정신장애가 있으면 그 경험도 말할 수 없었고 가족도 숨겼어요. 카미가 그걸 깨고 나온 거예요. 우리는 모임에서 찍은 사진 다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보건복지부 관료들과 만날 때 정신장애인 단체 대표들을 제가 불러요. 그렇게 의견을 내는 거죠.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각 지역마다 활동하는 그룹들이 있잖아요. 상전벽해죠.”

-현 단계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의 내용과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일까요.

“당사자들의 연대가 필요해요. 국가 정책에 대해 협의하면 우리가 대개 의견을 하나로 모으거든요. 왜냐하면 당사자로서의 인식이 있잖아요. 필요한 것과 아닌 것에 대한 정보가 다 있어요. 그 의견을 하나로 모으면 굉장히 강력해져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장애인들의 인권이잖아요. 세계가 겪은 경험의 핵심을 거기에 넣었거든요. 당사자들도 협약을 지키는 차원에서 얘기하고 협약에 맞춰서 나가면 좋겠어요.”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연대가 최근 꾸려졌습니다. 현 단계 정신장애 운동에서 최대의 이슈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카미 창립 첫해부터 얘기한 거예요. 가족협회에서도 주장하고 있고요. 정신건강복지법에 복지가 있으니까 장애인복지법에 넣으면 서비스 두 개를 이용하지 않냐고 하는데 실제 안 그렇잖아요. 우리는 건강 서비스와 장애인 서비스를 모두 받아야 돼요. 그런데 이게 최대 이슈? 글쎄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굉장히 의미 있는 거라고 생각은 해요.”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의료적 관점의 정신건강복지법은 그대로 두고 복지 관점이 강한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을 따로 만들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신건강복지법은 폐지했으면 좋겠어요. 의료에는 내과 외과 등 굉장히 많잖아요. 건강 서비스에서 정신건강 서비스만 법을 갖고 있어요. 별도로 운영되는 건데 주로 정신질환자를 규제하는 거죠. 다른 시민들하고 같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차별적으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유엔의 건강권에 관한 원칙은 신체든 정신이든 차별 없는 최선의 치료 원칙이예요. 그런데 우리는 정신과만 차별받고 있어요. 서양은 탈원화 이후 커뮤니티 멘탈 헬스는 모든 진료를 다 담당하는 데에서 정신과를 이용하라는 개념이에요.

우리는 정신과만 하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시켜놓고 차별적 진료를 하잖아요. 수준도 안 높아요. 정신건강복지법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 법에 나오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적용되는 비자발적 입원, 격리·강박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다 배치돼요. 인권에 배치되는 걸 우리나라는 별도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우리에게 혜택 주는 게 뭐가 있어요? 미국은 사회복지 분야의 60~70%가 정신건강 서비스예요.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한 분야예요. 정부가 알아서 정신장애인 욕구에 맞춘 서비스를 개발하겠어요? 우리는 이 법을 만들어 놓고 의료적 관점에서 다 종속시켜버린 거라고요.”

-정신건강복지법을 폐지하면 또 다른 대안적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요.

“우리에게 특별한 지원을 하는 특별법을 만들면 몰라도 나는 안 만들고 똑같이 차별 없이 이용하고 했으면 좋겠어요. 입원하는 것도 내가 원할 때 입원하게 하고요. 우리가 다른 서비스가 필요하면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면 되니까.”

-현재의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은 전면적으로 폐지돼야 할까요.

“네. 이건 법적 차별이예요. 정신과 치료도 건강 서비스잖아요. 그런데 강제로 입원시켜놓으면 구금도 할뿐더러 강제치료를 하거든요. 내가 정신적인 혼란이 있으면 싫을 때도 있잖아요. 그럼 존중해야지. 그건 존중해야 할 그의 인격이거든요.

인간으로서 존엄성의 기본이 자기결정권이에요. 내 신체와 자유에 관해서는 내 의견을 존중해주는 게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거죠. 그런데 정신과에서는 아니잖아요. 너 정신이 이상해, 고쳐야 해 그러죠.

그렇다고 고치나요? 고치지 못하잖아요. 의사들이 강제적으로 약 먹인다고 고치는 게 아니잖아요. 억압하는 거지. 그것밖에 없는 걸 가지고 왜 강제로 합니까.”

-사법입원제입니까. 아니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법률가 등이 참여하는 준사법심사위원회입니까. 한국은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요.

