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재 “일을 즐기는 자가 열심히 하는 자를 이긴다? 웃기는 소리 말라는 거요. 열심해 해야 돼, 열심히”
유현재 “일을 즐기는 자가 열심히 하는 자를 이긴다? 웃기는 소리 말라는 거요. 열심해 해야 돼, 열심히”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3.03.28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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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인터뷰
30대 초반에 뒤늦게 떠난 유학에서 5년 만에 석박사 학위 취득해
자기계발서 류의 책으로 잘난 척 청년들을 꾀어내는 사람들 경계해야
언론에 규제와 규정을 적용하는 대신 그들이 따를 수 있는 혜택을 제시해야
재판부 양형에 ‘조현병’ 들어가도 기사에 정신질환 낙인과 정신건강 정보 전해야
팩트 확인도, 취재도 하지 않고 작문하는 기자들...클릭수에 중독된 유형들
어떤 기사에 의해 낙인찍히는 인구집단 있다면 자기 기사에 대해 생각해봐야
의학전문기자, 복지전문기자 등 전문기자들의 활동 영역 넓혀야
미디어가 배설하는 용어 분석해 특정 시기와 지역에 정신건강 위기 시그널 줘야
현재 포털환경은 ‘아사리판’...삶에 도움되는 변수 생각하는 기자 많지 않아
스스로 몰아치는 감옥 없는 상태에서 뭔가 성공? 다 한가한 얘기에 불과해
만 원짜리 몇 장도 허락되지 않는 삶 앞에서 함부로 행복을 말할 수 있을까 싶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즐기면서 성공한다고? 그건 요정의 세계에서나 있을 일이에요.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일은 없어요.”

유현재(53) 교수는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그의 삶을 대하는 자세를 듣고자 질문을 했던 기자는 잠깐 멈칫했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30대에 유학을 떠나 5년 만에 매스커뮤니케이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게 그저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는 데에 기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 교수는 현재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헬스커뮤니케이션학이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사회적 지위를 얻은 그에게 기자는 언론이 정신질환의 낙인을 찍는 데 앞장서는 이유를 듣고 싶었고 구차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누구나 추구하는 ‘성공의 삶’을 사는 방법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그에게 연락을 취했던 터였다. 다행히 언젠가 마주했던 기자의 존재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인터뷰를 쉽게 허락한 이유일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위로는 4살 터울의 형이 한 명 있었다.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왔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러 나가 집에서 하루종일 그는 홀로, 때로는 형과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그 집에서 그는 무엇을 기다렸을까.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 광고기획사에 들어갔다. 지금도 회자되는 매가패스의 ‘유쾌, 상쾌, 통쾌’는 바로 그가 만든 광고 문구다. 7년간 기획사 카피라이터로 일을 해 오던 그는 30대 초반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 처음에는 잠시 휴식기를 가지려 했다.

조지아주립대에서 언론 전공으로 석사만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도교수가 박사 과정까지 끝마치기를 권했다. 박사 공부를 결정할 당시 그는 ‘Why Not?’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38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의 분신처럼 곁에 서 있던 형이 생을 스스로 끊었다. 왜 그랬는지까지는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존재하는 진실은 그의 육친이 그를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울었던가. 박사 학위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생명과 관련된 커뮤니케이션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같은 이력의 뿌리에는 형의 죽음이 고여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재판장이 형량 이유에서 ‘조현병이나 정신질환’을 이야기하면 기자는 그것을 기사로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러자 뜻밖에도 유 교수는 미국과 한국의 다른 언론 환경을 지적했다. 사실 오랜 시간, 기자는 그 같은 경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었다.

그 고민을 얘기하자 그는 한국이 포털 환경에서 단신 위주의 기사를 쓰는 것과 미국의 뉴욕타임스 등 유력 언론들이 단신 대신 장문의 분석적 기사를 써내려가는 데서 문제를 출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재판장의 형량 이유에 들어 있는 ‘조현병’을 쓰더라도 정신질환자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배제와 타자화의 문제, 낙인화와 차별의 상황을 동시에 쓰고 우울 등 정신적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기관 전화번호 등을 기사 하단에 개입시키는 성향은 미국이 앞서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정신질환’명을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선 좀 더 구체적이고 대안적 기사 유형을 그가 제시한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언론 환경, 정신질환자의 권리와 옹호를 위한 기자들의 사회적 책무, 그리고 삶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그랬다. “즐기는 자가 열심히 하는 자를 이긴다고? 자신이 만든 감옥에서 자신을 몰아치고 불합리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성공은 없다”라고.

