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언론 모니터링 사업, 효과적 소비자운동이지만 예산 지원 없이 단발성에 그쳐 한계”
“정신장애인 언론 모니터링 사업, 효과적 소비자운동이지만 예산 지원 없이 단발성에 그쳐 한계”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2.03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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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심지회 언론 모니터링 사업 결과 발표회
조현병 연관된 검색어에서 빈도가 높은 언어는 ‘살인’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이 없이 무차별적 보도하는 과오 많아
언론의 윤리적 강령 도입으로는 한계…대항언론 역할 중요
2021년 당사자 및 가족 관점의 정신장애인 언론보도 모니터링 결과발표회가 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c)마인드포스트.
2021년 당사자 및 가족 관점의 정신장애인 언론보도 모니터링 결과발표회가 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c)마인드포스트.

미디어가 정신장애를 왜곡하는 경향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 ‘2021년 정신장애인 차별·편견 해소를 위한 언론 모니터링 결과 발표 및 사업보고서’에서는 정신장애인을 집단적이고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는 언론 보도 태도를 막기 위해서 시민사회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족의 조직적 저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왔다.

또 지속적 모니터링 사업이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주체 의식을 강화하는 소비자 운동이지만 예산 등의 지원 부족으로 인해 단발성으로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번 연구 발표는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조현병회복협회(심지회)에 용역사업으로 10월까지 진행한 정신장애인 차별·편견 조장 언론 보도에 대한 모니터링 사업 결과 발표다.

모니터링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12명과 가족 1명이 참여했다.

박정근 한국조현병회복협회 부회장 발표에 따르면 모니터링에서는 KBS, MBC, JTBC, SBS, 중앙일보, 연합뉴스, 뉴시스가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방송의 주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방송과 언론사일수록 차별·편견 보도 횟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박 부회장은 “모니터링을 통해서 수많은 방송·언론사들이 정신장애인들에 대해 얼마나 심하게 편파적이며 혐오를 조장하는 방송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며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고 편집, 재구성해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조현병과 연관된 검색에서 가장 눈에 띄게 사용되는 언어는 ‘살인’ 혹은 ‘살해’였다고 박 부회장은 전했다.

그는 “이는 조현병 환자는 살인자라는 낙인을 암묵적으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방송사들은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건을 재구성해 마치 조현병 당사자들이 범죄자인 것처럼 추측성 보도를 했다”며 “보도 가이드라인이 없이 무차별적으로 보도하는 과오를 저질러 왔음을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모니터링 사업에 참여했던 서울대 대학원생 이모 씨는 “언론은 사실 너머의 ‘진실’을 추구하는 일”이라며 “하나의 사건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너머의 ‘진실’을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범죄사건과 정신질환 병력 사이에 정말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 연결고리가 두꺼워지는 동안 지역사회와 정신건강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는지,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해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다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희승 한국정신보건작업치료학회 학술이사는 “언론은 폭력과 편견,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언론이 가진 역기능을 떠나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언론 순기능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며 “정신장애보도 가이드라인 준칙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국가 단위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소미연 뉴스코프 기자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경쟁적 보도에 취재가 간소화되고 언론 윤리가 해이해졌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며 “언론을 향한 좀 더 뼈아픈 지적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제형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외국의 경우 인종 등 불특정 개인에 혐오 표현을 중대한 범죄행위로 다룬다”며 “한국은 특정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의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표현이라도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특정 개인을 향한 모욕적·명예훼손적 표현이 모욕죄나 명예훼손죄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표현 행위가 아니면 법적 조치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월 개봉된 영화 ‘F20’가 좋은 예다. 정 변호사는 이 영화에서 특정 개인을 지칭해 명예를 훼손한 게 아닌 이상 형사처벌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영화 ‘F20’은 조현병 아들을 각각 둔 두 어머니의 심리를 따라가는 형식의 심리스릴러물이다. 아들의 조현병 질병이 이웃에 알려질까봐 두려워하는 ‘애란’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이사온 역시 조현병 아들을 둔 ‘경화’를 살해한다. 자신의 아들의 질병을 ‘경화’가 밝힐 수 있다는 심리적 위기 속에 ‘경화’를 살해한 후 ‘경화’의 아들도 살해하려 하지만 살해된 건 ‘애란’ 자신의 아들 도훈이었다.

이 영화는 KBS2에서 방영될 예정이었지만 정신장애 시민·인권단체들의 집단적 항의에 막혀 방영이 무기한 보류됐다.

정 변호사는 “표현 내용을 규제하는 법률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신중하게 도입돼야 하고 비례성에 비춰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F20’이 특정 개인을 지칭하지 않는 한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그는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인격을 형해화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제재 조치는 민주주의 공론화를 위해서 도입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며 “기사 및 방송에 정신질환을 다룰 때 지켜야 할 원칙들을 윤리적·도덕적 차원에서 의무화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적 제재 조치나 윤리적 강령, 지침을 도입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헌법에서 수호하는 인권적 가치를 내세우는 대항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원화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팀장은 “정신건강 관련 언론 보도를 분석한 많은 선행 연구들은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해 당사자 중심의 언론 모니터 및 미디어 대응 활동이 전개돼야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그러나 “기존의 미디어 대응은 당해연도 사업계획에 따라 축소 혹은 중단되기도 했다”며 “이는 언론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미디어 대응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활동이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늘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모니터링과 미디어 대응은 언론 소비자로서 주체 의식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며 소비자 운동”이라며 “그러나 모니터링단이 선순환의 시발점에 서 있으나 그 운영은 매우 열악하고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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