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을 따지다...정신질환자의 사건사고 판결문은 왜 양형으로 귀결되는가
판결을 따지다...정신질환자의 사건사고 판결문은 왜 양형으로 귀결되는가
  • 가비노 김(김근영)
  • 승인 2020.09.29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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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 이유에 앞서 정신장애인 살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양형 이유는 대중 분노로 소비...치료나 사회적응 효과 없어
비정상 사회에서 정상 논하는 악순환 이제는 끊어야
'모친 내연남 흉기살해…경찰과 통화중에도 계속 찌른 30대' 뉴스1 기사 갈무리
'모친 내연남 흉기살해…경찰과 통화중에도 계속 찌른 30대' 뉴스1 기사 갈무리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 보도가 두 가지로 갈라졌다.

하나는 지방에서 정신질환 모녀가 숨진채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11시 30분께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한 원룸에서 딸(22)과 엄마(52)가 숨진 채 발견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은 부패 정도로 봤을 때 모녀가 발견된 날로부터 열흘에서 보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타살 혐의점이 없고, 유서 등이 발견되지 않아 경찰은 자살 가능성도 적다고 보고 있다. 다만 엄마가 돌연사한 뒤 딸이 굶어죽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는 상태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맡겼다.

다른 하나는 '정신질환자 = 잠재적 흉악 범죄자'라는 방정식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한 사건이다. 28일 법원 판결을 받은 이 사건은 어머니의 내연남을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한, 그다지 특이사항이 없는 살인사건의 전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해자는 범행 당시 경찰에 스스로 신고 전화를 하면서도 피해자가 "아직 숨지지 않았다고 소리치면서 경찰과 통화 중에도 흉기로 계속 찌른 것으로 드러났다."(최선을, "“경찰과 통화중에도 계속 찔러” 모친 내연남 살해한 30대", 서울신문, 2020.9.28(클릭))

이 사건은 범행 수법이 잔혹하다는 측면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나는 여기서 "2005년부터 충동조절장애 등으로 쉽게 흥분해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언론이 정신장애인 전 구성원을 싸잡아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하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공고히한다는 우려를 전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어쩌면 이미 존재해 왔었으나 너무나 그 체제가 강력해서 '감히' 의문을 표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바로 '재판부의 판결' 그 자체를 우리가 살펴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예컨대 저 두 사건이 벌어진 같은 날 법원은 응급실과 편의점, 유흥주점 등에서 상습적으로 난동을 부린 혐의로 1심에서 벌금형의 선처를 받은 40대에게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했다. 벌금 6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을 선고한 것이다.

1심 재판부에 따르면 "피고인이 조현정동장애와 알코올사용 장애 증상으로 불면, 충동조절장애, 알코올 남용, 행동장애 등 문제가 있어 수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 실형보다는 치료를 우선하는 것이 재범 방지에 상당하다"며 벌금형을 내렸다.

'실형보다는 치료를 우선하는 것'이 재범 방지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판결이다. 살해사건이 아닌 단순 난동사건에 불과해서일까?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현재 이사불명 상태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판단된다"며 형량이 가볍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MBN 온라인 뉴스팀, ""정신과 치료 안 받았다"…상습난동 벌금형 40대, 항소심서 실형", MBN, 2020.9.28(클릭))

"정신과 치료 안 받았다"…상습난동 벌금형 40대, 항소심서 실형 MBN 뉴스 갈무리
"정신과 치료 안 받았다"…상습난동 벌금형 40대, 항소심서 실형 MBN 뉴스 갈무리

요컨대 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의 경우 살인사건이 아니면 벌금이나 다소 형량이 약한 징역형이 선고된다. 하지만 살해 사건이나 그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하고 극단적인 폭력성'을 나타낼 경우, 모두 아는 것처럼 형량은 무거워진다.

두 번째 사건의 경우 법원은 징역 18년을 선고하고 5년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언뜻 보기에 18년은 적당한 판결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한편으로 18년은 금방 지나간다. 지난 2008년 경기 안산시에서 8세 여아이를 성폭행하고 징역 12년 선고를 받았던 조두순이 올해 12월 만기출소한다는 소문에 시민들은 모종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법원 판결의 가벼움에 치를 떨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을 판결하면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경악스러운 행동으로 볼 때 잔혹함과 폭력성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서도 "충동조절장애 등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생활했던 것이 사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물론 '과거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라는 방정식도 양형 이유가 됐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양형 이유라는 것을 다시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충동조절장애 등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생활했던 것"이 과연 '양형의 이유'여야 할까? 정말 양형의 이유로 '이용'될 정도에 그치고 마는 요소들인가?

오히려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정신건강 체계의 구조를 바꾸고, 가해자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사회가 나서서 교정해야 하지는 않을까? 국가는 무엇을 하느냐고 원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어떤 동네에 정신병원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들어오려고 하면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며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 논리를 내세우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최소한의 기반시설마저 갖춰지지 않은 취약한 정신건강 체제 내에서 어떻게 가해자가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사실 정신장애인도 좋은 치료를 받고 싶고 얼마든지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게다가 "충동조절장애 등 치료 효과를 보지 않고" 영원히 분노하며 장애를 안은 채 살아가려 하는 정신장애인은 아무도 없다.

재판부의 판결에 등장한 저 '양형의 이유'는 그저 형량 감소의 알리바이로 소비되고 또 이를 접하는 대중들의 분노와 편견 확산에 기여할 뿐 실제로 '치료 효과'나 '사회 적응'의 효과는 전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불신과 배신과 처벌의 과정에서 상처입은 자아가 더욱 날뛸 자리만 넓혀주는 것이다. 18년이 지난다면 가해자는 '치료 효과'를 경험하고 '사회에 적응'하게 될까?

우리는 스스로 바뀌지 않으려 하면서, 날로 심각해지는 가해자의 잔혹함에 더욱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사건사고를 쫓아가며 재판부의 솜방망이 처벌에 불신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정말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일 것이다.

정말로 건강한 사회란 모든 사람이 건강한 사회, 다시 말해 정신장애인이든 비정신장애인이든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건강하지 않으며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증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건강하지 않다. 이러한 비정상의 바이러스가 이미 우리 사회에 퍼져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러한 비정상의 바이러스에 걸려 정상을 논하려 하기에 계속해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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