맞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성공이 무엇을 위한 성공이냐에 대해서, 혹은 그 성공이 행복과 연동되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성공은 행복과 연동되지 않는다. 그 욕망을 향한 욕망은 더 많은 소모적 욕망을 낳고 결국 욕망은 우리를 중독시켜 버린다. 순간의 즐거움은 있지만 중독은 그저 중독일 뿐이다. 그것은 존재론적 행복과는 충분히 괴리가 있다.

많은 이들이 성공을 향해 달린다. 그런데 그 내달림이 정신장애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기자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정신장애인이 극도의 압박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삶에 어떻게 접속될 수 있을까. 그 답은, 기자는 알 수 없다. 다만 욕망을 향한 욕망이 아닌 자신의 길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 그것이 정신장애인들이 가져야 할 생의 어떤 질서가 아닐까. 그 행복론 안에 성공이라는 키워드도 접속될 수 있는 것이기에.

지난 22일 서강대학교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그의 연구실은 온통 연구보고서들로 가득차 있었다.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헬스커뮤니케이션(헬스컴)이 담뱃갑 경고 그림이나 자살 예방 메시지를 만드는 언론학입니까.

“헬스컴은 넓은 분야예요. 건강을 결정짓는 요인들이 많잖아요. 그중의 하나가 미디어나 언론이겠죠. 언론이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있죠. 그걸 연구해서 건강에 어떻게 공헌하냐, 혹은 어떻게 하면 건강을 해롭게 만드나 이런 걸 연구하는 학문이죠.”

-일종의 광고라고 봐야 할까요.

“그렇죠. 공익광고나 캠페인이 다 그런 거죠.”

-유학길에 오른 게 휴식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만약 학위를 따지 않고 휴식만 하고 왔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남들은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렇겠지만 시간이 되돌려진다면 한국에 안 돌아올 거 같아요. 또 하나는 직장생활을 계속했을 테니까 그게 나한테 어울리는 신발이었겠구나 생각은 하겠죠.”

-40대에 ‘인생독썰’을 썼습니다. 20대를 위한 뼈 때리는 독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하는데 일반 자기계발서와 어떻게 다르게 쓰고 싶었습니까.

“저는 좋은 얘기만 하는 데 염증이 있어요. 왜냐면 그렇지 않다고 믿었거든요. 예를 들어 나는 강박 때문에 평생을 힘들었어요. 아무도 눈치를 못 채지만 지금도 힘들어요. 교수치고는 방송도 좀 하고 그렇지만 그때마다 힘들거든요,”

-왜 그렇습니까.

“강박이죠. 내가 화장실을 빨리 갔다 와서 조금 더 집중해서 하면 잘 할 수 있을 텐데부터 시작해서.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딱 하나에요. 죽으라고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남들보다 많이 알게 되는 거요. 그럼 떨어도 상관없잖아요. 내가 다 갖고 있으니까. 심플하죠. 그게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에요. 유학 가서도 석박사 5년밖에 안 걸렸으니 남들은 독종이라고 하는데 나는 다 그런 거였어요. 그러니까 나를 몰아세우는 거죠.”

-그때도 강박이?

“있죠. 굉장히 오래됐어요. 이유는 몰라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트라우마가 많았으니까. 아빠가 없고 집은 힘들던 만만치 않았던 어렸을 때의 그 환경이, 그런 것들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형의 죽음이 결정적인 건 아니었을까요.

“그건 나이 먹어서 그런 거니까. 형의 죽음이 ‘이젠 도와줄 사람이 없다’라는 느낌을 심각하게 깨우치는 계기가 됐던 거 같아요. 형한테 큰 의지를 했거든요.”

-청년들에게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서와 처세(處世)는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요.

