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은 병원이 아니다...왜 정신병원은 병원이 되지 못할까를 고민해야”
“정신병원은 병원이 아니다...왜 정신병원은 병원이 되지 못할까를 고민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6.21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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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응급 상황에서 대안적 치료 과정으로 낮병동 효과 커
자유로운 환경만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가 주는 치료적 힘을 인정해야
편안한 병원 환경에서 치료 이뤄지기 위해서는 개방병동이 반드시 필요
왕진이 법적 허용되고 시범사업도 했지만 갈 길 아직 멀어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 사람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길 원해
안병은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원장. (c)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유튜브 갈무리.
안병은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원장. 사진=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유튜브 갈무리

정신장애인이 급성기 증상이 발현했을 때 입원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낮병원의 현실적 작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지역사회 돌봄을 위해 정신과 전문의들의 왕진 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1일 서울 중구 공간모아에서 열린 제4차 정신장애인 인권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안병은 행복한우리동네의원 원장은 “낮병원 활동을 통해 (이용 당사자들의) 치료적 과정, 약물 변경을 관찰할 수 있다”며 “급성기 정신증적 증상이 있을 때도 치료적으로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커뮤니티케어의 핵심은 케어 인 더 커뮤니티(Care in the community·지역사회 내 돌봄)로 내가 살아가는 그 공간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여기에 정신의료기관의 역할은 어때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재활’에 대해 낯설게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 수련 중에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걸 정신과 의사를 탓해서는 그들을 정신재활 영역에 끌어들일 수 없다”며 “건강한 정신과 의사가 정신재활 분야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정신병원과 관련해 “아플 때 내가 적극적으로 가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일반 병원인데 정신병원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가서는 안 되는 곳, 치료보다는 배제되는 공간으로 이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안에 덧씌워진 그림자를 어떻게 지울 것인가, 정신병원은 정말 병원이 될 수 없는 건가”라며 “많은 지역에서 그 지역에 정신병원 들어온다고 하면 데모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정신병원은 병원이 되지 못할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정신과 전문의 토마스 사스의 반정신의학 운동, 현재의 비판정신의학에 대해서도 그는 문제를 제기했다. 사스는 당시 “정신병은 허구”라는 명제를 내세워 정신장애인들의 시설 수용화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인물이다.

안 원장은 “최근에도 정신질환 자체를 부정하고 약물 치료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며 “정신과 의사 중심의 정신의학을 반대하는 것이냐, 약물까지도 반대하는 거냐, 정신질환 자체를 비판하는 미국 정신의학자 주장까지 받아들이는 거냐 등 혼재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무엇을 반대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반대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개인적 욕심으로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영역을 반대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자유로운 환경만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가 주는 치료적인 힘을 인정한다”며 “이제까지 정신과, 정신병원, 정신질환 그 안에 덧씌워진 것은 감금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역사 속에서 보면 정신병원은 배제와 감금으로 덧씌우진 치료적 프레임”이라며 “정신질환에 대해 수용 위주의 치료에 대해 그것만이 해결책인 양 제안하지만 이제는 자유 그 자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치유의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했다.

이어 “환자를 내보내는 것만으로는 수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정신병원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거시설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히 “국가가 탈수용화, 탈시설화 얘기하기 전에 먼저 주거시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갈 곳을 먼저 만들고 수용시설을 해체해야지 무조건 나가라고 하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이제까지는 아웃풋 중심의 탈수용화였다면 거꾸로 입구를 막는 인풋도 중요하다”며 “적극적인 외래 치료로 충분히 호전돼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저는 낮병원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포럼 토론자들. (c)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유튜브 갈무리.
포럼 토론자들. 사진=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유튜브 갈무리

그러면서 “왕진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며 “집에서 안 나오면 설득해서 장기지속형 주사 형태로 지금도 진료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입원을 막으면서 얼마든지 지역사회 안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모든 입원은 나쁜 것인가?

안 원장은 “정신병원이 비침습적이고 비강압적인 치료를 하고 1~2인실 위주의 자의입원을 권하는 병원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며 “편안한 병원 환경에서 치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개방병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입원, 급성기에 짧게 입원할 수 있는 병원에는 다 수가가 걸려 있다”며 “병원에 좋은 치료 하라고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국가가) 돈을 더 줘야 한다”고 말했다.

탈수용화 운동과 관련해 그는 “조현병, 중증정신질환자는 어디에 갇힐까? 정신병원에만 갇힐까?”라며 “우리의 머릿속에, 일반 시민의 머릿속에, 정신과 의사 머릿속에, 가족의 머릿속에 갇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머릿속 담장과 쇠창살을 부수고 싶다. 그게 어렵다”며 “물리적 공간을 부수는 것보다 마음 속, 관념 속 공간을 부수는 게 더 어려울 거 같다”고 토로했다.

왕진의 경우 “사회복지사, 정신건강간호사보다 의사인 내가 갔을 때 ‘말발’이 더 먹힌다”며 “이는 ‘당신을 치료하러 왔다. 입원 막고 싶고, 힘들지 않나’라고 설득하면 약물을 받아들이고 주사제도 허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왕진이 법적으로 허용되고 정부 시범사업도 있었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전했다.

그는 급성기 환자를 위한 병동 문제에 대해 “정신병원을 다운사우징(규모를 줄이기) 해서 급성기 위주로 가면 어떨까 생각한다”며 “지금의 시설 규모에서 3분의 1로 줄이고 인력은 그대로 해서 치료할 수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의료보험으로 충분히 지원해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석 금천구정신건강복지센터 활동가는 발제 초반에 자신의 성장사를 길게 설명했다.

그는 “성장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25년 동안 재발·재입원을 계속했지만 의사는 나의 성장 배경을 질문하지 않았다”며 “나의 환청, 환시, 관계 사고만 듣고 약물을 처방받았다”고 말했다.

정 활동가는 “나는 재발한 경험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의사와 대립해서 약을 늘리지 않겠다는 것은 증상도 내가 인내할 수 있는 한도에서 참아보겠다며 약을 먹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현석 금천구정신건강복지센터 당사자 활동가. (c)©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유튜브 갈무리.
정현석 금천구정신건강복지센터 당사자 활동가. 사진=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유튜브 갈무리

이어 “치료 공간의 이미지는 공포스러움, 학대 공간, 비위생적, 쇠창살이 있고 철망이 있다. 작년 5월에 입원했는데 아직도 똑같더라”라며 “이 치료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바뀌었지만 당사자는 대부분 법 바뀐 것을 체감하지 못한다”며 “병원 입원에 동의하더라도 입·퇴원이 보호자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활동가는 “초발, 재발 환자이든 인지능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 상황에 맞는 설명을 동원해서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며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과, 병원 안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등에 대해 동의가 다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폐쇄병동이 아닌 사회 안에서 치료받기, 우리를 가두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우리의 증상보다 한 사람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길 원한다”며 “당사자의 행복에 관점을 두고 치료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이번 인권 포럼은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가 공동주최했다. 양 기관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가족을 비롯한 관계기관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각계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국가의 정신장애 정책 변화를 위한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포럼을 진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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