“비자발적인 입원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제도 자체가 필요 없겠죠. 사법입원제도는 판사의 결정에 의한 강제입원이잖아요. 준사법입원제도도 같아요. 사법입원이나 준사법심사위원회 같은 딱딱한 방식이 아니라 오픈 다이얼로그와 같은 비강제적이고 대안적인 방법을 찾아야죠. 오픈 다이얼로그는 가족, 친구, 의사 들이 모여서 같이 참여하고 협의하는 거잖아요.”

-사법입원제도, 준사법입원제도가 필요없다는 의견입니까.

“그렇죠. 사법입원제도는 위험해서 하면 안 돼요. 그런데 자꾸 사법입원제를 이야기해요. 유엔에서는 비자발적 강제입원을 다 폐지하라고 기준을 만들었는데 왜 지금 사법입원 제도를 언급해요? 나는 옛날에 검사로서 사법 제도를 알아요. 판사들이 (정신장애를) 이해해서 도움을 주는 역할을 안 해요. 판사들은 그냥 의사의 진단서만 보지 신청하는 사람을 보지 않아요. 다 입원 허가해줘 버리는 거거든요.”

-법을 통해서 입원하는 것하고 부모 동의에 의해 입원하는 것 중에서 당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법에 의해 입원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지 않겠습니까.

“자발적인 입원.”

-자발적인 입원이 안 되는 그런 상황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다른 서비스를 만들어줘야죠. 억지로 끌어다가 입원시키지 말라는 거예요. 소테리아(Soteria·정신 위기 상황에서 제공되는 커뮤니티 쉼터)라고 하는데 거긴 내가 힘들어서 쉬는 공간이거든요. 그런 급성기에 도움받는 서비스를 만들면 되잖아요. 미국은 다학제로 구성해서 방문 서비스를 하고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줘요. 위기 상황에서 강제하지 말라는 의미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에서는 사법입원제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큰일나요. 우리나라는 사법입원 제도를 하면 가정법원이나 형사법원에서 다 담당하게 돼요. 인신보호제도도 그렇고요. 판사들은 정신과 의사들 진단서에 의존해서 다 결정해버려요. 예외가 없어져요. 그럼 아무리 설명해도 안 돼요. 재판으로 설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강제입원 제도를 폐지하고 필요한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쪽으로 나가야죠. 사법입원제도 해 놓잖아요. 그럼 이 사람들이 절차에 따라서 계속 그것만 해 버리는 거야. 법에 의한 입원 3개월, 6개월 이런 것만 계속 만드는 거예요.

지금 현 상태 유지하면 의사들이 가장 좋지. 왜냐하면 정신과 서비스 예산이 엄청 늘어나거든. 한 8~9조 원이 우리나라 전체 정신건강 의료비용이예요. 그게 2007년에 1조 원대였어요. 2009년에도 1조7천억 원이었는데 지금은 이게 8~9조 원 돼요. 2009년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에요.”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의사들을 무작정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전체 제도가 너무 편중적이야. 우리는 다른 게 필요해요. 의사보다 내 옆에서 얘기를 들어주는 사회복지사가 더 필요하거든. 의사들은 병원에 가둬놓고 약 처방하고 관리만 하잖아요. 그런 게 어딨어.

물론 집에 있으면 일손이 더 많이 필요하겠죠. 방문간호사들하고 사회복지사들이 와서 봐줘야 하고 가족들도 도와줘야 하니까. 이렇게 한 사람에게 손이 많이 가는 건 틀림없잖아요. 그렇지만 그게 더 인도적이고 좋은 방법이죠.

입원하겠다면 본인이 자유롭게 입원하면 돼요. 그렇게 되면 그 많은 병원과 시설이 현재의 5분의 1만으로도 충분해요. 1만 병상 이하로 줄이면 돼요. 할 수 있는데도 8만 병상 유지하는 데 돈을 쏟아부어요. 그걸 다른 데 쓰면 우리가 회복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데요. 그런 곳에 돈을 써야죠. 병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법입원제 하자고 그러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해요.”

-변호사들이 사법입원제를 주장하면 자신들이 돈을 벌려고 그런다는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우도 많지요.

“서비스가 생기면 일할 거리가 생기죠. 후견제도는 법무사들이 만든 거거든요. 법무사들이 후견인이 되면 한 달에 법무사들 (피후견인 일 인당) 한 60만 원 받아요. 그 사람들 별로 하는 거 없어요.