“맞아요. 잘난 척하면서 청년들을 꼬시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돼요. 그런 사람들이 많거든요. 처세가 어떻고 삶의 요령이 어떻고. 나도 책을 만들면서 조심스러웠어요. 잔재주나 피우면 어떡하나. 생각해보면 그게 학생들에게 맞는 얘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 사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걸 안 하려고 노력했죠.”

-돈을 벌라고 하는 주술 행위 아니면 미신?

“맞아요. 그냥 올해에는 무얼로 꼬셔볼까 하는.”

-자살이나 재난보도권고기준을 만들어도 안 지키는 언론사들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통제는 아닌 거 같아요.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게 우리나라에서 많이 연구되지 않는 분야인 넛지(Nudge·경제학적 의미로 '부드러운 개입’)이거든요. 예전 문법으로는 지켜야 할 명분이나 신념이 있으면 강압적인 법이나 패널티를 만들잖아요.

지금 그런 시대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언론사가 적극적으로 뭔가를 지켜준다라고 하면 그들을 아군으로 만들어서 가이드라인을 지킬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줘야죠. 제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의 자살위기분과 특별위원회 위원이거든요.

거기서 회의를 하다 보면 갑갑한 게 뭐냐면 자살보도 규정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 법이나 규정을 만들어야 된대요. 그렇게 해서는 해결이 안 돼요. 그들은 그걸 해야 사람들이 가이드라인을 지킬 거라고 생각해요.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카운터마케팅 개념을 쓰는데 예를 들어 언론사도 그런 활동을 하면 뭔가 베니핏(혜택)이 있어야 돼요.

잘난 척할 수 있게 장을 깔아준다든가, 후원금이 들어오게 만든다든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사가 건설사 사주잖아요. 그럼 그 사람이 짓는 아파트에다 ESG(기업경영의 윤리를 이윤을 넘어 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 강조하는 개념)를 연결시켜서 오퍼를 한다든가. 그걸 제안해서 이들이 돈도 벌고 좋은 의미에서 잘난 척도 하고 언론사 클릭률도 높아지고요.

그렇게 제안해서 이런 것(가이드라인)도 지키자 해야죠. 민주국가에서 규정·규제를 만든다고 해서 얼마나 지켜질 것이며 또 안 지킨다고 해서 불러서 어떻게 하겠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거에 대한 고민을 잘 안 하더라고요.”

-재판부가 중대한 사건을 일으킨 정신질환자에 대해 양형 이유를 밝히면서 ‘정신질환이나 망상, 조현병’ 등을 언급하면 이를 언론은 받아 써야 할까요.

“제 느낌은 정보 제공이 모자란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언론은 포털 환경이어서 기사들이 짧아요. 미국에서 보도되는 기사들을 보면 물리적인 길이가 길단 말이에요. 그게 뭘 의미하냐면 우선 기자들이 많이 써요. 재판부가 양형 이유를 말하면 이 얘기도 쓰고 그 다음에 밑에 정보를 쓰겠죠. 이들의 재범률이 몇 퍼센트이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디어가 포털환경이니까 전부 다 단순 위주에요. 대중 입장에서는 뭘 알아야지 이해를 하든지 오해를 안 하든지 할 거 아니에요. 정신적 질환을 앓는 사람에 대한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 일반인이 알기에 쉽지가 않은데 언론은 클릭 받을 것만 몇 개 뽑아서 올리고 말아버리잖아요.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일반인들은 벽을 쌓을 거고, 그게 천박한 자신을 위한 힐링이 돼 버려요. 나는 아니야. 그렇게 선 그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저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고 나는 나야. 이게 무서운 게 역사적으로 다 그렇게 해서 편하게 살았거든요.

히틀러도 유다이즘도 다 마찬가지죠.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편 가르기에요. 편 갈라서 저 사람들은 저런 거고, 내가 불편한 건 저 사람들 때문이야라고 해 버리죠. 당시에 사람들은 유대인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선을 그어버렸죠. 저는 심층 기사의 퀄리티, 정보 제공의 다양성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극단적 선택과 관련된 기사의 경우 세밀하게 죽음을 표현하지 말라는 권고가 있습니다. 이는 최소 보도의 의미일까요.

