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모니터링으로 정신질환 부정적 기사 줄어...“기자들과 협업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언론 모니터링으로 정신질환 부정적 기사 줄어...“기자들과 협업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12.0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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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회, 인권위 용역사업으로 진행한 언론 모니터링 분석 결과 발표
가치중립적 ‘조현병’ 병명이 사건과 결합하며 ‘주홍글씨’로 낙인 찍혀
정신질환 범죄 기사?...정신질환자 범죄만 보도하는 건 인권 침해
모니터링 사업 지속돼야...매뉴얼 만들면 업무처리도 효율화될 것
배점태 심지회 회장. (c)마인드포스트.
배점태 심지회 회장. (c)마인드포스트.

심지회(한국조현병회복협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사업으로 올해 5개월간 진행한 언론 모니터링을 분석한 결과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전년도 동기간 대비 3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주류 언론 이외 영화와 유튜브 같은 통신매체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된 ‘당사자 및 가족 관점의 정신장애인·방송드라마 모니터링 결과 발표 및 토론회’에서 배점태 심지회 회장은 “2021년에 이어 지속적 언론 모니터링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정확한 기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다고 평가됐다”고 말했다.

심지회는 지난 6월 인권위 용역으로 모니터링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당사자 13명과 가족 2명이 6월부터 10월까지 주요 방송사와 언론사들의 정신질환 관련 보도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심지회는 지난해에도 같은 형식의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기간 동안 ‘조현병’, ‘정신질환’, ‘정신장애’를 키워드로 검색해 모두 101건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중 긍정적 기사는 24건, 부정적 기사는 77건이었다. 2021년에는 부정적 기사가 111건이었다.

올해에는 신문 등 언론을 비롯해 영화와 통신매체로 모니터링 범위를 확대했다.

배 회장은 “영화를 포함한 방송 매체 및 유튜브는 유행과 시청자의 반응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매체”라며 “대량의 정보를 일시에 전달할 수 있어 파급 효과 신문·잡지보다 높다”고 분석했다.

모니터링은 주류 언론들의 정신질환 관련 논조의 주요 특성을 분석했다.

무엇보다 언론이 자극적·선정적인 제목 기사가 지적됐다. 배 회장은 “가치중립적 단어인 ‘조현병’을 사건 관련 자극적 단어와 함께 제목에 사용해 조현병을 주홍글씨와 같은 혐오의 단어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 기사 본문에 관련없는 삽화나 사진을 삽입해 보도하거나 통계자료 등을 과장해 편견을 조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정신질환 질병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기사를 작성하거나 편향된 취재원의 말을 확인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사례도 지적됐다.

배 회장은 “과거 사건 내용을 반복 노출해 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가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게 보도하는 사례 분석도 나왔다”고 전했다.

인과관계 없이 사건·사고의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추정하는 기사와 정신질환 증상을 과도하게 표현하거나 폭력성·잔인성을 상세하게 기술해 혐오와 편견을 조장하는 사례도 거론됐다.

이어 개인 민감 정보에 해당하는 정신병력이 사건 관계가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되거나 편견을 내포한 ‘탈출’, ‘정신나간’, ‘미친’, ‘시한폭탄’ 등의 표현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 회장은 “언론에 의해 조성된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이 병을 인정하지 않고 적시 치료를 하지 않아 병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신질환자 범죄 기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반론에 부딪칠 수 있다”며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발생시킨 범죄만 주로 보도하는 것은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라고 말했다.

모니터링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모니터링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2018년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살인 등 강력범죄의 연간 발생 건수는 2만7000여 건이다. 이중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 건수는 639건에 불과하다. 전체의 2.4% 수준이다.

배 회장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은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기사보다 사실에 기반한 기사, 낙인보다는 당사자와 가족의 입장을 반영한 기사, 절망보다는 희망을 주는 기사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 모니터링 활동이 지속돼야 한다는 의견도 밝혔다. 이를 통해 언론모니터링 업무 매뉴얼을 만들면 모니터링 요원에 대한 교육과 함께 매뉴얼에 따라 업무처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복적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가 송출될 경우 언론중재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관련 기사의 민원 등 구제신청을 하는 등 적절한 지침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의 시급한 제정도 요청됐다.

지난해 9월, 부산의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 ‘침묵의소리’는 국내 처음으로 ‘정신장애보도 미디어 가이드라인2.0’을 제작한 바 있다. 또 올해 4월 서울시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1.0’을 만들었고 이번 사업 결과를 반영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1.0’ 역시 제작됐다.

배 회장은 “제정된 권고기준을 언론사 기자가 협조해줘야 하나 기자들의 인식 및 협조 부족으로 그 효과가 미미하다”며 “언론기관에 근무하는 기자들과 함께 새로운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인권위가 2020년 9월 ‘개인의 민감정보인 정신병력을 사건관계자 동의 없이 기자에게 유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 표명이 아직 경찰 일선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주의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배 회장은 “언론기관에서 정신질환자 보도와 관련한 내용이 반영된 자체 ‘취재보도준칙’이나 ‘범죄수사 및 재판취재 보도시행세칙’을 제정해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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