정신장애도 있고 자폐성장애도 있고 지적장애도 있는데 법원이 법무사들에게 후견 지정을 많이 해줘요. 법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니까. 판사들이 자기 밑에 일하던 사람들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주는데 한 달에 30만 원씩만 들어와 봐요. 10명이면 300만 원이 평생 꼬박꼬박 들어오는 거야.

사법입원제가 생기면 똑같아요. 재판이 많이 열릴 건데 당사자들이 힘이 있어요? 그럼 국선변호사들이 많이 하겠지. 그런 짓을 왜 해. 그 사람이 그렇다고 얘기를 들어줄 거야? 그렇다고 약물 조정을 해 줄 거야? 아니잖아요. 그냥 입원시키는 시스템만 만드는 거잖아요. 나쁜 사람들이야.

의사들 과목 중에서 가장 많이 지원하는 과가 정신과예요. 옛날에는 꼴등이었거든. 그만큼 돈 생기지, 의료사고 없지, 누가 터치도 안 해. 한쪽은 정신질환자이고 한쪽은 의사니까 판사는 의사 얘기 듣고 해야 편하거든. 그럼 뭐야. 그럼 이런 제도를 왜 만들어. 이건 나쁜 사람들이야.”

-결국 사법입원제든 준사법입원제든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정신장애인의 자발적 입원의 보장인 건가요.

“원칙은 자유로운 동의에 의한 입원인데 본인이 의사결정에 좀 취약하니까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거예요. 그 제도들이 외국에는 만들어지고 있어요. 패밀리그룹컨퍼런스라고 해서 급성기 때 최고 혼란스러우니까 주변에서 모여서 협의하고 이렇게저렇게 해보자, 병원에 가보자 이렇게 접근해요. 그게 치료의 효과가 훨씬 좋고 인권친화적이거든요.

우리는 자꾸 기준을 어기는 쪽으로 만들자고 하는데 안 되지. 국제법은 강제하지 말라고 해요.”

-정신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약사법, 공중위생관리법, 의료법 등 27개의 차별적 법령들은 어떤 제한도 두지 못하도록 다 폐기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 폐지해야 돼요. 일본도 2000년대 초반에 다 폐지했어요. 우리는 사회복지사업법에 없던 걸 오히려 만들었잖아요.(사회복지사업법은 정신질환자의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에 제한을 두고 있다-편집 주) 그런 게 어딨어요.

정신건강 문제는 인구의 25% 겪는 문제거든. 그런데 왜 차별을 둬. 그리고 정신건강 쪽보다 더 이상한 사람들 얼마나 많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직업의 제한을 두나요? 요즘 직장은 건강 문제에 대해 배려를 해 주잖아요. 그럼 똑같이 해줘야지. 왜 정신질환만 그러느냐고. 합리적인 근거도 없잖아요.”

-총장님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기존의 정신질환에 대한 예외적 기준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고친 거거든요. 협약은 정신질환자가 의사결정에 장애가 있어도 의사결정권을 박탈하거나 다른 사람이 대리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요.

특히 정신건강증진시설에 비자발적으로 강제수용하고 강제입원시키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해요. 자유권이라는 게 있죠. 그건 정신질환이 있든 장애가 있든 간에 자유권은 존중돼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독립해 살아갈 수 있는 권리이거든요.

사회보장이나 건강권에 관한 원칙은 정신장애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거기에 정신장애인 당사자 리더들이 들어가서 협약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만들어 놓은 거거든. 이 협약을 세계보건기구(WHO)도 완전히 따르겠다고 했고요. 우리나라도 당연히 따라야 되는데 안 따르고 있는 게 문제죠. 당사자들도 내용을 알아야 돼요.”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국가 예산이 4조5000억 원입니다. 반면 지역사회 시설 유지 및 서비스 비용은 1800억 원 정도입니다. 왜 이런 방식으로 정신보건 체계가 꾸려진 것일까요.

“전체 비용 중 가장 큰 게 건강보험, 의료급여잖아요. 건강보험은 건강보험료를 10% 내면 국가가 매칭해서 80~90% 주잖아요. 의사들이 서비스 비용으로 받는 거거든요. 의사나 병원, 병원 관계자 월급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된 수가잖아요.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에서 만든 예산이 몇천억 원밖에 안 돼요. 건강보험, 의료급여 예산은 8조 원 이상 돼요. 그런데 지역사회에 쓰는 예산은 정신건강복지센터 인건비나 사업비, 국립정신병원 예산 다 합쳐도 몇천억 원밖에 안 돼요. 정신건강복지센터 인건비 다 해봐야 천억 원도 안 될 걸요. 정신재활시설에는 센터장, 사회복지사 몇 명 인건비 밖에 안 나가요.