“아까 말씀드린 국민통합위원회에서 논의를 하고 있어요. 지금 자살보도권고기준이 3.0에서 다음 버전인 4.0이 나와야 된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저는 극단적 선택이란 말을 쓰든 자살이란 말을 쓰든 그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기자들이 예전에 비해 그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럼 다음 버전은 용어에 집착할 게 아니죠. 많지는 않지만 몇 명은 굉장히 지엽적이고 말초적인 기사를 꼭 쓰려고 해요. 그건 정신건강과 관련된 것도 마찬가지죠. 조현병 병력이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 누구를 죽였다, 몇 명을 죽였다, 어떻게 죽였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되죠? 아무 도움이 안 돼요.

하나 도움 되는 건 클릭수에요. 거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야죠. 극단적 선택의 경우 그게 무슨 선택이냐, 그런 말 못 쓰게 하자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자살과 관련된 문제를 잘 모는 사람인 거 같아요. 그건 큰 의미가 없거든요.”

-기자들은 정신질환자가 사건을 일으킨 원인을 ‘정신질환’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어합니다. 그걸 쓰지 말라고 하면 ‘왜’의 문제를 빼고 어떻게 기사를 쓰냐고 항변하죠.

“기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들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분명히 기자인 내가 알아낸 거잖아요. 조현병 병력이 있고 범죄를 저지른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했고 일반인하고 다른 거 같다라는 걸요. 그런데 그걸 쓸려고 하는데 못 쓰게 하니까 기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거죠.

그런데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건 진짜 나쁜 거잖아요. 어디서 들었어, 자기가 직접 가보지도 않았어, 그런데 조현병 환자가 어떻게 했다고 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 무슨 영화 보는 것처럼 그렇잖아요. 정말 나쁜 놈이죠. 그런 걸 못하게 해야죠. 현장에 나가보지도 않고 인터뷰를 해 보지도 않고 하는 취재 관행이 너무도 많잖아요. 그걸 바꾸자고 하는 게 맞겠죠.

진짜로 취재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럼 그렇게 쓸 수 있어. 또 하나는 디스클레이머라고 해서 자살 관련 보도 밑에 우울증 상담전화나 1393(자살예방상담전화) 등을 넣는 거죠. 그게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일종의 사인이거든요. 내가 기자고 언론인인데 그렇게 선정적으로 쓴 게 아니고 나도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대중에게 보내는 시그널인 거죠.”

-국민의 알 권리와 정신질환자의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합니까.

“어떤 특정 주제에 있어서 모든 기사의 화법이나 구성이 똑같을 필요는 없잖아요. 똑같을 수도 없고. 그런데 정신건강과 관련한 기사를 쓸 때 누군가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혹은 사실이 아닌데 왜곡된다거나 하는 부분은 신경 써서 챙겨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건이나 상품, 경제와 관련된 기사는 약간 오보가 나더라도 그건 뭐 그럴 수도 있다라고 하잖아요. 누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런데 어떤 기사에 의해서 누군가는 상처받고 트라우마 생기고 낙인찍히고 한다면 본인 기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버릇이 필요하죠. 그런 측면에서 전문기자가 있죠. 의료전문기자, 의학전문기자, 복지전문기자 이런 게 상당히 좋은 거 같아요.”

-정신질환자의 자극적 사건사고를 쓰는 기자들이 클릭수 늘리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들도 인간으로서 정신질환에 대한 두려움, 공포, 불쾌감 등이 내면에 있지 않을까요. 그걸 기사에 반영하는 거고.

“일부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전문기자가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두려움과 공포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과 공포는 당연한 거잖아요. 기자 입장에서도 특정한 사실에 대해 정보가 많이 없으면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알면 안 무서운데 모르니까 자꾸만 그렇게 하는 거죠.”

-교수님은 조현병 환자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정신질환자를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두렵지 않습니까.

