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연의 리뷰]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당사자의 관점과 ‘살아있는 경험’의 힘
[송승연의 리뷰]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당사자의 관점과 ‘살아있는 경험’의 힘
  • 송승연
  • 승인 2021.09.27 19: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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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함께 춤을 (다른몸들, 푸른숲, 2021) 리뷰
질병과 함께 춤을
질병과 함께 춤을

저서 《질병과 함께 춤을》은 ‘다른몸들’이라는 사회단체에서 집필한 책이다.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잘 아플 권리(질병권)를 제시한 조한진희가 엮었으며, 다리아(난소 혹, 식도염, 위염, 치질 등), 모르(척수성근위측증), 이혜정(류머니즘), 박목우(조현병) 등이 저자로 참여했다.

본 리뷰는 박목우가 쓴 ‘조현, 그 이상의 삶’에 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박목우는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로서 환청과 망상으로 인해 약 10년간 집 밖을 나오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17년 장애인 등록을 하며 정신장애인임을 주변에 밝혔고, 이후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병력’이라는 의료적 역사에서, ‘서사’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원하든, 원치 않든 살아가다보면 정신적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사실 익숙하다. 누군가에게 정신적 어려움이 찾아오고, 그 이후 처음으로 소위 ‘정신건강 영역’이라는 곳에 첫 발을 딛게 되면, 진단명·증상·치료기록 등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이 ‘병력’이라는 질병의 역사로 그를 기억하게 된다.

그가 언제 처음으로 발병했는지, 그의 첫 증상은 무엇인지, 진단명은 무엇인지, 그리고 증상과 진단명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 몇 번 입원했는지, 얼마나 입원했는지, 약물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등등으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서사’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느새 사라진다. ‘조현, 그 이상의 삶’ 저자 박목우 또한 이러한 부분을 지적한다.

"(병력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사랑을 하고 싶었으며, 무엇을 이겨내고 싶었고, 무엇을 견뎌왔는지, 왜 그 모든 일에 좌절하고 절망했는지, 순진하던 꿈들은 어떻게 배반당하고 상처 입었는지. 이 몇 마디 말은 이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해주지 못한다.” (97.p)

이를 위해 박목우는 이 책을 통해 병력이라는 이름 뒤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친다.

먼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정신적 고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시작한다. 지배적인 생의료모델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적 차원의 생물학적 요인(화학적 불균형 등)으로 인해 ‘발병(혹은 초발, 온셋)’하였다는 식으로 의료적으로 해석되며, 일종의 급격한 전환(정상(건강한 상태)에서 질환(건강하지 않은 상태)으로)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저자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의 요인들과 정신적 고난과의 관련성에 대해 기술한다.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폭언과 폭력의 반복.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된 열악한 상황(불안정한 주거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신과 진단 범주로 덮여졌던 건강에 미치는 다양한 사회적 결정 요인(빈곤, 폭력, 학대, 고립, 배제 등)의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저자는 10년 넘게 이어진 정신적 고난 속에서 고립되었던 이야기를 읊조린다.

“혼자 있어도 바람 소리가 들렸다. 비난하고 비웃고 욕을 하는 바람 소리. 여름날 내리는 빗방울 소리도,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누군가의 고운 피아노 반주도, 하나 다를 것 없이 수치스러웠다. 모든 소리들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내게는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다. 언제까지나 내가 만든 망상들 속에서 고통 받고 괴로워할 뿐이었다.” (97.p)

당시 저자가 느꼈던, 경험했던 불안감에 대해 우리는 ‘망상’이라는 한 단어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자세히 표현한 방식과 같이 ‘당사자의 목소리, 당사자의 관점, 당사자의 언어’로 들었을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은 달라진다.

푸른숲 제공
(c) 혜영

그래도 우리는 믿어야 한다. 관계라는 것의 힘을.