주거 시설도 몇백억 원도 안 돼. 한쪽은 거의 8~9조 원. 의료비가 일 년에 몇천억 원씩 늘어나면 다른 데도 늘어나야 되잖아요. 당사자 단체들도 지원해줘서 당사자 조직이 인권옹호하고 자립적인 뭔가를 하게 되면 회복에 얼마나 도움이 돼요. 리커버리(회복)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그냥 치료만 받으라 이거야.

그런데 그들이 치료를 하나요? 치료하면 왜 환자가 줄지 않아. 효과가 없는 데다 돈만 계속 갖다 주는 거요. 자기네들 인건비만 늘어나는 거야.”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예산을 지역사회로 돌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요.

“60년대부터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일어난 게 정신병원 문 닫는 거였어요. 이탈리아는 아예 정신병원 문을 다 닫아요. 거기는 심지어 정신과 질환으로 죄지은 사람들이 외출도 다 해요.”

-일본은 환자가 퇴원 의사를 밝히면 지자체 공무원이 직접 병원을 방문해서 퇴원 이후의 계획을 함께 논의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 될까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죠. 다만 전국 정신병원 환자들 다 조사해야 돼요. 보건복지부가 계획을 세워서 환자 상태 조사하고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지, 왜 입원했는지 다 조사해야 돼요. 이건 엄청난 인권 침해예요.

환자들이 치료받는 게 아니에요. 그냥 10년, 20년 거기에 가둬놓고 있는 거야. 약도 안 맞아. 의사 한 명이 수십 명 환자들을 보는데 그러려면 왜 장기입원을 시켜. 이건 국가와 정신과 전문가들, 병원 운영자들의 카르텔이 만든 인권침해에요.”

-의료권력은 성급한 탈원화가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정신장애인들이 더 차별받을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환자들 차별은 무슨 차별이야. 거기(병원) 안에 있을 사람이 거기서 있는지 가 봐야지. (2020년) 청도대남병원 봤잖아요.(이 병원 정신과 폐쇄병동 입원환자 104명 중 101명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사건-편집 주) 병원 만들어서 환자들 가둬놓고 20~30년씩 데리고 있으면서 무슨 갈등을 어떻게 한다는 거야. 그걸 다 조사해야 돼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인데 한 명이라도 인권침해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거기 수만 명이 가둬져 있고 어떤 사람이 들어앉아 있는지도 몰라. 가족과도 연고가 끊어지면 그 사람은 완전히 아무것도 못 하고 거기 죽을 때까지 있어야 된다고. 그럼 안 되죠.”

-그럼 그동안 당신들 의료권력은 무엇을 했느냐고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

“전문가들이 가서 조사하고 계획을 세우고 대안을 찾는 게 탈원화잖아요. 병원에 안 있어도 될 사람이 있으면 대안을 찾아야죠. 집을 줘야겠네, 서비스가 일 년 필요하네,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할까, 아니면 복지관하고 연계할까. 이런 걸 정부가 플랜을 세워야죠.

예산이 필요하면 예산을 주고. 기존 정신병원과 시설 인력은 어떻게 전환할까. 이렇게 합리적이고 인권에 부합하는 쪽으로 만들어야죠. 지난 2011년에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10주년이라고 정신의학회하고 같이 세미나를 하는데 제가 발제를 했어요.

그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 리포트에 보니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일 년 예산이 3000억 원이 늘었더라고. 1조4000억 원이었는데 1조7000억 원으로요. 정신과 진료비 예산이거든요. 일 년에 3000억 원씩 늘어나는 분야가 있나요? 어떤 사업도 그런 게 없어요. 그때 제가 탈원화 얘기를 했어요.

거기 정신의학회 임원이 손을 들고 말하는데 ‘일본에서는 탈원화하니까 정신병원에 수용하는 비용보다 4~7배 (사회적 비용이) 더 들어간다는 연구가 있다’고 말해요. 제가 화가 나서 ‘당신, 양심이 있냐 없냐. 당신네들 예산 일 년에 3000억 원씩 늘려가면서 또 돈 얘기하냐. 사람의 인권에 관한 문제인데 돈 얘기만 하냐고’ 나이가 나보다 많은 그 임원에게 내가 당신이라고 했어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려. 나를 쳐다보면서 ‘우리는 윤리도 안 지키는 줄 아나’라며 비아냥하는 거야. 기분이 나빠서 식사하다 말고 나와버렸어요. 국가인권위원회 팀장이 따라 나와서 ‘변호사님, 많이 의지하겠다’고 그러더라고.