“대학교 때 봉사활동에서 정신장애인 몇 분을 짧게 봤어요. 잊고 있다가 이런 공부를 하니까 여러 분을 만났죠. 그분들은 어쨌든 다 편집장님처럼 터널을 뚫고 나오신 경우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잘 모르는 거죠. 저는 경계하는 게 뭐냐면 제가 이 사안에 전문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내가 전문적인 것은 자살과 관련해서 낙인이 찍히면 안 된다는 거예요. 혹은 정신건강 관련해서 기사를 과도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 팩트를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사를 쓰면 안 된다라는 굉장히 보편적인 가치가 언론에서 어떻게 수용되는지를 저는 연구하는 사람이잖아요. 딱 그 정도까지예요.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저는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할 거 같아요.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이런 활동을 하면서 정신과 선생과 친하게 지내면서 언젠가 비행기를 함께 탔어요. 그분이 비행기를 타는데 전화를 엄청 하더라고. 조현병 환자 약물 투여에 관련된 걸 의사들끼리 협의를 하는 거더라고요. 약물이 얼마가 들어가야 된다는 둥 이런 식으로 논의를 진지하게 해요. 내가 ‘나는 정신과라고 하면 상담하고 가서 푹신한 시트가 있는 그런 걸로만 생각했다’라고 하니 허허 웃으시더라고.

나부터도 모르는 거야. 미세한 어떤 약물을 어떻게 하고 며칠을 투약하고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안 거야. 나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심지어 기자들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모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공중파 뉴스에 ‘오늘의 정신건강 지수’를 넣자고 했죠. 이 경우 정신질환과 관련해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저랑 같이 연구하는 분들이 정신과 선생님들이잖아요. 그분들이랑 얘기했던 게 편집장님 말한 그거에요. 사람들이 모르면 사랑할 수 없잖아요.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잖아. 그래서 이 연구가 지평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아플 수 있고 힘들 수 있죠. 우리 연구가 그런 거거든요. 미디어에서 배설되는 용어 등을 분석해서 특정한 지역이나 특정 시기에 조금 위험해질 수 있다라고 판단되면 거기다가 시그널을 보내서 좀 조심해야 될 거 같다, 이런 것들을 시스템화하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나 지평이 확대되지 않을까라는 욕심으로 하고 있어요.”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육체적 질병에 동반되는 정신건강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 대응책 마련은 전 사회 구성원을 위한 핵심적 안전망이라고 했습니다. 더 설명해 주시면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정신건강과 관련해서는 1년에 한두 번만 국가에서 수혜를 베푸는 것처럼 해요. 9월 10일 자살의날이 오면 모든 국회의원들이 다 자살 얘기하거든요. 그리고 일 년 동안 아무 얘기도 안 해요. 정신건강의날 10월10일도 그때 한창 얘기하다가 그 다음에는 안 해요. 제일 나쁜 게 그걸 얘기를 하면서 표 계산을 해. 그럼 안 되거든요.

건강과 관련해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하면 정치인들도 그렇게 얘기 못 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화내니까. 예를 들어 암과 관련됐는데 수가 관련한 얘기를 일 년에 한두 달만 얘기해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이 짜증나지 않겠어요. 이건 우리 죽고 사는 문제인데 니네가 지금, 이런단 말이죠. 그런데 정신건강은 그렇게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안타깝죠.”

-교수님이 유난히 생명존중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이 큰 거 같더군요.

“맞아요. 굉장히 큰일이었는데 그걸 막기 위해서 뭔가 굉장히 궁금한 게 그거였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열 번째로 잘 사는데 마음은 다 불안하고 나부터도 그래요. 남들이 보면 사립대 교수인데 대출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죠. 친구들 만나면 다 힘든 거 투성이에요.

뭔가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사회적 변수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저는 그 하나가 미디어라고 생각했어요. 말로는 걱정한다고 하면서 텔레비전에 보면 죽는 것도 너무 쉽게, 살리는 것도 너무 쉽게 만들어요. 기자들은 포털 환경에서 정말 ‘아사리판’이잖아요. 진짜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나오는데 그게 또 인기를 끌어요. 유튜브에서는 칼보다 더 무서운 말들이 오고가죠.

말로는 생명존중 내세워서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변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언론연구자이니까 이 부분에 있어서라도 할 수 있는 걸 해 보자라고 해서 하게 된 거죠.”