저자는 정신적 어려움이 찾아온 후 자신이 경험한 5년간 이어진 고립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은 방에 갇혀 꼬박 5년을 보냈다. 누군가 감금하진 않았지만 증상이 심각해 방 밖으로 걸음을 떼지 못했다. (중략) 마지막으로 발병했던 서른에서 서른다섯 살까지의 기억은 거의 지워지고 없다. 하지만 독한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다." (103.p)

우리는 고립과 배제, 단절을 물리적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물리적인 고립·격리·감금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고립이 있을 수 있다. 저자는 그렇다면 고립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되었을까?

"방에 갇힌 지 5년이 흘러 나는 훌쩍 ‘희망버스’를 타게 되었다. (중략) 무엇이 나를 이끌었는지 모르겠지만 속수무책으로 증상에 밀리지 않고 나 자신과 싸움을 시작하면서 노동에 대해 알고 싶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이어가면서도 검질긴 힘으로 끝내 일어서고야 마는 힘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중략) 그들을 펄펄 살아 있게 하는 힘이 나와도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105.p)

‘희망버스’는 2011년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고공시위를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조합원들을 응원하기 위해 운행된 버스를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끌려 참여하게 된 희망버스 경험으로 고립에서 벗어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이는 어쩌면 연대의 중요성과 연결되는 것일 수 있다. 물론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노동운동’과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연대가 가능한가? 언뜻 보면 두 개의 사회운동은 다른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억압의 교차성’ 관점으로 보았을 때 두 운동의 연대는 가능해질 수 있다.

노동자 집단과 정신장애인 집단이 사회적 소외집단이 되었을 때 기저에는 ‘계급’과 정신장애인차별주의(sanism, 정상중심주의)‘와 같이 권력관계로 형성된 동일한 억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소수자들의 억압은 이러한 다차원적인 구조에서 이루어지며 하나의 기제만 해결해서는 본질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음을 시사해준다.

희망버스 운동은 또한 중요한 가치를 저자에게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 가치는 바로 ‘환대’이다.

“그곳에서 마셨던 따뜻한 커피의 온기는 아주 오랫동안 나의 손바닥에 남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고 웃음이 오갔다. 5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환대였다. 약 부작용으로 35킬로그램이 넘게 살이 쪘지만 그런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 (106.p)

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중요한 것은 아주 작은 것일 수 있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보다 인간적인 ‘환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참고로 환대는 영어로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인데, 이는 라틴어 호스피탈리타스(hospitalitas·손님에게 친절함, 극진한 접대)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병원으로 알고 있는 호스피탈(hospital) 또한 이와 관련된 용어인 호스페스(hospes, 손님, 나그네, 주인장, 낯선 사람)에서 비롯되었다.

의료기관의 본질은 정신적 고난으로 힘든 여정을 걸어 나가고 있는 손님(당사자)에게 따뜻한 환대와 쉴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환대가 나에게는 너무 고맙고 따스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챙겨주면서, 내가 아무 가치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사람들과 그렇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이 나를 크레인 앞으로 이끌었다. 어쩌면 삶으로 이끌어준 것이었다." (107.p)

"질병과 함께 춤을" 사진=푸른숲 제공
"질병과 함께 춤을" 사진=푸른숲 제공

문제는 ‘개인’이 아니다. 당사자운동과 사회적 모델을 통한 일상의 복원

저자는 이처럼 환대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느끼는 소외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박목우는 그 소외감의 근원을 찬찬히 탐색하기 시작했다.

"정신장애인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고 동떨어진 존재, 쉽게 무시하고 배제해도 항의할 수 없는 존재였다. (중략) ‘정신병자’의 삶은 대중에게 알려진 적이 없었으며 그들은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가 되어 세상 밖을 떠돌았다." (109.p)

저자는 ‘지워진 존재’로서 어떤 소외감을 지속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채우기 위해 정신장애인 당사자로서 정체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단체 활동’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언급된다.

