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신의학계 “항우울제 SSRI 처방 제한 폐지” vs 신경정신의학회 “전문성 필요”
비정신의학계 “항우울제 SSRI 처방 제한 폐지” vs 신경정신의학회 “전문성 필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4.29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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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 창립…비정신과 처방 제한은 국민 우울증 방치해
신경과학회·가정의학회 등 참여…SSRI 처방 기간 60일 제한 폐지 요구
신경정신의학회 “우울증은 전문가 영역…치료 기회 놓칠 수 있어” 우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brasil.elpais.com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brasil.elpais.com

지난 26일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가 창립됐다. 대한신경과학회, 대한가정의학회·의사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대한노인의학회,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가 이 학회에 소속됐다. 우울·자살을 떠올리면 정신과 전문의가 떠오르겠지만 이 학회는 비정신과 단체들의 모임이다. 왜 그럴까.

이는 우울증 치료제인 항우울제 SSRI 처방과 관련된 갈등 때문이다. SSRI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재로 정신과 의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SSRI 사용에 대해 비정신과 과목인 내과,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전문의들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이 SSRI를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60일, 즉 2개월이다. 비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은 이 처방 기간 제한을 철폐하라는 입장이다.

비정신의학계 측에서는 우리 인구의 500만 명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상황을 볼 때 1차 의료인 동네의원에서도 적극적으로 SSRI가 처방돼야 하며 이렇게 해야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SSRI 처방 일수 제한과 높은 자살률은 인과관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회는 “SSRI만으로 우울증이 치료되는 건 아니”라며 “(SSRI 처방 기간 철폐 요구는) 전문의의 판단이 배제된 비약적 논리며 결론부터 세워둔 잘못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학회는 특히 최근 몇 년간 SSRI 처방률이 늘었지만 자살률은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도 들었다. SSRI 처방 제한 자살률에 영향을 준다는 비정신과 학회들의 논리는 모순이 있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02년 3월 고시를 통해 정신과를 제외한 일차 의료 의사들에게 SSRI 처방을 제한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약제의 적정성을 관할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SSRI 처방에 대한 3차례 전문가 회의를 거친 후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의료진에 대해서도 SSRI 처방 제한을 철폐하는 개선안을 마련했다. 고시 20년만이다.

하지만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가 이를 승인하지 않고 3달째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선안은 복지부 보험약제과로 전달됐지만 아직 승인이 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평원 행정해석인 Q&A 첨부를 통해 규정을 정해야 할지, 아니면 복지부 차원에서 고시 개정이 필요할지 등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manipulae.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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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는 이 같은 상황에서 설립됐다.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전문의는 “한국의 중등도, 심한, 매우 심한 우울증의 치료율은 11.2%에 불과하다”며 “반면 미국은 우울증 치료율이 66.3%이고 이것이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미국의 자살률이 한국보다 훨씬 더 낮은 주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학회는 우울증이 처음부터 중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SSRI의 처방 제한을 철폐하라는 입장이다. 동네의원을 들르는 단골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친숙한 내과의사, 소아과의사들에게 털어놓고 초기에 우울증 신호가 보일 경우 의사가 SSRI 등을 처방해 경과를 본 후 중증의 위험성이 클 경우 정신건강의학과로 전원해 전문적 진료를 받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다만 SSRI 규정이 철폐되면 비정신과 개원의들에 대한 학회 차원의 보수교육 등을 적극 진행한다는 의견이다.

학회는 지난 2003년 이후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SRRI 처방을 정신과에 독점시킴으로써 나타난 폐해라는 주장을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학회는 비 정신건강의학회에서 단순히 SSRI 처방을 하고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를 전원하지 않게 되면 적절한 치료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입장이다.

학회는 “우울증은 전문의 진단이 필요한 질환이다. 젊은 환자의 약제 선택도 신중히 하는데 노인 환자의 경우 복용하는 양이 많이 약물 간 상호작용 등을 고려해야 해 약제 선택이 중요하다”며 “(정신과) 전문의 외에는 신중한 판단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우울증은 약물 하나로 치료가 되는 그런 간단한 질병이 아닌데 비정신과 의사들이 이를 잘못 인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는 “정신과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이 아니”라며 “좀 더 환자들에게 즉각적인 치료를 도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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