-중소 인터넷 언론들이 홈페이지 매체 소개를 보면 ‘권력과 자본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겠다’라고 쓴 경우가 많더라구요. 정작 자본과 권력은 그들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하나의 희극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사가 참 척박하죠. 언론사가 돈을 버는 건 좋은데 돈만 벌려고 하면 안 돼요. <마인드포스트>도 광고 유치해야 될 거 아니에요. 현실이잖아요. 그건 좋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 환경은 언론사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제가 알기로 2만 개가 있어요. 이들이 다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까 범법은 아니지만 탈법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려면 누군가가 희생돼야 하잖아요. 누군가는 희생하는데 그 방법들이 누구 오른팔 쥐어짜서 돈을 요구하는 거죠. 제가 예전에 무슨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같이 만들다가 발견한 건데 지방이면, 편집장 말씀하신 것처럼 권력과 자본이 신경 안 쓰는 거라고 저도 생각을 했었거든요. 안 그렇더라고요. 더 작고 더 지역에 있는 언론사가 더 무서운 일을 하더라고. 그 지역 건설사나 기업이 있으면 대표한테, 지역의 공무원한테 전화해서 광고 하나 달라고 그래요. 거긴 얼마 되지도 않아요. 500만 원 이런 식이잖아요. 그런데 공무원 엄청나게 욕하고 그런 경우도 꽤 있더라고요.”

-돈 달라?

“그렇죠. 관련한 녹음 파일이 공개가 됐어요. 조그만 언론사인데 공무원을 그냥 쥐잡듯이 하더라고. 이게 어찌 보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언론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벌어지는 일인 것 같아요.”

-인생의 진로를 정하는데 특별한 건 없다,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운명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결정할 수도 있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귀인(貴人)이어야 할까요.

“제 나이 50년을 뒤돌아보면 참 이 사람 만나서 좋았다라는 느낌이 있고, 아 이 사람만 안 만났으면 참 좋았었겠다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후자 말고 전자만 말한다면 저는 우연은 아닌 거 같아요. 내가 의도해서 노력하는 게 7이고 우연이 3 정도인 거 같아요.

유학 가서 만난 지도교수 같은 경우는 제가 만나자고 하면서 유학 갔고요. 그 사람이 ‘짜잔’하고 나타나서 제 유학을 이끌어준 거죠. 귀인이라기보다는 내가 의도하는 어떤 마음, 미필적 행운? 미필적 행운이 맞는 거 같아요.”

-워라벨도 좋지만 불합리하더라도 힘든 걸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건 세상이 내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니 받아들이고 살라는 운명에의 순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어떤 컨텍스트(맥락)였냐면 누군가 나한테 불합리한 걸 요구할 때 그걸 내가 알아서 감당하는 거예요. 개인적인 얘기인데 제가 영어를 잘 해요. 강의를 다 영어로 해요. 오십 넘고 영어로 강의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영어로 다 해요. 이유는 딱 하나에요. 영어를 잘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밖에 걸어다니는 모든 시간에 영어를 공부했어요. 미국에서는 무조건 더 그랬죠.

예를 들어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으로 드라마 보고 하죠. 오케이. 그건 그 사람들의 라이프야. 그런데 나는 걸어다니는 모든 순간에 영어공부를 했어요. 대학 시절부터. 지하철을 타든, 택시를 타든 아니면 누구를 기다리든 무조건 뭔가를 끼고 영어공부를 했어요. 그건 워라벨 측면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불합리죠. 그렇게 해야 될 필요도 없고 요구할 수도 없어요. 굉장히 피곤하지만 그냥 내가 한 거예요.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젊은 사람들 보면 욕하겠지만 퇴근도 잘 안 했어요. 누군가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대기업에 들어가면 3년 안에 결정난다. 이사가 되는 놈, 이사가 될 수 없는 애. 나는 그걸 믿었어요. 그리고 3년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일했어요. 처음 현대그룹 들어갔을 때 퇴근도 안 하고 선배들이 했던 거 진짜 복사해 가지고 읽고 그랬어요. 그건 내가 만든 감옥이에요. 그런데 내가 만드는 감옥이 없는 상태에서 뭔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건 다 한가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든 감옥이란 무슨 말입니까.