"나는 여기서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정신장애 문학 소모임 ‘천둥과번개’) 정신장애가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나의 환청과 망상이 낙인이 아니라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세상이 쓸모없다고 하는 이것들이 우리에게는 현실임을, 세상은 이 현실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114.p)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개인이 바뀐 것일까? 부단히 노력해서, 혹은 열심히 치료를 받아서 나아진 것일까?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개인’이 바뀐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을 받아주는 주변의 ‘사회’가 바뀐 것이 중요했음이 드러난다. 가령 저자는 당사자단체 활동에 참여하기 전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매일 나 자신을 탓하며 환청과 망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내가 보인다. 나는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지?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잊지? 나는 왜 이렇게 많이 먹지?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지?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난 상처로 몇 십 년 세월을 웅크리며 살았던 내가 보인다." (122.p)

이는 어쩌면 의료모델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준다고 볼 수 있다. 의료모델 하에서 발생하게 되는 모든 어려움은 ‘개인’에게 귀결된다. 결국 정신장애인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데, 개인의 책임으로 기울어져 있는 권력 구도는 ‘노력도 내 몫, 책임도 내 몫, 그에 따른 결과도 나의 몫’이 된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했듯이 이는 정신장애인의 부정적인 자아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부인하고 ‘정상’이 되려 애쓰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허공에 흩어졌다. 모든 환청과 망상을 묻어둔 채 침묵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자주 미끄러진 이유는 내가 나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가난했으나 가난하지 않은 척, 조현병을 앓고 있으나 아닌 척했다. 항상 나 이외의 다른 척도에 맞추어 내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 그래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상성의 규범에 맞추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부인하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141.p)

낙인을 피하기 위해 사회가 ‘정상’ 또는 ‘주류’로 여기는 정체성으로 보이는 전략을 취하는 것을 어빙 고프먼은 패싱(passing)이라고 지칭했다(선량한 차별주의자, 139.p). 정체성을 감추고, 사회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버티지 못하고 결국 부정적인 정체성(자기낙인)으로 흘러가게 된다.

저자는 당사자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이러한 자기낙인에서 벗어남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모델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지쳐 있던 내게 이곳은 출구와 같았다. (중략) 소통의 부재로 말을 잃고 살아가던 나는 조금씩 말을 트기 시작했다. 나의 아픔에 대해, 상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판단 받지 않고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하는 공간에서, 서로 이해하고 따듯이 품어주며 살아갈 수 있음을 경험하며 나는 서서히 변해갔다." (116.p)

박목우라는 특정한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다. 바로 사회가 변한 것이다. 물론 정신적 고난의 특징들(목소리 들림, 일반적이지 않은 신념, 불안한 감정 등)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상황과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능력에 많은 제약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고난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신장애인이 사회참여를 하는데 있어 장벽으로 존재하는 부분을 감소시켰을 때, 사회 속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기역할을 하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사라졌던 ‘일상의 복원’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제 나에게도 일상이 생겼다. 서로 안부를 묻고 늦은 밤에도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조각 케이크에 아메리카노를 곁들여 마시고 수다를 떨고 헤어질 때면 잘 가라고 포옹할 수 있는 일상. 누군가를 만나서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기가 한없이 어색했던 나는 이제 사람들의 어깨를 감싸주곤 한다. 때로 우스운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한다. 내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바랐던 삶인가." (121.p)

우리는 이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의 서사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세상은 무섭도록 빨리 흘러갔고 세상은 늘 그런 나의 속도를 비난했다. 나의 몸을 설명할 언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갖기 전, 나 역시 나 자신을 비난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열패감에 젖어 무엇 하나 시작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147.p)

박목우의 이야기는 독백에서 대화로 나아갔다. 희망버스를 거쳐,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로,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몸들’이라는 사회단체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개인’을 문제에 두고 ‘개인’을 비난했던 의료모델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변화된 주변 환경(태도, 차별, 억압 등)은 저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좌절과 낙오를 ‘사회문제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박목우는 이제 삶을 주도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삶을 살아낸 이야기는 아름답다고. 이때의 “아름다움이란 한 송이 꽃이 온 힘을 다해 꽃잎을 펼쳤을 때의 그 힘”과 같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삶을 살아낸 이야기이며,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서사는 어딘가에 고립되어 있는 당사자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동시에 구조적 차별을 생산하는 사회적 장벽을 허무는 것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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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랑 2021-10-02 16:53:27
이 책 좋아요. 저도 많이 아픈데 질병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