의료권력이라는 게 그래요. 정신과 의사 출신의 국회의원도 있고 이들 의사들은 청와대에도 들어가요. 이런 식으로 자기네들 영역을 넓히고 돈도 많이 생기거든요. 연구비도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재작년에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정신건강의날 행사를 하는데 발표 내용이 정신건강 연구비 늘려야 된다였어요.

그동안 2천억 원을 썼는데 앞으로 몇천억 원을 더 만들어야 된다고 그래. 이런 식으로 자기네들 영역을 드라이브하는데 여기 (정신장애인) 분야는 고갈 상태야. 이 많은 수용소 군도를 만들어 놓고 해결할 방안은 생각도 안 하거든.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니지 않나, 우리가 한 게 아니지 않냐’라고 하거든. 집단적으로 나쁜 사람들이야.”

-가족의 보호의무자 자격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옵니다. 외국처럼 후견인이 입원에 개입해야 할까요.

“부양의무자는 민법에 다 주어지거든요. 정신건강복지법의 보호의무자 자격은 강제입원시키는 제도를 위해서 주어진 거죠. 그게 안 있어도 자연적으로 민법에 의해 생활을 같이 하면 부양의무가 있는 거고 그렇게 하면 되겠죠.”

-직계가족으로 한정돼 있지 않습니까.

“그건 민법에 다른 것하고 똑같이 하면 돼요. 다만 취약자이고 장애인이니까 부양의무가 더 크게 생기는 거고요. 직계든 부부든 간에 당연히 그건 배려해야 돼요. 요즘 형제는 잘 안 돌봐주잖아요. 국가에서 부양가족이 없는 사람은 배려해야죠.”

-안인득 사건에서는 부양의무제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2019년 4월 경남 진주에서 조현병 당사자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주민들에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한 사건. 안인득 사건으로 불림-편집 주)

“국가의 서비스가 없었던 거예요.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만들어 놓은 건 관리라면 관리고 돌봄이라면 돌봄이잖아요. 평소에 방문해서 사례관리했으면 되는데 못 해 주니까. 센터 지원도 적고요. (상태가 안 좋으면) 센터에서 부응해서 빨리 서비스가 들어가고 집중적인 돌봄이 있어야돼요.

국가 시스템이 사회 안전을 위해서 그런 걸 해 줘야죠. 선진국에서는 60년 전에 다 한 건데 우리나라는 안 하고 있어요. 돈은 전부 병원에 다 들어가고.”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강제입원환자의 병원 이송에서 사설 응급이송단에 의한 이송비율이 한때 96%였습니다. 공적 체계가 아닌 민간의 무분별한 이송 체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일반 병원하고 똑같은 앰뷸런스 시스템 만들어서 똑같이 해야죠. 다른 (구급) 앰뷸런스는 다 의사가 타게 돼 있어요. 정신과만 예외를 뒀잖아요. 차별이죠.”

-정신요양시설이 전국 59개소 1만여 명입니다. 2019년 기준 50세 이상 입소자는 83%, 10년 이상은 46%였고요.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가둬져서 장기간 살아가야 하는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정신병원 입원환자 평균 연령이 1980년대 20~30대였는데 그게 50세 이상이 됐어요. 그만큼 몇십 년을 병원에서 늙어가는 식으로 만든 거예요. 현대 의학이나 사회서비스 학문에서는 그렇게 안 하고도 사회가 유지되고 사람이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우리나라는 돈을 자꾸 병원 유지하는 쪽에만 갖다 쓰죠.

그 돈을 장애인들이 자립하고 직장 잡는 데다가 투자했으면 지금 우리 사회가 이랬을까. 그 돈이 얼마예요. 대통령도 그 정도 돈 있으면 뭐든지 하려고 할 텐데.”

-8월 발표된 탈시설 로드맵에서 정신요양시설과 정신병원의 정신장애인은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내가 유엔에서도 발표했고 컨퍼런스에서도 발표한 내용이에요. 나는 계속 고발할 거에요. 장애계에서는 정신장애인을 항상 제외시켜요. 장애단체들도 자기네들이 법안 만들 때 우리의 목소리는 들어봐야 하잖아요.