“내가 몰아친 거죠. 내가 밤 11시까지 일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야근비를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때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농구선수 서장훈 씨를 되게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일은 즐기는 자가 열심히 하는 자를 이긴다? 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열심히 해야 돼. 열심히 살아야 돼. 물론 그러지 않고도 행운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저는 그걸 믿지 않아요.”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광고 홍보에서 성공한 이들이 ‘그 일을 좋아했고 저녁 없는 삶을 살았다’라고 언급했습니다. 삶에서 어느 정도의 손해와 피해는 감수하란 의미일까요.

“즐기면서 성공한다고? 그건 요정의 세계에서나 있을 일이에요.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일은 없어요. 자신이 몰아치고 그 불합리를 다 감수하지 않는 이상 성공이란 없는 거 같아요. 특히 제가 담당했던 광고회사 분야에서는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 단 일인도 못 봤어요.”

-교수님에게 성공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인생의 다른 면은 잘 모르겠어요. 다른 걸 다 떠나서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요. 월급 때문에 제가 아침에 일어난 건 단언컨대 단 하루도 없었어요. 제가 직장생활 27년 됐잖아요. 27년 동안 돈 때문에 일어났다? 이런 일은 단 하루도 없었어요. 내가 재밌어서 일어난 거예요. 이건 내 일이니까 일어난다죠. 회사를 다니거나 아니면 지금 교수를 하거나 다 지난 27년 동안 똑같았어요. 나는 그냥 개인사업자다. 내가 할 일을 하는 거야 그냥.”

-너무 몰아치면 스스로 힘들지 않습니까.

“힘들어요. 지금 힘들어요(웃음).”

-행복하십니까.

“이 측면에서는 기뻐요. 내가 학교에 회사도 하나 차렸거든요. 교수 창업이라고 해서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를 만들었어요. 사무실도 있고요. 회사 이름은 하우스커뮤니케이션 컨설팅.”

-교수님이 회사에서 창업을 가르쳐 주는 겁니까.

“제가 창업을 한 거죠. 정교수가 되면 학교에서 허락을 해 줘요. 교수창업을 해라. 대신 교수 창업도 열심히 하고 회사도 열심히 해라 (웃음). 4개월 됐어요. 회사도 차리고 하고 싶은 직업이고 내가 벌어먹고 살 수 있고. 그런 것에서는 저는 행복하죠.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고 열심히 하고 그런 측면에서요. 저는 감히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믿어요. 다만 라이프에 대해서는 오늘은 노코멘트하는 걸로.”

-한 번 더 여쭤볼게요. 행복하십니까. 교수님.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힘드니까?

“아뇨. 일이 힘들어서 그렇지는 않고. 그냥 삶이 힘들어요.”

-영화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보면 정신과 의사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행복을 찾는데 결론이 ‘누구나 행복할 의무가 있다’더라고요. 글쎄, 행복도 의무가 돼야 할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바람직하게 들리지는 않아요. 저한테는 행복하고 싶으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된다라는 것처럼 들려요. 그런데 그것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진짜 우리한테는 너무나 쉬운 만 원짜리 몇 장, 그런 것들도 허락되지 않는 삶도 있거든요.

당장의 노인들을 봐도 그런 것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거든요. 그런 사람들 앞에서 그 작가가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족이 조현병이 너무 심해서 힘들어하시는 몇 분을 만나뵌 적이 있어요. 그분들한테 내가 뭔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분들이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내가 얘를 책임지면서 기본적인 게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분들 앞에서 그 정신과 의사라는 분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유현재 교수. (c)마인드포스트.

-더 하실 말씀이.

“마지막 질문이 저도 오늘 생각을 하게 될 거 같네요. 행복하냐고 물어봤을 때 저도 뭐든지 그렇게 대답이 안 나오는 사람이 아닌데 그건 턱 막히는 거 같아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행복했는데 딴 부분에서는…이거를 뭐 총점으로 매기면 행복을 그렇게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답을 구한 건 아니고요,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러네요. 편집장님은요?”

그가 기자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기자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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