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비평 - "사람은 모두 귀하다" 기사에 대하여
셀프 비평 - "사람은 모두 귀하다" 기사에 대하여
  • 전민 기자
  • 승인 2019.01.29 21: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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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귀하다" 기사에 대한 셀프 비평
인권은 거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쟁취하는 것
자기 밥그릇을 찾아먹을 수 있는 것이 건강한 힘
'사랑하며 사는 세상'보다 '독립적인 개인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더 좋아

들어가는 글

시민기자로 마인드포스트에 두번째 기사로 "사람은 모두 귀하다"를 올리고 나서 불편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간 기자 자신의 인식변화에 맞춰 제 기사를 비평해보고자 합니다. 과거의 인식을 반성하고 올바른 생각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본문내용과 정정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피의자 박모씨를 변호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기를 상담해주는 의사가 맘에 안 들면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의사의 일거수 일투족이 맘에 안 들고 자기를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이 오히려 자기를 비난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것은 환자가 치료자에게 느끼는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투사감정입니다. 성숙한 치료자는 그런 환자의 적개심을 적절히 통제하면서 감정을 폭발시키도록 하는 게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그런 의사에 대한 적개심이 근거없는 것이라는 사실-사실은 자기의 부모를 향한 미움이  치료자에게 투사된 것이라는 것, 그래서 의사는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고 의사가 미운 것은 사실 자기의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것, 종로에서 뺨 맞고(부모) 한강에서 화풀이하는(치료자) 행동을 자기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자 자신이 스스로 깨닫도록 함으로써 환자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 진짜 자기의 진실한 감정을 받아들이게 되면 치료는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정신치료의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이고 별다른 견해차이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제가 이 부분을 쓴 의도는 다음 부분에 나옵니다.

아무래도 박모 씨와 고인이 된 전문의 사이에는 이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추측일 뿐입니다. 그렇게 의사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우면서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니면 또 다른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찰조사에서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의사-환자간의 투사/전이관계라고 볼 수 있을지 지금에 와서는 모르겠습니다. 환자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 망상을 주입한 것은 의사이니 의사를 살해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를 폅니다. 문제는 환자가 망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 망상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담당의는 환자 퇴원 후 일 년만에 환자를 상담한 것이니 그동안에 어떤 투사/전이가 발생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핵심은 환자의 망상인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았기에 망상이 심해져서 실제 살해까지 하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고 방치된 것이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가가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박종언 기자가 쓴 파도손 대표 이정하님의 인터뷰 기사가 핵심을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긴급 인터뷰] 이정하 “동료지원활동가 운동은 정신장애인의 정치적 해방운동”

사회가 불안하고 존재가 위협받을수록 사회는 공공의 적을 찾으려고 하게 됩니다. 한때는 그것이 박정희로 상징되는 군사독재정부였고, 민주화 이후에는 재벌, 정치인 이렇게 가다가 지금은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사람들을 상대로 쥐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희생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현대인의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서 가장 그럴듯한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문맥상에 오해가 있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을 공공의 적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말이지 군사정부와 재벌, 정치인들이 애꿎은 희생양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치료자는 내가 생명이 있고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나를 사람으로 대접해주는 사람입니다. 치료자는 그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치료자의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생명의 싹을 틔우고 자라가는 것은 환자의 몫입니다.

치료자에 대한 내용은 기자 자신이 경험한 치료자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원 기사 내용의 대부분이 상담시간을 통해 배운 것들이고 처음에는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이제 보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경향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윗 글에서도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의사의 말'을 갖다가 쓴 부분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의사라는 존재를 거대한 하나의 우상으로 봤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좋은 의사는 거기에 도움을 주는 존재일 삶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인데 의사를 의존하던 마음이 있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내가 힘들 때 의사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지만 이제는 의사를 한 사람의 평범한 생활인으로 볼 때가 되었습니다.

마음의 질병을 앓고 계신 환우들께 반복되어 일어나는 사건들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자기 마음 치료에 더 집중하면서 무조건적인 정신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대우를 외치기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비판과 노여움 섞인 마음으로는 어떤 옳은 일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부끄러운 글입니다. 당시 생각을 충분히 잘 표현하지도 못했고 충분한 숙고 없이 쓰다보니 이상한 글이 되었습니다. 이제 제 입장은 이렇습니다. 인권은 노력하지 않아도 거저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하고 모두가 화합하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이미지가 늘 제 마음 속에 있었는데 현실은 좋은 엄마가 알아서 숟가락을 물려주지 않습니다. 내가 투쟁해서 찾아서 밥을 차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전에는 마음에 차가운 바람이 불곤 했습니다. 어쩜 그토록 잔인한 세상인가!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사랑을 주고받는 세상'보다 '독립된 개인들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더 살 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만들어가야 할 세상은 분명 '의존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세상'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그 삶을 나누는 사람들의 세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마치는 글

저 자신을 점검하고 과거의 글을 수정하고 싶은 욕망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원 기사를 올리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찜찜해졌었습니다. '뭔가 잘못 알고 쓴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오랫동안 '말해주지 않는 진실'을 몰라서 속아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그 진실을 조금 더 알게 된 듯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종언 기자의 파도손 이정하 대표 인터뷰기사를 다시 한번 링크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긴급 인터뷰] 이정하 “동료지원활동가 운동은 정신장애인의 정치적 해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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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1-29 23:20:37
전민님의 솔직담백한 고백과 팩트에 입각한 자기 의식의 분석 대단합니다. 의식 생각 신념 신앙은 변화 발전 성숙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제 봤던 상황도 오늘 새로이 판단되기도 하니까요.

전 한계가 많은 사람이라 늘 겸손해야 한다 나를 질책하면서도 바깥으로 눈돌리면 비판하고 백안시ㄱ하기 일쑤입니다. 나라면 저렇게 않을건데. 수만번 그러죠. 나라면 조현 정책 99순위에 두지 않으며 조현여성리더 박봉 주지 않을텐데 맨날 한숨이죠.

그러나 독립은 따로또같이 서로가 관게맺는거 같습니다. 적대감 보다는 공감설득이 나으며 투쟁과시위 보다는 지혜와 명철의 전략스트레이지가 낫지요. 이젠 우리도 모여 맞대어 연대할 때 같습니다. 구조악 박살 내는 유기적 공동운명의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