세계적으로 탈원화를 얘기하면 항상 정신건강시설이 일차로 중요하게 논의되거든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빼버려. 그러면서 국제기구에 가서 대한민국의 탈원화법 만들었다고 자랑하고. 나는 창피해요. 비겁하고 나쁜 거예요. 왜 제외해.

우리나라에 탈시설위원회라고 있어요. 전문가들이 모여서 십몇 년 동안 논의하고 그 성과로 나온 건데 거기서도 정신장애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는 거야. 그럼 불러서 의견은 들어야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당사자 단체들 의견을 듣도록 돼 있어요. 그런데 안 들었어요. 이건 장애인시설에 있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해요. 예산 조치도 안 돼 있는 거지.”

-정신요양시설을 말하는 겁니까.

“정신요양시설도 숫자에는 빠져 있어요. 개념은 들어가 있더라고. 실제로는 대상자에서 숫자로는 빠져 있고 그러니까 정책에서 빠져 있는 거죠.”

-정신장애에 걸리지 않았다면 총장님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나는 정신장애가 있었던 게 훨씬 더 감사하고 삶의 보람이 있어요. 그때는 성공지향적이었는데 정신장애로 인해 완전히 좌절을 겪었잖아요. 회복되니까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보람이 있거든요. 돈은 부족해도 뭘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해요. 그걸 알게 됐다는 건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감사해요.”

-총장님 꿈 중에 아시아 전체 정신장애인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태국, 홍콩, 일본, 중국 등 나라마다 인권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어요. 저는 국제적으로 다니면서 회의도 참석하고 이분들 초청도 많이 해서 서로 유대가 있어요. 아시아를 보면 개발도상국들이 많은데 이들에게는 멘탈 서비스가 필요해요.

가난해서 도와주는 건데 거기는 일찌감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기준으로 활동을 하니까 방향을 잘 잡은 거죠. 그런데 한국, 일본, 중국, 홍콩은 멘탈 헬스 서비스가 정신병원 위주인 경우가 많아요. 약간 인권침해적인데 그런 데는 입장도 비슷하고 법제도 비슷하니까 얘기가 돼요.

그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하나의 국제기관으로서 인권센터, 아니면 아시안 에드보커시(권익옹호) 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법·제도도 협력해서 만들고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정신건강법이나 장애인법을 만들려고 우리가 국제회의를 2016~2018년까지 계속했어요. 지금은 예산이 없어 중단하고 있는데 그런 것도 만들고 싶고요.

또 각 나라의 인권 침해 사건이 있으면 국제적 연대가 되잖아요. 우리도 같이 성명서를 발표해서 연대하고요. 장기적으로 아시아 인권협약이 만들어지면 인권법원이 아시아에 만들어질 거고 그럼 인권에 대한 공통의 기준을 가질 수가 있게 되죠.

그런 식으로 발전하는 게 내 꿈이에요. 일본의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인권 변호사 요시 이키하라 씨가 있어요. 조현병이 있는 형님을 돌보는데 그분이 아시아 인권법원에 대해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의 꿈도 그렇게 인권센터를 만들고 활동하는 겁니다.”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권오용 카미 사무총장. (c)마인드포스트.

-지금 행복하십니까.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전에는 길게 보고 내가 그때까지는 요정도까지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욕심이 끝이 없잖아요. 요즘은 하루 살고 나면 그냥 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해요. 오늘 하루, 내가 좀 개겨도 괜찮아. 그래도 이만하면 감사하고. 그러니까 감사하죠.”

-요즘도 밤에 주무실 때 주기도문 외우십니까.

“그럼요. 밤에 기도하고 새벽에 일어나면 먼저 성경 말씀을 읽어요. 매일 성경 4장씩 읽고 항상 의지하고. 그건 영적인 거잖아요. 하나님이 뭔가 나를 돕는 역사들. 내가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런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걸 느끼거든요. 그럼 감사하고 보람이 있어요.”

-총장님이 정신장애라는 고통 속에서 깨달은 삶의 의미가 있다며 무엇일까요.

“인생이 사실 허무한 거잖아요. 절망적이고 보람도 없고 헛된 거예요. 전도서에도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나오는데 내가 그런 영적인 면을 본 거죠.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의 취약함과 약함을 경험했어요. 내가 약한 걸 알고 스스로 낮아지니 마음도 편해져요. 내가 회복되고 주변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또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갖는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눌 수도 있어요.”

그에게 자주 읽는 성경의 구절을 물었다. 그가 이사야서 40장 1절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라고 했다. 그때, 바람이 창을 건드렸던가.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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