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상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삶과 또 다른 이름으로 산다
[기고] 세상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삶과 또 다른 이름으로 산다
  • 김승희
  • 승인 2023.03.26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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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한 생활

저는 조현병 당사자입니다. 정신질환을 경험하며 느낀 감정과 생활 속 이야기를 나눕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뿐 아니라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도 기록하려 합니다. 같은 정신질환 당사자 분들은 공감, 비당사자 분들은 오해가 아닌 이해의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김승희 제공.
이미지=김승희 제공.

과거 두 차례의 발 수술을 받았다. 수술 과정의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치료받은 이후부터 나는 환청과 환시를 경험했다. 처음 겪어보는 현상에, 어떤 날은 잠을 자지 않았고 불쑥 춤을 추기도 했다. 내 몸이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 같았다.

이런 내 모습에 부모님은 적잖이 당황했고, 머지않아 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입원한 후에야 못 잤던 잠을 그제야 한꺼번에 잘 수 있었다. 입원 일주일 후부터는 전화도 할 수 있었고, 담배도 피울 수 있었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친구도 생기고 나름대로 적응할만했지만, 똑같은 하루와 무료함에 퇴원에 갈증을 느꼈다.

퇴원하고 돌아온 일상엔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과 달리, 매일 매일 약을 먹어야 했고,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쉽게 피로를 느꼈다. 일종의 상실감 같은 것도 찾아왔다. 평소 가까이하던 사람들에게 나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친했고 또 소중한 사람들인지라 나는 그들에게 기댔지만, 내가 들은 말은 뜻밖에도 “정신병자”라는 냉담한 단어였다. 원하지 않은 이름이 새로 생겼다.

‘정신질환, 정신병자’라는 수식어는 나를 작은 세상 속으로 밀어붙였다.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닌데, 너무 억울했다. 배신감도 밀려왔고, 모든 것이 밉게 느껴졌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나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없었고, 나는 점차 작아져 갔다.

그러던 와중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멋진 사람을 만났다. 내가 첫눈에 반한(책임감도 강하고 성실하고 자상한) 그는 끊임없는 사랑과 믿음을 전해주었고, 움츠러든 내가 조금씩 움틀 수 있게 도와줬다. ‘사랑’을 괜히, 묘약이라 하던가.

세상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삶과 또 다른 이름으로 산다고 믿는다. 단지,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과 드러내지 않은 사람. 상처를 입은 사람과 딛고 일어선 사람만이 있을 뿐. 그게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신질환 당사자와 비당사자의 차이다.

정신질환을 경험했지만, 지금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예정에 없던 삶이지만, 나름대로 행복과 기쁨을 누리고 있고 “정신병자”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병(病)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내 이름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나. 겪어보지 않고서 타인의 삶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함부로 그런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들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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