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를 어떻게 잘 치료할 거냐의 시대는 지나…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가 원칙돼야”
“정신장애를 어떻게 잘 치료할 거냐의 시대는 지나…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가 원칙돼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12.14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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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IL센터·은평늘봄IL센터 주관 ‘정신장애인 자립생활 정책 토론회’
한국사회는 광기를 질병으로 보는 의료적 관점에만 익숙해져
CRPD는 정신장애인이 시민으로 삶의 권리를 행사하는 이념
정신치료적 재활은 의료적 치료의 연속선상에 있는 재활 개념
당사자 단체 지원, 정신건강복지법에 모호하게 규정…개정해야
서울시 권역별 정신장애자립생활센터 현 3개에서 5개로 구축해야
열악한 정신건강 인프라, 전국 자립생활센터 활용해 활동 영역 넓혀야

한국사회의 의료적 치료 관점의 정신재활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원칙에 입각한 정신장애의 대안적 치료 모델이 개발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 서울시 권역별 5개 정신장애자립생활센터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당사자 지원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1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은평늘봄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공동주관한 ‘북서권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 정책 토론회-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들을’이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됐다.

발제를 맡은 박재우 서초열린세상 소장은 “자립생활은 장애 당사자가 자기 삶에 통제권을 쥐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며 “우리는 증상 중심의 대화를 해 오고 증상을 통제하는 것으로 삶의 어려움을 해결한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편집권은 자기에게 있다”며 “우리가 정신질환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정의해 오던 방식들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유엔 CRPD는 정신장애인의 인권 측면을 강조하지만 한국사회는 정신장애와 관련해 의료와 재활 모델에 치중해 온 오류의 역사다.

그는 “국제 기준으로 보면 장애는 고착된 게 아닌 권리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라며 “개별적 장애 모델, 시혜적 모델을 못 벗어나고 의료 모델에 갇혀 살다 보니 그런 인식조차도 의료화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광기(狂氣)를 인간 정신의 다양성 모델로 접근하면 광기는 사회 정책의 대상이 된다”며 “우리는 광기를 질병으로 해석하는 의료적 관점에만 익숙해져 있어 의료 정책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고 전했다.

그는 CRPD는 정신장애를 갖고 보편적 시민으로서 삶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의 구축이자 부수적으로 약과 사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 원칙에 부합한다는 의견이다.

박 소장은 “강제입원과 강제치료의 금지는 CRPD의 원칙”이라며 “이제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대안적 치료를 찾는 것이 CRPD의 국제법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소장은 자립생활의 기본 원칙으로 자기결정권, 선택권과 통제권, 사회 통합을 들었다.

그는 “당사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인식을 개선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라며 “사회적 배제, 분리, 차별을 해소하는 다양한 제도적 개선과 투쟁이 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사회 속으로 당사자가 들어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사회 역시 당사자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당사자를 받아들이려는 사회적 노력은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박 소장은 “삶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과 정신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없다”며 “정신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약만 준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세계적으로 어떻게 잘 치료할 거냐는 시대는 지났다”며 “잘 치료할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것이냐가 원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CRPD와 WHO(세계보건기구)의 퀄리티 라이츠(Quality Rights)의 핵심은 인권 회복의 정신건강 서비스”라며 “회복은 당사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서비스의 제공”이라고 말했다. 회복 지향의 정신건강 서비스가 당사자의 자립생활이라는 의미다.

박 소장은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 환경 구축을 위해서는 ▲복지 서비스의 확대 ▲차별과 배제의 제도적 철폐 ▲인식 개선 ▲당사자 주체성에 기반한 정책과 서비스를 들었다.

그는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신재활시설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정신치료적 재활”이라며 “이는 삶의 재활이 아니라 정신을 어떻게 잘 치료할 것인가에만 집중된 의료적 치료의 연속선상에 있는 재활”이라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정신장애와 관련된 ‘통제 가능성’에 대해 “약 먹으면 통제할 수 있다는 ‘신화’가 강조될 경우 저 사람의 문제는 약을 안 먹어서야라는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신질환자는 통제 가능한데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는 사람이 돼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이 다 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 소장은 “당사자 단체 없이 당사자 주 체성을 확보할 수 없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며 “당사자 지원이 정신건강복지법에 모호하게 규정돼 있어 이 법령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의 특성과 손상의 내용은 다르지만 장애라는 사회적 억압과 구조적 모순은 같다”며 “당사자, 전문가들도 장애 당사자 운동을 먼저 경험한 이들에게 배우고 우리 역시 공부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근호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서울 북서권 지역의 정신장애인 분포와 정신건강증진시설 현황을 설명했다. 북서권 지역은 마포구, 용산구, 서대문구, 중구, 종로구, 은평구다. 마포정신건강복지센터가 서비스 대상으로 하는 지역이다.

박 국장은 “정신의료기관 대비 정신건강증진시설은 서울시는 138곳이지만 마포구 5개, 은평구 8개, 용산구 2개, 종로구 4개 등으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북서권 지역의 정신의료기관에서 퇴원율을 조사한 결과 6개구 전체에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 의한 퇴원 명령율은 0%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북서권에서 당사자 조직은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하나뿐”이라며 “센터들의 양적 증가도 중요하지만 방향성과 함께 정신장애인들이 대상이 아닌 주체로 기능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소장은 “정신의료기관은 치료에 초점을 두고 증상 완화에만 집중한다”며 “이는 약물 부작용으로 지역사회 적응을 힘들게 만드는 한계”라고 말했다.

신 소장은 서울 지역의 권역별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설치를 주장했다. 현재 서울시 지원을 받는 정신장애인 기관은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등 3곳이다. 서울시를 동남권, 서남권, 서부군, 도시권, 동부권 등 5곳으로 나눌 경우 아직 2개의 권역 센터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는 서울시 각 구보다는 5개 권역별 설치를 통해 거점 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 소장은 “5개 권역에 5개 자립생활센터가 생기면 지속가능한 당사자 단체 지원을 위한 업무 표준화, 양식 개발, 활동가 교육 등이 필요하다”며 “당사자 주도 프로그램을 당사자 관점에서 계속 개발하고 선발 자립생활센터에서 치열하게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인영 사람중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자립생활 이념의 꼭지 안에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선택권과 결정, 장애유형의 포괄”이라며 “사람중심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다양한 장애유형을 포괄하기 위한 고민들을 계속해 왔다”고 말했다.

강 국장에 따르면 이 센터는 2010년 초반 발달장애인을, 2010년 중반부터는 정신장애인이 이용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정신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에 대한 고민들이 나왔다.

그는 “이들과 함께하면서 각각 다른 장애 유형을 가진 이들이 일상적 어려움과 불편함은 다를 수 있지만 불편과 인권이라는 요소들로 같이 묶을 수 있었다”며 “사업 진행 과정에서 내부 학습을 통해 정신장애 체계를 공부했다”고 밝혔다.

강 국장은 “정신 쪽에 인프라가 많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전국에 200개가 넘는 자립생활센터를 자원으로 활용하면 어떨까”라며 “전국 자립생활센터와 정신재활시설이 연계하고 정신장애 운동과 합쳐진다면 당사자들의 활동 영역이나 자립생활 지평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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